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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살림지식총서 469
박문현 지음 / 살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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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철학은 삶의 중심을 갖게 해주는 정신적 학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실 본래 철학이 추구했던 것도 그러한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는 바른 정신을 정의해 주고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 철학은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귀한 가르침이 담긴 정신적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어 삶에 필요한 정신이 아닌 시험에 필요한 공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철학은 어느 순간 어렵고 하기 싫은 것이 되어 시험이 아니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학문이 되었고, 삶에서 먼 학문이 되었다. 사실 나 역시도 그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고 말이다.

 

하지만 철학은 학문이 아닌 삶의 진리가 담긴 바른 정신이었다. 사람들이 각자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각자 생각하는 삶의 진리를 스스로 찾아 가슴에 새기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학이 대단한 것은 자기 자신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찾는 삶의 진리를 정의 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 진리를 적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철학에서 말하는 삶의 진리를 그대로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 삶의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 있게 알리는 사람 역시 없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미 현대의 최고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을 텐데 말이다.

 

특히 묵자의 철학이 설명된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어떻게 그 옛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삶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할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삶의 진리를 찾았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옛날에도 그를 작은 예수라 부르는 이가 있지 않았을까. 정말 쉽고 간단한 것들도 머리로는 알지만 지키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묵자라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알수록 대단하게 느껴졌고, 현대에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질 정도였다. 우리 시대에 성인이 없는 것인지, 찾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그런 이를 알아보는 이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불어 사랑한다면 힘이 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가 가진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며, 다수의 무리가 소수가 가진 것을 강압적으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 또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귀한 사람들은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굴지 않고, 간사한 사람들은 순박한 사람들을 속이지 않게 될 것이다. 세상의 재앙과 찬탈과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겸애를 찬미한다. - 묵자』「겸애

묵자는 그가 주장하는 겸애가 현실 사회에서 실질적인 복리로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묵가 집단을 조직해 헌신적으로 세상을 뛰어다녔다. 그는 철저하게 약소국과 약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강대국과 권력자, 이기적인 부자들에게 지금 당장 힘으로 돕고, 올바르게 교육하고, 재물을 나눌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도 하고 종교적으로 위협하기도 한다.

세계사상사 중 고대에 묵자만큼 이렇게 사랑을 강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묵자가 창시한 묵가는 2백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유행했지만, 중국 고대에서는 유가와 함께 양대 학파로 불리기도 한 주류학파였다.

중국의 사상가인 량치차오는 묵자를 가리켜 큰 마르크스요, 작은 예수라고 했으며 마오쩌둥은 묵자는 노동자였지만 공자보다 더 훌륭한 성인이었으며, 인문학과 과학기술에 모두 능통한 백과전서식의 평민 성인이라고 했다. 묵자는 겸애라는 사회윤리로 기층 민중에 대한 분배를 주장하고, 근로와 과학기술의 중시 및 인구증대로 경제성장을 꿈꾸었다.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했으나 굳이 순서를 말하자면 분배가 우선이기에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3 중에서  

묵자는 유가의 학문을 배웠고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묵자는 유가의 예가 너무나 번잡하게 생각되어 좋아하지 않았다. 장례를 후하게 지내는 것은 재물을 너무 소비해 백성들이 가난하게 되고, 오래도록 상복을 입는 것은 건강을 해치고 일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주나라의 문화를 물리치고 하나라의 문화를 따랐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16 중에서  

묵공은 우리나라와 홍콩, 일본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손을 잡고 일본 소학상 수상작이자 베스트셀러인 모리 히데키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 묵공은 특히 전략과 전술을 이용한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각종 병법과 장비들을 동원해 실감나는 전투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묵공의 메시지는 평화, 사랑, 반전이란느 장지량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혁리의 묵가사상을 내세워 휴머니즘적인 시각을 강조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22 중에서 -

묵자는 전쟁과 찬탈, 도둑질로 서로 뺏고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부, 지식을 가진 계층이 그렇지 못한 계층을 억누르고 기만하며 귀족 계층이 비천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것까지 모두 세상을 크게 해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은 개인이나 사회, 국가의 각 계층이 각기 자기 자신이나 그들이 소속된 집단 및 계층만 아끼고 사랑하고 이롭게 하려할 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 다른 계층은 차별해 멸시하거나 해치려는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겸애의 사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24 중에서 - 

순자는 묵자의 사상을 실용이 으뜸이라고 불렀으며, 후스는 묵자의 사상을 가리켜 실리주의라 말했고, 중국의 현대철학자 펑유란은 아예 공리주의라고 불렀다. ‘공리주의란 실제 감각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사물을 도덕 가치로 인정하며, 아울러 그것을 생활목적으로 하는 학설을 말한다.

묵자가 바로 이러한 극단적인 공리주의자였다. 그가 말한 는 대체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물질적이다. 하지만 묵자는 절대적으로 협애한 공리주의자는 아니었으며 그가 말한 는 실제상에서는 공리였다. 묵자는 오직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유익해야만 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 아니고 라고 한다. 이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묵자는 세상의 혼란을 평정하고, 평화로운 겸애의 이상사회를 구축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28 중에서 - 

중국철학사상사에서 ()’의 의미는 상당히 복잡하다. 중국의 근대사상가인 량치차오는 옛 사람들이 말한 천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그것은 형체의 천, 주재의 천, 운명의 천 그리고 의리의 천이다. 묵자가 말한 천은 명확히 둘째에 속한다. 이 주재의 천은 실제로는 의지를 가진 인격신으로 서양의 하느님과 비슷하다.

