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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의 참상을 깨닫기까지 오늘의 청년들에겐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대학졸업자의 반수 이상이 이미 비정규직의 삶을 살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현재 전체 노동자의 50%를 육박하는 비정규직 인생들이 있고, 그들의 수는 800만을 넘어간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 비정규직으로 들어선 사람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연공서열제의 도움을 받아, 정규직으로 신분상승을 할 수도 없는 법이므로 그들은 인생 자체를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나또한 대학 졸업후의 20대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살았다. 정규직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은 급료를 받던 시절에, 나는 그것이 내가 부족해서 당연히 받아야할 대우라고 생각했지만 참으로 그 시절을 견디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자괴감과 사회에서 소외된듯한 외로움!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 적은 급료로 내 삶을 꾸려가야 하느냐 하는 현실적인 중압감 ! 그 시절의 삶은 도저히 인간적이지 못했으나 마땅히 돌파구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이미 정규직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비정규직 직원들의 처우엔 관심이 없었고, IMF를 경험한 기업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비정규직화를 늘려갔다. 그리고 그 시절을 그래도 10년 지나온 오늘, 나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나는 운이 좋게도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공기업에 취업을 했다. 개인적으론 물론 800만이 비정규직인 `신이 버린 사람들?'사이에 소속되진 않았다지만, 그러나 `신이 내렸다'거나 `신이 버렸다'라는 표현이 모두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은, 오늘의 이 사회가 얼마나 큰 모순속에 감금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공기업에 있지만, 바깥에서 보기만큼 대우가 크게 좋은건 아니라고 본다. 단지, 시대의 현실이 평범한 직장을 `신이 내렸다'라는 비꼼으로 불리우게 한 것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공기업도 항시적인 구조조정에 노출돼 있고, 경쟁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표현은 더욱이 맞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비정규직 800만의 시스템을 누가 만들었고,어떻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 실상을 알게 된다면 지금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이 받고 있는 부담스런 시선도 거대한 사회구조의 허상이 만든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C급 경제학자라고 부르며, 프랑스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UN에서 일했던 경력을 지닌 저자 우석훈 씨는 이 책에서 말하기 조심스러운 이 문제를 대중앞으로 끌어내 우리 사회의 보고싶지 않은 슬픈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비춰주고 있다.
이 책에서 `88만원 세대'로 지칭한 사람들은 쉽게 말해 오늘의 20대다. 20대는 대학을 나왔건 고등학교를 졸업했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불운한 세대다. 저자가 88만원을 들고나온 것에서 이 불운한 세대를 마땅히 이름붙일 수 없다는 저자의 고민을 알게 해준다. 지금 사회에서 대학졸업생이 80년대식의 연공서열제와 정년을 보장받고 정규직으로 평생을 일할 수 있는 조건의 직장에 들어서기란 오직 `공무원'이 되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은 너무나 좁고 경쟁은 치열하다. 그밖의 길은 물론 비정규직의 낭떨어지가 버티고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것만큼 어려운 경쟁의 구도에 들어선 88만원 세대는, 무서운 게임인 `베틀로얄'의 잔혹동화를 연상시키듯 `너죽고 나살자'식 삶을 살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다. 물론 어느 시대나 좋은 일자리는 있고, 그것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승자를 만들어낸다면 그만큼 정의로운 사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는 이미 경쟁이랄수도 없는 로또식의 기회만을 제공하면서도, 그 기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다수의 선량한 청년세대를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터무니없는 승자독식 게임이 벌어지는 싸움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엔 이미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오직 소수 승자만의 비굴한 웃음소리만이 가늘게 들려올 뿐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대 간의 불균형에 관한 문제는 적어도 인류 지성사에서는 아주 낯설고 전례가 없던 일이다. 적어도 OECD 국가 내에서 지난 50년 동안 한 사회 전체가 가난하거나 전체적으로 부유해지는 일들은 있어도 특정 세대 특히 20대나그 이후 세대에게 경제적 고통이 집중되는 경우는 잘 벌어지지 않았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가라고 석학에게 질문한다면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운용방식을 결정한 `워싱턴 컨센서스'를 가장 많이 지적할 것이다. 워성턴의 금융가와 정치인들이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서 제시한 방식대로 경제를 운영하면 엄청난 규모의 외부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 - 이 경우에는 미국 -외에는 대체적으로 노동 유연성이 다음 세대에게 집중되면서 20대가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다."<88만원 세대>, p.280
모든 것을 현재의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시스템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는 이미 80년대가 아니고 21세기를 지나온지도 한참이 지났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도 세계적인 경제 여건에 따른 탓으로 돌릴 수가 있단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을때 세상은 단 한치도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자는 계속해 승자이고, 부자는 계속 부자로 남는다. 그리고 그들은 소수이며, 그 나머지 다수는 패자와 빈곤의 길이 자명하다. 문제는 승자가 승자로 남고 부자가 부자로 남기위해서 그들이 이 사회의 부조리를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10대들이 거대한 사교육 열풍속에서 인질이 돼 버린 현상을 저자는 지적한다. 과외, 학원으로 대표되는 우리 나라의 사교육 열풍을 한번 되짚어 보자. 한달 수입의 기십프로를 아이들 사교육을 위해 지출하는 우리 나라의 교육여건은 이미 그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이로써 가정 경제는 정상의 범위를 넘어 파산의 분기점에 치닫고 있다. 부자들에게 한달 기십만원은 껌값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의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가정 경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 이상한 게임을 도대체 누가 시작한 것일까? 왜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조차 빈부의 격차라는 비열한 룰속에 가둬버린 것인가?
