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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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체 물리학이 거시적 세계를 다룬다고 하면,  분자 생물학은 미시적 세계의 학문이다.  빅뱅이란 학설을 통해 이 우주가 끝없이 확장되어 왔다는 가설을 세우고, 저 우주를 바라봐 왔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공간과 시간 조차도 일정치 않고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다는 논리를 배웠을 때, 우리가 존재하는 거시적 세계의 오묘함에 가슴이 설레인적이 있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의 놀라운 세계는 바로 나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그 흥미로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분자생물학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져볼 기회가 많치 않았다.  마침, 이때에 일본의 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의 이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을 기회가 우연히 찾아온 것은 행운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시작된 이 책의 논의는 단순히 분자생물학에 관한 전문적인 이론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저자 본인이 미국 유학 시절 겪었던 유학생활의 고단함, 20세기 분자 생물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생명 유전물질 DNA 발견의 역사적 과정, 그 과정에서 인류사적 발견뒤에 숨겨진 과학자들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모, 그리고 그 역사에서 부당하게 희생되고 잊혀진 생명과학자들의 실체 등에 대해 소개하면서, 포괄적인 생명과학계의 현재적 위치와 역사를 조망하고, 생명과학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는 저자 본인의 과학자로서의 애환과 수상(隨想 )을 담아 내고 있다.

이 책의 문체는 독자와 가깝고도 멀다는 느낌이 든다.  출판계에서 떠도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과학서적에서 수학공식이나 도표 등이 한개 추가될때마다, 그 책의 판매량은 그에 비례해 떨어져 버린다는 것.  그만큼 독자들은 과학 서적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학적인 공식까지 이해하면서, 책을 읽을만한 동력이 부족하단 사실이다.  이 책은 다행히, 그러한 예에서 많이 빗겨나고 있는데, 그것은 분자 생물학 세계의 현재와 과거의 역사를 소개하고, DNA 발견의 흥미진진한 후일담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철저히 과학 에세이스트로서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프롤로그에서 `그것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내린후, 논의를 전개시키면서 여기에 살을 보태어 단백질의 인체내 대사과정이 축척이 아니라 끝임없은 교체라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생명이 끝임없는 흐름을 전제로한 동적 평행 상태(Dynamic Equilibrium)"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지방 조직은 놀라운 속도로 내용물을 바꾸면서 외관상 쌓아두고 있는 척하는 것이었다. 모든 원자는 생명체 내부를 흐르며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오래만에 만난 친구와 인사할 때, `여전하네'라는 말을 하는데, 반년 혹은 1년 정도 만나지 않았다면 분자 차원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너무나도 여전하지 않은 게 되고 만다. 이미 당신 내부에는 과거 당신의 일부였던 원자나 분자는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본문 p.142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또다른 사실.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가 이성과 근거에 바탕을 두는 학문인 과학에서조차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에서 비리와 암투가 존재하고,  불공정한 경쟁으로 상대를 무력화 시키고 타인이 이룬 어떤 업적을 부당하게 획득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박사 후 과정에서, 연구원들을 마치 용업업체 직원처럼 대우받고 있는 현실이나, 서로 동일선상에서 경쟁하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동료 과학자가 서로의 논문을 심사하는 시스템은 항상, `컨닝'의 부정함이 개입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DNA 발견에 공이 큰 과학자인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암으로 37세의 나이에 요절하는 사이, 그의 발견을 부정하게 획득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프랭클린의 업적을 참고해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독차지 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의 우리 생명이 가진 미시적 세계로의 여행에 흥을 돋운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는 어디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순도의 딜레마'라 소개된 부분에서 과학 실험이 무균질의 100% 순물질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염'이 가미될 수 있고, 과학 실험의 오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과학 발전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알길 없으나,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걸음마를 떼지 못한 아이에 불과하다.  저자는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 꿇는 것 외에, 그리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고 결론지으며 이 책을 맺고 있다.  겸손은 신이 주신 가장 크나큰 미덕같다.

단, 이 책에 몇가지 아쉬운 점이자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생물학에 관해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DNA  발견과 실험 내용에 대한 해설을 읽는데 몹시도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양념처럼 가미된 저자의 일상과 생명과학에 대한 수상이 이를 뒷바침하곤 있지만,  등장하는 생물학 전문용어에 대해 각주를 달아줬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띄어쓰기와 오타가 보이는데, 빠른 출판 보다는 한 권의 책을 만들때 좀더 정성을 들였으면 하는 바람을 독자로서 소원해본다.

