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규의 희망 - 하버드의 늦깎이 공부벌레 서진규의 유학 생존기
서진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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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은 많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희망과 꿈에 대해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펼쳐놓고 있는가?  그러나 희망과 꿈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바로 그것을 실제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시킨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 말에 신뢰를 줄 수가 없는 법이다.  여기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사람이 있다.  공부를 잘해서, 집안이 부자여서 하바드 박사를 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집은 가난했고, 집안에서 부모님께 여자라고 차별을 받았다.  가진돈이 없어서 미국에 가정부로 팔려갔으나 그녀에겐 꿈이 있었다.   가난과 차별을 이겨내고 자신이 품고 있는 소중한 꿈을 실현시키고야 말겠다는 그 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려 31년을 노력해서 나이 예순에 하버드 대학 박사가 되었다. 이 눈물겨우 만학도의 이야기는 이제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 그녀는 평생을 품고 있었던 학자로서, 하버드 박사로서 꿈을 이뤘다.  그리고 현재 동기부여연사로 강연과 저작 활동을 통해 꿈과 희망을 온 세상에 전염시키고 있다. 이분의 이름은 서진규다.

몇 해 전 그녀의 자서전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 몇 해 나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대학 졸업후 취업은 실패했고, 몇번의 연애는 지지부진했다. 20대의 후반은 길이 보이지 않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삶은 장미빛이 아니라 잿빛이었고, 내가 하는 일은 모두다 안 됐다.  평균치의 삶조차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단 두려움이 밀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은 날들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다.  그 시절, 우연찮게 읽게 된 이분의 책은 내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용기를 주었다.  한 권의 책이 이 의기소침한 젊은이에게 미친 영향은 사막의 오아시스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나는 내 꿈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당위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이분의 삶은 어쩌면 하나의 좋은 본보기와 같았단 느낌이 든다.  절망속에서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한다.   삶을 하나의 변명거리로 전락시키고 실패를 자기 합리화하는 이러한 버릇은,  꿈을 이루지 못하는 자들의 공통점이다.

그 시간 이후 몇 해가 흐르고, 그녀는 새로운 책을 통해 이렇게 자신의 삶에 분명한 마침표를 찍었다. 그 당시 그녀는 하버드의 박사 과정에 있었지만, 그 과정을 무사히 마친다는 것은 또다른 도전이고 넘어야할 험준한 산맥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당시의 모든 독자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하버드 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자서전에 이어 유학 경험담을 이렇게 책으로 묶어 냈다.  서진규의 <희망>, 기억속에 강렬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꿈의 전도사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물론 지금, 나는 어엿한 직장을 갖고 또 가정도 꾸렸지만 아직 그녀가 이룬 성취를 통해 배워야할 것들이 넘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녀의 책에서 예순의 나이에도 시들지 않은 열정과 꿈을 재발견하게 됨이 기쁘다.  이민자의 딸 올브라이트처럼, 자신도 10년내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겠다는 꿈을 포부로 밝힌 글을 읽으면서도 전혀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것이 그녀가 지금껏 이뤄왔던 것은 사실, 그보다 더 어렵고 대단한 일임을 모든 독자들이 다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힘든 일이 생기거나 좌절과 포기가 나를 엄습할 때면 자주 상상력이란 걸 동원하곤 했다.  상상을 통해 내가 꿈을 이루고난 뒤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던 것이다.  그 보람찬 성취 이후의 멋진 모습뿐 아니라 그때의 황홀한 만족감을 미리 앞당겨 느끼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의 우울함과 어둠이 가시고 오렌지 농장처럼 환한 빛이 눈앞에 펼쳐지곤 했다. 그 행복을 위해서라면, 당장의 어려움과 외로움과 고단함이 무에 그리 대수랴. " p.52 본문

두번째로 읽은 그녀의 책에서도 나는 또 한수가 아니라 몇수를 더 배운다.  평생을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의 삶의 모토임과 동시에 나의 모토이기도 하다.  유학 경험담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그녀처럼 용기있는 삶을 살 자신은 없다.  학문을 위한 집요함을 태울만한 배짱도 없다.  그러나 어떠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길이 어떤 조건들에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끝없는 노력,인내.  바로 그거였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던 것이다.  우리가 작은 성취조차도 이루기 어려운 것은 외부적인 조건들에 있지 않다는 이 간단한 사실.  하버드 박사가 되기까지 3개국어에 능통해야 했던 그녀의 외국어 공부비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사 모든 문제처럼 학문에도 지름길이 없고, 오직 성실과 인내와 열정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  나도 그녀의 열정가운데 십분지 일이라도 이 책을 통해 닮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바쁜 직장생활은 핑계일 뿐이다.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가장 큰 거짓말이다.  나의 성취는 나의 의지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메세지다.

