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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이론서 21권 (댓글:3, 추천:17)
로쟈(mail) 2006-10-20 23:15


지난 월요일 교보에 잠시 들렀다가 발견한 의외의 책은 <테오리아 - 20세기를 대표하는 21권의 책>(개마고원, 2006)이었다. '이론(theory)'이란 말의 그리스 어원인 '테오리아'를 국역본의 제목으로 삼았는데, 독어본의 원제는 '세기의 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세기가 지난 세기이므로 '20세기의 책'이라 해야겠고, 그 책들이 모두 분류상 '이론서'들이다. 그러니까 테오리아의 어원적 의미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대표하는 책 21권에 대한 평설집이라고 해야겠다. '20세기의 이론서 21권'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이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독일에서 개최된 ‘세기의 책-20세기의 이론들’이라는 기획 강의를 바탕으로 했다. 크게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사유전통과 학문분야가 20세기에 거두었거나 적어도 거두려고 애쓴 성과는 무엇인가?”와, “그 학문들은 어떻게 그것들의 시대에 관여했고, 구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위대한 이론은 무엇인가?”의 두 가지 문제 제기를 통해 산출된 결과물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론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지속적인 시사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판단되어 선정한 프로이트에서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21명의 사상가들과 그들의 책, 이론들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각의 독특한 접근방법과 깊이를 가지고 밀도 있게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쏟아지고 있는 고전해제서들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 해제/평설의 수준이겠다. "난해한 이론서들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해당 이론서들을 직접 읽어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는 수준 말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이 적절하고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조건하에서.

21권의 이론서를 다루고 있는 만큼 600쪽 이상의 분량을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일단은 관심이 가는 책을 다루는 장들만 골라서 읽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 시간조차 낼 수 없다면, 20세기를 '이론적으로' 관조하는 일에는 마음을 접고 눈길을 떼는 게 옳다. 그리고는 21세기만을 한눈팔지 않고 질주하는 게. 굿바이!

남은 자들끼리 누리는 호사가적 관심거리는 과연 21권을 고른 주최측의 안목(편견 혹은 혜안)을 음미해보는 것이겠다. 대략 '상식적인' 리스트인지라 모험적이라고 할 만한 책을 그닥 눈에 띄지 않지만 몇 권 정도는 '독일'쪽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데, 이 21권 가운데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아르바이트' 중에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세어보도록 한다.

1.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 레나테 슐레지어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저작 <꿈의 해석>은 주지하다시피 여러 종의 국역본이 나와 있다. 비록 번역서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에는 좀 찜찜하다는 의견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2006)에서 제기된 바 있지만.

2. 후설의 <논리 연구> - 미하엘 아스트로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저작들이 제법 소개되었고 연구서/논문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지만, 특이하게도 그의 초기 대표작인 <논리연구>는 번역돼 있지 않다. 분량의 방대함이 이유인지 내용의 난해함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고전'의 네임밸류에 걸맞는 번역본이 조만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여담으로 덧붙이자면, 후설의 책은 왜 <논리적 탐구>가 아니라 <논리연구>인가, 혹은 비트겐슈타인의 책은 왜 <철학연구>가 아니라 <철학적 탐구>일까?).

3.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 헤르베르트 야우만



 

 

 

 

지난 1995년에 범우사판으로 나와 있는 <서구의 몰락>이 유일한 완역본이 아닌가 한다. 대학원 시절에 필요 때문에 1권만 사서 부분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름대로 '세기의 책'에 꼽힐 만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지만, 프랑스에서 21권을 꼽았다면 들어갈 수 있었을까? 

4.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 한스 위르겐 헤링어





 

 

 

 

올해 책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새로운 전집이 나오고 있고, <논리철학논고>는 그 전집의 첫권이었다. 두툼한 <철학적 탐구>보다 얇은 <논고>가 선정된 건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 아닐까? <탐구>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약간은 덜어주니까 말이다. <논고>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해설서로는 박영식 교수의 <비트겐슈타인 연구>(현암사, 1998)가 있다.

