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다시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향수]만 4번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향수] 초판본과 가장 최근에 나온-개역판-을 모두 읽은 셈인데, 아무래도 나중에 번역된 것이

읽기가 좀 좋았습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참으로 독특한 문학작품입니다.

결코 역사적 사실일 수 없는 이야기를 가장 사실적인 배경과 역사 속에서 그려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향수]에는 유럽의 단면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16세기라면, 그리 멀지 않은 역사이고, 말 그대로 르네상스가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대였는데,

바로 그때, 이렇게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여러 번 읽었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가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책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은 초판본이 나올 때 이미 다 읽었습니다.

이 작가 자신의 정체 또한 재미있더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을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갑오농민전쟁 8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박태원 지음 / 깊은샘 / 1993년 5월
평점 :
품절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을 읽기 전에 송기숙의 [녹두장군] 10권짜리를 읽었는데, 같은 갑오농민전쟁을 다룬 대하 소설이지만 주제나 사건 전개 등이 좀 다릅니다.

물론, 전봉준 선생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고는 있습니다만, 전봉준 선생의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가 매우 뛰어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시대를 뛰어넘는 매우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은 박태원이 전쟁 후 북한에서 쓴 작품이어선지, 북한 문학의 느낌이 조금 나더군요.

언어라던가, 미국과 일본을 극도로 미워하는 시각이라든가, 봉건제 사회에서 양반에 대한 분노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 그 당시 민중들이 당하는 고통이 충분히 그러했으리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수긍할 수 있습니다.

양반의 가렴주구가 얼마나 혹독한 지를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와 민중의 생활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갑오농민전쟁과 관련해서 소설, 역사 관련 서적 등을 나름대로는 읽었지만, 늘 전쟁 마지막 부분에서는 읽기가 싫어집니다.

우리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고, 비극적인 종말을 다시 기억하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전봉준은 비록 참수를 당해 남대문 앞에 그의 목이 걸렸지만 전쟁에 참여한 수 십만의 민중들은 그 기억을 잊지 않기 때문이지요.

더 좋은 날을 위해 다만 기다릴 뿐이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레즈를 위하여

흠…이 책을 말하기 전에 먼저 ‘레드 컴플렉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우리나라의 정체성-그게 정확히 있는 지도 모르지만-은 조선이 망하고 나서 식민지-해방-좌우익의 충돌-분단-전쟁-냉전-자유당 독재(이승만)-군사쿠데타1차(박정희)-군사쿠데타2차(전두환)-유사군부독재(노태우)-민간정부1차(김영삼)-민간정부2차(김대중)-민간정부3차(노무현)의 순서로 정치형태가 바뀌어 왔습니다.

50년의 긴 시간동안 식민지 시대부터 기득권을 행사했던 친일파들이 전혀 청산되지 않은 채, 오히려 기득권이 강화되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공을 ‘국체’로 한-한심하죠-파시즘 체제가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국가체제에서 ‘공산주의’를 말한다는 것은 학문적인 목적이건 단순히 호기심이건 무조건 ‘반공법 위반’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이런 야만적인 법이 지금도 존재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레즈를 위하여]라는 책은, 이를테면 해설서입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의 영문판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설명한 내용입니다.

서양에서는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세계 100대 명저에 반드시 들어가는 인정받는 서적입니다.

그 내용이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주장하고, 자본주의의 파멸을 예고하는 것이지만,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이만한 명저가 없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권(국가)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예전처럼 악랄하지는 않다해도 여전히 사람들의 사상을 제약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이렇게 책으로 나온 것만도 민주화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책은 딱딱한 책이 아닙니다. 아주 재미있게 써서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주3일 노동에 관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군요. 이 책의 지은이와 관계없이 저도 주3일 노동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곤 했거든요.

주5일도 힘들게 시작하고, 그나마도 야근, 철야작업으로 시간외 노동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주4일-프랑스-도 아니고 주3일이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생각을 할까 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하루 8시간 노동도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피의 대가였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우리의 노동이 고통과 소외가 아니라, 창조와 자기 실현의 과정으로 변할 수 있다면, 인간의 본질에 더욱 다가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진보적인 시각이 왜 중요하며 왜 바람직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겠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체제를 겨우 유지하려고 하고, 기회만 되면 더욱 열악한 조건-기득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퇴행하려고 노력하죠.