건강을 잘 챙겨서 앞으로 전 세계를 누비는 희망 전도사로서 서진규씨가 오래도록 더 많은 성과들을 만들어 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이 열정과 희망으로 온통 전염되었으면 좋겠다.  희망은 계속 전염되어야 한다.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  - 윈스턴 처칠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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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에 영원히 남겨둘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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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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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걸치지 않은 인간본질 대면하기
마의 산
토마스 만 지음, 곽복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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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깊은 인생의 산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필립 얀시 지음, 김동완 옮김 / 요단출판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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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진실
빙점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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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성찰이 가득한 진지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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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1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길은 여기에! 참 좋아하는 책입니다. 저거 읽고 시리즈까지 다 사서 읽었다는
이렇게 반가울 때가 ^^

개츠비 2008-01-11 08:57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저도 이 책을 읽고 3권 시리즈와 아야꼬의 나머지 책들에 읽었답니다. 이 책은 사실 강원도에서 군생활하면서 읽었는데, 전방 산악지대의 험준한 산속에서 읽은 이 책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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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digilog-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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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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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12월 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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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순천시민이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
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Think Hard!
황농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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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은 아름다운 것?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하워드 진.에드워드 W. 사이드 외 17인 지음, 강주헌 옮김, 데이빗 버사미 / 시대의창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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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진보주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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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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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의 참상을 깨닫기까지 오늘의 청년들에겐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대학졸업자의 반수 이상이 이미 비정규직의 삶을 살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현재 전체 노동자의 50%를 육박하는 비정규직 인생들이 있고, 그들의 수는 800만을 넘어간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 비정규직으로 들어선 사람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연공서열제의 도움을 받아, 정규직으로 신분상승을 할 수도 없는 법이므로 그들은 인생 자체를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나또한 대학 졸업후의 20대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살았다.  정규직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은 급료를 받던 시절에, 나는 그것이 내가 부족해서 당연히 받아야할 대우라고 생각했지만 참으로 그 시절을 견디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자괴감과 사회에서 소외된듯한 외로움!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 적은 급료로 내 삶을 꾸려가야 하느냐 하는 현실적인 중압감 !  그 시절의 삶은 도저히 인간적이지 못했으나 마땅히 돌파구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이미 정규직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비정규직 직원들의 처우엔 관심이 없었고,  IMF를 경험한 기업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비정규직화를 늘려갔다.  그리고 그 시절을 그래도 10년 지나온 오늘, 나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나는 운이 좋게도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공기업에 취업을 했다.  개인적으론 물론 800만이 비정규직인 `신이 버린 사람들?'사이에 소속되진 않았다지만, 그러나 `신이 내렸다'거나 `신이 버렸다'라는 표현이 모두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은, 오늘의 이 사회가 얼마나 큰 모순속에 감금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공기업에 있지만, 바깥에서 보기만큼 대우가 크게 좋은건 아니라고 본다. 단지, 시대의 현실이 평범한 직장을 `신이 내렸다'라는 비꼼으로 불리우게 한 것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공기업도 항시적인 구조조정에 노출돼 있고, 경쟁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표현은 더욱이 맞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비정규직 800만의 시스템을 누가 만들었고,어떻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 실상을 알게 된다면 지금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이 받고 있는 부담스런 시선도 거대한 사회구조의 허상이 만든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C급 경제학자라고 부르며, 프랑스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UN에서 일했던 경력을 지닌 저자 우석훈 씨는 이 책에서 말하기 조심스러운 이 문제를 대중앞으로 끌어내 우리 사회의 보고싶지 않은 슬픈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비춰주고 있다.