5. 베버의 <경제와 사회> - 볼프강 슐룩흐터



국역본은 <경제와 사회 1>(문학과지성사, 2003)으로 출간되었다. 소장도서가 아니어서 당장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완역본은 아니고 더 출간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국역본의 이미지가 뜨지 않아 대신에 영역본의 것을 옮겨놓는다.

6.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 위르겐 미텔슈트라스





 

 

 

 

두말할 것도 없는 책. 5권의 파이날(결선)을 꼽더라도 당연히 들어가야 할 책이다. 국역본으로는 이기상(까치글방, 1998), 소광희(경문사, 1995) 두 분의 번역본과 해설서를 각각 참조할 수 있다.  

7.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 헬무트 레텐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의 저작들은 비교적 많이 소개돼 있는 편이고 거기엔 물론 <정치적인 것의 개념>(법문사, 1992)도 포함된다. 하지만 당장 서점에서 구해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짐작에 21권의 책들 가운데 가장 얇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 <논리철학논고>보다는 얇은 듯하니까. 이미지는 역시나 영역본의 것을 옮겨놓는다.

8. 겔렌의 <인간> - 카를-지크베르트 레베르크



 

 

 

 

아르놀트 겔렌은 '철학적 인간학'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보다 잘 알려진 철학적 인간학자로는 막스 셸러가 있지만(국내에도 더 많이 소개돼 있다), 독일에서는 겔렌의 <인간>이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모양이다. 겔렌이 책으론 <인간학적 탐구>(이문출판사, 1998)이 유일하게 번역돼 있는 책이지만, <인간>은 그보다 좀더 두툼한 책이다.

 

9.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 페터 뷔르거



 

 

 

 

사르트르에 대해서는 굳이 군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고(<존재와 무>도 새 번역본이 나올 수 있을까?), 다만 해설을 쓴 '페터 뷔르거'란 이름이 반갑다. <해설자들 가운데 내가 아는 두엇 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론으로 유명한 문예이론가 뷔르거의 책은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심설당, 1986)를 필두로 하여 현재 네 권 가량이 번역/소개돼 있다.

10.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 게르하르트 쉬베펜호이저



 

 

 

 

이 또한 두말하면 잔소리인 책이겠다. 또한 <계몽의 변증법>이 확실한 고전인 것은 완독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어쨌든 국역본의 역자가 전면 개정판을 내야했을 만큼 '난해한' 책이기도 해서 적절한 안내서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영역본의 경우도 몇년 전 전면개역판이 나왔다). 아도르노를 술술 읽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고 미심쩍다.

11. 보부아르의 <제2의 성> - 크리스타 뷔르거



 

 

 

 

사르트르 커플의 책들이 나란히 선정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이젠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해야할 책(크리스타 뷔르거는 혹 페터 뷔르거의 부인일까?). 보부아르와 관한 특이사항이 그녀가 국내에서는 철학자로서는 거의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주로 출간되는 건 '사랑밖엔 난 몰라' 수준의 보부아르이다(그런 그녀가 여성학의 대모이다!).

12. 바흐친의 '변증법적 사유와 수사학' - 레나테 라흐만



 

 

 

 

특이한 일이지만 21권의 책이라고 해놓고 유일하게 구체적인 대표작이 명시돼 있지 않은 사상가가 바흐친이다. 일단은 국역본 <말의 미학>(길, 2006)을 대표작으로 꼽아둔다. 그리고 걸출한 연구서 <바흐친의 산문학>(책세상, 2006)은 나의 추천서이다. 해설자인 레나테 라흐만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러시아문학 연구자이자 바흐친 학자이다. 역시나 아는 이름이어서 반갑다.

13. 레비스트로스의 <친족의 기본 구조> - 발터 에어하르트



 

 

 

 

물론 <친족의 기본구조>는 국역본이 나와 있지 않다. 레비스트로스의 박사학위논문인데, <구조주의 인류학>이나 <신화학>보다 중요한 업적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이 책이 구조주의 인류학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의 프로그램 자체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지 않나 싶다. 회고 대담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에서 뒷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고, 책의 보다 구체적인 내용 해설은 김형효 교수의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을 참조할 수 있다.

