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아프리카 작가. 내게는 낯설기만 하다. 낯선 작가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작가에게 완전히 빠지거나 아니면 더 이상 그 작가의 책을 보지 않거나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온다. 그만큼 내게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과도 같은 것이라 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이야기를 신에게 해보시구려, 신이 포복절도할 테니까.”-21p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불안감을 안고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으로 그가 내게 새로운 자극을 주길 원했다. 참 묘한 기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알랭 마방쿠. 그는 참 특이한 작가이다. 그는 문장부호를 오직 쉼표만을 고집한다.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없었던 까닭이 아닐까 싶다. 문장은 매끄럽게 이어져가지만, 역시나 내게는 쉼표, 마침표, 느낌표 등의 문장부호가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다.

문장부호가 쉼표만 쓰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게 새로운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나는 가시도치다, 가시도치임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어엿한 가시도치란 말이다. -45p

 

 

온통 쉼표와 간혹 나오는 따옴표만으로 이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가시도치(여기서 가시도치란 고슴도치가 아니라고 한다. ‘호저’ 불리 우는 쥐과 동물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의 회고록이다. 키방디라는 인간의 해로운 분신이었던 가시도치의 이야기. 그 가시도치의 이름은 느굼바. 자신의 주인인 키방디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살아남는다. 도망치다 한 바오바브나무를 발견하게 되었고 가시도치는 바오바브나무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책이다.

“너는 바오바브나무 아래 앉아라. 시간이 흐르면 너는 우주가 네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볼 것이다.”-133p

느굼바는 자신이 어떻게 인간세계와 접촉하였는지 와 자신의 주인의 분신이 되어 주인의 죽음을 보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키방디의 해로운 분신인 느굼바는 주인에 말에 따라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99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느굼바와 키방디. 아흔아홉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주인의 죽음을 목도한 그는 한 그루 바오바브나무 아래서 사연 많은 인생을 회고하면서 인간 세상의 부조리한 행태를 비판하고 인간과 동물 가운데 과연 누가 더 ‘짐승 같은’존재인지 반문한다. 옮긴이의 말 중 위와 같은 말이 있었다. 분명 내게 이 책은 흥미로운 책이었지만, 과연 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인가를 파악하지 못해 멍하게 있었다. 결국엔, 옮긴이의 말을 보고서 알았지만 말이다. 과연 누가 더 짐승 같은 존재일까. 그것은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였다.

 

아프리카라는 매우 낯선 곳의 이야기이다. 그 곳에선 “이로운 분신” 또는 “해로운 분신” 이라 불리  우는 동물과 함께 자신의 생사를 함께한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드라마 같으면서도 섬뜩한 아프리카의 설이 이 책이 나온 이유이다.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 분신이라는 드라마 같은 소재가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가시도치의 회고록. “참으로 희한한 책이다.”라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온통 쉼표밖에 없는데다가 혼자 말 못하는 바오바브나무에게 주절거리는 가시도치의 이야기라. 희한한 책이기에 내게 알랭 마방쿠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책인 것 같다.

그 추억들은 아련한 이미지, 사라진 그림자, 멀어져 가는 소리지, 그것들이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아줘-198p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풀어야 할 과제는 또 하나 늘어났다. 저자는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의 문화에 대해 쓴 책일까. 아니면 욕구에 한없이 잔인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풍자하기 위해 쓴 책일까. 저자의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내게 신선함을 준 책 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온통 이러한 말들만 멤돌았다.
“친애하는 바오바브나무야~” “가시도치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참 재미있는 말들이다. 나도 집 앞에 있는 소나무 하나 붙잡고서, “친애하는 소나무여~” 하며 나만의 회고록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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