이 책에서 `88만원 세대'로 지칭한 사람들은 쉽게 말해 오늘의 20대다.  20대는 대학을 나왔건 고등학교를 졸업했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불운한 세대다. 저자가 88만원을 들고나온 것에서 이 불운한 세대를 마땅히 이름붙일 수 없다는 저자의  고민을 알게 해준다.  지금 사회에서 대학졸업생이 80년대식의 연공서열제와 정년을 보장받고 정규직으로 평생을 일할 수 있는 조건의 직장에 들어서기란 오직 `공무원'이 되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은 너무나 좁고 경쟁은 치열하다. 그밖의 길은 물론 비정규직의 낭떨어지가 버티고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것만큼 어려운 경쟁의 구도에 들어선 88만원 세대는, 무서운 게임인 `베틀로얄'의 잔혹동화를 연상시키듯 `너죽고 나살자'식 삶을 살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다.  물론 어느 시대나 좋은 일자리는 있고, 그것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승자를 만들어낸다면 그만큼 정의로운 사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는 이미 경쟁이랄수도 없는 로또식의 기회만을 제공하면서도, 그 기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다수의 선량한 청년세대를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터무니없는 승자독식 게임이 벌어지는 싸움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엔 이미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오직 소수 승자만의 비굴한 웃음소리만이 가늘게 들려올 뿐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대 간의 불균형에 관한 문제는 적어도 인류 지성사에서는 아주 낯설고 전례가 없던 일이다. 적어도 OECD 국가 내에서 지난 50년 동안 한 사회 전체가 가난하거나 전체적으로 부유해지는 일들은 있어도 특정 세대 특히 20대나그 이후 세대에게 경제적 고통이 집중되는 경우는 잘 벌어지지 않았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가라고 석학에게 질문한다면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운용방식을 결정한 `워싱턴 컨센서스'를 가장 많이 지적할 것이다. 워성턴의 금융가와 정치인들이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서 제시한 방식대로 경제를 운영하면 엄청난 규모의 외부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 - 이 경우에는 미국 -외에는 대체적으로 노동 유연성이 다음 세대에게 집중되면서 20대가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다."<88만원 세대>, p.280

모든 것을 현재의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시스템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는 이미 80년대가 아니고 21세기를 지나온지도 한참이 지났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도 세계적인 경제 여건에 따른 탓으로 돌릴 수가 있단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을때 세상은 단 한치도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자는 계속해 승자이고, 부자는 계속 부자로 남는다.  그리고 그들은 소수이며, 그 나머지 다수는  패자와 빈곤의 길이 자명하다.   문제는 승자가 승자로 남고 부자가 부자로 남기위해서 그들이 이 사회의 부조리를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10대들이 거대한 사교육 열풍속에서 인질이 돼 버린 현상을 저자는 지적한다. 과외, 학원으로 대표되는 우리 나라의 사교육 열풍을 한번 되짚어 보자.  한달 수입의 기십프로를 아이들 사교육을 위해 지출하는 우리 나라의 교육여건은 이미 그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이로써 가정 경제는 정상의 범위를 넘어 파산의 분기점에 치닫고 있다.  부자들에게 한달 기십만원은 껌값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의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가정 경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 이상한 게임을 도대체 누가 시작한 것일까?  왜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조차 빈부의 격차라는 비열한 룰속에 가둬버린 것인가? 