14.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 - 라이너 로젠베르크





 

 

 

 

흔히 루카치의 범작으로 평가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세기의 책'으로 꼽혀 있어서 놀랐다. 미완의 번역본까지 치면 세 종류의 국역본이 나와 있기도 한 책. 데카당스(반합리주의) 철학 비판서 정도로 나는 알고 있다. 보통 루카치의 주저로는 <역사와 계급의식>을 꼽는 게 일반적인데, 해설을 읽어보고 소장여부를 판단해봐야겠다.

15.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 기젤라 페벨



 

 

 

 

두말하면 잔소리인 책. 하지만, 국역본은 분량상 아직 1/3밖에 나오지 않은 책. 그 사이에 영역본은 개역본이 나왔다. <논리연구>가 한국현상학회의 아킬레스건이라면 <진리와 방법>은 한국해석학회의 '굴욕'이라 할 만하다. 고전 번역에 단합해야 하실 분들이 담합하고 계신 건 아니신지?

16.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프란츠 폰 쿠체라





 

 

 

 

<과학혁명의 구조>는 국내에 2종의 번역이 있다. 까치글방본과 이화여대출판부본이 그것인데, 교수신문의 번역비평에 따르면 일장일단이 있지만 원저 자체의 난해함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한다고. 학부 2학년 때 읽으면서 고전했던 기억이 새롭다(반면에 해설서들은 얼마나 단순명쾌한 것인지!).  

17. 푸코의 <말과 사물> - 우르줄라 링크-헤르



 

 

 

 

바케트빵처럼 팔려나갔다는 푸코의 이 주저 <말과 사물>(민음사, 1986)이 국내에선 절판중이다. 새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지만 '언제'라는 건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의 빵집들이 고급 바케트를 내놓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제빵공은 있나?). 이미지로 대신 올려놓은 것은 개리 거팅의 <미셸 푸꼬의 과학적 이성의 고고학>(백의, 1999)이다. <광기의 역사>부터 <지식의 고고학>까지의 자세한 해설을 담고 있는 책이다.

18.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 베르너 슈테크마이어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도 절판된 민음사판까지 포함하면 2종의 번역이 나와 있다. 초기 데리다의 간판격이 책이지만 역시나 읽은 사람 몇 되지 않는다(나도 완독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국역본들 외에 영어, 불어, 러시아어본까지 갖고 있어서 언젠가는 마스터해줄 책으로 꼽고는 있다. 조만간 해설서들도 나올 듯하고. 현재까지는 마이클 페인의 <읽기 이론/ 이론 읽기>(한신문화사, 1999)의 해설이 요긴하다.

19. 부르디외의 <실천이론 연구> - 에곤 프레이크



 

 

 

 

부르디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물론 <구별짓기>이지만, '이론서'로 꼽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나 보다. 한데, <실천이론 연구>가 정확히 어느 책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실천이성>도 국역본이 나와 있지만 짐작엔 'The Logic of Practice'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역본의 제목이 그렇고, 불어본의 제목은 <실천의 의미> 정도이다. 러시아어본도 출간돼 있는 책.

20.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 - 콘라트 오트



 

 

 

 

올해 가장 번듯한 번역본이 나온 책. 역시나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21. 루만의 <사회의 사회> - 위르겐 포르만






 

 

 

 

