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위해선 아주 잠깐 동안 시간 여행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장을 넘기면 나타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을 보면 이 이야기가 1958년도 도쿄의 한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려 50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 시대에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하는 일들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물만 부어도 라면이 뚝딱 만들어 지지만, 그 시대엔 세탁기도 냉장고도 없었던 시절이다. 즉석치킨라면이 판매되고 ‘역도산’이 국민적 영웅이었던 시대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일본소설이라 하면 대부분의 책이 가볍고 재미있는 책이라고 기억된다. 그 기억이 일본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매번 그런 류의 일본소설을 읽다보니 고정관념이 생겨 버린 것 같다. 일본소설은 무조건 가볍고 재미있다. 같은 생각들 말이다. 그런 고정관념이 이 책에서 깨져버렸다고나 할까? 가볍다고 한다면 가볍고 흔한 소재들이지만 내용의 깊이는 절대 가볍고 흔하지 않았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우리 이웃들의 소소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너무 잘 표현이 되어 있던 책이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도쿄타워가 보이는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가난하다는 것과 순수하다는 것.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올바른 예를 보여주기나 하듯 다들 소박하고 따뜻하다.

 인간에게 공통의 적인 우주인에 대한 소문을 만들어 내면 서로 싸우는 일도 전쟁도 없을 것이라는 순수한 마음의 잇페이와 요스케. 가난하지만 엄마의 곁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는 유코. 자신의 단 하나뿐인 사원을 친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스즈키 사장.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다른 이야기를 꾸며 나간다. 한 마을에서 결코 부유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웃의 정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었다. 그 속에서 웃기도 하고, 때때로 눈물을 짓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눈물이 슬프고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 가슴 따뜻한 이웃들의 모습이 감동적이고 그리웠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작은 연립주택이다. 한 동네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감에도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안부인사가 전부이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이웃의 삭막함이 들어나는 소설이 실릴 정도로 이웃 간의 정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주 오래 전이다. 내가 어릴 적 그래도 이웃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불과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그런 기억이 추억으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들의 눈이 싫어 현관문을 꽁꽁 잠그고 사는 추세인데,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해져 버린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이요, 그 라면의 진정한 맛은 낡은 아파트에서 배가 고파 견딜 수 없게 된 젊은이가 아니면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어.”-p.314


  마지막 편, 잠시 이야기는 현재로 돌아온다. 도쿄에는 어느덧 높다란 빌딩이며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예전처럼 이웃들 간의 정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가난하고 굶주리던 시절이었지만, 그 때의 그 시절이 그리웠다. 현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고, 가난이라는 의미가 가슴 속에 깊이 스며들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던 라면의 참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시절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절의 정이 정말 이렇게 돈독한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이웃들 간에 정이 조금 더 싹트길 바라는 것은 이 책이 너무 감동적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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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영화로 본적이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느껴지던 따스한 기운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군요. 책의 내용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어렴풋이 짐작이 갑니다.
영화의 기억과 이 서평을 보면서 이웃의 따스함이 더욱 간절해 지는군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옛날 같은 따스한 미소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이웃이 존재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 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