묵자의 사상은 하늘의 뜻, 천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기준이 되는 일정한 법도가 있다. 예를 들어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자에게는 컴퍼스나 자가 그 기준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43 중에서 - 

사실 묵자가 말하는 하늘의 뜻에는 묵자 자신의 뜻이 투사되어 있다. 묵자는 하층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가 제창하는 겸애’ ‘비공’ ‘상동’ ‘상현등의 주장은 모두 전쟁으로 인해 빈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바람이다. 이와 같이 하늘의 뜻이란 곧 서민들의 뜻이 변형된 것이다. 묵자가 힘을 써 하늘의 권위와 신통력을 내세우는 목적은 하늘의 권위로 상선벌악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한편 세상의 모든 해악을 없애 사회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50 중에서 -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묵자가 살았던 그 시대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통치자들이 사람을 쓸 때 능력보다는 측근을 발탁해 일을 맡기고,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맡으려 하며, 능력보다는 부귀해진 자들과 가까이 하며 득을 보려하려 했다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시대와 관계없이 그 옛날부터 그런 이들이 꾸준히 있어 왔던 것을 생각한다면, 사람도 동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할 뿐 말이다. 요즘 빈부격차가 심해졌다고는 하나 그 옛날 왕이 있던 시절의 신분제 사회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나마 그때보다는 낫다고 여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사회에서 삶의 격차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싶기도 했다. 그 옛날에도 지금도 절대적인 부는 극소수에 편중되어 계속 대물림 되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가 현대판 신분사회라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바른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정신만 바로 서 있다면 어떤 사회라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는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누구보다 바른 정신을 갖고 자신에게 엄격해야 할 사람은 가진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지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바른 철학을 지키고 알려야 할 이는 갖지 못한 자들의 몫이었다.

 

 

통치자들 스스로가 옷을 짓지 못하기에 능력 있는 재단사의 힘을 빌리고, 스스로 소나 양을 잡을 수가 없기에 도살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묵자는 이와 같이 일상생활에서는 전문가를 소중하게 여겨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도리를 알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일에 있어서는 능력도 없는 친인척이나 측근을 발탁해 일을 맡기는 것은 작은 것에는 밝고, 큰 것에 어두운 것과 같다고 한다. 묵자는 또 세상의 군자들로 하여금 개 한 마리나 돼지 한 마리를 요리하게 하면 할 줄 모른다고 그것을 사양한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한 나라의 재상을 맡게 하면 능력도 없으면서 그 일을 맡으려 한다. 이것이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닌가?”라고 개탄한다. 한 나라의 재상 역할이 개와 돼지를 잡는 것보다 쉽다면 이것은 황당무계하고 도리에 어긋난다.

친척들을 등용하면 귀족정치가 되고, 능력도 없는데 부귀해진 자와 가까이 있어 친하게 된 사람들을 등용하면 사인정치가 된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62 중에서 - 

묵자는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장관이 될 만한 사람에게 장관이 되게 하고, 한 고을을 다스릴 만한 사람에게 고을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고 한다.

비록 현자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각각 현명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 그보다 적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통제를 받을 수 없으며, 재능이 적은 사람이 재능이 큰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그 능력에 따라 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인을 등용하고 그릇의 크기에 따라 일을 맡겨야 능률이 오르는데, 능력을 따지지 않고 친척이나 측근을 기용하면 겨우 십분의 일 정도 밖에 일을 해내지 못해 나랏일을 그르치게 된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64 중에서 - 

묵자의 경제사상에서는 생산.교역.분배.소비의 네 가지 분야가 두루 다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소비를 절약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심이다. 묵자가 절약을 중시하는 이유는 인간이 추구하는 여러 가지 욕망의 향수를 근본적으로 부정해 각박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의 참화와 소모로 당시의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의 사치와 낭비가 극에 이르러 백성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저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기에 인간으로서의 최저생활을 보장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78 중에서 - 

중국 고대에 있어서 가장 깊이 있는 시공 관념의 논의는 묵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시간에 관한 묵경의 정의를 보자.

