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la 2003-09-23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 책에 붙은 19편의 마이리뷰 때문에 요즘 좀 즐겁다.
이런 글을 읽었으니 정작 소설 자체는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내 주위 모두가 만장일치했다. "소설보다 마이리뷰가 더 끝내준다!"

인상적인 리뷰 대목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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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삼미 슈퍼스타즈가 왜 야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할 뿐이었다. 삼미는 정말 형편 없었고, 참 불쌍하게 보였다. 그런데 작가가 20년만에 그 물음에 명쾌하게 답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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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동네에서 야구놀이를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정하고...그 팀으로 인원을 묶어 게임을 했는데...한 형이 나에게 물어왔다. 넌 어느 팀 할래. 나아는....삼.......서...엉 난 초일류 삼성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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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처럼 작가는 말한다. '프로'란 바로 미국이 자본주의를 프랜차이즈하기 위해 들여온 것이라고. 프로에 얽힌 모든 언설은 신화, 즉 야부리라고. 그런 데 그걸 몰라보고 모두 프로가 되려 하고 모두 일등이 되려 하는 시대가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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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을 덮고난 뒤 내 주위를 살펴보니 모두들 앞으로 달려나가느라 정신이 없고, 경쟁에서 뒤쳐진 내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작가가 찬양해 마지않는 삼미식의 야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엔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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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그냥 꼴찌가 아니라 프로야구의 모든 기록을 아마추어 수준으로 수립해 놓은 팀이다. 그러나 박민규가 이 소설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에게 부여한 것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차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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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슈퍼스타즈는 사라지고 핀토스의 시대가 나타났고, 머지 않아 우승권의 팀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특별하게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미덕이라는 것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슈퍼맨로고가 새겨진 야구가방을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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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지금의 나를 보았다. 지난 한해 한 번의 병가도 외출도 내지 않은 나의 무쇠체력을 자랑처럼 얘기하던 나를, 목이 부어터져서 침도 삼킬 수 없는데도 쉬지 않는 나의 독기(?)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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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며칠후, 난 모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를 오랫만에 만났다.자기도 읽었다면서...'아니 근데 하필 삼미냐~~ㅋㅋㅋ'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외쳤다. '야 이 병신아! 이건 야구얘기가 아니라 바로 니 얘기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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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로서의 나는 그 까다로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일신우일신, 발바닥에 땀냄새 가득하도록 뛰어야 한다. '저는 차라리 적게 먹고 적게 쌀래요'하면 사회에서는 소비의 아름다움에 대해 역설한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옷 사세요~ 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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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의 결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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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프로’가 되기 위해 피땀 흘려가며 삶을 탕진하고 있지만 그 피 튀기는 경쟁에서 패배한 자나 성공한 자나 “피곤하게 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느릿느릿 띄엄띄엄 살아가는 아마추어들에게 오히려 삶은 환하게 웃어준다는 것을. 진정한 인생은 모두들 슬슬 기피하거나 경멸하거나 두려워하는 어딘가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panky 2003-09-25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중간까지만 재밌다니깐...^^;;;;
장편을 쓰는 건 문장력이나 주제나 소재 기타 등등을 넘어서 한 작품을 아우르는 작가의 역량이 속절없이 드러나는 작업이겠지요.(무슨 ?)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매력을 느끼게끔 배치한 코드들과, 거 참 감칠맛나게 읽히는 문장력이 소설의 재미라 생각해요. 다만 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 코드에 감동했다니! 하고 놀랐었답니다.-_-

zooey 2003-09-2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속에서 아이들이 바늘로 찔러대던 베어스 팬이라 공감이 덜 되었던 걸까요? ;; 그 소설은 나는 OOO였다, 라는 지점은 잘 짚었는데 그다음 마무리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냥 거기서 이야기가 뚝 그치고 마는... 그게 좀 아쉬웠죠. 진짜 괜찮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는데.

panky 2003-09-2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비단 음악에서만이 아녜요. 연대 농구팀이 최고 인기를 구가할 때 전 남몰래 다른 팀을 응원했고 제가 좋아하는 배우는 대게 남들에게 욕을 먹었죠. 물론 지금도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동시에 떠올릴때마다 아픈 것 역시 어찌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때론 그게 뭐냐고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던 기억 역시 고스란히 살아 있으니까. 뭐, 그러면서 크는 것이겠지만 그 기억들이 오늘날의 저와 아무 상관 없다곤 말할 수 없어요. 마치 행복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정해져 있구나,란 생각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품게 된다고나 할까.

panky 2003-09-2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책 드린지가 언제이거늘 아직도...-_-
근데 저 대단한 마이리뷰를 보면서 한편 느끼게 되는 것은 제겐 자본주의 운운의 그런 것으론 이 책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그거에요. 전 소방차와 박남정이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릴 때 (주위 아이들 그 누구도 몰랐던) 시나위와 파가니니를 들었고, 너바나로 락에 입문하는게 정식 코스이던 시절에 스미스의 우울한 가사와 누노의 기타와 존 본햄의 드럼에 전율했으며, 모두가 서태지에 열광할 때 퀸스라이크의 오퍼레이션 마인드크라임을 해석해보겠다며 끙끙댔었어요.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던 뮤지션들은, 적어도 제 시대에는 단 한 번도 메인 스트림에 서지 못했어요.

starla 2003-09-2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나. 사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의도적인 공감대를 위한 코드의 나열이라고 하는데, 그 코드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 코드를 알되 낯설게 받아들이는 자의 책읽기는 과연 다를 것 같다.

사실은 나도 좀 그런 다른 지점이 있는데 (아직 책도 안 읽은 주제에;;;) 무엇보다도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산뜻한 극복이랄까. 삶의 모든 면에서 '마음가는대로'를 주창해왔으면서도 정작 프로페셔널리즘은 극복의 대상으로 한번도 (진심으로는) 삼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이건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뼈속깊이 훈련받아온 엘리트주의와도 연관이 있을 터.

panky 2003-09-24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흘러 저 역시 나이를 먹었으니, 저 뿐이 아닌 많은 이들이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죠. 허나 어찌되었건 동화책을 건너뛰고 제인에어를 읽었던 아이는 인생이 결코 내 편이 아니라는 것, 마냥 쉽게만 보이는 따스한 햇살이 막상 자기 자신을 비추는 일은 단 한번도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일찍 깨닫는 법이지요.

하여 제게 저 책은 그냥 '자기 앞의 생' 같은 아픈 성장 소설이에요. 그건 자본주의고 현대 사회고 매스 미디어고, 그런 모든 것을 뛰어 넘지요. 내가 좋아하던 스타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무명이었다는 것, 그래서 다른 또래집단과도 거리가 생겼다는 것, 그러다보니 어느 새 스무 살이 되었다는 것.

panky 2003-09-2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러니까 전 알라딘과 어울림과 동시에 알라딘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비문이 너무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