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종교철학의 이해 - 종교에 대한 후기근대적 접근
배국원 지음 / 동연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현대 종교철학의 이해, 배국원, 동연, 2000

 

 

1. 종교학에 대해 귀동냥이라도 하게 된 건 전적으로 장석만의 글들을 읽으면서부터였던 것같다. 그가 주도했던 종교문화연구소에서 펴낸 책들과 기관지《종교문화비평》에 실린 글들을 읽는 재미가 꽤 쏠쏠했으니까. 뿐만아니라《인텔리겐챠(2002)》라든가,《한국 근대성 연구의 길을 묻다(2006)》와 같은 책에서 들려주는 생생하고도 진솔한 그의 목소리가 내게 묘한 울림을 가지고 와 닿았더랬다.

 

 

그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한국에서 종교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동아시아의 개념사 연구에서 종교 개념에 관한 연구가 지니는 의미를 종교 개념은 인간의 사고 및 행위 분야에서 기본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동아시아의 근대적 인식체계에서 종교는 세속세계의 전체와 서로 대응되는 위치에 있다고 간주되어 종교 영역에 대한 검토는 세속 영역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데에서 찾고 있다. 한국에서 비판적 종교학의 포문을 연 그는 이후 한국사회의 역사적 과제와 맥을 잇는 종교학의 과제를 모색하는 방향에서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을 찾고 있는 듯하다. 오늘 이 책의 존재를 알게된 것도 그가 참여한 어느 대담에서였다.

 

 

2. 저자는 신학자이다. 하지만 호교론으로서의 신학을 뛰어넘어 인문학으로서의 종교학과 종교철학을 얘기하고 있기에 나는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종교를 이해하는 기존 방법에 대한 질적 변화를 주도하는 종교철학과 여러 종교들의 자료에 대한 양적 변화를 주도하는 종교학의 변화로 인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신학, 특히 신학적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종교학을 '종교적 인간'을 연구하는 인간학으로, 인간에 대한 종교적 이해를 강조하는 현대종교학을 새로운 인간학, 새로운 해석학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라고 정의되는 종교철학은 '궁극적 관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라는 포괄성으로 인해 학문적 정체성의 모호함이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여 저자는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종교철학적 반응들이라 할 수 있는 개혁주의 인식론, 반기초주의, 해체주의, 종교다원주의 등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종교철학의 정체성을 가늠한다.

 

 

3. 이 책에서 유별나게 내 관심을 끈 것은 '반기초주의'가 종교철학에 던진 의미와 이른바 '개혁주의 인식론'의 기수인 플란팅가(Alvin Plantinga)의 '신념의 기본성' 문제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믿음 내지는 신념의 문제'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미 종교철학의 주요 관심사항의 하나인 종교적 신념의 정당성 문제가 이제는 근대철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인식의 개인적 기초가 아니라 그 사회적 기초, 곧 공동체의 인식론적 기능이 중요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전자의 의미이다. 즉 종교적 신념의 경우 예전처럼 신념의 검증 가능성과 근거 여부를 따지기보다 그것의 문화적 맥락, 공동체적 중요성, 사회적 효용성등이 더욱 문제시되고 있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믿음은 늘 삶에 대한 태도에 있어 결단을 요구한다. 내 경우 무엇에 대한 믿음인지, 무엇을 위한 믿음인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대 인식론에서 늘 언급되는 종교철학자로서의 플란팅가는 신에 대한 믿음을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으로 파악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신념은 객관적, 합리적 신념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그는 증거주의와 기초주의라는 두 원인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자명하거나 감각적으로 확실하다'라는 기본적 사실의 기준은 '누구에게 확실하거나 자명하다는 의미에서'라고 수정되어야 한다며, 객관적 규범으로서의 기본성 기준의 상대화는 기초주의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우리가 흔히 구분하는 '안다'는 것과 '믿는다'라는 것의 문제를 들고나온다. 성경에서 그것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공존하는 두 인식 형태라는 것이다. 구약은 인간의 믿음이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며, 신약에서도 역시 믿음과 지식은 분리되지 않고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트만에 의하면 신약에서 믿음과 지식의 결합은 특별히 '기독론적'인데,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음을 아는 앎과 믿는 믿음은 똑같이 구원으로 이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새삼스레 신학자임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응답하듯 플란팅가는 철학에서 이성은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능력으로 이해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개혁주의 전통에서 파악된 이성은 반대로 타율적이고 교조적이라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며 교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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