TV CF를 보자. 이미 비정규직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예약돼 있는 20대들에게 대기업들은 허황된 바람을 불어넣어 상품을 팔아먹는다. 한달 88만원 수입이 예정돼 있는 사람들이 50만원이 넘는 휴대폰을 들고 다니고, 좋은 옷과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밥값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실것을 유혹한다.  수입은 비정규인데, 소비생활은 뉴요커 수준인 이상한 된장남,된장녀들이 탄생하는 기점이 바로 여기다.  동네의 수퍼마켓들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할인점에 밀려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작은 영화관은 멀티플랙스 영화관에 잠식당한다.  비정규직이 싫어 자영업으로 눈을 돌린다해도, 그들에겐 이미 퇴로가 막혀 있는 상황이다.  기업은 철저하게 사람을 비정규로 만들면서, 허황된 마케팅으로 소비를 유혹하고, 또 문어발식 확장으로 자영업자로서의 삶 자체도 막아놓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앞으로 대학도 시장경제의 논리에 맡겨서 국고 지원을 없앤다음, 자동 퇴출 시스템을 가동시키겠다고 한다. 결과는 물론 SKY로 대표되는 인기있는 대학들의 서열화가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서열화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가정경제가 더 부담해야하는 상황이 도달할 것이다.  또 이명박 당선자는 대기업들의 규제를 풀어서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고 하는데,  규제를 해 놓은건 소수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겠는가. 그것조차 풀어버린다면 대기업은 고피풀린 망아지가 돼 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앞으로 소수의 엘리트와 소수의 부자들이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짜가사회를 이 책의 저자는 `승자독식사회'라 불렀다.  소수의 승자만이 기펴고 사는 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 사회다.  그래서 10대와 20대에게 저자는 당돌하게 주문한다. 당장에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라고.  왜 이 거대한 짜가사회, 속임수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는가 라는 저자의 호통이라 보면 되겠다. 10대는 사교육의 인질이 되었고, 20대는 비정규로 착취를 당한다.  물론 그들을 그렇게 만든건, 30대의 386세대부터 60대의 유신세대까지 한통속으로 우리 사회속의 기득권자들이다.  이 짜가사회, 승자독식사회를 해체하는 길은 바로 10대와 20대의 짱돌밖에 없을 뿐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68세대는 고교생 신분으로 프랑스 대학의 서열화를 없앤 세대로, 그들의 봉기로 인해 국가의 기득권자들은 허겁지겁 프랑스 대학을 국유화하고 서열을 없앴다.  오늘날 파리 1대학에서 파리 10대학까지는 그때 당시의 대학 총장들이 제비뽑기 번호표를 뽑은 순서로 정해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10대와 20대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너무나 힘이 없고, 의식적으로 죽어 있다. 그들이 본인들의 삶을 개척하고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  정치세력화와 바로 의식의 전환이다.  자신들의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왜 20대 국회의원을 만들지 못하는가 ?  왜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위해 토플책만 보고,  사회의 부조리는 보지 못하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패자와 빈자들에게 승자와 부자들은 절대로 기득권을 그냥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짱돌외엔 길이 없다.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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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믿음의 글들 40
우찌무라 간조 지음, 양혜원 옮김 / 홍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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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갖게 되면서 내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교회에 출석하는 일, 성경을 읽는 일, 그리고 신앙서적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찾게 되는 일, 그리고 식사 때 기도를 하는 일, 힘들 때 주문처럼 하나님을 찾는 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  기독교 신앙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이 정도로 열거할 수 있으리라.  이 가운데 가장 낯간지러운 일은 물론, 하나님을 나의 주문을 받아주는 마법사처럼 시시때때로 부르는 일같다.  그를 불러서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해결해주실것을 부탁한다.  일단 마음은 편안해지고, 현실적인 불안은 잠시 내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하나님은 정말로 유용하신 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때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른 삶은 적절한 타협으로 넘기기 일수이면서도 나는 내가 필요할 땐 하나님을 찾아 구걸한다.   이렇게 믿어도 되는 건가 ? 이것이 신앙인가 ?

신앙을 갖게 된 이후로 마음은 편안해졌을지 모르지만, 내 양심은 끝없이 요동쳤었다. 언제나 삶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반향으로 튀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거기서부터 삶은 신앙적인 모순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가르침은 알지만, 일단 행동은 뒤로 미룬다. 올바른 길은 알지만, 그건 지름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자기기만. 이 모순에서 나는 신앙을 가진 이후로 지금껏, 또 앞으로 언제까지 기독교 신앙을 회의하게 될지 알 길 없다. C.S 루이스나 필립 얀시, 그리고 오늘 우찌무라 간조까지 이들 신앙인들의 서적을 관심갖고 읽는 이유는 이 모순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였다.  아니 그 모순이 나만의 문제인지 정말로 간절히 알고 싶어서다.  나보다 더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었던 그들은 신앙안으로 어떻게 들어섰으며, 또 어떻게 신앙을 키워갔는지 알고 싶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19세기 이웃나라 일본에서 기독교의 태동기에 나같은 고민을 깊이 있게 끌고간 한 사람, 우찌무라 간조의 신앙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우찌무라 간조는 1861년 일본 에도에서 무사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74년 동경 외국어 학교을 거쳐, 1877년 샷포르 농업대학교에 입학, 거기서 기독교 신앙과 만난다. 그 시절 일본은 신문명을 받아들이며 수많은 서양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던 때다. 그는 대학에서 기도모임을 갖고 또래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예배를 보며 기독교인으로 자라난다.  일본에서 교회중심의 기독교가 전파되는 시대에 그는 일본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며, 기독 신앙을 키워갔던 것이다.  그는 신앙을 갖기 전까지, 일본의 수많은 잡신들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들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 태양앞에 절하고, 길을 가다가 큰 바윗돌에 절하는 평범한 일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 모든 미신에서 벗어나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일본에 전파되는 기독교는 오늘날로 치자면 장로교나 감리교처럼 교파들이 분리되어, 서로간 경쟁속에서 진행된다.   

