평탄하게만 흘러가던 삶 가운데 갑작스럽게 병마로 인해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한 저자가 이로 인해 깨달은 것들을 선물처럼 풀어낸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이자 조심스러운 조언들. 미국의 속담처럼 자신에게 찾아온 병이라는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보이겠다는 다짐처럼 긍정적인 면모가 글 곳곳에 녹아있어 좋았다. 나와 완전히 다른 궤도의 삶을 살았지만 생물이나 과학을 좋아했다는 점, 어릴적 성격, 삶에 대한 생각등이 닮은 구석이 있어 왠지 읽는 내내 동감도 많이 되고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의 삶 전반에 걸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긴 하지만 핵심 메세지를 꺼내자면 역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아라"인 것 같다. 스펙이며 남의 시선탓에 다른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는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을 넘어서 자아초월의 단계로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내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조금 막막하긴 하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와 생각들, 삶의 방식들이 가랑비처럼 내게 작용해 결정의 순간에 도움을 주길 내심 바라본다.  

 

p.172

마치 내버려진 것처럼 자랐지만 역설적이게도 도리어 이런 환경이 나의 생각과 직감을 신뢰하고, 주어진 것이 부족하더라도 잘 활용하며, 문제가 생기면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때로는 가르침의 손길이 덜할 때 오히려 아이들은 더 크게 배우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원망스럽지 않고 오히려 마냥 고맙기만 하다.

 

p.230

내가 만약 그때 나를 뽑아주지 않은 선생님들을 원망만 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용기를 내어 "나도 데리고 가면 안 돼요?"라고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내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미국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 "If you don't speak up for yourself, no one will(네가 너의 입장을 잘 표현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대신해주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의사를 똑똑히 표현해 효과적으로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가르치는 것이다.

 

p.272

모든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에는 가능성과 위험성이 공존한다. 그런데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몇 퍼센트가 가능성이고 몇 퍼센트가 위험성일지 정확히 판단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차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라면,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단 한번 해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인생의 길에는 꼭 맞는 길도 꼭 틀린 길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결정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해준다. "If you really want to do it, go for it(네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한번 해봐)."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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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愛쓰다 -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글벗들의 감정에세이
박나영 외 지음 / 자상한시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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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소중한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담담하게 풀어낸 에세이집. 여러 모양과 빛깔의 삶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읽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꼭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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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작 우리를 말렸어야 했다."

p.75

 

이전에 어디선가 사람은 평생 열일곱 살의 정신연령으로 평생을 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고등학교 1학년과 현재의 사고방식과 기질이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내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 모두는 열일곱 살의 마음으로 세상을 잘 살아가는 어른인 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발을 동동 굴려가며 세상을 어떻게든 잘 살아가보려는 불안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소설 속 은행강도는 자신이 위기의 중년을 직격으로 맞고 홧김에 들어간 은행이 디지털 은행이었을 줄 몰랐다. 게다가 도망친 집이 모델하우스여서 원치도 않는 여럿의 인질을 확보하고, 그들 앞에서 엉엉 울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질들 또한 겉보기엔 멀쩡한 어른이지만 자신들을 향해 총구도 겨누지 못하는 엉성한 은행강도만큼이나 어리숙하고 불안한 구석이 있다.

 

누구보다 유능한 금융인이지만 10년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라, 삶이라는 나무를 함께 올라간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깨달은 노부부 로게르와 안나레나, 미숙한 자신들의 모습과 완벽한 부모 사이의 괴리감에 결정장애에 시달리는 신혼부부 로와 율리아, 배우이자 동시에 모델하우스 방해꾼인 레나르트, '항상' 밖에서 주차공간을 찾아 근처를 배회하는 남편이 있는 에스텔까지. 이가 나간 유리컵처럼, 수평이 맞지 않는 의자처럼 어딘가 허술한 이 어른들은 인질로써 서로를 마주하고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자세히 보면 흠집 투성이에 온갖 부산물이 뒤섞인 모래 알갱이들이 모이면 햇빛에 부서지는 백사장이 되듯이,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알게 모르게 위로하며 피할 수 없는 삶의 불안함과 불완전성을 수용하고 서로를 포용한다. 산호와 유리 조각으로 서로를 가끔 찌르는 한이 있어도 함께 삶이라는 파도에 마모되며 자기 스스로를, 세상을,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삶은 원하는대로 되기보다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임을,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간다. 이 소설은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게될 이 과정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 인질로 만나 한밤중의 피자파티와 불꽃놀이를 하고 헤어지게 되는 이들은 하나의 같은 비밀을 품은 채 서로의 삶으로 돌아간다. 