하버마스와 함께 독일 사회학을 양분하고 있는 니클라스 루만의 책들은 국내에 좀 얄팍한 책들만 세권쯤 출간돼 있다. 거기에 입문서 한두 권. 그의 방대한 저작 <사회체계>가 구내에 번역/소개되기를 기대한다, 고 적었는데 번역돼 나왔다. <사회의 사회>가 그 사회체계론의 일부인지 독립된 저작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결론적으로 21권의 책들 가운데 5-6권 정도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하다. 양호한 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작들의 지명도를 생각하면 3-4권은 더 번역돼 있어야 했다. 21권의 책들 가운데 독어권의 책이 13권이니까 과반수가 넘는다. 불어 6권, 영어 1권, 러시아어 1권 순이다. 한편, 우리가 자랑할 만한 '세기의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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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체계이론 2
니클라스 루만 지음, 박여성 옮김 / 한길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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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체계이론 1
니클라스 루만 지음, 박여성 옮김 / 한길사 / 2007년 6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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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라스 루만의 사회 사상
발터 리제 쉐퍼 지음, 이남복 옮김 / 백의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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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행위이론 2-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
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장춘익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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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 서울대 이태진 교수의
이태진 지음 / 태학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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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는 한국인의 정치의식이 근대적으로 나아가는 특유의 과정을 주목하여, 일련의 지속적인 작업 하에 '조선 후기 민국정치 이념의 수립'이라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조선시대 유교사를 천착하여 온 그는, 건국 초기에 정부와 지식인들이 민생 개선을 위해 농업기술과 의술의 개발에 진력하는 한편, 조세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무려 18만 명에 달하는 관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까지 한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또 조선 후기 정치사를 재조명 하여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의식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형태로 일종의 정당정치인 붕당정치가 발달한 때도 있었고, 그 붕당정치가 한계에 도달한 시점(18세기)에는 탕평군주들이 소민(小民) 보호를 외치면서 민을 왕과 함께 국가의 주체로 인식하는 민국(民國) 이념이 등장한 사실도 확인하고 있다. 저자가 고종 시대를 보는 눈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에 앞서 저자는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간행하여 일본의 침략주의가 한국근대사 왜곡 작업에서 국가 차원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왜곡에서 생긴 편견과 오류에 대한 비판,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거두었던 자력 근대화의 성과 등을 제시하여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의 침략주의 사관을 극복하는 기초를 다지고자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 서평을 계기로 교수신문의 지면에서 식민사관 극복을 내건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내재적 발전론’과 이를 비판하는 경제사학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 간의 대결 양상을 띠고 6개월에 걸쳐 전개된 결과가《고종황제 역사청문회》라는 책으로 정리되었다. 결국 이 논쟁은 한국 사회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는 중요한 결절점인 대한제국 시기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기왕의 ‘광무개혁논쟁’에서부터 시작되어 일제 식민지시기에 대한 평가, 박정희 개발독재에 대한 평가, 최근의 신자유주의 사조에 대한 평가, 향후 한국 자본주의 발전 전략에 대한 전망 등으로 줄줄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는 일본 도쿄대 철학센터 초청으로 2004년 6월24일부터 7월15일까지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총합문화학과 대학원생 및 교수들을 대상으로 행한 총 6회의 강의와 일반에 공개한 특별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저자에 의한 일련의 작업들이 다양하고 생생한 사진자료들과 함께 보다 구체적인 목소리로 전달되고 있는데, 그는 일본의 한국사 왜곡 출발점으로 고종 시대를 상정하고 침략 이전의 한국역사의 진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의 개국에 가해진 일본의 폭력과 왜곡, 청일전쟁 전후에 자행된 일본의 폭력을 언급한 뒤, 대한제국의 근대화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방해를 근대화사업의 방향성과 서울도시개조사업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이어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 주권 탈취 공작을 자세히 논증하여 한국병합의 강제와 불법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수년간에 걸쳐 규장각의 자료와 일본 측의 관련 외교문서들과 씨름한 결과 한국병합은 무효일 뿐만 아니라 문서 요건 상 성립조차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공표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진작부터 사료를 통해 잘못된 역사기록은 물론 외교관계 사실까지 바로잡는 역할을 해낸 사계의 독보적 존재다. 1988년부터 92년까지 규장각 관리실장을 맡는 동안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훔쳐간 전말을 상세히 밝혀내 외규장각도서 반환운동의 불을 붙였으며 일제강점의 근거가 된 여러 조약이 위조문서에 의한 불법행위라는 증거를 찾아냈다. 이어 대한제국이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준비해왔다는 사실을 세제와 농업 의료 등 산업측면의 사료로 밝혀내 식민지근대화론을 이론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요컨대 한국을 무력으로 강제 병합한 일본이 그 역사를 매장하고 일본에 의한 근대화를 강조한 탓으로 우리 자신조차 잘못된 역사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역사의 진실을 알려 진정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책을 간행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서두에 언급한 그의 역사인식이 비록 '한국사학의 모더니즘으로부터의 탈출'(한국사 시민강좌 20)을 꾀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근대 극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역사'의 재해석을 통한 저자의 인식이 정당한 시민권을 획득하려면, 또 하나의 '구성된 역사'를 넘어서려면, 논쟁 과정에서 대두된 수많은 과제들을 극복해야만 하겠기에.

