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 동아시아의 사상은 가능한가? 아이아 총서 1
쑨거 지음, 윤여일 옮김 / 그린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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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역사교육과정에 ‘동아시아사’ 교과목이 신설되었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로 나뉘어 서술됨으로써, 국사와 세계사로 양분된 역사교육 체계가 재편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동아시아사는 한편으로는 한국사와 중복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사의 일부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동아시아사의 위상과 정체성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에 새로 마련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 교육과정 적용을 위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은 한국사란 무엇이며 한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원래부터 한국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한국인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역사이며, 한국사가 전근대에서는 주로 동아시아, 근대 이후에는 세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전개되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에 김기봉은,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을 이루고 사는 세계화시대에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역사공간을 나눠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며, 한국의 역사학 분류체계는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로 재편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한다.(한국 역사학의 재구성을 위한 방법으로서 동아시아사, 2013)

 

일본 근대 역사학이 유럽중심주의에 입각해서 동아시아세계를 망각하고 ‘유럽적’ 세계 개념을 전유하여 역사학의 3분과 체제를 정립했고, 그 체제가 한국의 역사학에 그대로 전수되어 오늘날에까지 3분과 사이의 소통과 융합을 막는 학문적 분류로 권력을 행사하여 왔던 바, 이제 탈냉전을 맞이하여 한국 역사학에서는 동아시아사의 귀환이 일어나고 있고 이를 계기로 역사인식의 개편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2. 한편 한국발 동아시아담론의 한 축을 담당해온 백영서는 그간의 논의를 되돌아보는 글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통합한 문제 접근을 제시하면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과 동아시아론을 연결하여 그를 통해 지역주의적이면서도 세계사적 차원의 보편적 지향을 견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근대초극론'을 다시 곱씹는다. 전쟁에 대한 불감증과 전쟁책임에 무관심한 당시 일본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다케우치가 찾아낸 길은 근대 일본에서 아시아적인 원리를 지향하는 '전통'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었으니, 곧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발상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일본이 근대화하는 동안 억압되었던 민중의 실천과 사상을 재통합하는 길, 곧 저항하는 주체의 형성이며, 그 모델은 이미 중국혁명에서 실례로 나타났던 바 있다. 이것이 오늘날 일원적 진보주의의 근대관을 벗어나게 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다케우치가 검토되고 있는 이유다.

 

다케우치의 아시아론은 서양 근대성에 대한 반항이라는 이유에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풍요로운 원천으로 전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케우치 사상이 빛을 발하는 대목은 주체의 자기부정 혹은 저항으로서의 절망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주체형성의 지점들에 대한 통찰이기에 결국 '동아시아'의 유효성이 있다면 국민국가의 틀 속에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주체의 존재영역을 발견할 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백영서의 '이중적 주변의 시각'은 다케우치의 그것과 변별점이 있다. 서구중심의 세계사 전개에서 비주체화의 길을 강요당한 동아시아라는 주변의 눈과 동아시아 내부의 위계질서에서 억눌린 주변의 눈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기에.(동아시아론과 근대적응 근대극복 이중의 과제, 2008)

 

3. 쑨거는 루쉰을 통해 타케우치가 찾아낸 '자기부정' 을 다시 읽는다. 해서 그녀의 독법은 흥미롭다. 중국현대문학 비평가로서, 일본근대사상사 연구자로서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은 '연대' 의 길이다. 학위논문을 발전시킨 이 책《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엔 특이하게도 서문이 세개나 된다. 중국판, 일본판, 한국판 서문이 한 곳에 실려있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그녀의 활동범위와 학문적 연대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윤여일이 쑨거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쓴 글들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사상이 살아가는 법 - 쑨거의 동아시아론>, <내재하는 중국- 다케우치 요시미에게 중국연구란 무엇이었나>, <동아시아라는 물음> 등)

 

쑨거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의 근대에 대한 비판을 일본 현대사의 여러 국면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930년대의 지나학자들과의 논쟁, 패전 국면에 대한 비판, 일본공산당의 근대주의적 성격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1950년대 초의 국민문학논쟁, 안보투쟁 국면에서의 실천, 그리고 '근대의 초극'을 둘러싼 논쟁에 이르기까지 일본 현대사의 매국면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논쟁적인 글들을 발표하고 직접적인 실천에 뛰어들면서 '역사에 진입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분명 이 책은 다케우치가 루쉰에게서 읽어낸 주체성의 존재방식에서 오늘에 유효한 '동아시아 사상'의 가능성을 찾고자하는 야심찬 기획이다. 루쉰에게서 다케우치는 근대화 과정에서 동양이 세계사로 발을 내딛어 자신의 역사를 형성하는 계기를 본다. 그것은 저항을 통한 자기실현의 길, 곧 자기부정 속에서 주체는 부단히 갱신되는 유동성을 얻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다케우치가 말하는 '행동'의 의미이다. 그래서 다케우치는 루쉰에게서 역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았고 역으로 일본이 역사를 상실했음을 통감하고선 일본의 근대화를 '타락'이라 부르며 그 최전선에 선 아카데미즘의 지식인과 그들의 '합리주의 정신'을 비판한다.

 

4. 그러나 다케우치와 그를 다시 읽고 있는 쑨거에 대한 비판(함동주, 서광덕, 이정훈, 류준필, 고성빈, 백지운 등) 역시 만만치 않다는 건 또 무얼 얘기하는 걸까.

 

아무래도 다케우치는 주체 형성의 계기로서만 아시아를 사고했기에, 그리고 아시아의 역사적 실체에 주목하지 않은 탓에 대안적 가치 또한 제시할 수 없었던 점이 여러 비판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에 이어, 오늘날 경제사에 기반을 두고 유럽 중심적 역사 해석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동아시아와 중국을 마주세워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는 일군의 지식인들, 즉 포머란츠와 웡 등 캘리포니아 학파의 연구성과가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강진아,< 세계체계와 국민국가의 회색지대 - 동아시아론의 성과와 한계>, <중국의 부상과 세계사의 재조명 - 캘리포니아 학파에서 글로벌 헤게모니론까지>)

 

이제《다케우치 요시미 선집》까지 번역되었으니 좀 더 생산적인 논의들을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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