 

 

2008.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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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침대
M. 스캇 펙 지음, 이상호 옮김 / 열음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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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를 읽고 심리학과 종교의 간극과 그 화해의 여정을 함께 했던 나는, 다시 그의 소설 <창가의 침대>를 손에 잡았다.  평생 종교과 심리학 관련 서적만을 집필했던 그였기에, 그의 소설가로서의 능력은 아무래도 미지의 부분이었다.  그의 전작들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장편소설이 바로 그의 이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은 심리물이자, 미스터리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한번 책을 잡고는 좀처럼 놓기 어려운 궁금증과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에서 보기힘든,  작가 고유의 전문성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심리분석과 정신치료 과정의 해설, 또 종교적인 방향성을 가진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 등이다.  알다시피,  스캇 펙은 유능한 정신과 전문의였고, 유명한 심리학 서적들의 베스트셀러 저자였다. 소설이라는 형식만 빌렸을 뿐, 그는 자신이 평생을 통해 써왔던 책들의 방향성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작가의 절체절명의 문제의식이다.

이 작품의 큰 줄기는 윌로글렌 간호요양원이란 하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그 해결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호요양원이란 치매와 정신질환 그리고 장애를 가진, 노쇠하고 병든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소설의 소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엔 그리 달갑지 않은 곳이다.  그들은 세상의 관심과 사랑에서 멀어진 이들이다.  환자가운데 스티븐이라는 젊은 장애인은 사지가 마비돼, 침상에 누워지내고 의사전달까지도 몹시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그러나 이 요양원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빛을 전하는  위인으로 묘사된다.  정신은 말짱하지만, 몸이 장애를 가진, 정신은 위대하지만, 몸은 가장 누추한 그러한 사람.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주위에서 가끔 보곤 한다.

그리고 스티븐의 위대한 정신,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빛을 알아보는 이들이 등장한다. 간호사 헤더.  환자들은 죽음의 순간이 찾아왔을때, 그녀의 곁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죽길 원한다. 심지어 그래서 죽음을 알 수 없는 힘으로 연장하기까지 한다.  간호사 헤더의 그 능력은 어떤 것일까?  그러나 그녀는 남자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채, 계속 불행한 연애를 이어가고 있다.

조지아 베이츠, 입원환자 가운데 한 명인 이 여인은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 집에서는 항상 치매 환자처럼 행동해서, 도저히 함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곳 요양원에 들어와서는 그러한 치매기가 있는 행동을 전혀하질 않는다.  그녀의 이중적인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일흔이 넘은 노인이면서도 스스로를 서른 일곱 나이로 한정해 버린 여인. 그러한 그녀는 스티븐에게 발하는 빛을 깨달아가며, 자신을 변화시키려 한다.

콜리츠박사,  간호요양원의 주요인사들의 정신상담을 맡고 있는 정신과 의사. 그는 헤더의 정신과 상담의로 그녀의 불행한 연애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밝혀내려 하는데, 등장인물들의 정신적 문제들을 파헤치고 그들과 함께 정신치료에 노력하는데, 정작 본인은 아내와 곧 갈라서려 하고 있다.  헤더에게는 불행한 연애의 원인을 분석해주고 함께 치료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스스로는 불행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종잡을 수 없는 기질은 보통의 소설이 가진 선과 악, 그리고 권선징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소설적 설정 자체를 흔들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다중적인 성격을 통해,  작가는 보다 실제적인 인물을 창조해내고 있다.  한 개인이 가진 정신의 다층적인 면을 스캇 펙은 이 소설에서 분명히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진 주요한 테마는,  사지가 마비된 중증 장애인 스티븐이 왜 간호요양원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며, 왜 그의 영혼이 빛을 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인가 ?  아니면 그 육체에 살고 있는 정신인가 ?  출중한 외모에 반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그런 외모안에 가장 추악한 정신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애에 빠져 살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아마도 이만큼 무섭게 나르시즘이 가진 폭력성과 무관심을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스티븐은 정 반대의 인물이다. 그는 보살것없는 육체를 가졌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타인과 타인에 대한 배려, 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것이 그의 빈약한 육체에서 영혼의 빛이 발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이다.

