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살림지식총서 369
박영은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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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갈 때면 항상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넣고 가야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챙겨가서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도 못한 채 다시 집에 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가능하면 얇은 책을 챙겨 가야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저것 담긴 가방에 책까지 넣으니 어깨에 너무 부담이 되곤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먼 곳을 갈 때 책을 챙기지 그렇지 않으면 멍하니 서서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며 별로 필요도 도움도 안 되는 뉴스만 들여다 볼 때가 많았다. 요즘 스마트 폰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스마트 폰을 손에 들면 책보다는 인터넷만 더 보게 되곤 했다.

 

요즘은 별로 먼 곳을 가지 않더라도 유치원이나 학원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아이들과 외출을 할 때면 순간순간 비는 시간이 생기곤 했는데, 그럴 때면 가만히 서서 할 게 없으니 멍하니 있다 그냥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외출을 할 때도 가방에 작은 책이라도 챙겨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아이들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일찍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나 하원 길에 아이들이 놀이터로 달려간다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이 책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넣고 갔다가 다 읽게 되었다. 겨울 한파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감기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대기시간도 길고, 우리 아이들 감기가 생각보다 심해서 이것저것 검사까지 한 덕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모든 삶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 속으로 굽이굽이 흘러 들어갔다. 물론 어떤 작가의 글에도 자기 삶의 경험은 묻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삶의 체험이 강하게 스며든 작가는 드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고난과 그 극복의 드라마이다. 부친의 살해, 체포와 날조된 사형, 사베리아 유형, 그를 평생 괴롭힌 간질병, 도박의 유혹, 끝나지 않는 경제적 압박..... 그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으며, 삶이 곧 소설이었던 작가였다.

- <도스토예프스키> p4 중에서 -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우리 아이들의 감기의 원인. 첫째는 폐렴, 둘째는 독감이었다. 그리고 첫째를 입원시키며 아이와 함께 갑작스럽게 시작 된 병원 생활 속에서 얄팍하지만 깊이 있던 이 책은 나의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 작은 책 속에 담긴 도스토예프스키의 심한 굴곡 진 삶은 나의 힘겨움을 훨씬 더 작게 여길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삶은 파란만장 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고난과 그 극복의 드라마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대단한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삶에 대해 잘 몰랐던 나로서는 그의 삶을 알아가는 것 그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곳이 다른 곳도 아니고 병원 입원실이었기에 왠지 모를 공감을 넘어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위장병, 루마티스, 신경발작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폐쇄적인 감옥생활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 나중에는 죽을 때까지 간질병을 앓으며 병마의 고통에 시달렸던 그.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 도스토예프스키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는 없다. 하지만 병원 입원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어린 환자의 보호자로서 자유가 제한된 채 환자를 밤낮으로 끊임없이 돌봐주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그가 겪었던 삶에 공감을 했고 또 그보다 나은 나의 삶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 책에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 나는 기운을 잃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의 삶이든 그것 역시 삶이고, 삶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재난이 몰아닥친다 해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흔들이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바로 거기에 인생의 과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략) 지금 이 순간, 나는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사랑하고 포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죽음과 대면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때가 되어서야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볼 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었는지요. (중략) 삶은 행복입니다. 매순간이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p28 중에서  

밤에 개최된 문학 축제에서 그는 푸슈킨의 시 <예언자>를 낭송했다. 완전히 지쳐버린 그는 약하고 낮은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또 다시 홀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고, 다시 한번 황홀경에 빠진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러시아 문학 전체가 그 예언자를 추앙했다. 푸슈킨 기념행사에서의 연설은 위대한 러시아 시인에 대한 깊은 사색의 열매이자, 작가 자신의 피 끓는 열정의 유언이었다. 물론 인류의 완전하고 보편적인 형제애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온 삶의 에너지를 다해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들을,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과 민중을, 그리고 러시아와 유럽을 서로 화해시키는 유언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p84 중에서  