인간답게 산다는 것, 물질보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으로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사회, 일을 하면서 자신이 소외되고 있다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올바르게 인식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세계와 여러 민족, 인종, 국가에 대한 이해와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편협한 역사관의 결과가 히틀러와 같은 극우 파시즘을 배출하고, 인종차별과 백인 우월주의 등 부정적인 사상을 낳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역사와 관련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이제는 책이 없어서 못 읽는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지식의 갈구보다 좀 더 전문적인 자료로서의 가치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사와 관련해서는 한길사, 풀빛, 역사비평 등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와 있구요…

동양사는 지식산업사, 까치 등에서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제가 추천해드리는 책은, 가능한 원전을 직접 번역한 책이 가장 좋다는 거죠. 경험상.




엊그제 산 책 가운데 [인도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1945년에 네루(인도 수상)가 썼던 책입니다.

인도의 역사는 주로 서양인에 의해 씌어진 것들이 대부분인데, 정작 인도인의 시각으로 쓴 책은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사의 경우, 일본 식민교육의 사관으로 씌여진 책들이 많은데, 이들이 우리나라 사학계의 거두였다는 점에서 몹시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한국사는 오히려 요즘 젊은 소장학자들의 저서가 훨씬 객관적이고 역사사실에 충실합니다.

[역사비평]으로 대표되는 소장학자들의 활약이 특히 돋보이죠.

역사도 학자에 따라 고대, 중세, 근현대를 다루는 분야가 달라서, 각 분야에 따른 괄목할 성과물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게 70년대 이전까지의 저작물들은 주로 식민역사관에 물든,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이 많습니다.



극히 예외적인 인물이 백남운, 민두기, 김칠성 등과 같은 학자들이죠…

잠시 뒤에 이어쓰겠습니다.^^     …이어서 씁니다.^^



특히, 단군 신화를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해석한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는 일독을 권합니다.

역사는 대게 혼자 움직이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사상(철학) 등과 함께 움직이는데, 역사라는 것 자체가 인류 활동의 총체적 결과라는 것을 본다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역사관, 즉, 사적유물론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타당하며-물론, 마르크스도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철학)가 바로 사적 유물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적 유물론은 사상(철학)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역사의 보편적 진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역사 공부를 할 때 빠뜨리지 않고 봐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르크 블로흐의 [역사를 위한 변명]도 역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고,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지요.

요즘은 역사 속의 민중들의 구체적인 삶을 그린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미시사 범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역사가 거시사를 다루고 있다면, 미시사는 말 그대로 구체적이고 자세한 사람들의 생활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도 유럽 중세 사회에서 ‘향수’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재미있게 그린 것이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중세 수도원을 아주 세밀하게 그린 것이지요.

에구구…이제 잡소리는 그만하죠..^^ 그저 많이 읽는 것이 무조건 최곱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갑오농민전쟁 1 - 제1부 계명산천은 밝아 오느냐 - 양장본
박태원 지음 / 깊은샘 / 1993년 5월
평점 :
품절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은 한국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뛰어난 수작이자 숨겨진 보물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태준, 김기림, 이상, 김유정 등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한국문학 초기의 작가이자 모더니스트였던 것은 이미 알려졌지만

해방과 전쟁 이후 그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갑오농민전쟁]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글의 말과 글을 맛깔나게 쓰는 몇 안 돼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은 일단 재미 있습니다.

대개, 30년대 작가들의 글이 매력적이고 맛이 있는 이유는, 그때까지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역사 속에서 이어져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식민지 환경에서 일본말과 글을 써야하는 제약때문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발전시키지는 못했겠지만 언어가 인위적으로 단절되지 않은, 즉 조선 언어의 마지막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언어를 몸에 익힌 작가들이 소설을 썼기 때문에 그 글과 말이 맛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언어는 너무 딱딱하고 인위적이며 건조하고 삭막합니다. 말과 글이 맛이 없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고, 사용하는 어휘도 풍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벽초의 [임꺽정]이나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30년대 작가들의 작품-김유정도 으뜸이죠-을 많이 읽으면 우리 말이 얼마나 재미있고 아름다운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답니다.

책읽는 재미가 다시 붙기 시작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