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 근대 학문과 예술은 어떻게 열대를 은폐했는가 서강학술총서 91
이종찬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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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압도하는 책. 이런 주제를 이만한 스칼러쉽을 가지고 소화해내고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참고도서와 찾아보기를 보시라!

 

그는 서구중심주의 역사학의 중심 개념들에 대한 대안적 개념으로, ‘자연사’(natural history), ‘열대’(tropics), ‘생물지리적 탐험’(biogeographical exploration), 공간의 발명’, ‘문화융합’(transculturation)을 제시하며, 유럽의 대안적 공간으로 열대를, 인류사(human history) 중심의 역사에 매몰되어 왔던 유럽중심주의의 대안적 역사로 자연사를 살펴보고 있다. 그에게서 자연사는 지구가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구 근대 국민국가와 자연사의 형성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더 나아가 서구는 열대를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사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대 자연사가 서구 인류사에서 은폐되어 왔다는 것은 대단한 역설이다. 열대의 자연사는 대부분 은폐되거나 기껏해야 근대 국민국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에피소드 정도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유럽인들은 열대 자연사 탐험을 통하여 유럽의 식물, 동물, 광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열대의 그것들을 접하면서 유럽중심의 인류사와는 구분되는 열대 자연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하여 열대는 서구의 생물지리적 탐험에 의해 발명된 역사지리적공간이다. 저자는 단적으로 말한다. "생물지리적 탐험이 유럽이 열대 공간을 발명한 일차적 방법이라면, 자연사는 그것의 역사인식론이다."

    

우리는 그동안 거의 자연사를 알지 못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열대자연사를 연구하고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육과 연구는 근대 서구에서 혁명적 사유가 정치경제의 영역에서만 일어났다는 점을 주로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인식은 열대 자연사에서 인간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간과하였다. 이 시기에 인간과 식물, 동물, 광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혁명이 이루어졌다. 열대 자연사는 서구인의 오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낭만주의가 열대 자연사가 촉발시켰던 감성의 세계를 문학과 예술로 녹여내었지만, 근대 국민국가 중심의 인류사적 역사인식은 열대자연사의 감성을 다시 억압하였다. 저자에 의하면 인류사 중심의 근대 서양사가 과학혁명,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이름으로 열대 자연사를 은폐시켜 왔기 때문이다. 하여 인류사 중심의 서구 정체성의 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것을 저자는 열대학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꼽고 있다. 아직도 이 틀이 제국주의 시기보다 더 강력한 역사지질학적 힘으로 자연사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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