"그 정도의 불구라면 자신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바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몇 년 전에 죽었을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에게는 생명력이 있었어요. 그는 삶을 선택했던 겁니다. 사랑을 선택했던 것이고요.  얼마나 훌륭한 영혼입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지요. 그는 너무도 아름다운 영혼이었지요."  본문 p.467

야간근무를 마치고 서울역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행 새마을호, KTX를 갈아타고 피곤한 여행을 했다.  회사가 진행하는 집회이고, 또 당연히 노조원으로서 참석해야할 집회였지만, 피곤하긴 했다.  이 짧은 여행에 이 책을 가져갔다.  서울로 올라오면서는 거의 한 페이지도 읽지를 못하다가,  내려오는 그 네 다섯시간동안 온통 빠져들어 이 책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얼마후에,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지난 토요일 서울역에는 비가 내렸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사람들과 확성기에서 울리는 `광우병 쇠고기 너나 먹어'라는 노랫가사를 듣고 있는데, 내 뒤가 몹시도 소란스러웠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노숙인이 위에 옷을 다 벗어재끼고, 술에 취한채 쓰레기통을 발로 심하게 차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긴 우산과 벌거벗은 모습, 그리고 마치 사람에게 화를 내듯 쓰레기통에 발길질을 하며, 뭐라 윽박지르는 모습은 마치 동키호테가 풍차에 달려드는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나이도 젊은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나 ? 하는 생각.  세상에 화낼 대상은 저 지저분한 쓰레기통 하나 밖에 없는 외로운 친구군, 하는생각.  몇가지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스캇 펙은 그의 출세작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시작에서 " 삶은 고해다, 그러나 삶이 고통스럽다는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면 삶은 더이상 고통 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비로소 삶의 문제에 대한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우리가 보다 나은 사람, 보다 좋은 사람, 보다 아름다운 영혼으로 바뀌지 못한 이유는 바로 게으름에 있다.  서울역에서 만난 그 외롭고, 우스꽝스럽고, 측은한 노숙인처럼, 우리는 어떠한 게으름에 빠져들어 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 소설은 스티븐이라는 "무력한 육체를 가진" 고상한 영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200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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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처럼 담담하게 - 하루를 1년처럼 산 어느 암 환자의 유쾌한 일상
류부연 지음 / 바이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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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KTX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 신문을 펼쳐보다 책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신문을 구독한지도 두달째인데,  읽지 못한 신문이 자꾸 방 한구석에 쌓인다.  여행길에 이틀치 신문을 싸들고 가다, 의무감에 신문을 펼쳐들었다.  되도록이면, 신문에 난 책광고를 보고선 책을 구입하지 않는 나는,  그날따라 그 책 광고 한편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미 저자는 두달전 세상을 떠나고 책만 덩그러니 출판돼 나온 모양이다.  왠지, 쓸쓸함이 전해온다.  책 제목도 눈에 와 박힌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처럼 담담하게>, 오마이뉴스에 암투병기를 올렸던 고 류부연씨의 유고집이었다.  헨드폰 메모장에 책 이름을 입력해놓고, 뒷날 이 책을 주문해 읽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하루하루는 다를게 없다.  가끔 사는게 여유로운 이들은 삶에 권태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아무런 감동없이 주어지는 이 하루가 어떻게 가든, 별 상관치 않는다.  습관이 아마도 우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습관이란 삶의 규칙성과 평온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러한 권태로운 삶의 습관성이 깨지는 날이 오기 마련아닌가 ?  이 책의 저자처럼 말이다. 

인간에게 한번의 죽음이란 이미 예정돼 있다. 그러나 한창의 나이에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몸이 하루하루 파괴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육체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며 죽음의 순간까지를 버텨 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 책을 쓴 류부연씨의 글을 읽으면서 저절로 감정이 이입되고, 몰입되는 이유는 책을 읽는가운데, 아마도 내가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그러한 느낌을 몇번 받아본적은 있다.  죽음이란 어떻게 보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고통이 뒤따른다.

