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ㅣ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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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술의 새로운 방향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객관적 사료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되도록 역사 서술자의 주관적인 입장이 들어가지 않도록 서술하는 방식으로, 대표적인 학자는 '레오폴트 폰 랑케'다. 그의 역사 서술 방식을 '객관주의적 역사 서술'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하나는 사료가 결코 객관적일 수 없고, 과거의 역사가와 그 역사가가 살던 시대의 환경이 서로 어우러져서 생긴 주관적인 자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그 역사 자료를 해석하는 현대의 역사가 또한 현대의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주관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의 역사가는 자신의 역사 서술 주제에 맞게 사료를 취사 선택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새로운 역사적 사료가 등장으로 인해 자신의 역사 서술의 주제를 바꾸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역사 서술은 과거(과거의 역사가와 환경)와 현재(현재의 역사가와 환경)이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며 진행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E. H. Carr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의 역사 서술 방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로 요약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역사 서술 방법 외에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새로운 역사 서술 방법이 등장하는데, 바로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료를 통해서 역사를 다 구성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사료의 틈과 틈 사이를 역사가의 상상력을 메꾼다는 것이다. 물론 허황된 이야기를 메꾸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료와 사료 사이의 흐름을 추적하여 추론을 하는 것이고, 문학적인 상상력을 통해 그럴 법한 가상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역사는 객관적인 사료의 해석이나 주관적인 해석의 차원을 뛰어 넘어 문학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 형태의 서술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상상력이란 방법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채택한 책이 바로 <치즈와 구더기>다. 이 책은 '메노키오'라는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농부이자 방앗간 주인이었던 사람이 이단적인 생각과 말 때문에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을 여러 가지 사료를 통해 자세하게 보여준다. 물론 팩션처럼 문학적인 서술을 통해 기존의 역사 서술처럼 딱딱하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어찌보면 흥미로온 법정 소설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물론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하는 다양한 책들과 사람들 그리고 지리적 환경들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다소 읽기가 어렵다.) 마침내 메노키오가 사형을 받게 되는 과정까지 매우 세부적으로 묘사해 준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메노키오인가? 왜 그가 읽은 책이 어떤 책인지, 그가 누굴 만났는지, 그가 종교재판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왜 알아야 하는가? 그는 유명 정치인도 아니고 역사의 전면에 나섰던 혁명가도 아니며 뛰어난 학자도 아니었다. '민중'을 대표할 만한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를 연구하는가? 이 책의 저자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왜 그를 선택한 것이가?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의 끄트머리에 가면 이런 말이 나온다.

