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처럼 담담하게 - 하루를 1년처럼 산 어느 암 환자의 유쾌한 일상
류부연 지음 / 바이북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달 KTX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 신문을 펼쳐보다 책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신문을 구독한지도 두달째인데,  읽지 못한 신문이 자꾸 방 한구석에 쌓인다.  여행길에 이틀치 신문을 싸들고 가다, 의무감에 신문을 펼쳐들었다.  되도록이면, 신문에 난 책광고를 보고선 책을 구입하지 않는 나는,  그날따라 그 책 광고 한편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미 저자는 두달전 세상을 떠나고 책만 덩그러니 출판돼 나온 모양이다.  왠지, 쓸쓸함이 전해온다.  책 제목도 눈에 와 박힌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처럼 담담하게>, 오마이뉴스에 암투병기를 올렸던 고 류부연씨의 유고집이었다.  헨드폰 메모장에 책 이름을 입력해놓고, 뒷날 이 책을 주문해 읽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하루하루는 다를게 없다.  가끔 사는게 여유로운 이들은 삶에 권태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아무런 감동없이 주어지는 이 하루가 어떻게 가든, 별 상관치 않는다.  습관이 아마도 우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습관이란 삶의 규칙성과 평온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러한 권태로운 삶의 습관성이 깨지는 날이 오기 마련아닌가 ?  이 책의 저자처럼 말이다. 

인간에게 한번의 죽음이란 이미 예정돼 있다. 그러나 한창의 나이에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몸이 하루하루 파괴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육체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며 죽음의 순간까지를 버텨 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 책을 쓴 류부연씨의 글을 읽으면서 저절로 감정이 이입되고, 몰입되는 이유는 책을 읽는가운데, 아마도 내가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그러한 느낌을 몇번 받아본적은 있다.  죽음이란 어떻게 보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고통이 뒤따른다.

가끔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내 손목에 주사마늘이 삽입되는 순간이라든지,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 나아가는 일들에 나는 그 미지라는 두려움에 가슴 조렸던 기억이 난다. 죽음도 그와 같지 않을까?  육체적 고통보단, 알지 못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더욱 더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할 것 같다.  이러한 공포앞에 그 어떤 인간이 초연해질 수 있을까?  사람이란 알고보면 참으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저자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3년만에 암이 재발돼,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한방치료와 원불교 법당에서의 마음공부를 하며 1년 가까이 투병일기를 쓴다.  그리고 또다시 1년을 오마이뉴스에 투병기를 게재한다.  놀라운 것은 이 책 어느 구석을 보아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부분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이 온통 이 책을 덮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과 확신은 지난 삶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회한으로 가득차 있다. 

"어째서 건강할 때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지금은 느낄 수 있는걸까?  역시 마음의 변화겠지? 전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이제는 가진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모두가 은혜로 느껴지거든. 지금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거야. 죽음을 느낄 때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 알게 됐어. 엄마는 지금, 현재, 여기, 순간을 느끼며 살려고 노력중이야. 역시 죽음과 삶은 별개가 아니야. 죽음이 어디까지 와 있는 줄을 모르는데 어찌 삶을 감사하지 않겠니? "  본문 p.63

이 책은 줄곧 내게 "오늘 하루를 1년처럼 감사히 여기고 살 것"을 주문한다.  소소한 일상의 모든 일을 소중히 여기며, 현재를 즐기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가르친다.  뒤늦게 후회되는 삶을 사는 것은 소용이 없음을 깨우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서로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을 미워하며 보내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놓고 있다.  

지난 3월 30일 고 류부연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암환자로 투병하면서 하루를 1년처럼 소중히 여기고, 감사를 입에 달고 살던 그녀의 하루하루는 이 책과 함께 마침표가 찍혔다.  시간은 흘러, 여름의 입구에 와 있다.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이 도시에도 비가 내린다.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충열된 눈을 풀어주기 위해,  베란다 밖으로 눈을 돌렸다.  6월의 장마비가 제법 씩씩하게 내리고 있다.  이 하루는 내게 어떤 의미로 주어진건가 ? 내안의 나에게 묻는다.

아내가 부엌에서 나를 위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거실 티비에선 드라마가 한창이다. 오후엔 가까운 시골집에 들르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비가 와서, 한숨 야무지게 주무시고 계시다는 전갈이다.  저녁때나 되서, 부모님을 뵈러 시골에 다녀올까?   뒷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 내곁에 있는 사람들,  감사하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싶다. 

우리의 바쁜척하는 삶이 사실은 유한성이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린다.  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이 영원을 살것처럼, 오만과 욕심을 부린다. 우리는 욕망앞에 범죄하고, 사람이 아니라 돈을 섬긴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그 권력이 영원히 계속될 것같은 착각속에 살고 있다.  대게 그들은 겸손이란 것을 모르고, 자신의 생각만이 최고며 자신이 아니면, 되는게 없다는 나르시즘을 갖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고 류부연씨의 이 겸손한 책 한 권을 선물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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