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스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의 서막은 이러하다. 어느 날
갑자기 알제리의 오랑 시에 쥐 떼가 죽어나간다. 그저 지나가는 고양이가 물고 온 것이겠거니 생각했던 죽은 쥐들의 수가 점점 늘어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죽은 쥐 떼를 치우는 모습이 흔한 광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몹시 불결하고 불길하다고 느낀다. 그 이후
허벅지에 검은 종기가 나고 고열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져버린다. 이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늘자 마침내 의사와 시 당국은 페스트가 맞다고 선언하고 시를 폐쇄한다.
폐쇄된 오랑시에 남겨진 사람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간다. 그 중에는 외부에서 잠시 시에 들어왔다 발이 묵이거나, 외부에 나가
있는 가족의 연락을 기다리며 오랑시에서 터전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 거리에 차들과 전차가 멈췄다. 가족 중
감염자가 생긴 자들은 격리 수용되어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페스트는 그렇게 수개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 놓았다.
처참한 이 도시의 모습을 서술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페스트의 공포에 떨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은 혼란스럽긴 했지만 잔잔하고 차분게 묘사되어 있다. 페스트가 지배한 세상에서도 그 혼란을 망각하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
혹은 극복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 살아가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드러난 여러 주요 인물들의 이 모습들은 흥미로웠다. 페스트의 종식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리우와 한 범죄자의 사형집행 장면을 본 후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는 타루와 자신의 능력껏 이들을 돕는 말단 공무원 그랑 등의 우정은 이 소설처럼 잔잔했지만 아름다웠다.
올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모든 사람들이 MERS라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저멀리중동에서 시작한 이 병은 우리나라에 첫 발병이 시작되고 점점 기세가 세지더니 병동이 폐쇄가 되고, 격리자 수가
수천 명에 달하기까지 하였다. 페스트로 인해
오랑시의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격리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공포 속에서 정부를 원망하거나 신을 탓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불행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현재는 페스트와의 전쟁을 끝낸 오랑시처럼 메르스와의 전쟁이 끝나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서술자가 말했듯이, 그 병균들은 잠시 숨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가 지금 이 시기에 배운 교훈들을 잊어갈 때 다시 나타나 또 다시 교훈을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