 

소설의 구성도 재미있다. 마치 영화의 씬들을 잘게 잘라놓은 것 같다. 각 챕터의 호흡이 짧고 알차기 때문에 이동중에 혹은 자기전에 조금씩 읽기에도 적합할 듯 하다. 또 이 소설의 묘미이자 진미가 있다. '당신의 편견이 어디까지인지 실험해보세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심하며 즐겁게 읽다가 한 번씩 뒷통수를 딱 맞게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도 즐겁다.

 

사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처음이다. 유명한 전작들이 있음에도 베스트 셀러 소설은 손이 잘 가지 않아 읽지 않았는데 확실히 인기작에는 이유가 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여린 시선이 따스한 햇빛과 같다고 느꼈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요즘 삶에 어딘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 불안이 심연에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뒷통수도 맞고 미소짓기도 하고 짠해하기도 하다보면 불안이 어느새 사르르 녹아있다. 개인적으로 매력있는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내일이 궁금해'지는데, 오랜만에 이 소설이 그렇다. 작가의 전작과 차기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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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 인간 본성의 역설
리처드 랭엄 지음,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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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 본성의 선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자들에게 흥미로운 논제였다. 동양의 성선설, 성악설 서양의 루소주의와 홉스주의가 그 예이다. 이 주제는 어려운 철학, 사회과학으로 뛰어들지 않아도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로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익 관계가 없는 제 3자를 위해 희생한다. 난생 처음 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기도 하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우는 고3 학생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반면 인간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음에도 계획적으로 타자를 해하기도 한다. 미성년자의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즐기고, 잇달아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저자 리처드 랭엄은 인간 선악에 대한 답을 진화론의 힘을 빌려 유인원관 비교함으로써 얻고자 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길들이기’를 통해 과거의 난폭하고 폭력적인 유인원 조상과는 다른 성향을 갖는 종이 되었다. 랭엄은 인간이 ‘낮은 반응적 공격성’과 ‘높은 주도성 공격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반응적 공격성이란 수동적 공격성이다. 타자가 먼저 공격성을 보이거나 위협을 가하면 동물적인 감각으로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우발적 폭력, 살인등은 이에 해당한다. 주도적 공격성이란 계획적 공격성이다. 능동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신중한 계획에 의해 실행되며 분노, 공포와 같은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다. 계획적 범죄가 그 예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렇게 진화했는가?

선택적 여우 길들이기 실험인 ‘벨랴예프의 법칙’, 늑대와 개의 차이, 유인원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를 통해 랭엄은 동물에게서 일어난 ‘길들이기 증후군(domestication syndrome)’ 인간에게도 적용되어있으며, 과거 조상에 비해 ‘길들여진 종’이라고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골격, 얼굴의 크기, 어금니의 면적, 턱의 크기가 작으며, 성별간 외형적 차이가 적다. 이는 신경능선세포(neural crest cell)의 이동 유형 갑상선 호르몬에 의한 제어와 관계가 있다. 또한 길들이기는 사회화의 창을 넓히므로, 낮은 반응적 공격성과도 관계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언어’는 낮은 반응적 공격성과 더불어 협동의 길로 가도록 이끌었다. 타 동물과는 다르게 복잡한 언어 체계는 개체간 ‘평판’을 만들었고, 평판은 ‘도덕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집단 내 지나치게 폭력적인 개체인 ‘폭군’을 제거하여 진화적으로 높은 반응적 폭력성을 약화시켰을 것이다. 높은 주도적 공격성은 ‘주도적 연합 공격’에 대한 높은 성향이 이어져 왔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냥의 풍습은 동물 뿐만 아니라 낯선 동족(인간)에게도 향했을 것이며, 이는 길들이기가 진행되는 동안 ‘폭군’에 대한 계획적 공격이었다가, 종래에는 계획되고 공동으로 승인한 ‘사형’이 집행되며 약자에게도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진화적으로 선한면과 악한면은 모두 진화적 과거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인간의 미래를 숙고하는 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에 관한 두 가지 사항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해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책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 등 인간을 유인원 중 하나로 간주하고 그 진화적 역사와 현재 인간 종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함께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벨라예프 실험과 개와 늑대의 차이로 ‘길들이기 증후군’을 설명하고 그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에 적용하는 부분, 또 침팬지, 보노보, 인간 차이와 침팬지보다 보노보와 유사하다는 점을 밝혀가는 과정, 인간이 어떻게 낮은 반응적 공격성과 높은 주도적 공격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 등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초반에 저자가 언급하고 옮긴이의 말에도 나와있는 유전학, 특히 후성유전학적 접근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도서협찬 #도서제공 #진화론 #성악설 #성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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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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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모노톤과 형광원색의 색채가 공존하는 팔레트다. 일본 여행 중 본 TV에는 정숙하고 올바른 이미지의 광고와 B급 감성의 충동적이며 키치한 광고가 번갈아 나왔다. 그 공존은 길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직업에 기계적인 사명감을 갖고 있는 충실한 사회인들이 가득한, 휑할정도로 깨끗하고 정돈된 거리가 있는 반면, 아키하바라 거리에는 그런 틀이 지겹다는 듯 개성을 표출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일본인들은 성숙한 모습을 강요받는 동시에 속에는 번개와 같은 충동을 키우고 있구나 생각했다.


