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작 우리를 말렸어야 했다."

p.75

 

이전에 어디선가 사람은 평생 열일곱 살의 정신연령으로 평생을 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고등학교 1학년과 현재의 사고방식과 기질이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내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 모두는 열일곱 살의 마음으로 세상을 잘 살아가는 어른인 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발을 동동 굴려가며 세상을 어떻게든 잘 살아가보려는 불안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소설 속 은행강도는 자신이 위기의 중년을 직격으로 맞고 홧김에 들어간 은행이 디지털 은행이었을 줄 몰랐다. 게다가 도망친 집이 모델하우스여서 원치도 않는 여럿의 인질을 확보하고, 그들 앞에서 엉엉 울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질들 또한 겉보기엔 멀쩡한 어른이지만 자신들을 향해 총구도 겨누지 못하는 엉성한 은행강도만큼이나 어리숙하고 불안한 구석이 있다.

 

누구보다 유능한 금융인이지만 10년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라, 삶이라는 나무를 함께 올라간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깨달은 노부부 로게르와 안나레나, 미숙한 자신들의 모습과 완벽한 부모 사이의 괴리감에 결정장애에 시달리는 신혼부부 로와 율리아, 배우이자 동시에 모델하우스 방해꾼인 레나르트, '항상' 밖에서 주차공간을 찾아 근처를 배회하는 남편이 있는 에스텔까지. 이가 나간 유리컵처럼, 수평이 맞지 않는 의자처럼 어딘가 허술한 이 어른들은 인질로써 서로를 마주하고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자세히 보면 흠집 투성이에 온갖 부산물이 뒤섞인 모래 알갱이들이 모이면 햇빛에 부서지는 백사장이 되듯이,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알게 모르게 위로하며 피할 수 없는 삶의 불안함과 불완전성을 수용하고 서로를 포용한다. 산호와 유리 조각으로 서로를 가끔 찌르는 한이 있어도 함께 삶이라는 파도에 마모되며 자기 스스로를, 세상을,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삶은 원하는대로 되기보다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임을,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간다. 이 소설은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게될 이 과정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 인질로 만나 한밤중의 피자파티와 불꽃놀이를 하고 헤어지게 되는 이들은 하나의 같은 비밀을 품은 채 서로의 삶으로 돌아간다. 

 

소설의 구성도 재미있다. 마치 영화의 씬들을 잘게 잘라놓은 것 같다. 각 챕터의 호흡이 짧고 알차기 때문에 이동중에 혹은 자기전에 조금씩 읽기에도 적합할 듯 하다. 또 이 소설의 묘미이자 진미가 있다. '당신의 편견이 어디까지인지 실험해보세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심하며 즐겁게 읽다가 한 번씩 뒷통수를 딱 맞게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도 즐겁다.

 

사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처음이다. 유명한 전작들이 있음에도 베스트 셀러 소설은 손이 잘 가지 않아 읽지 않았는데 확실히 인기작에는 이유가 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여린 시선이 따스한 햇빛과 같다고 느꼈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요즘 삶에 어딘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 불안이 심연에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뒷통수도 맞고 미소짓기도 하고 짠해하기도 하다보면 불안이 어느새 사르르 녹아있다. 개인적으로 매력있는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내일이 궁금해'지는데, 오랜만에 이 소설이 그렇다. 작가의 전작과 차기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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