시간이란 다른 때에 두루 미치는 것이다. -

시간이란 옛과 지금, 아침과 저녁이다. - 경설

묵경에서 시간이 다른 때에 두루 미친다는 것은 시간이 각종 구체적 시각의 총칭을 말한다는 것이다. 또 시간이 옛과 지금, 아침과 저녁이란 것은 시간의 과도성과 지향성을 뜻한다. , 시간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체험방식에 따라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며, 아침이 저녁을 향해 나아가듯 시간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95 중에서 -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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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양심을 밝히는 길 살림지식총서 453
윤홍식 지음 / 살림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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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다 어려운 말을 쓴다 싶으면 문자 쓴다며 놀리며 공자왈 맹자왈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평소 그런 식으로 좀 학식 있는 말을 한다 싶으면 공자와 맹자를 떠올릴 정도로, 공자, 맹자하면 지성인으로 인식을 함과 동시에 그들이 쓴 논어나 맹자 등의 고서들은 어려운 책으로만 여길 따름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책이길래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지 말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도록 공자든 맹자든 그들과 관련 된 책은 전혀 읽지 않았다.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은데 어려운 책으로 인식되어 있는 책이다 보니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얇은 두께감에 한결 마음을 놓고 논어에 관한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는 어려웠다. 분명 글자로 되어 있기는 한데 분명 눈으로 읽고 읽기는 한데, 머릿속으로 내용이 잘 들어오지를 않았다. 작은 사이즈의 적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다 읽은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고서에 관해 풀어 놓은 책이나 보니, 아무리 쉽게 풀어 쓰려고 해도 쉽게 풀어 쓰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인간, 양심, 도덕성, 물질문명, 정신문명, 이익, 세계 등 다소 심도 있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추구, 근간, 창출, 매몰 등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보니, 한 줄을 읽고 이해하는데도 집중을 많이 해야 했다. 확실히 쉬운 책은 아니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나의 부족한 학식과 이해력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다시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양심의 계발에 대해 동서양의 어떤 고전보다도 자세한 가르침이 담겨있는 경전이 바로 논어.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을 문인들이 기록한 것으로 평생 양심의 계발을 추구한 공자의 가르침이 잘 담겨 있는 책이다. 우리는 여기서 양심계발의 비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향후 인간이 나아가야 할 인간의 길이 선명해질 것이며, 물질문명이 가져온 온갖 병통을 말끔히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7 중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자공아,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오직 하나로 꿰뚫었을 뿐이다.” -논어』「위령공

자공은 공자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이 없는 것을 보고 그를 박학다식한 사람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평생 자신의 양심의 계발에만 심혈을 기울인 공자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그건 바로 나는 오직 하나, 즉 양심을 계발하려고 했을 뿐이다.”라는 말이었다. 책을 볼 때나 일처리를 할 때, 남과 인간관계를 맺을 때 늘 양심에 비추어 보고, 그 옳고 그름을 자명하게 판단한 뒤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양심을 계발하는 첩경이다. 그러면 수많은 지식이 자연히 하나로 꿰어지게 되고,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 모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게 된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26 중에서 -

    

책을 읽다 중간중간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책을 덮고 싶기도 했지만, 어렵게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이왕 읽은 거 끝까지 읽어보자 싶었다. 부끄럽게도 책<논어>가 공자에 대한 책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다른 어렵고 깊은 내용은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대체 공자의 뜻이 무엇일까를 가장 염두 해두고 책을 읽었다. 공자의 뜻은 다양한 말로 표현될 수 있지만, 이 책의 표지에 적힌 제목대로, 공자의 뜻은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그대로였다. 하지만 책 표지에 그토록 분명히 공자의 뜻을 적어 놓았음에도 책을 읽으며 공자의 뜻을 헤아리려 하다 보니, 이 말도 저 말 같고, 저 말도 이 말 같고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 조금 읽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도 몇 차례였는지 모르겠다. 잘은 몰라도 계속 읽다 보면 머릿속에 남는 단어는 양심이었다.

 

평소 양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나마 조금 깊이 생각했던 때는 학창시절 도덕시간이었다. 생활 속에서 양심을 떠올릴 때는 길가다 쓰레기 버릴 곳을 못 찾을 때, 급하게 가야하는데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공자는 이 양심을 지키는 것이 군자가 되는 길이라 말하며, 사람들이 양심이 인도하는 대로만 따르면 세상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심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했고, 공자 자신도 평생 양심을 계발하고 알리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그를 따랐고 말이다. 공자는 정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남들은 평생 살아도 모를 삶의 본질을 찾고, 그걸 설파하고 지키며 삶을 살아 갈 수 있었을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오며 자신의 이름과 저서와 뜻을 알리며 말이다.

 

 

 

자공은 자금에게 공자에게 수많은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것은 그에게 성인이 지니는 다섯 가지 덕목이 있기 때문이라 답한다. 그것은 바로 온화함 선량함 공손한 단속함 겸손함이다. ‘온화함이란 나와 남을 두루 사랑하고 포용하는 관대한 마음이니 사랑을 갖춘 마음이며, ‘선량함이란 선을 좋아하고 악을 피하는 지혜를 갖춘 마음이다. ‘공손함겸손함이란 자신을 낮추어 남을 배려하고 전체적인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마음이니 예절을 갖춘 마음이며, ‘단속함이란 자신의 욕망을 단속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이니 정의를 갖춘 마음이다. 그리고 다섯 가지 덕목이 늘 한결 같은 것은 성실을 갖춘 마음이다. 양심의 다섯 가지 덕목 중 성실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앞의 네 가지 덕목을 늘 한결같이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성실이기 때문이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35 중에서  

우리의 마음에는 누구나 이 선천적인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해 하며(사랑), 잘못된 것을 보면 공분하고(정의), 남과 조화를 이루려 하고(예절), 옳고 그름을 분명히 변별하는 것이다(지혜). 그리고 이 네 가지 양심의 발동은 언제나 한결같은 것이다(성실). 우리 조상들은 이 양심의 덕목, 인간의 본성을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에 새겨놓았다. 서울의 ‘4과 중앙의 보신각이 그것이다.

