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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ㅣ 살림지식총서 469
박문현 지음 / 살림 / 2013년 9월
평점 :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철학은 삶의 중심을 갖게 해주는 정신적 학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실 본래 철학이 추구했던 것도 그러한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는 바른 정신을 정의해 주고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 철학은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귀한 가르침이 담긴 정신적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어 삶에 필요한 정신이 아닌 시험에 필요한 공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철학은 어느 순간 어렵고 하기 싫은 것이 되어 시험이 아니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학문이 되었고, 삶에서 먼 학문이 되었다. 사실 나 역시도 그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고 말이다.
하지만 철학은 학문이 아닌 삶의 진리가 담긴 바른 정신이었다. 사람들이 각자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각자 생각하는 삶의 진리를 스스로 찾아 가슴에 새기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학이 대단한 것은 자기 자신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찾는 삶의 진리를 정의 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 진리를 적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철학에서 말하는 삶의 진리를 그대로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 삶의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 있게 알리는 사람 역시 없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미 현대의 최고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을 텐데 말이다.
특히 묵자의 철학이 설명된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어떻게 그 옛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삶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할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삶의 진리를 찾았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옛날에도 그를 작은 예수라 부르는 이가 있지 않았을까. 정말 쉽고 간단한 것들도 머리로는 알지만 지키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묵자라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알수록 대단하게 느껴졌고, 현대에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질 정도였다. 우리 시대에 성인이 없는 것인지, 찾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그런 이를 알아보는 이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불어 사랑한다면 힘이 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가 가진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며, 다수의 무리가 소수가 가진 것을 강압적으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 또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귀한 사람들은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굴지 않고, 간사한 사람들은 순박한 사람들을 속이지 않게 될 것이다. 세상의 재앙과 찬탈과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겸애를 찬미한다. - 『묵자』「겸애」
묵자는 그가 주장하는 겸애가 현실 사회에서 실질적인 복리로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묵가 집단을 조직해 헌신적으로 세상을 뛰어다녔다. 그는 철저하게 약소국과 약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강대국과 권력자, 이기적인 부자들에게 지금 당장 힘으로 돕고, 올바르게 교육하고, 재물을 나눌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도 하고 종교적으로 위협하기도 한다.
세계사상사 중 고대에 묵자만큼 이렇게 사랑을 강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묵자가 창시한 묵가는 2백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유행했지만, 중국 고대에서는 유가와 함께 양대 학파로 불리기도 한 주류학파였다.
중국의 사상가인 량치차오는 묵자를 가리켜 “큰 마르크스요, 작은 예수”라고 했으며 마오쩌둥은 “묵자는 노동자였지만 공자보다 더 훌륭한 성인이었으며, 인문학과 과학기술에 모두 능통한 백과전서식의 평민 성인”이라고 했다. 묵자는 ‘겸애’라는 사회윤리로 기층 민중에 대한 분배를 주장하고, 근로와 과학기술의 중시 및 인구증대로 경제성장을 꿈꾸었다.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했으나 굳이 순서를 말하자면 분배가 우선이기에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3 중에서 -
묵자는 유가의 학문을 배웠고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묵자는 유가의 예가 너무나 번잡하게 생각되어 좋아하지 않았다. 장례를 후하게 지내는 것은 재물을 너무 소비해 백성들이 가난하게 되고, 오래도록 상복을 입는 것은 건강을 해치고 일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주나라의 문화를 물리치고 하나라의 문화를 따랐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16 중에서 -
‘묵공’은 우리나라와 홍콩, 일본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손을 잡고 일본 소학상 수상작이자 베스트셀러인 모리 히데키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 ‘묵공’은 특히 전략과 전술을 이용한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각종 병법과 장비들을 동원해 실감나는 전투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묵공’의 메시지는 ‘평화, 사랑, 반전’이란느 장지량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혁리의 묵가사상을 내세워 휴머니즘적인 시각을 강조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22 중에서 -
묵자는 전쟁과 찬탈, 도둑질로 서로 뺏고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부, 지식을 가진 계층이 그렇지 못한 계층을 억누르고 기만하며 귀족 계층이 비천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것까지 모두 세상을 크게 해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은 개인이나 사회, 국가의 각 계층이 각기 자기 자신이나 그들이 소속된 집단 및 계층만 아끼고 사랑하고 이롭게 하려할 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 다른 계층은 차별해 멸시하거나 해치려는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겸애’의 사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24 중에서 -
순자는 묵자의 사상을 ‘실용이 으뜸’이라고 불렀으며, 후스는 묵자의 사상을 가리켜 ‘실리주의’라 말했고, 중국의 현대철학자 펑유란은 아예 ‘공리주의’라고 불렀다. ‘공리주의’란 실제 감각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사물을 도덕 가치로 인정하며, 아울러 그것을 생활목적으로 하는 학설을 말한다.