가끔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내 손목에 주사마늘이 삽입되는 순간이라든지,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 나아가는 일들에 나는 그 미지라는 두려움에 가슴 조렸던 기억이 난다. 죽음도 그와 같지 않을까?  육체적 고통보단, 알지 못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더욱 더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할 것 같다.  이러한 공포앞에 그 어떤 인간이 초연해질 수 있을까?  사람이란 알고보면 참으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저자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3년만에 암이 재발돼,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한방치료와 원불교 법당에서의 마음공부를 하며 1년 가까이 투병일기를 쓴다.  그리고 또다시 1년을 오마이뉴스에 투병기를 게재한다.  놀라운 것은 이 책 어느 구석을 보아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부분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이 온통 이 책을 덮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과 확신은 지난 삶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회한으로 가득차 있다. 

"어째서 건강할 때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지금은 느낄 수 있는걸까?  역시 마음의 변화겠지? 전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이제는 가진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모두가 은혜로 느껴지거든. 지금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거야. 죽음을 느낄 때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 알게 됐어. 엄마는 지금, 현재, 여기, 순간을 느끼며 살려고 노력중이야. 역시 죽음과 삶은 별개가 아니야. 죽음이 어디까지 와 있는 줄을 모르는데 어찌 삶을 감사하지 않겠니? "  본문 p.63

이 책은 줄곧 내게 "오늘 하루를 1년처럼 감사히 여기고 살 것"을 주문한다.  소소한 일상의 모든 일을 소중히 여기며, 현재를 즐기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가르친다.  뒤늦게 후회되는 삶을 사는 것은 소용이 없음을 깨우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서로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을 미워하며 보내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놓고 있다.  

지난 3월 30일 고 류부연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암환자로 투병하면서 하루를 1년처럼 소중히 여기고, 감사를 입에 달고 살던 그녀의 하루하루는 이 책과 함께 마침표가 찍혔다.  시간은 흘러, 여름의 입구에 와 있다.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이 도시에도 비가 내린다.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충열된 눈을 풀어주기 위해,  베란다 밖으로 눈을 돌렸다.  6월의 장마비가 제법 씩씩하게 내리고 있다.  이 하루는 내게 어떤 의미로 주어진건가 ? 내안의 나에게 묻는다.

아내가 부엌에서 나를 위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거실 티비에선 드라마가 한창이다. 오후엔 가까운 시골집에 들르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비가 와서, 한숨 야무지게 주무시고 계시다는 전갈이다.  저녁때나 되서, 부모님을 뵈러 시골에 다녀올까?   뒷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 내곁에 있는 사람들,  감사하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싶다. 

우리의 바쁜척하는 삶이 사실은 유한성이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린다.  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이 영원을 살것처럼, 오만과 욕심을 부린다. 우리는 욕망앞에 범죄하고, 사람이 아니라 돈을 섬긴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그 권력이 영원히 계속될 것같은 착각속에 살고 있다.  대게 그들은 겸손이란 것을 모르고, 자신의 생각만이 최고며 자신이 아니면, 되는게 없다는 나르시즘을 갖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고 류부연씨의 이 겸손한 책 한 권을 선물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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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공식 - 인생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심리학
슈테판 클라인 지음, 김영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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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가를 들기전에는 결혼한 유부남이 제일 부러웠던적이 있다.  사실이 그랬다. 나는 유부남을 선망해왔다고 해야 하나 ?  말이 좀 이상한가 ?  아무튼, 유부남은 총각보다 행복한 `지점'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었다.  결혼하고 좀 지나서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고 난 날 저녁, 총각때 가졌던 그같은 생각이 몹시도 순진했음을 느꼈다.  물론 그날 저녁 아내와 화해를 하기 전까지 말이다.  다시 나는 유부남이 총각보단 더 행복하단 생각을 유부남의 입장에서 재정립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총각때 가졌던 그같은 마음은 내가 결혼을 하게 될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점에서 출발한게 분명한 거 같다. 몇해전까지도 내게 결혼은 현실이 아니라 몽상이나 환상이어서 도무지 결혼후의 나란 상상이 안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결혼은 행복의 왕국이란 관념속에서 세상의 모든 유부남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어떤 술자리에서 어느분이 내게 `요즘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은적이 있다.  나는 그의 급작스런 질문에 이렇게 조건반사적인 답변을 했다. `네 행복합니다' 그런데 좀 지나 내마음속에서 누군가 다시 그 질문을 되받아하고 있었다. `너 정말 행복하니?' `솔직히 말해봐, 정말로 모든게 만족스러워 ?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도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날까? 가슴이 떨리니?'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솔직히 모두다 `예스'라고 답변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그러니까,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행복한 척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평균적인 삶이 가진 복잡다단한 일상에 대해 천편일률적으로 행복하니 불행하니 이렇게 재단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게 아닐까? 또다른 의문이 내 마음에 솟아났다. 