동쪽으로는 봄처럼 훈훈한 사랑을 흥기시키라고 흥인지문이라 이름 지었고, 서쪽으로는 가을처럼 추상같은 정의를 돈독하게 하라고 돈의문이라 이름 지었다. 남쪽으로는 여름처럼 화려한 예절을 숭상하라고 숭례문이라 이름 지었고, 북쪽으로는 겨울처럼 은밀한 지혜를 넓히라고 홍지문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성실을 상징하도록 보신각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우리의 양심을 그대로 문과 종각에 새겨놓은 것이다. 이것들을 보면서 늘 우리 마음의 양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41 중에서  

논어에서는 양심을 가장 온전하게 밝힌 존재를 성인이라 한다. ‘이란 하느님의 명령, 양심의 소리를 남보다 잘 듣고 남에게 잘 설명해주는 탁월한 존재를 의미한다. 공자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다만 진리를 배움에 싫증내지 않고, 진리를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야말로 성인을 지향한 그의 일생을 축약한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자 자신은 절대로 성인을 자처하지 않았다. 늘 자신의 양심을 온전히 밝히려 노력하고, 남에게 양심의 길을 제시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성인의 삶을 살 뿐 스스로를 성인으로 자처하지 않는 경지야말로 진정한 성인의 경지일 것이다. 공자는 인격의 완성자인 이러한 성인이 되기 위해 양심을 닦아가는 존재를 군자라고 불렀다. 군자는 (임금 군)’자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 ‘Leader'라는 의미다. 그러나 보통 리더가 아니라 양심적 리더. 먼저 양심을 밝혀 자신을 닦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도와주는 리더가 바로 군자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48 중에서  

정의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이 받기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말라.’는 양심의 지상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것일 뿐이다.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정의다.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줄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진실로 사랑에 뜻을 둔다면 악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논어』「이인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70 중에서  

우리는 인간관계를 잘 경영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흔히 윗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내가 아랫사람에게 당해 싫은 것을 윗사람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가 윗사람에게 당해 싫은 것을 아랫사람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면 충분하다. 늘 이렇게 살아가자. 그러면 인간관계의 달인이 될 것이다. 점차 더 익숙해지면 장차 군자와 성인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77 중에서  

공자는 자신의 양심이 인도하는 대로 자신이 자명하게 아는 선에서 자명한 것과 찜찜한 것을 남김없이 설명해주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상대방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코칭이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90 중에서 -

      

공자가 말한 양심을 밝히는 것의 중요성이 눈에 가장 잘 들어왔을 때는 정치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그제야 그가 말한 양심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과 크게 동떨어진 학문에만 나오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과 직결된 일이라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양심이란 것을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이라는 관점에만 주로 적용하며, 아이들에게는 지키도록 가르치지만 어른들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지키는 것이란 여겨왔구나 싶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로 건너고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는 기다렸다가 초록불일 때 건너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도덕이고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과는 다르게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비양심적인 행동이라 여기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급하니까 어쩔 수 없고 어차피 차도 없으니까 라고 합리화 시키며 말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답을 알려주는 가르침이 아니라, 깨달음을 주는 가르침이었다. 공자는 모든 것을 각자 자신의 양심에 묻고 양심을 따르라고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부모의 3년 상을 1년 상으로 하면 안 되냐고 묻는 제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고, 제자에게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를 묻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제자가 간 후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제자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거나 설득하려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다 보니 공자가 한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었기에 그의 행동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아이가 옳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아이에게 내 생각을 가르치려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지켜만 보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내가 자식에게 받고 싶은 것을 부모님께 드리고, ‘내가 자식에게 바라지 않는 것을 부모님께 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참된 예절이다. 이것이 살아계실 때 예절에 맞게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다. 부모님계서 돌아가실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을 부모님께 드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부모님께 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예절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예절만을 갖추는 것은 진정한 효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95 중에서  

애공이 어떻게 해야 백성이 복종하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시길 곧은 것(군자)을 들어다 굽은 것(소인)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할 것이며, 굽은 것을 들어다 곧은 것 위에다 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 논어』「위정

소인이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 것은 지도자가 백성의 이익은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기 때문이다. 오직 군자라야 백성이 이익을 자신의 이익처럼 챙겨줄 것이니 천하가 그에게 진심으로 복종할 것이다. 이런 당연한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이 사회에 진정한 군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공자가 제시한 대로 양심의 회복을 이루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땅에도 세종대왕과 같은 양심적 리더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p101 중에서 -

   

이 책의 마지막에 언급되고 있는 양심적 리더라는 말을 보자마자 정말 그런 사람을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너무 꿈이 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종대왕과 같은 양심적 리더가 정치계에 등장한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이미 어딘가에는 존재하지만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환한 빛을 발하는 세상이야 말로 살기 좋은 세상일 텐데 말이다. 양심적 리더가 아직 등장을 못한 건지, 그런 사람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세상이 아직 안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직 하늘만이 알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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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살림지식총서 52
편영수 지음 / 살림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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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확실한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직업이다. 그렇다고 성실함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직업도 아니고,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풀어 놓을 수 있는 자유로운 직업이고, 그저 펜과 종이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작가이다. 그래서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 또 작가였다. 쉽게 선택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는 직업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프란츠 카프카는 스스로를 작가로 칭했고, 작가로서의 삶을 위해 스스로 고독을 택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결혼을 목전에 두고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보다 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고독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어쩌면 그 여인이 프란츠 카프카에게 운명의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행복한 결혼생활보다 고독한 작가로서의 삶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이별에 대해 카프카에게 질병은 출구이며, 결혼으로부터의 구원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작가로서의 삶이 좋다한들 고통을 주는 질병까지 구원이라고 여긴다는 생각할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가 프란츠 카프카였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지 싶다.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집 [관찰]이 독신자의 예술이라는 그들의 지적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일찍이 카프카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 본 비평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카프카의 작품을 독일문학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없는 것‘ ’노래하는 산문‘ ’한 문장으로 지속적인 감정의 팽창과 수축을 표현한 간결한 산문이라고 극찬한다.

