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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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모노톤과 형광원색의 색채가 공존하는 팔레트다. 일본 여행 중 본 TV에는 정숙하고 올바른 이미지의 광고와 B급 감성의 충동적이며 키치한 광고가 번갈아 나왔다. 그 공존은 길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직업에 기계적인 사명감을 갖고 있는 충실한 사회인들이 가득한, 휑할정도로 깨끗하고 정돈된 거리가 있는 반면, 아키하바라 거리에는 그런 틀이 지겹다는 듯 개성을 표출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일본인들은 성숙한 모습을 강요받는 동시에 속에는 번개와 같은 충동을 키우고 있구나 생각했다.


 


  책에서도 일본인의 이면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감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걸 버리고 야반 도주 하는, 일본의 사회 현상을 담은 르포 <인간 증발>(레나 모제 저, 이주영 역, 책세상) 에서 일본인을 보자. 그들은 누구도 짊어지라고 한 적이 없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안고 살아가고자 하는 강인한 인간임과 동시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면 가족과 자신의 모든 삶을 내팽겨치고 도망가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한국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에서 일본인은, 전시상황이라는 점과 식민지를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극악무도하고 잔인했다. 이 인간상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달라보이는 이 모습은, 실제로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국화와 칼>의 목차는 핵심적인 문구로 이루어져있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일본문화를 얇게 저며 전시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들이 세계를 접하는 방식, 세계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형성되는 그들의 본질적인 자아와 가치관, 세계관을 비롯하여, 그를 통해 형성된 일본의 사회제도의 역사, 인간 관계의 양상, 종교의 문제까지 낱낱이 분석했다.


 


  책의 p.164~165에 있는 열람표가 일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보여준다. 크게 온(은혜, 恩), 기무(의무, 義務), 기리(의리, 義理) 이다. '온'은 수동적으로 입는 의무이며, 자기에게 온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온진(은인, 恩人)이 된다. '기무'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또 시간적으로 한계가 없는 의무이다. 주로 주(충, 忠), 고(효, 孝), 닌무(임무, 任務)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기리는 비교적 실생활에 밀접한 것이다. 크게 이름, 주군, 부모와 형제, 타인, 먼 친척에 대한 기리로 나눌 수 있다. 기리는 기무에 비하여 그 크기가 작고, 대상에 따라 귀찮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작은 것 까지 포함한다. 


 


  이 중 인상깊었던 것은 '천황으로 부터 받는 온', '천황.법률.일본국에 대한 의무'인 고온(황은, 皇恩)과 주(충, 忠)이다. '천황'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매우 생소하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접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천황은 종교가 아니라, 책임 있는 국가 원수가 아닌 일본 국민 통합의 최고 상징이며, 일체의 세속적 상황에서 떠난 신성한 수장이라고 한다. (p.174) 미국의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정당 정치를 초월한 것과 마찬가지로,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것' 이다.(p. 178) 일본인은 태어나면서 천황에 대한 온(은혜, 恩)을 입고 태어나 이를 평생 마음의 빚으로 지고 간다. 이는 국가와, 법률, 또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임무를 다하며 복종하는 것으로 변제한다고 생각한다.


 


  이 심리적 '채무'가 그들의 탄생과 더불어 어떻게 인식되기 시작하는 지도 흥미롭다. 저자는 일본인의 생활 곡선이 '큰 U자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용되고, 청년과 장년기에 가장 큰 책임감과 구속을 짊어진다고 표현했다. 아이가 여섯살일 때 부터 갖가지 종류의 구속, 외부세계로부터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한 규칙이 주입된다. "규칙은 점차 증대되어 가족, 이웃사람,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의무에 자신의 의지를 복종시킬 것을 요구한다. 아이는 자기를 억제해야하며, 자신이 채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는 부채를 갚기 위해 주의 깊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채무자의 지위로 서서히 옮겨 간다." (p.354)


 


  이렇게 뼛속깊이 각인된 가치관은 일본인의 삶을 지배하며 그를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하게 작동하게 돕는다. 온, 기리, 기무를 알고 나면, 일본의 높은 자살률, 위에 언급한 '인간 증발' 이라는 사회 현상, 또 이상할 정도로 깊은 자괴감과 우울감을 쉽게 느끼는 일본인의 심리 등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맨 처음 언급한 정숙함과 충동적임 사이의 간극 또한, 서양문물의 적극적 수용과 자본주의로 인한 현대화와 아직 잔존하는 전통 간의 간극에서 새어나온 감정과 충동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추측을 해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 문화를 분석한 다른 서적을 읽어보고 싶다.


 


  이슈 뿐만 아니라 기존에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함이 있었던 분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국화와 칼>은 이런 나의 궁금증은 70%정도 해소해주었다. 왜 70%냐 하면, 이 책이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후의 일본 분석 리포트라는 점, 동양인이 낯선 서양인의 눈으로 보았다는 점, 방문 없이 다른 서면 자료와 인터뷰로만 분석했다는 한계가 있어서이다. 잘 쓴 분석 리포트이지만, 저자가 일본인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가끔 '확대해석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국화와 칼>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일본인 인문학자가 사실 여부를 평가한 책이 있다면, 같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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