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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성당 1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자유를 찾는 위대한 방랑자여.
‘아들아, 이 아비는 너의 자유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표지에 성당으로 보이는 듯한 곳에서 한 줌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신성한 기운이 나를 부르고 있었기에 이 책이 이렇게 잔혹할 줄은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유라는 것이 사람들을 이렇게 힘들 게 하였으며, 인간들을 잔혹하게 만들었을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서양의 중세시대. 그 시대는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고 그 실상은 어둡기만 했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이 지금도 느껴진다.
스페인 까딸루냐의 농노 베르나뜨와 프란세스까의 결혼식장. 갑자기 들이닥친 영주 일행은 결혼한 모든 농노는 초야를 치러야 한다는 조항을 이용해 어린 신부를 참혹하게 능욕한다. 또, 그들이 베르나끄와 프란세스까의 아들인 아르나우를 죽이려 하자 아버지는 아들의 자유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그 곳에서 1년 하고도 하루를 견디면 그들은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아버지에겐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곳 역시도 하층민들은 귀족들과 성직자들에게 핍박받으며 산다. 하지만 아들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던 아버지··하지만 그렇게 자유를 외쳤던 아버지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받으며 죽임을 당한다. 그 땐 나도 너무나 아쉬워 눈물을 흘렸다.
“얘야, 배고픈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p.228
신분과 돈은 아르나우에게서 가족을 앗아갔으며 오랜 굶주림과 어렵고 고단한 삶을 주었다. 아르나우의 아버지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 배고픈 자유를 존재하지 않는다며, 죽음을 향해 다가서는 아버지. 자유를 외치는 그는 왜 죄인인가? 귀족과 성직자들은 왜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자유가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일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바르셀로나로 떠나 온 그 날부터 아르나우에겐 어머니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성모 아리아’라는 어머니를 주셨고, 그 후부터는 산따 마리아 성당에 가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자신보다 크고 무거운 돌을 나르는 짐꾼이 되어 몸이 고단했을 때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던 곳이 산따 마리아 성당이며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품이었다. 귀족과 성직자들이 추구하는 높고 좁은 성당이 아닌. 까딸루냐 사람들 모두가 올 수 있는 넓고 커다란 성당이었다. 그 성당 안의 이야기는 귀족들의 이야기도, 성직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민중들의 삶을 다른 역사 대서사이다.
이 책에는 참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중세시대 겉만 화려했던 역사를 까발리는 일종의 풍자가 묻어나 있었으며, 자유에 대한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자유를 이 책에선 그렇지 않기에 더 소중하게 다뤄져 있다. 그랬기에 이 책은 더 슬프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 우리가 느낄 수 없는 현실이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을 울렸을 것이다.
이 책은 특별한 긴장감이 없다. 게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전환이 되는가 하면 어느 새 세월이 많이 흘러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기나 긴 여정 끝에 얻은 감동이 느껴졌다. 9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에 긴장감도 없었지만 이 책엔 엄청난 흡입력이 있다. 읽고 난 후 많은 것을 느끼게 하며 역사의 대서사시라는 말이 무색해 질 정도로 한 사람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민중의 역사를 900쪽에 다 담았다는 것이 참 대단하지 않은가. 엄격한 가톨릭 윤리와 왕권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던 14세기의 전경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