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을 꼬집을 때는 항상 상위 1%의 슈퍼 리치가 가장 뭇매를 많이 맞는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1 vs 99이 아닌 20 vs 80 사이의 간극이 가장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지각변동에 견줄 수 있을 만큼 눈에 띄면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 사회 계층적 분리는 불평등을 더욱 심화 시킬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하고 있다.
저자는 이 20%에 속하는 중상류층의 독자를 주 대상으로 하여 팩폭을 날리고, 회유도 했다가, 협박을 하는 둥 온갖 설득의 기술을 총동원 하고 있다. 그 내용은, "우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 더 이상의 '아메리카 드림' 사재기는 그만하고, 조금만 이기심을 버리고 양보하자."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20%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포함한 중상류층이 얼마나 양질의 기회를 사재기하고 있는지 폭로를 하는 셈이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20%의 중상류층에 대한 묘사와 그들이 취하고 있는 이득은 한국에 있는 나에게도 남일 같지 않다. '수저론'부터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 사람들도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계급의 분리와 그 간극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계급적 사회인 영국에 질려, 조국을 버리고 두 번째 조국으로 미국을 택한 저자는, 겉으로는 자유와 능력 주의를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사회적 계급을 기반으로 한 차별이 만연한 미국에 큰 실망을 한다. 한국도 미국의 경우와 비슷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이 존재하는 나라 일 것이다.
'수저론'은 한국의 사회적 계급의 이름표 정도 될까? 미국에도 은수저(silver spoon)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더 세분화 되어있다. '금수저'를 가장 최고로 친다. 그 정확한 기준은 모호하나 대체로 대기업 회장의 직속 후손, 재벌 2세 정도면 이에 속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후 '은수저', '동수저'까지 나오더니 기어코 비금속성 수저인 '흙수저','나무수저'도 등장했다. 아마 이 책에서 나오는 20% 는 개인적으로 금속성 수저면 모두 포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중상류층들이 초반에 어떻게 부와 재산을 축적했는지는 둘째 치고, 그들의 사회적 계급과 능력을 세습하려 하는 특성 때문에 미국의 계층 이동성이 경직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세습은 단순히 금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진다. 안전하고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 안에서 중상류층의 아이들은 '사회가 원하는 능력'을 함양한다. 사회성, 자기규율, 광범위한 문화적 어휘, 노동윤리 등이다. 나아가 더 넓게 보자면 다양한 경험, 여행, 가정교사 등이 있을 수 있다. 헌신적이며 최소 학사학위를 딴 부모 밑에서 자라는 이 아이들은 부모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좋은 교사가 있는 초,중,고등 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대입을 쉽게 하고, 내노라 하는 기업의 인턴 자리를 얻어 비교적 쉽게 부모가 속하는 계층에 안정적으로 발을 걸친다. 후에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을 때도, 막대한 조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누군가는 "나의 능력을 통해 얻은 기회를 자식에게 베푸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위에 나열된 것들이 능력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경쟁의 판을 조작해서 기회를 얻는 '기회 사재기'라고 꼬집는다. 또 "평등을 일구는 가장 위대한 기제이자 사회라는 기계의 평형 바퀴"인 교육을, "협소한 능력 본의 주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계급 재생산을 깨뜨리기는 커녕 도리어 강화"한다고 말한다.
이 20%의 부모들도 점점 벌어지는 80%와의 격차때문에, 자식들이 20%에 속하지 못하면 더 이상' 연착륙'이 아닌 '추락'이 될까 겁을 내고, 더욱더 견고한 '유리바닥'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는 더욱더 강한 '기회 사재기'를 하게 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80%의 사람들의 상향 이동성을 막는 악순환을 부른다. 단순히 유능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좋은 기회를 얻어 중상류층의 주요 직업에 종사하면 나쁠 것이 없지 않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인적자본을 육성하는 온실"에서 자란 화초들이 무능하기도 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저자는 "가난하지만 똑똑한 아이들을 사다리의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하면, 노동의 질이 향상되고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마냥 80%의 사람들을 위로 끌어올리자는 단순 불평등 타파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깨부수고자 하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계층의 경직성이며, 시장 경쟁력을 줄이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책에서 확인 할 수 있다. 크게 "20%의 기회 사재기 줄이기", "80%의 경쟁력 갖추기 돕기"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책의 마지막 장에 저자는 "2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고함" 이라는 직접적인 제목으로 기회 사재기와 각종 조세 혜택 특전을 통해 다른 이들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을 인정하고, 자기 비판을 겸한 양심적인 태도를 가져 조금 더 손해와 양보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과연 통할까? 정치인들도 80% 이상의 투표율을 보이는 안정적인 재산과 직업, 영향력을 가진 유권자 집단인 이들의 눈치를 엄청 본다. 저자도 실제 주변인에게 이야기했다가 이미 많이 뭇매를 맞은 모양이다. 아마 20%의 입장에서는 다짜고짜 양보를 하라니, 장기적인 경제를 위해서 희생을 하라니 어이가 없을만 하다. 게다가 주변의 이웃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견대로 불평등이 더욱 더 심화되어, 유리 바닥과 천장의 간극은 더욱 멀어져, 자칫 잘못 헛디뎠다가 유리 바닥의 구멍으로 떨어지는 날에는, 추락도 아닌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더욱 더 안간힘을 써야하는 삶도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정한 사회는 계급 사다리에서 자신이 어느 칸에 있게 될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서, 그 사회의 사회구조에 동의할 수 있는 사회이다. - 존 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