- <프란츠 카프카> p39 중에서  

일반보험회사와 노동자 재해보험공사에 근무한 덕택에 카프카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체코 프롤레타리아들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카프카는 노동자들이 현재 그들이 받고 있는 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부자의 사치는 빈자의 불행으로 값을 치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겸손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 <프란츠 카프카> p42 중에서  

카프카는 연결, 저 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정의한 결혼에 불안해한다. 그래서 이제 펠리체와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다. 이것이 진정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1913813)고 생각하고, “나는 문학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문학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다른 것이 될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카프카는 여성, 결혼 그리고 가족과의 지속적인 공동생활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은 작가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를 위해 그는 끊임없이 고독을 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과의 접촉은 바로 이 고독을 방해하고 실존까지도 위협할 수 있었다.

- <프란츠 카프카> p54 중에서 -

      

확실히 사랑할 때보다 고독할 때 사람은 더 감상적이 된다. 사랑은 현실에 안주하게 하지만 고독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에 빠지게 하니 말이다. 그리고 고독은 작가들에게 감정의 자극제가 되어 창작으로 이어지게 하니, 프란츠 카프카의 선택은 작가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란츠 카프카는 작가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고독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삶을 살려 했다. 한편으로는 궁금해진다. 그는 진정으로 고독하길 원했던 건지 아니면 자유롭기를 원했던 건지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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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살림지식총서 51
유기환 지음 / 살림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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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알베르 카뮈. 책의 첫 부분에 나온 그의 소설과도 같았던 급작스러웠던 죽음을 보며, 내가 떠올렸던 그의 모습은 유명한 소설가였지만 평범하고 가정적인 아빠이자 남편의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가족과의 여행 후 가족들은 기차로 귀경시키고 나서 친구와 따로 자동차로 귀경하다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베르 카뮈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가정적인 남자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에 있어서는 얽매이기 보다는 자유롭길 바랐던 다분히 바람둥이 같았던 남자였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자, 나중에는 그에게서 받았던 첫인상마저 달라지게 되었다. 아마 그가 정말 가정적인 남자였더라면 가족과 함께 한 여행에서 아무리 친구의 부탁이었다 하더라도 친구와 함께 하기 위해 가족과 따로 귀경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카뮈의 전 인생이 그랬듯 그의 학창 시절도 두 극단 사이에 던져져 있었다. 학교에서는 노동의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었고, 집에서는 정신의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그가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와 가족들 사이에는 침묵의 골이 깊어 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아들을 어머니는 마치 딴 세상 사람을 바라보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학교는 도피처였다. 그곳은 온 가족이 오직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집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 <알베르 카뮈> p10 중에서  

카뮈는 육체적으로는 알제리의 지중해인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리스의 지중해인이었다. 아무튼 지중해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카뮈의 관심사는 이처럼 태양, 바다, 죽음, 축구, 독서, 사랑, 역사, 연극 등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경험한 다양한 열정, 즉 작가, 연극인, 신문기자로서의 열정은 이후 성년 카뮈의 인생을 장식할 것이다.

- <알베르 카뮈> p16 중에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서구의 젊은이들에게 이 대결이야말로 일상생황 아니었을까? 전쟁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지만, 그 어느 질문에도 정답을 주지 않는다. 우리의 영광이 그들의 굴욕이 되고, 우리의 미덕이 그들의 악덕이 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더러운가? 무엇이 승리이고 무엇이 패배인가? 누가 압제자이고 누가 해방자인가? 인간은 누구이며,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방인>은 부조리의 우화답게 이야기가 온통 애매성에 물들어 있다. <이방인>에서 통상의 기준으로 서열화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 <알베르 카뮈> p30 중에서 -

브라이언 피치는 카뮈의 세계에 있어 바다와 어머니의 상동관계와 동시에 태양과 아버지의 상동관계를 확인한다.

태양은 아버지의 온갖 속성을 갖고 있다. 태양은 바다와 대지와 결혼한다. 태양은 진리의 이미지이다. 태양은 짓부수며 파괴한다.

이런 상동관계는 정신분석학자에게는 즉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상기시킨다. 어머니(바다)에 대한 사랑, 아버지(태양)의 억압, 아들(뫼르소)의 반항 등이 고스란히 <이방인>의 주요 테마를 이루고 있다. <이방인>은 어떤 면에서 뫼르소의 의식과 태양의 대결 이야기이다. 견딜 수 없는 태양 때문에 뫼르소의 의식이 무화되었을 때, 달리 말해 무의식이 그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방아쇠가 논다. 그의 총구는 아랍인을 향해 있지만, 그의 무의식은 태양을 향해 있다. 그가 죽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태양인 것이다. 뫼스로가 총성으로써 떨쳐버린 것은 아랍인이 아니라 땀과 태양이며, 깨뜨린 것은 한낮의 균형’, 즉 태양와 바다의 행복한 결혼이다.