TV CF를 보자. 이미 비정규직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예약돼 있는 20대들에게 대기업들은 허황된 바람을 불어넣어 상품을 팔아먹는다. 한달 88만원 수입이 예정돼 있는 사람들이 50만원이 넘는 휴대폰을 들고 다니고, 좋은 옷과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밥값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실것을 유혹한다. 수입은 비정규인데, 소비생활은 뉴요커 수준인 이상한 된장남,된장녀들이 탄생하는 기점이 바로 여기다. 동네의 수퍼마켓들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할인점에 밀려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작은 영화관은 멀티플랙스 영화관에 잠식당한다. 비정규직이 싫어 자영업으로 눈을 돌린다해도, 그들에겐 이미 퇴로가 막혀 있는 상황이다. 기업은 철저하게 사람을 비정규로 만들면서, 허황된 마케팅으로 소비를 유혹하고, 또 문어발식 확장으로 자영업자로서의 삶 자체도 막아놓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앞으로 대학도 시장경제의 논리에 맡겨서 국고 지원을 없앤다음, 자동 퇴출 시스템을 가동시키겠다고 한다. 결과는 물론 SKY로 대표되는 인기있는 대학들의 서열화가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서열화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가정경제가 더 부담해야하는 상황이 도달할 것이다. 또 이명박 당선자는 대기업들의 규제를 풀어서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고 하는데, 규제를 해 놓은건 소수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겠는가. 그것조차 풀어버린다면 대기업은 고피풀린 망아지가 돼 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앞으로 소수의 엘리트와 소수의 부자들이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짜가사회를 이 책의 저자는 `승자독식사회'라 불렀다. 소수의 승자만이 기펴고 사는 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 사회다. 그래서 10대와 20대에게 저자는 당돌하게 주문한다. 당장에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라고. 왜 이 거대한 짜가사회, 속임수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는가 라는 저자의 호통이라 보면 되겠다. 10대는 사교육의 인질이 되었고, 20대는 비정규로 착취를 당한다. 물론 그들을 그렇게 만든건, 30대의 386세대부터 60대의 유신세대까지 한통속으로 우리 사회속의 기득권자들이다. 이 짜가사회, 승자독식사회를 해체하는 길은 바로 10대와 20대의 짱돌밖에 없을 뿐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68세대는 고교생 신분으로 프랑스 대학의 서열화를 없앤 세대로, 그들의 봉기로 인해 국가의 기득권자들은 허겁지겁 프랑스 대학을 국유화하고 서열을 없앴다. 오늘날 파리 1대학에서 파리 10대학까지는 그때 당시의 대학 총장들이 제비뽑기 번호표를 뽑은 순서로 정해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10대와 20대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너무나 힘이 없고, 의식적으로 죽어 있다. 그들이 본인들의 삶을 개척하고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 정치세력화와 바로 의식의 전환이다. 자신들의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왜 20대 국회의원을 만들지 못하는가 ? 왜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위해 토플책만 보고, 사회의 부조리는 보지 못하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패자와 빈자들에게 승자와 부자들은 절대로 기득권을 그냥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짱돌외엔 길이 없다.
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