진리가 하나일진데, 왜 이들 선교사들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경쟁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일본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파송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교파을 선전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온 것인지, 간조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간조는 훗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거기서 대학을 다니며 신학을 접하게 되면서, 이러한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바른 신앙을 위한 진정한 회의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간조의 민족에 기반을 둔 기독교 신앙의 정립과 ``무교회주의'라는 그의 독특한 기독사상이다.  무교회주의는 신앙 연구를 주축으로 올바른 교회를 만들어가자는 사상인데,  이같은 그의 사상이 발현한 기점이 바로 청년시절, 조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의 횡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간조는 서양에서 전파된 기독교를 보편적인 진리 자체로 받아들였고 단순히 서양적인 것, 그들의 민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볼때, 그가 얼마나 민족적인 자부심으로 깨어있었는지, 신앙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수한 회의가운데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참된 관용은, 자기 자신의 신앙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정직한 신앙을 허용하고 참아 주는 것이다. 진리의 일부는 알 수 있다고 믿으나, 모든 진리를 다 알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적 관용의 기초이며, 모든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고 평화롭게 대할 수 있는 원천이다."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p.186

과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우찌무라 간조에게 배울게 없을까?  그의 `무교회주의'가 한때 우리나라 종교지도자들에게 외면받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무교회주의란 교회에서 예배를 보지 말라는 얘기로 단순히 해석하면, 대단히 위험하게 보인다.  그러나 선교초기 교파들 간의 경쟁으로 자신들만의 교회를 만들고자 했던 선교사들을 보면서, 그것이 바른 신앙인의 모습인가 회의하던 간조의 고민이 담겨 있는 사상이라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수많은 문제들로 얼룩져 있다.  대형교회들은 목회직을 부자간 세습하고, 교회 재정과 운영은 투명하지 못하다.  교회의 담임목사들은 신도들 위에 굴림하며, 교회를 자기것인냥 소유하려 든다.  그러나 사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자, 신도들의 것이다.  오늘날 과잉배출된 목회자들이 갈데가 없어서, 거대한 실업시장을 만들고 있다.  목회의 실업시대,  이만큼 서글픈 현장도 없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격없고 소양없는 목회자들이 대량으로 양성된다는 데 있다. 간조는 성직을 직업으로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때 품었다고 이 책에 적어두었는데, 그것이 19세기 기독교인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직을 하나의 밥벌이로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있다는 현실을 우리가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직을 직업으로 인정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갖기 어려운 직업을 성직으로 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보다도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길이 더 어렵고 험하다면 어떨까? 어렵다는 것은 성직자가 하나의 자격증처럼 시험만 보고 통과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정말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봤을때, 올바른 소양을 가진 성직자가 도대체 몇이나 될지 알 수 없다.

"아직도 내가 신학을 공부하는 것을 타인 앞에서 부끄러워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사실, 세속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학문이건 그것의 영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단지 먹기 위해서 설교한다는 발상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는, 신학을 공부한다는 게 분명 매우 비열하게 보일 것이다." p.259 

우찌무라 간조를 통해서, 회의가 진정한 신앙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이 읽어주는 성경과 설교만을 믿고, 오직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인냥 느끼는 것도 물론 신앙인의 틀린 자세는 아니나,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출발은 언제나 성경과 기도를 통한 깊은 묵상을 통해 바로 하나님과 교류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내 내면에 직접 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신자는 아마추어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학은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영접하기 위해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건강한 신앙은 건전한 회의속에서 키워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그것이 세상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신앙인이 되는 길이다.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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