작가는 아이들을 침대 곁으로 오게 하여 성서의 돌아온 탕자이야기를 읽게 하고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얘들아, 지금 방금 들은 얘기를 절대로 잊지 말아라. 주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간직하고, 그분이 항상 용서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라. 나는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내 사랑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을 향한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살다가 혹은 죄를 짓는다 해도 주님에 대한 희망을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그분의 자녀들이다. 마치 너희 아버지를 대하듯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라. 그분께 용서를 구하면 그분은 돌아온 탕자를 보고 기뻐한 것처럼 너희들의 회개를 기뻐하실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p85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많은 찬사가 따라 다닌다. 천재 작가, 미래를 꿰뚫어보는 예언자, 신비주의자, 뛰어난 직관의 보유자,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실존주의 철학자.... 모두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떤 연구가가 그의 문학을 울창한 원시림과 깊은 동굴, 그리고 심연으로 이루어진 신비경이라 했던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 <도스토예프스키> p87 중에서 -

      

가끔 아이 엄마들과 모여 아이들 키우며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씩 내뱉는 말이 있다. 그동안 힘들었던 거 이야기하면 책 한 권은 나온다고 말이다. 요즘은 일반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많은 이들이 겪는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이 나오는데 누구도 쉽게 겪을 수 없는 일들을 겪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떠했을지. 안타깝게도 그가 겪은 일들은 다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일들이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일이라든지, 사형직전까지 갔던 일, 중노동을 했던 수감생활, 자식의 죽음, 도박 중독, 질병의 고통 등 그가 겪은 일들은 하나같이 힘겨운 일들이었다. 이 중 하나만 경험해도 삶이 힘겹게 느껴졌을 텐데, 그는 이 모든 걸 다 경험했으니 그의 힘겨움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가 이러한 극한의 일들을 경험했기에 그가 자신의 작품에 다른 사람들은 쉽게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낼 수 있었겠지만, 분명한 건 그 누구도 이런 삶을 원치는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설사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누구도 원치 않았을 삶을 산 그. 그래도 그에게 하나의 행복이자 축복이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모든 고통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렇게 큰 고통을 겪은 것도 그의 유일한 능력이자 축복이었던 글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글에 대한 욕망과 재능이 없었더라면, 군인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그는 힘겨운 경험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이름이 지금처럼 여러 세기를 거쳐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는 못했겠지만. 작가로서는 크게 성공하고 인정을 받으며 행복했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고통과 힘겨움으로 불행했을 그. 너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세계가 인정하는 작품을 남긴 대단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자신의 삶을 평할 때 행복했다고 여길지 불행했다고 여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고 여기려는 순간, 그가 꾸며진 사형을 모면한 뒤 자신의 형에게 남겼던 편지 구절이 생각났다. “삶은 행복이고, 매순간이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은 자신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며,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병원 생활을 조금 더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겪는 이 힘겨움은 지금 이 순간 일뿐만 아니라, 지나갈 힘겨움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길다 해도 일주일이면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뒤에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조금 힘겹겠지만,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에는 병원에서 있었던 힘겨움이 나의 생활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병원에서의 힘겨움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겪었던 경험을 떠올려봤을 때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이 그보다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고 별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가 겪은 것이 이 정도의 일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 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극심한 가난과 죄의 심연, 미칠 듯한 도박의 흥분상태와, 끓어오르는 욕망,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수치심, 사지가 뒤틀리는 간질의 고통, 사랑했던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인정했다. 때문에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 정신질환을 앓는 자와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자, 격렬한 욕정과 욕망에 시달렸던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천재이기 이전에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었던 한 작은 인간이었기에, 우리는 그에게서 큰 작가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아닐까.

- <도스토예프스키> p89 중에서 -

     

한동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으며 마음보다는 머리를 채우려고 했던 나에게 이 책은 때론 마음을 채우는 것이 머리를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마음을 채우는 것이 내 삶을 훨씬 더 겸허하게 바라보게 해줌으로써 나와 내 주변을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다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기게 해주니 말이다. 그저 유명한 작가로만 여겼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같은 삶이 담긴 이 책을 보며, 유명하기만 한 그의 작품이 아니라 작은 인간의 삶이 담긴 그의 작품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보게 되는 시간도.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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