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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Wla 청소년 문학에 SF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두 장르가 서로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항상 순수하고 밝은 청소년 문학을 주로 읽어와서 그런지 새까만 표지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제목의 기억전달자에 해당하는 듯한 저 노인의 얼굴도 왠지 무서운 느낌을 받은 건 나뿐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뒤로 하고 ‘늘 같음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참 신비롭게 진행된다. 어찌된 일인지 작가는 그들이 살고 있는 배경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늘 같음 상태’라는 낯선 상황도 오로지 인물들의 대화들로 알 수 있었다. 늘 같음 상태. 그들에겐 항상 같은 상황들만 존재했다. 반복되는 나날 속에 그들에겐 그들만의 엄격한 규칙이 존재했고, 그 규칙의 위력은 대단했다. 어느 하나 자유롭지 못한 곳에 그들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중요한 임무를 지시받는 것처럼 평화로운 마을 사람들에겐 그들에게 맞는 직위를 부여한다. 자신들의 선택이 아닌, 원로들이 정해주는 직위를 말이다. 그 직위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오락 지도자라는 직위를 받을 수도 있고, 산모라는 직위를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성향에 따라 다른 누군가가 정해주는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직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이 매우 적어한다니 다행일 수 밖에..




“조너스는 다음 번 기억 보유자로 선출되었습니다.”-p.100




  조너스의 차례는 건너뛰고 어렵사리 받은 그의 직위는 기억 보유자라는 직위였다. 늘 같음 상태에 살지 않는 내겐 산모라는 직위도 매우 낯설었지만 기억 보유자라는 직위는 황당하기 까지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겐 누구에게나 기억이 있다. 허나 이 마을에서 그런 기억들을 보유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바로 조너스가 되었다. 원로들은 조너스에게 참 고통스러운 직위라고 하였다. 기억을 보유한다는 것 자체가 왜 고통스러울까?




  늘 같음 상태란, 말 그대로 항상 같은 상태였다. 우리나라엔 사계절이 있어 춥고, 더움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늘 같음 상태에선 추위 와 더위 그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적당한 온도의 적당히 먹고 자고 생활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추위와 더위라는 감각과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기억전달자와 기억 보유자뿐이었다. 사람들의 사사로운 감정들마저 고통이라 여기고, 항상 규칙에 얽매여 사는 늘 같음 상태엔 고통이 아닌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이 마을은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고통도 없는 완벽한 행복에 이르기 위하여, 개인의 선책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잘못도 있을 수 없는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피부색이나 언어와 같은 차이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분란의 소지를 모두 제거해 버린 곳입니다.

 -p.304(옮김이의 말 중)




 어느 날 루이스는 기억 전달자가 가장 좋아하는 기억인 사랑에 관한 기억을 전달받았다. 그 후에 루이스가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을 사랑 하냐는 물음에 그 단어는 무의미하니 쓰지 말라고 했다. 보다 정확한 언어는 ‘어머니 아버지 저와 즐거우세요?’란다. 우리가 흔히 쓰는 서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겐 무의미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무의미하며 자신의 즐거움과 그렇지 않음에 자신들의 행복이 결정된다는 것에 삭막함을 느꼈다.




 조너스는 기억전달자로서 단순한 기억만이 아닌 감정을 알아갔다. 지금 현재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전쟁과 기아 속에서의 고통도 알게 되었으며, 사랑이라는 따뜻한 감정도 알게 되었다. 새까만 표지 한 구석의 섬광처럼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이 단지 고통스럽기만 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줬다. 사람들의 여러 감정을 나누고 느끼면서 그 속에서 또다른 따뜻한 감정이 생겨난다. 배고픔을 느끼면 음식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깨닫게 되고, 추위를 느끼면 따뜻한 난방못지 않은 엄마의 따뜻한 품에 대한 그리움도 생겨난다. 이런 감정의 반복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만이 아닌, 행복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평화롭게 살기 위해 늘 같음 상태를 추구한 그들. 하지만 내 눈엔 평화롭다기보다 쓸쓸하고 외롭다 못해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 찬 곳으로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늘 같음 상태’라면 어떨까? 내가 살아서 죽을 때까지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임무해제를 당한다.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임무가 끝나면 죽는 현실. 임무해제라는 단어를 봤을 때, 미래엔 내가 살아가는 것도 임무가 되는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곳에서 한 번쯤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말하는 ‘늘 같음 상태'는 낯설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그런 세계 같았다.

 

 읽는 내내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생각들이 이제와서 생각하니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란 걸 느끼게 되었다. 혼잡하고 어지러운 지금의 세상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이 늘 같은 상태로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청소년 SF 문학이라 해서 단순하고 유쾌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프간에 한국인 피랍사건으로 인해 나라가 시끌시끌 하다. 만약 지금 우리 상태가 늘 같음 상태라면 이런 고통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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