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탈

 

  일탈.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이것을 꼽겠다. 한 사회와 조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일탈.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해본 가장 대담한 일탈은 무엇이었을까? 고작 해봐야 꾀병을 부리고 학교를 하루 빠진 것 정도가 아닐까. 반면에 이 책에서의 일탈은 가정과 직장을 벗어나 우연히 만난 토끼와 핀란드의 이곳저곳을 여행을 하는 바타넨의 그 해는 정말 멋있었다. 만약 나라면 숲에서 우연히 만난 토끼를 보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떠날 생각을 했을까.



  아르토 파실린나. 이 작가의 책이라곤 목 매달린 여우의 숲밖에 읽어 보지 못했다. 그것도 이 책을 읽기 전 예습차원에서 읽은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과 아르토 파실린나에 대한 상당한 기대가 있었다. 작가는 목 매달린 여우의 숲에서 벌어진 일들만으로 나를 반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핀란드라는 낯선 타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매우 유쾌하게 느껴졌고, 그의 특유한 유머가 곳곳에 묻어있는 책이었다.


“제발 나를 그냥 두시오. 바타넨”-p.28


  기자이지만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어느 하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40대 아저씨 바타넨이 동료와 함께 취재를 나가다 한 토끼를 차로 치었다. 다리가 부러져 버린 토끼를 바타넨이 키우게 된다. 직장도 가정도 다 버리고 오로지 토끼와 함께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일을 겪게 된다. 책 ‘토끼와 함께한 그 해’는 이런 식으로 시작이 되었고, 바타넨이 토끼와 함께한 그 해도 이런 식으로 시작 되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들, 중간 중간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황당한 일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 때 그 때 작가의 위트가 묻어나는 문장들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바타넨과 토끼가 겪었을 일들을 상상하면서 콧웃음을 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p.211

바타넨의 변호사인 헤이크키넨 여사 역시 바타넨이 도주한 날부터 보이지 않는데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p.212


  바타넨이 말하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바타넨이 토끼와 함께한 그 해를 생각하면서 유추해 보건데, 그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모든 걸 포기한 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대범함이 필요할 것 같다. 총 22개의 범죄를 지은 대단한 죄인이 된 그 순간에도 그는 대범하게 탈출을 시도했고, 그것은 대성공이었다. 그가 여행을 떠나며 만난 헤이크키넨 여사와 이젠 그에게 없어서 안 될 토끼와 함께 또 한번의 일탈을 시도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이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라는 아르토 파실린나의 마지막 글귀를 보며 아직도 핀란드(어쩌면 타지)를 여행하고 있을 바타넨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책은 비록 끝났지만, 토끼와 함께한 그 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도 그만의 방식으로 일탈을 꿈꾸며 토끼와 여행을 하고 있을 바타넨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이 서평을 마치며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나도 과연 이런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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