"16세기 후반 (중략) 그 당시 지배 계층은 이념벅으로도 위로부터의 모든 형태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피지배 계층들을 회유하면서도 그들과 일정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강조해야만 하는 절박한 사황에 직면하였다.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은 유럽의 각지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농촌에 복음을 전하려는 예수회의 노력과 신교, 즉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형성한 가족 단위의 종교 조직화는 하나의 단일한 경향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에 따라, 탄압 차원에서는 마녀 재판이 강회되고 부랑자나 집시들과 같은 소외 집단들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게 실시되었다. 메노키오의 사례는 바로  이러한 민중 문화의 말살과 탄압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말을 통해 작가가 <치즈와 구더기>를 쓴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데, 바로 16세기 후반 카톨릭으로 대변되는 종교적 지배 세력이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민중들에게 전파되던 신교, 즉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일 수 없도록 탄압했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6세기 중반에 시작된 종교개혁에 대한 열망은 당시 민중들을 착취하던 거대한 지배세력(왕과 교황)들 중 교황으로 대표되는 카톨릭에 대한 불만을 뿜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는 식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고 16세기 중후반까지는 무식한 민중들에게까지 뿌리깊게 전파되지는 않았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종교개혁 세력은 피지배세력들 특히 신흥 세력이었던 부르주와 세력과 농민들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유럽 내에 단단하게 입지를 굳히게 된다. 지금까지 역사는 부르주와 세력들이 어떻게 종교개혁 세력과 손을 잡았는지 잘 설명하고 있으나 농민들로 대표되는 민중들과는 어떻게 손을 잡게 되었는지 또한 그들에 대해 구교 세력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바로 이런 비판적 관점에서 '메노키오의 사례'가 연구 대상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서 메노키오가 민중을 대표할 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를 통해 당시 민중에게 지배세력이 어떤 식으로 탄압을 했는지를 추론해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메노키오를 연구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 거대한 흐름이 아닌 그 흐름 속에 숨겨져 있는 작은 사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영웅들이나 반역자들의 역사가 아닌 민중 또는 민초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 연구 분야를 '미시사'라고 한다.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는 바로 이러한 미시사의 대표적인 연구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미시사는 그 동안 역사를 지배세력의 관점에서만 본 것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으며, 민중과 민초들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인류 역사의 전반을 구성해낼 수 있는 연구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미시사적 연구 방법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함대가 어떻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는지를 연구할 때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 이순신의 삶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탄 대장선의 노 젓기를 담당했던 '격군 이씨'의 활동과 그의 삶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이순신의 해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시사 연구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는  역사 연구에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의 내용 자체가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농부의 삶에 대해서 역사가 외에 다른 누군가가 과연 관심을 가질까? 물론 어떤 이는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흥미로울지는 의심스럽다. 때문에 강추를 하지는 못하겠다. 단지 16세기 이탈리아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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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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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통령, 그 마지막을 추억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 노무현. 그 감격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뽑은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노태우 대통령 때는 내가 투표할 권리가 없었고, 김영삼 대통령 때는 이제 재수생이라는 신분 속에서 정치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별 근거도 없이 정치에 대한 혐오감에 투표를 거부했으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정말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의해서 투표를 했었다. 그리고 그는 당선 되었고 30살의 나를 철부지로 만들었다. "야, 내가 뽑은 대통령이야."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정말 끊임없이 논쟁을 끌고 다녔다. 심지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세력과도 싸웠다. 평검사 집단과도 싸웠으며, 막강한 언론권력과도 싸웠다. 그래서였을까? 맨날 싸움질만 한다고 사람들은 노무현을 싫어했고, 무슨 대통령이 그리 품위가 없냐고 논쟁을 즐기는 그의 행태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를 할 때는 정말 보수세력에게는 박수 받고 진보세력에게는 욕을 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노무현의 정체가 뭐야? 좀 잘 하라고 뽑아놨더니 이 따위로 일을 해? 갈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잖아? 미국에게는 왜 이렇게 굽실대는 거야?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고, '놈현스럽다'는 비아냥거리는 농담도 태어났다. 아마도 우리 헌정사상 현직에 있을 때 가장 욕 많이 먹고 희화한 대통령이지 않을까?(요즘 한 명이 더 열심히 욕 먹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노무현을 믿었다. 그는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대의를 보고 있다고.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권력에 대한 그리움을 철저하게 깨고 있다.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 모든 권력이 국민(노무현의 말을 빌리자면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그런 민주주의,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타적으로 거부하고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타협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행동했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바로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그 근거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믿음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내 신뢰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이 사라진 이 세상의 헛헛함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아프고, 슬프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했던 시민권력, 즉 공부하는, 생각하는 시민이 나는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신뢰했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으로 가고 있을 때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떠나는 길에서 기껏해야 슬픔 하나만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 시민권력으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읽으면서 가슴 깊이 아프고 슬프다.

 

  노무현 대통령, 그의 마지막 인터뷰를 읽으며 내 믿음에 대한 근거를 얻어 기쁘기도 했지만 내 행동의 나태함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행동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는 나. 이 한권의 책으로 그 두려움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만은 추억하며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이 어둠의 시기(이명박 대통령의 몰염치가 지배하는 세상)를 견디자. 민주주의는 반드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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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5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광기와 천재 - 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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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세르게이 네차예프

조제프 푸셰

장 자크 루소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미셸 푸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광기를 가진 천재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떤 광기? 그리고 천재라니? 어떤 점에서 천재라는 것일까?

 

히틀러가 천재라고? 그래 사람들은 선동하고 무자비하게 죽이는 데는 천재지. 그래 미친 것도 분명해.

네차예프, 이 사람은 누구지? 러시아 혁명기 시절에 모든 사람들에게 사기쳐서 자기를 민족의 영웅으로 만든 사람, 사기치는데는 천재.

푸셰, 이 사람은 또 누구야? 프랑스대혁명기에 지롱드파와 자코뱅파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한 사람, 기회주의자, 잔인한 자.

루소, 이상을 꿈 꾸면서 자기 자신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던 자, 자아 분열을 극치를 달렸던 자.

소세키, 소설이 참 재미있었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서구에 대한 컴플렉스에 휩싸여 살았던 사람.

카프카, 그는 부자였다고 하더군, 회사에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그런데 왜 그는 "변신"을 한 것일까? 왜 그토록 고독했을까?

비트겐슈타인, 철저한 논리의 칼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찔더댔던 사람, 그 자신의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 천재지만 죽이고 싶다.

하이데거, 오로지 자기 중심적인 사상을 펼친 사람, 천재지만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어서 나치가 되었던 사람. 그의 존재는?

푸코, 동성애 때문에 비주류에 대한 고민이 주체를 파괴하는 힘을 낳게 하여 스스로 주체 파괴자가 된 자, 그의 영혼은 순수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광기어린 천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들의 삶이 내 안으로 투벅투벅 걸어들어와 떡 하니 자리를 잡는 듯하다.

내 안에 히틀러 잠자고 네차예프가 비웃고 있으며 푸셰가 눈알을 이용해 주판을 굴린다.

내 안에 루소가 미친 듯이 꿈을 꾸고 소세키가 컴플렉스를 즐기고 카프카가 무덤을 파고 들어간다.

내 안에 비트겐슈타인이 타오르고 하이데거가 오만함으로 술을 마시며 푸코가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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