- <알베르 카뮈> p35 중에서 -

 

 

그의 사랑관을 알고 나자 당연히 그에게 가졌던 호감도 역시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처했던 상황을 알게 되자 조금 측은지심이 생기기는 했다. 그의 대표작인 책<이방인>처럼 그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이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스페인 어머니를 둔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았던 그. 이 책에서 카뮈는 평생 스스로를 프랑스인인 동시에 알제인이라고 생각해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고 환영받지 못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면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카뮈가 파리 지식인 사회에서 가혹한 왕따를 당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캐나다에서 만났던 이민1.5세대의 청년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예의에서 벗어난 무례한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그걸 잘 몰랐던 나는 한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청년이 우리나라 사람들은...”이라는 말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너는 니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냐고 말이다. 한국인 부모를 두었지만 캐나다 국적을 갖고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녔던 그 청년은 애써 그 질문의 답을 피했었다. 나는 그저 궁금해서 물었던 질문이었지만, 그 청년은 그 질문 때문에 혼란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민자들이 많아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캐나다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민족별로 나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보며 이민자들은 자신이 캐나다의 국적을 갖고는 있지만, 자신의 뿌리는 각자 자신의 민족에서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카뮈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프랑스에서 카뮈를 봤을 때 카뮈의 육체는 온전한 프랑스인이 아니라 알제리에서 온 아랍인으로 보였고, 알제리에서 카뮈를 봤을 때 카뮈의 정신은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이 아니라 서구사상을 가진 프랑스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카뮈는 이 두 가지 다 모두 자신이라 여겼지만, 사람들은 카뮈에게서 자신과의 같은 점을 찾기 보다는 다른 점만 찾으며 그를 밀어내기 바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듯 모든 곳에서 카뮈를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외면해버렸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책<이방인>을 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방인으로 있는 많은 이들이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연출가로서 카는 배우의 내면에서 등장인물을 찾아내고자 애썼다. 그는 유심히 들었고, 유심히 보았고, 대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환언하면 그는 배우에게서 등장인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카뮈에 의하면 등장인물은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의 여백에 산다. 배우의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하는 공간은 바로 이 텍스트의 여백이다. 아무튼 그 시절 카뮈는 동료들이 보기에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청년이었다.

- <알베르 카뮈> p53 중에서  

예술과 사랑은 정녕 분리될 수 없는 것일까? 흔히 우스갯소리로 위대한 예술의 뒤에는 위대한 연인이 있고, 위대한 철학의 뒤에는 위대한 악처가 있다고 말한다. 서른 살의 나이에 이미 프랑스의 대표 소설가가 된 카뮈, 구성원 간의 각별한 유대를 요구하는 연극계의 미남 극작가, 배우, 연출가로서의 카뮈..... 여자들은 카뮈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많은 여자들 가운데 카뮈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여자는 시몬에, 프랑신 포르, 마리아 카사레스였다.

- <알베르 카뮈> p57 중에서  

이념과 생활의 일치란 그토록 힘든 것일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사랑의 신 에로스를 천방지축 어린 아이로 설정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싶다. 일평생 이성과 계산으로 모은 재물은 단 한순간의 사랑을 위해 내던지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랑은 맹목적인 것이다.

- <알베르 카뮈> p61 중에서 -

 

메를로퐁티, 사르트르, 카뮈, 아롤.... 그런데 왜 이런 순서인가? 사르트르는 자신이 메를로퐁티의 오른쪽, 카뮈의 왼쪽에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레몽 아롱이 우파 이론가들의 수장임은 그 당시 누구나 인정하던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이 순서는 곧 그들의 이념적 좌표였다.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 네 대가의 이념은 곧 시대의 이념이었고, 그들의 우정은 곧 시대의 우정이었다. 그들의 입장의 비교는 카뮈의 주변성을 더 잘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 네 대가의 사상적 위치를 다시 한번 정리해 준 사건은 바로 한국전쟁(1950~1952)이었다. 한국전쟁이 프랑스 지식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그것이 미국과 소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리전 양상을 띤 최초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알베르 카뮈> p78 중에서 -

 

 

이제 어느 덧 서른을 훌쩍 넘기고 서른 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나보다 훨씬 어린 서른이라는 나이에 프랑스의 대표 작가가 되었던 카뮈. 모르긴 몰라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카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이 된 카뮈이지만 어찌 보면 이방인이기에 어느 한 곳에만 생각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더 다양하고 폭 넓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소수일 것만 같은 그의 책<이방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인정받는 것은 우리 사회에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 그의 책<이방인>을 먼저 만났더라면 나는 그의 책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았던 카뮈의 삶에 대해 알게 되자, 그가 쓴 책 <이방인>이 많이 궁금해졌고 읽고 싶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1942<이방인>의 발표와 함께 파리 문단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동시대 논쟁의 한 축을 이룬 카뮈는 고등사범학교는커녕 식민지알제 대학 출신이었다. 카뮈가 파리 지식인 사회에서 가혹한 왕따를 당한 것은 이런 출신 배경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이념적 노선으로 보면 아무래도 아롱이 더 소외당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메를로퐁티, 사르트르, 카뮈, 아롱의 우정과 논쟁은 학연이 결코 신념보다 앞서지 않음을 실감나게 입증했다. 학연, 지연, 혈연이 함께 뒤엉켜 신념의 발목을 잡는 한국 지식인 사회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 <알베르 카뮈> p81 중에서  

1956년 카뮈는 알제에서 [민간인 휴전을 위한 호소]를 발표하고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로 구하고자 간청했다. 그리고 그는 식민주의적 통합에도 새로운 민족국가의 건설에도 반대했다. 그의 결론은 차이의 공존, 즉 연방제였다. 알다시피 현실은 카뮈의 모호한 주장을 비웃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카뮈는 양쪽 모두에게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알제리의 프랑스인과 아랍인 모두에게서, 프랑스의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말이다.