자, 지평을 개인에서 사회로, 타인으로 넘겨보자. 요즘 대한민국이 행복할까? 국민이 행복할까? 여기에 모두 예스라고 답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저 푸른지붕밑에 사는 높으신 분은 국민을 하인 다루듯하고 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 정도가 아니라,  입만 있고 귀는 없는 돌연변이가 아닌가 의심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치솟는 물가, 높은 실업률, 불안정한 직장, 어느것 하나 출근길에 만나는 내 이웃의 얼굴에서 밝은 표정과 행복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라면 좀더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다. 동물은 이성이 없어서일뿐이지,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나무나 바이러스까지도 생을 행복으로 그득 채우려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담, 행복에도 행복에 이르는 비법이 있을까?  슈테판 클라인이라는 독일 뮌헨 출생의 과학저널리스트가 철학,물리학,뇌과학,심리학,사회학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지식을 활용하여 우리에게 행복에 이르는 과학적인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 있다. 그의 <행복의 공식>이다. 

이 책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주위의 자기계발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궁극의 이상을 탐구하고 있는 방법이 지극히, 과학적 지식을 십분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 발원하는 지점은 누가뭐래도 인간에겐 뇌라는 분명한 사실을 기반으로, 이 책의 저자는 뇌를 탐구하는 다수의 최신 논문들을 일반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쓰고 있다.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뇌의 물리적 현상만을 두고 보자면, 뇌속의 흥분물질인 천연마약 도파민이 극도로 분비될때다.  우리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도, 담배를 피우는 이유도,  연애를 하는 이유도, 모두 이 뇌호르몬 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란다.  이렇게 보면, 행복에 이르는 뇌의 물리적 원칙은 너무 단순한가 ?  그러나 어떻게 그러한 물질의 분비를 건전하게 촉진시키는가? 하는 문제는 또다른 난관이다.


"욕망은 기계처럼 자동적으로 될 수 있다. 그런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  캐나다의 신경학자인 제임스 올즈는 1954년 전설적인 실험을 통해 이것에 대한 답을 주었다. 그는 쥐들의 간뇌에 있는 시상하부, 즉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물질이 방출되는 곳에 `전기 자극기'를 삽입했다.  그리고 올즈는 자극기의 선을 스위치에 연결시켰다.  즉 쥐들이 이 스위치를 건드리면 약간의 전류가 흐르게 되고, 그러면 시상하부가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서 엄청났다. 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이 스위치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 가여운 짐승들은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스위치만 거듭 눌러댔다.  쥐는 한 시간에 6,000번이나 스위치를 눌렀다. 올즈는 놀랍게도 쥐들이 교미조차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쥐들은 약간의 행복을 위해 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올즈는 며칠 후 자극제를 꺼서 쥐들의 목숨을 구하였다."  본문, 167p


책의 후반부로 들어서면 저자는 행복에 이르는 무수한 원리들을 나열해 놓는다.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 무언가에 중독돼 있다는 것은 욕망이 지나칠 때 생긴다. 우리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중독에 빠지게 하는데, 애연가들이 담배를 끊고 싶다면 `행복하다라고 최면을 걸어보라'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그게 체인스모커들에게 먹혀들지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라는 뇌 호르몬이 방출되는데, 이 물질은 도파민과 함께 신뢰감과 유대감을 강화시켜, 마음을 평화롭게 진정시킨다고 한다. 사랑하면 모든게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나 ? 남자들은 괴로운 일이 생기면, 골방에 틀어박혀 생각에 몰두하는 습성이 있는데, 나또한 그런 습성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이후, 생각을 바꾸게 된다.  외로움과 고립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만 가중시킬 뿐이다. 괴롭다면 가족과 친구와 함께 보내는게 낫다. 열정을 태울때, 무언가에 몰입할 때, 긍정의 호르몬 분비가 촉진된다.  그러한 일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욕심내지 않는 것이 때론 행복할 때가 있다.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갖는것도 불가능하지만, 그게 가능하더라도 거기에 다다르면 허무와 권태가 빠르게 그 자리를 채워넣는다. 