 


  책에서도 일본인의 이면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감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걸 버리고 야반 도주 하는, 일본의 사회 현상을 담은 르포 <인간 증발>(레나 모제 저, 이주영 역, 책세상) 에서 일본인을 보자. 그들은 누구도 짊어지라고 한 적이 없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안고 살아가고자 하는 강인한 인간임과 동시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면 가족과 자신의 모든 삶을 내팽겨치고 도망가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한국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에서 일본인은, 전시상황이라는 점과 식민지를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극악무도하고 잔인했다. 이 인간상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달라보이는 이 모습은, 실제로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국화와 칼>의 목차는 핵심적인 문구로 이루어져있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일본문화를 얇게 저며 전시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들이 세계를 접하는 방식, 세계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형성되는 그들의 본질적인 자아와 가치관, 세계관을 비롯하여, 그를 통해 형성된 일본의 사회제도의 역사, 인간 관계의 양상, 종교의 문제까지 낱낱이 분석했다.


 


  책의 p.164~165에 있는 열람표가 일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보여준다. 크게 온(은혜, 恩), 기무(의무, 義務), 기리(의리, 義理) 이다. '온'은 수동적으로 입는 의무이며, 자기에게 온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온진(은인, 恩人)이 된다. '기무'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또 시간적으로 한계가 없는 의무이다. 주로 주(충, 忠), 고(효, 孝), 닌무(임무, 任務)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기리는 비교적 실생활에 밀접한 것이다. 크게 이름, 주군, 부모와 형제, 타인, 먼 친척에 대한 기리로 나눌 수 있다. 기리는 기무에 비하여 그 크기가 작고, 대상에 따라 귀찮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작은 것 까지 포함한다. 


 


  이 중 인상깊었던 것은 '천황으로 부터 받는 온', '천황.법률.일본국에 대한 의무'인 고온(황은, 皇恩)과 주(충, 忠)이다. '천황'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매우 생소하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접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천황은 종교가 아니라, 책임 있는 국가 원수가 아닌 일본 국민 통합의 최고 상징이며, 일체의 세속적 상황에서 떠난 신성한 수장이라고 한다. (p.174) 미국의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정당 정치를 초월한 것과 마찬가지로,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것' 이다.(p. 178) 일본인은 태어나면서 천황에 대한 온(은혜, 恩)을 입고 태어나 이를 평생 마음의 빚으로 지고 간다. 이는 국가와, 법률, 또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임무를 다하며 복종하는 것으로 변제한다고 생각한다.


 


  이 심리적 '채무'가 그들의 탄생과 더불어 어떻게 인식되기 시작하는 지도 흥미롭다. 저자는 일본인의 생활 곡선이 '큰 U자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용되고, 청년과 장년기에 가장 큰 책임감과 구속을 짊어진다고 표현했다. 아이가 여섯살일 때 부터 갖가지 종류의 구속, 외부세계로부터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한 규칙이 주입된다. "규칙은 점차 증대되어 가족, 이웃사람,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의무에 자신의 의지를 복종시킬 것을 요구한다. 아이는 자기를 억제해야하며, 자신이 채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는 부채를 갚기 위해 주의 깊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채무자의 지위로 서서히 옮겨 간다." (p.354)


 


  이렇게 뼛속깊이 각인된 가치관은 일본인의 삶을 지배하며 그를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하게 작동하게 돕는다. 온, 기리, 기무를 알고 나면, 일본의 높은 자살률, 위에 언급한 '인간 증발' 이라는 사회 현상, 또 이상할 정도로 깊은 자괴감과 우울감을 쉽게 느끼는 일본인의 심리 등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맨 처음 언급한 정숙함과 충동적임 사이의 간극 또한, 서양문물의 적극적 수용과 자본주의로 인한 현대화와 아직 잔존하는 전통 간의 간극에서 새어나온 감정과 충동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추측을 해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 문화를 분석한 다른 서적을 읽어보고 싶다.


 


  이슈 뿐만 아니라 기존에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함이 있었던 분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국화와 칼>은 이런 나의 궁금증은 70%정도 해소해주었다. 왜 70%냐 하면, 이 책이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후의 일본 분석 리포트라는 점, 동양인이 낯선 서양인의 눈으로 보았다는 점, 방문 없이 다른 서면 자료와 인터뷰로만 분석했다는 한계가 있어서이다. 잘 쓴 분석 리포트이지만, 저자가 일본인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가끔 '확대해석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국화와 칼>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일본인 인문학자가 사실 여부를 평가한 책이 있다면, 같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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