불의가 횡행하는 알제리..... 하지만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알제리..... 카뮈는 할 말이 침묵보다 낫지 않다면 말하지 말라는 아랍 속담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사상과 감정의 짓찢기는 드라마 속에서 그는 결국 입을 닫았다. 진정 내밀한 기쁨을 느끼던 고향 땅, 그 바다, 그 태양에서 자기 존재의 뿌리가 뽑혀 나가고 진짜 이방인이 되는 것을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긴 침묵은 긴 비난을 몰고 왔고, 카뮈는 더욱 외톨이가 되었다. 알제리 전쟁 때 취한 카뮈의 선택은 한편 그 역시 피에 누아르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다른 한편 그가 여전히 균형과 절제의 그리스적 전통에 충실한 고전주의자였음을 잘 보여준다.

- <알베르 카뮈> p84 중에서  

스톡홀름에서 행한 수상 연설에서 카뮈는 작가로서 자신의 직업을 정당화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진실과 자유를 위한 봉사. 진실은 신비스럽고 붙잡기 힘든 것이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것을 포착하려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는 위험하고 실현하기 힘든 것이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것을 구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카뮈는 자신의 예술관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나의 작품이란 처음으로 가슴을 열었던 단순하고 위대한 두세 가지 이미지를 되찾기 위한 기나긴 도정에 다름 아니다. 스웨덴 연설 막바자에 돌아온 하나의 이미지는 바로 태양와 바다와 죽음이 깃든 티파사의 이미지였다. 카뮈에게 진정 행복했던 시절은 사회적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던 1950년대 말이 아니라 빛과 가난 속에서 산 그 어린 시절이었던 것이다.

- <알베르 카뮈> p86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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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살림지식총서 369
박영은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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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갈 때면 항상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넣고 가야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챙겨가서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도 못한 채 다시 집에 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가능하면 얇은 책을 챙겨 가야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저것 담긴 가방에 책까지 넣으니 어깨에 너무 부담이 되곤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먼 곳을 갈 때 책을 챙기지 그렇지 않으면 멍하니 서서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며 별로 필요도 도움도 안 되는 뉴스만 들여다 볼 때가 많았다. 요즘 스마트 폰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스마트 폰을 손에 들면 책보다는 인터넷만 더 보게 되곤 했다.

 

요즘은 별로 먼 곳을 가지 않더라도 유치원이나 학원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아이들과 외출을 할 때면 순간순간 비는 시간이 생기곤 했는데, 그럴 때면 가만히 서서 할 게 없으니 멍하니 있다 그냥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외출을 할 때도 가방에 작은 책이라도 챙겨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아이들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일찍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나 하원 길에 아이들이 놀이터로 달려간다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이 책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넣고 갔다가 다 읽게 되었다. 겨울 한파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감기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대기시간도 길고, 우리 아이들 감기가 생각보다 심해서 이것저것 검사까지 한 덕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모든 삶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 속으로 굽이굽이 흘러 들어갔다. 물론 어떤 작가의 글에도 자기 삶의 경험은 묻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삶의 체험이 강하게 스며든 작가는 드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고난과 그 극복의 드라마이다. 부친의 살해, 체포와 날조된 사형, 사베리아 유형, 그를 평생 괴롭힌 간질병, 도박의 유혹, 끝나지 않는 경제적 압박..... 그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으며, 삶이 곧 소설이었던 작가였다.

- <도스토예프스키> p4 중에서 -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우리 아이들의 감기의 원인. 첫째는 폐렴, 둘째는 독감이었다. 그리고 첫째를 입원시키며 아이와 함께 갑작스럽게 시작 된 병원 생활 속에서 얄팍하지만 깊이 있던 이 책은 나의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 작은 책 속에 담긴 도스토예프스키의 심한 굴곡 진 삶은 나의 힘겨움을 훨씬 더 작게 여길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삶은 파란만장 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고난과 그 극복의 드라마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대단한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삶에 대해 잘 몰랐던 나로서는 그의 삶을 알아가는 것 그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곳이 다른 곳도 아니고 병원 입원실이었기에 왠지 모를 공감을 넘어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위장병, 루마티스, 신경발작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폐쇄적인 감옥생활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 나중에는 죽을 때까지 간질병을 앓으며 병마의 고통에 시달렸던 그.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 도스토예프스키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는 없다. 하지만 병원 입원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어린 환자의 보호자로서 자유가 제한된 채 환자를 밤낮으로 끊임없이 돌봐주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그가 겪었던 삶에 공감을 했고 또 그보다 나은 나의 삶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 책에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 나는 기운을 잃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의 삶이든 그것 역시 삶이고, 삶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재난이 몰아닥친다 해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흔들이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바로 거기에 인생의 과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략) 지금 이 순간, 나는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사랑하고 포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죽음과 대면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때가 되어서야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볼 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었는지요. (중략) 삶은 행복입니다. 매순간이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p28 중에서  