이 책 가운데 이러한 잡다한 지식 빼놓고 내 마음에 드는 한가지 행복 처방전이 눈에 들어왔는데, 소위 `로빈스 크루소의 절망 극복 프로그램'이다.  로빈스 크루소는 배가 난파돼 외딴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게 되었는데, 그는 어떻게 절망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을까? 저자는 그가 분명히 자신의 현 상태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하진 않았을까,하고 유추해본다.  그러니까, 그의 배가 난파되서 무인도에 내동댕이쳐진것은 불행한일이지만, 또다르게 생각해보면 다른 동료들은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으니, 그는 소위 선택받은 행운의 사나이로 돌변하게 된다. 로빈스 크루소가 깨어났을때, 달랑 옷 한벌 걸치고 있었는데, 앞으로가 막막했을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무인도는 다 벗고 다녀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더운 열대의 섬이었으니, 꽤 운이 좋은거 아닌가?   인간이란, 먹다가 반정도 남은 컵속의 물을 보고, 긍정과 부정의 두가지 심리 모두를 선택할 수 있는데,  행복의 여신은 긍정의 시선으로 컵을 보는 자에게 달려가기 마련이다.  우리 삶 속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행복에 이르는 길의 비밀은 결단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다."라고 달라이 라마는 말하고 있다. 과학은 그의 말에 그저 동의할 뿐이다." 본문, p102

우리는 인간이지만, 인간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 자신을 비롯하여, 타인까지 말이다. 모든 전자제품의 박스를 뜯어보면, 반드시 그 제품의 사용설명서가 함께 들어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우리의 뇌속에, 삶속에, 사회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기 위한, 우리 자신의 행복 길라잡이 내지 뇌 사용설명서에 비견될 수 있는 책이다.  슈테판 클라인의 책들은 <시간의 놀라운 발견>과 <우연의 법칙> 등, 내가 접한 모든 책에서 그의 역량을 백십프로 발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풍성하고, 교훈적이며, 신선하다.  이 책 <행복의 공식>은 행복에 대해 모든걸 말해주진 않으며, 이 책을 읽은 후에도 여전히 내 행복지수는 올라가진 못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지 여러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큰 재미이자 수확이었다.

 

 



200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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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세트 - 전3권 - 아직도 가야 할 길 + 끝나지 않은 여행 + 그리고 저 너머에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3월부터 읽기 시작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를 어제서야 겨우 다 읽어냈다. 우연하게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그리고 단번에 이 책을 내가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광주에 갔다가, 영풍문고에 들렀고 <아직도 가야 할 길> 1권을 샀다. 나머지는 차례대로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했다.

현재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몸의 반만 교회에 담고 있는 어정쩡한 사람이다.  때로는 나의 신앙이 허깨비같아서, 이러한 내 자신에 인지부조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신앙의 과도기에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성경속의 무수한 역설의 언어처럼, 나는 그 언어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현실의 언어로 바꾸어 이해하고 싶다.  그 번역의 과정상, 내겐 시간이 필요하며 그래서 신앙에 풍덩 빠져버린 사람들의 글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는 고통스런 길을 해명한 사람의 책을 찾아 읽고 있는 것이다.  그 예로, 몇개월전 한동안 몰입해 읽었던 크리스챤 작가, 필립 얀시 혹은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 그리고 앞으로 찾아 읽을 G.K.체스터튼 같은 사람들의 책은 내게 그래서 의미가 깊다.