 

또한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을 논의하기 위해선 전통과 근대를 상호 배제적인 이분법에 의거해서 보고자 하는 근대화론이나 근대에 인식론적 지위를 부여해 전통을 배제하거나 고립화, 정형화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달리 전통과 근대에 대한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며 내재적이고 맥락적인 이해를 전제로 하는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에서 자국민에 대한 억압과 통제의 양상이 식민지로 편입된 한국이나 대만, 만주 등지에서 변형된 형태로 적용됐다는 점에서 비교사적이고 동아시아적인 연구시각이 절실히 요구되며, 이제 1980년대 이후 상호관계가 본격화됨에 따라 동아시아적 시각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김경일, 2003).



이러한 요청들이 있기에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합의점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저자가 일본에 건너가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대체로 동일한 울림으로 다가와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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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의 역사와 말 - 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
백승종 지음 / 궁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풀무학교의 설립자 이찬갑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미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충청도 홍성땅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저 학교가 정작 관련 당사자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대안학교의 한 전형으로 자리매김되어 수많은 교육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까지 그 원동력과 학교를 꾸려온 사람들에 대한 관심 말이다.

그래서 책을 통독하고 난 지금, 1899년부터 용동마을(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을 중심으로 남강 이승훈이 의도했던 이상촌 건설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찬갑이 식민지 조선 농촌의 갱생을 위해 덴마크 국민의 교사 그룬트비히의 사상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농촌문제의 핵심을 '깬 인간'에서 찾고자 교육운동을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도 풀무는 '유기 농업이 기초가 되어 사람과 생명을 살리고, 자치의 정신과 협동 공동체의 실현, 소규모 경제 단위와 생태계 보존, 농업과 공업의 결합, 새 시장 구조, 생명문화 창출, 대체 에너지 개발, 청빈과 높은 지적 창조, 국내와 지구적 교류를 공통의 목표로 갖는 자치적 지역 공동 사회 건설, 그것은 조용히 진행되는 사회변혁' 이라는 인식 아래 젊은 일꾼들을 키워나가고 있음에, 한 지식인이 꿈꾸었던 이상촌의 맥박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이 책은 이찬갑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역사학자에 의해 시도된 미시사다. 거시사가 역사적 거대 구조의 탐색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과학적 분석과 계량을 중시하는 방법, 예컨대 맑스주의 역사학, 독일의 사회구조사, 프랑스 아날학파의 전체사등이 대체로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것들이라면, 미시문화사는 사회적 경제적 행위들을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적 텍스트로 간주하면서 구체적 개인이란 창을 통해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잡 미묘한 관계망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인식되고 있다.

하여 미시사가들은 전체사적 흐름이라는 이름 아래 정작 그 주역인 인간 개개인의 모습이 사라져버리는 거대 역사보다는, 경계가 잘 지워진 지역 내에서 어떤 위기나 사건에 대처하는 그곳 사람들의 전략이나 가치관 등을 면밀히 탐색하는 미시적 접근을 택한다. 그러나 미시사는 끊임없이 거시사가 실패한 역사적 실재를 분석하기위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다수가 '가능성의 역사'를 지향하는 바, 실증적 의미에서의 증거의 단편성이 문제될 때, 증거와 증거를 잇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할 때 미시사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저자 역시 또다른 곳에서 전체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체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관계적 사실주의는 전체주의와 결합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그 때문일까? 저자는 구체적으로 이찬갑의 신문 스크랩북, 시 그리고 편지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일간지를 장식했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사건에 대한 그의 내면적 반응을 드러내고자 하나 그 과정에서, 역사 서술이란 결국 역사가가 엮어낸 하나의 흔들리는 담론일 뿐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부족한 사료와 현재의 방법론적 미숙을 넘어서, 일제하 한 지식인의 신문 스크랩북이라는 구체적인 자료를 통하여 본격적인 미시사를 시도하고 있기에 미시사의 제 면모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미덕을 간직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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