묵자가 바로 이러한 극단적인 공리주의자였다. 그가 말한 ‘이’는 대체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물질적이다. 하지만 묵자는 절대적으로 협애한 공리주의자는 아니었으며 그가 말한 ‘이’는 실제상에서는 ‘공리’였다. 묵자는 오직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유익해야만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가 아니고 ‘해’라고 한다. 이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묵자는 세상의 혼란을 평정하고, 평화로운 겸애의 이상사회를 구축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28 중에서 -
중국철학사상사에서 ‘천(天)’의 의미는 상당히 복잡하다. 중국의 근대사상가인 량치차오는 옛 사람들이 말한 천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그것은 형체의 천, 주재의 천, 운명의 천 그리고 의리의 천이다. 묵자가 말한 천은 명확히 둘째에 속한다. 이 주재의 천은 실제로는 의지를 가진 인격신으로 서양의 하느님과 비슷하다.
묵자의 사상은 하늘의 뜻, 곧 ‘천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기준이 되는 일정한 법도가 있다. 예를 들어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자에게는 컴퍼스나 자가 그 기준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43 중에서 -
사실 묵자가 말하는 ‘하늘의 뜻’에는 묵자 자신의 뜻이 투사되어 있다. 묵자는 하층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가 제창하는 ‘겸애’ ‘비공’ ‘상동’ ‘상현’ 등의 주장은 모두 전쟁으로 인해 빈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바람이다. 이와 같이 ‘하늘의 뜻’이란 곧 ‘서민들의 뜻’이 변형된 것이다. 묵자가 힘을 써 하늘의 권위와 신통력을 내세우는 목적은 하늘의 권위로 ‘상선벌악’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한편 세상의 모든 해악을 없애 사회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50 중에서 -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묵자가 살았던 그 시대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통치자들이 사람을 쓸 때 능력보다는 측근을 발탁해 일을 맡기고,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맡으려 하며, 능력보다는 부귀해진 자들과 가까이 하며 득을 보려하려 했다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시대와 관계없이 그 옛날부터 그런 이들이 꾸준히 있어 왔던 것을 생각한다면, 사람도 동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할 뿐 말이다. 요즘 빈부격차가 심해졌다고는 하나 그 옛날 왕이 있던 시절의 신분제 사회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나마 그때보다는 낫다고 여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사회에서 삶의 격차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싶기도 했다. 그 옛날에도 지금도 절대적인 부는 극소수에 편중되어 계속 대물림 되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가 현대판 신분사회라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바른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정신만 바로 서 있다면 어떤 사회라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는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누구보다 바른 정신을 갖고 자신에게 엄격해야 할 사람은 가진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지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바른 철학을 지키고 알려야 할 이는 갖지 못한 자들의 몫이었다.
통치자들 스스로가 옷을 짓지 못하기에 능력 있는 재단사의 힘을 빌리고, 스스로 소나 양을 잡을 수가 없기에 도살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묵자는 이와 같이 일상생활에서는 전문가를 소중하게 여겨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도리를 알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일에 있어서는 능력도 없는 친인척이나 측근을 발탁해 일을 맡기는 것은 ‘작은 것에는 밝고, 큰 것에 어두운 것’과 같다고 한다. 묵자는 또 “세상의 군자들로 하여금 개 한 마리나 돼지 한 마리를 요리하게 하면 할 줄 모른다고 그것을 사양한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한 나라의 재상을 맡게 하면 능력도 없으면서 그 일을 맡으려 한다. 이것이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닌가?”라고 개탄한다. 한 나라의 재상 역할이 개와 돼지를 잡는 것보다 쉽다면 이것은 황당무계하고 도리에 어긋난다.
친척들을 등용하면 귀족정치가 되고, 능력도 없는데 부귀해진 자와 가까이 있어 친하게 된 사람들을 등용하면 사인정치가 된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62 중에서 -
묵자는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장관이 될 만한 사람에게 장관이 되게 하고, 한 고을을 다스릴 만한 사람에게 고을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고 한다.
비록 현자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각각 현명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 그보다 적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통제를 받을 수 없으며, 재능이 적은 사람이 재능이 큰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그 능력에 따라 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인을 등용하고 그릇의 크기에 따라 일을 맡겨야 능률이 오르는데, 능력을 따지지 않고 친척이나 측근을 기용하면 겨우 십분의 일 정도 밖에 일을 해내지 못해 나랏일을 그르치게 된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64 중에서 -
묵자의 경제사상에서는 생산.교역.분배.소비의 네 가지 분야가 두루 다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소비를 절약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심이다. 묵자가 절약을 중시하는 이유는 인간이 추구하는 여러 가지 욕망의 향수를 근본적으로 부정해 각박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의 참화와 소모로 당시의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의 사치와 낭비가 극에 이르러 백성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저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기에 인간으로서의 최저생활을 보장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78 중에서 -
중국 고대에 있어서 가장 깊이 있는 시공 관념의 논의는 「묵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시간에 관한 「묵경」의 정의를 보자.
시간이란 다른 때에 두루 미치는 것이다. - 「경」상
시간이란 옛과 지금, 아침과 저녁이다. - 「경설」상
「묵경」에서 시간이 ‘다른 때에 두루 미친다’는 것은 시간이 각종 구체적 시각의 총칭을 말한다는 것이다. 또 시간이 ‘옛과 지금, 아침과 저녁’이란 것은 시간의 과도성과 지향성을 뜻한다. 즉, 시간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체험방식에 따라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며, 아침이 저녁을 향해 나아가듯 시간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p95 중에서 -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