그리고 새롭게 M. 스캇 펙이라는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의 책인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와 만나게 되었다. 스캇 펙은 정신과 전문의였지만,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학에서 종교에 이르는 길을 탐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래서 1권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선 의료 현장에서 경험한 자신의 환자들의 상담 사례를 상당 부분, 이 책에 옮겨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캇 펙은 인간의 정신적 문제들의 발생 기원을 추적하고, 그 근원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인간이 지향 해야 할 길로, 정신적 성장을 통해 나르시즘을 극복하고,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론을 펴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훈련, 2부 사랑, 3부 성장과 종교, 4부 은총.  제 1부 훈련이란 장을 통해, 그는 `인생이란 본래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길'로 요약한다. 모든 출발점은 문제와 마주치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엔 두가지 태도가 있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과 문제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인 문제들에 굴복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회피하려 들기 때문이다. 스캇 펙은 문제에 맞서, 현재에 충실하게 과감히 그 문제에 도전하며, 진실을 감추지 말고, 해결의 시간을 갖고 거기에 맞서는 훈련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2부 사랑의 장에서 그는 사랑의 본질을 해명하려 든다. 무조건 상대에 대해 희생하려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지나친 상대에 대한 의존감도 사랑의 본질을 훼손하는 심리라고 지적한다. 사랑은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자, 사랑은 두터운 책임감이며, 사랑은 바로 보도록 일깨우는 힘이며, 사랑은 느낌이 아니고, 사랑은 훈련되는 것이자, 사랑은 정신 치료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 사랑이 정신치료와 같다는 그의 주장은 본인의 임상 경험을 통해 나온 말이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의사가 실제적으로 환자의 정신을 물리적으로 고칠 수는 없다.  의사는 환자의 삶 가운데로 들어가, 삶의 문제들에 귀기울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어주는데는 무한한 인내와 절제가 필요하다.  그 과정은 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과정이 바로 사랑으로 인식될 수 있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 있게 칭찬하고, 지각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 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 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지각 있다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할 때도 있다. "-본문p.161


3부 성장과 종교라는 장에서 스캇 펙은 정신과 전문의들이 환자를 상담할 때, 그들의 세계관을 검토하려 들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세계관은 종교와 관련되어 있고, 그들이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들의 종교관을 분석하다보면,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놀라운 인식의 편차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문제점은 신앙적인 편견, 아집, 독선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그 자체가 정신적 성장의 기회를 사람들로부터 박탈하고 있는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회의를 거친 하나님과 회의를 거치기 전의 내 마음속 하나님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라는 그의 말은 신앙에 대한 회의가 건강한 신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뜻으로 비춰진다.  현재 신앙인들은 자신의 왜곡된 신앙관을 고수하기 위해, 모든 건전한 회의조차도 심리적으로 막아놓고 있기에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신앙이 깊은 이들조차 정신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고, 또 자신의 영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4부 은총이란 장에서 스캇 펙은 약간의 역설을 이용해 은총의 개념을 설명한다. 우리가 병든 원인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사례는 많지만, 우리가 건강한 원인에 대해선 그리 많이 알지 못하다.  의사와 병원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왜 우리는 일생동안 이렇게 건강한 몸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해본적은 없다.  더불어, 오늘 이 시간도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사건,사고로 희생되고 있다.  교통사고,범죄,질병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우리의 인생을 위협하지만, 실은 그 모두를 우리는 운좋게 피해올 수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불행이 운좋게 자신을 비켜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더라도, 수많은 일들이 단지 운으로 설명될 수 있을만큼 내 생명을 지켜주었던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은총이 아닐까?  은총은 대가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래서 더욱 값지고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이제 변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보살핌과 하느님의 관심을 받으며, 하느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우주는 하느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도약의 역활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우주의 길 잃은 미아가 아니다. 오히려 은총의 실제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 오늘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본문, 454p"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정신과 전문의 스캇 펙 박사의 출세작으로 이 책이 출간된 20여년 동안 줄곧 미국내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그 뒤이어 <끝나지 않은 여행>과 <그리고 저 너머에>라는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를 내 놓았다. 전 3권에 해당하는 책으로 상당한 두께로 이 책들을 읽는 독자는 많은 인내심을 요한다.  그러나 1권의 모토가 되었던 `정신적 성장을 통해 나르시즘을 극복하고,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탐구하였던 스캇 펙의 목적은 노년에 제 3권을 완결지으면서, 어느정도 그 성과를 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1권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은 독자는 마지막 3권 <그리고 저 너머에>까지를 읽어볼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인생 역정과 함께할 수 있었다. 자존심 강하고, 무신론에 빠져들었고, 머리 좋았고, 항상 선택받은 엘리트라는 의식에 사로잡혔던, 정신과 전문의가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만난 무수한 환자이자 동료들의 도움으로, 심리학에서 종교로 전향해 가는 과정, 그 영적 성장의 과정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큰 소득이다. 그것은 그간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문제이자,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세속주의적 무신론과 배타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화해의 길은 없는것인지에 대한 어떤 힌트를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가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스캇 펙은 이 책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이며, 가는 방향이다.  또한 그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통을 무릅쓰고 앞으로 전진하는 능력이다'는 말을 남긴다.  우리의 삶의 방향성에 대한 가장 분명한 힌트가 아닌가 ?  

 

 

 

 200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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