밤에 개최된 문학 축제에서 그는 푸슈킨의 시 <예언자>를 낭송했다. 완전히 지쳐버린 그는 약하고 낮은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또 다시 홀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고, 다시 한번 황홀경에 빠진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러시아 문학 전체가 그 예언자를 추앙했다. 푸슈킨 기념행사에서의 연설은 위대한 러시아 시인에 대한 깊은 사색의 열매이자, 작가 자신의 피 끓는 열정의 유언이었다. 물론 인류의 완전하고 보편적인 형제애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온 삶의 에너지를 다해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들을,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과 민중을, 그리고 러시아와 유럽을 서로 화해시키는 유언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p84 중에서  

작가는 아이들을 침대 곁으로 오게 하여 성서의 돌아온 탕자이야기를 읽게 하고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얘들아, 지금 방금 들은 얘기를 절대로 잊지 말아라. 주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간직하고, 그분이 항상 용서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라. 나는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내 사랑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을 향한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살다가 혹은 죄를 짓는다 해도 주님에 대한 희망을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그분의 자녀들이다. 마치 너희 아버지를 대하듯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라. 그분께 용서를 구하면 그분은 돌아온 탕자를 보고 기뻐한 것처럼 너희들의 회개를 기뻐하실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p85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많은 찬사가 따라 다닌다. 천재 작가, 미래를 꿰뚫어보는 예언자, 신비주의자, 뛰어난 직관의 보유자,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실존주의 철학자.... 모두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떤 연구가가 그의 문학을 울창한 원시림과 깊은 동굴, 그리고 심연으로 이루어진 신비경이라 했던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 <도스토예프스키> p87 중에서 -

      

가끔 아이 엄마들과 모여 아이들 키우며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씩 내뱉는 말이 있다. 그동안 힘들었던 거 이야기하면 책 한 권은 나온다고 말이다. 요즘은 일반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많은 이들이 겪는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이 나오는데 누구도 쉽게 겪을 수 없는 일들을 겪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떠했을지. 안타깝게도 그가 겪은 일들은 다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일들이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일이라든지, 사형직전까지 갔던 일, 중노동을 했던 수감생활, 자식의 죽음, 도박 중독, 질병의 고통 등 그가 겪은 일들은 하나같이 힘겨운 일들이었다. 이 중 하나만 경험해도 삶이 힘겹게 느껴졌을 텐데, 그는 이 모든 걸 다 경험했으니 그의 힘겨움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가 이러한 극한의 일들을 경험했기에 그가 자신의 작품에 다른 사람들은 쉽게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낼 수 있었겠지만, 분명한 건 그 누구도 이런 삶을 원치는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설사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누구도 원치 않았을 삶을 산 그. 그래도 그에게 하나의 행복이자 축복이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모든 고통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렇게 큰 고통을 겪은 것도 그의 유일한 능력이자 축복이었던 글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글에 대한 욕망과 재능이 없었더라면, 군인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그는 힘겨운 경험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이름이 지금처럼 여러 세기를 거쳐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는 못했겠지만. 작가로서는 크게 성공하고 인정을 받으며 행복했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고통과 힘겨움으로 불행했을 그. 너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세계가 인정하는 작품을 남긴 대단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자신의 삶을 평할 때 행복했다고 여길지 불행했다고 여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고 여기려는 순간, 그가 꾸며진 사형을 모면한 뒤 자신의 형에게 남겼던 편지 구절이 생각났다. “삶은 행복이고, 매순간이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은 자신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며,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병원 생활을 조금 더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겪는 이 힘겨움은 지금 이 순간 일뿐만 아니라, 지나갈 힘겨움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길다 해도 일주일이면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뒤에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조금 힘겹겠지만,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에는 병원에서 있었던 힘겨움이 나의 생활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병원에서의 힘겨움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겪었던 경험을 떠올려봤을 때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이 그보다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고 별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가 겪은 것이 이 정도의 일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 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극심한 가난과 죄의 심연, 미칠 듯한 도박의 흥분상태와, 끓어오르는 욕망,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수치심, 사지가 뒤틀리는 간질의 고통, 사랑했던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인정했다. 때문에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 정신질환을 앓는 자와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자, 격렬한 욕정과 욕망에 시달렸던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천재이기 이전에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었던 한 작은 인간이었기에, 우리는 그에게서 큰 작가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아닐까.

- <도스토예프스키> p89 중에서 -

     

한동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으며 마음보다는 머리를 채우려고 했던 나에게 이 책은 때론 마음을 채우는 것이 머리를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마음을 채우는 것이 내 삶을 훨씬 더 겸허하게 바라보게 해줌으로써 나와 내 주변을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다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기게 해주니 말이다. 그저 유명한 작가로만 여겼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같은 삶이 담긴 이 책을 보며, 유명하기만 한 그의 작품이 아니라 작은 인간의 삶이 담긴 그의 작품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보게 되는 시간도.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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