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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세트 - 전3권 - 아직도 가야 할 길 + 끝나지 않은 여행 + 그리고 저 너머에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3월부터 읽기 시작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를 어제서야 겨우 다 읽어냈다. 우연하게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그리고 단번에 이 책을 내가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광주에 갔다가, 영풍문고에 들렀고 <아직도 가야 할 길> 1권을 샀다. 나머지는 차례대로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했다.
현재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몸의 반만 교회에 담고 있는 어정쩡한 사람이다. 때로는 나의 신앙이 허깨비같아서, 이러한 내 자신에 인지부조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신앙의 과도기에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성경속의 무수한 역설의 언어처럼, 나는 그 언어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현실의 언어로 바꾸어 이해하고 싶다. 그 번역의 과정상, 내겐 시간이 필요하며 그래서 신앙에 풍덩 빠져버린 사람들의 글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는 고통스런 길을 해명한 사람의 책을 찾아 읽고 있는 것이다. 그 예로, 몇개월전 한동안 몰입해 읽었던 크리스챤 작가, 필립 얀시 혹은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 그리고 앞으로 찾아 읽을 G.K.체스터튼 같은 사람들의 책은 내게 그래서 의미가 깊다.
그리고 새롭게 M. 스캇 펙이라는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의 책인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와 만나게 되었다. 스캇 펙은 정신과 전문의였지만,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학에서 종교에 이르는 길을 탐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래서 1권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선 의료 현장에서 경험한 자신의 환자들의 상담 사례를 상당 부분, 이 책에 옮겨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캇 펙은 인간의 정신적 문제들의 발생 기원을 추적하고, 그 근원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인간이 지향 해야 할 길로, 정신적 성장을 통해 나르시즘을 극복하고,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론을 펴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훈련, 2부 사랑, 3부 성장과 종교, 4부 은총. 제 1부 훈련이란 장을 통해, 그는 `인생이란 본래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길'로 요약한다. 모든 출발점은 문제와 마주치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엔 두가지 태도가 있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과 문제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인 문제들에 굴복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회피하려 들기 때문이다. 스캇 펙은 문제에 맞서, 현재에 충실하게 과감히 그 문제에 도전하며, 진실을 감추지 말고, 해결의 시간을 갖고 거기에 맞서는 훈련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2부 사랑의 장에서 그는 사랑의 본질을 해명하려 든다. 무조건 상대에 대해 희생하려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지나친 상대에 대한 의존감도 사랑의 본질을 훼손하는 심리라고 지적한다. 사랑은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자, 사랑은 두터운 책임감이며, 사랑은 바로 보도록 일깨우는 힘이며, 사랑은 느낌이 아니고, 사랑은 훈련되는 것이자, 사랑은 정신 치료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 사랑이 정신치료와 같다는 그의 주장은 본인의 임상 경험을 통해 나온 말이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의사가 실제적으로 환자의 정신을 물리적으로 고칠 수는 없다. 의사는 환자의 삶 가운데로 들어가, 삶의 문제들에 귀기울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어주는데는 무한한 인내와 절제가 필요하다. 그 과정은 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과정이 바로 사랑으로 인식될 수 있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 있게 칭찬하고, 지각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 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 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지각 있다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할 때도 있다. "-본문p.161
3부 성장과 종교라는 장에서 스캇 펙은 정신과 전문의들이 환자를 상담할 때, 그들의 세계관을 검토하려 들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세계관은 종교와 관련되어 있고, 그들이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들의 종교관을 분석하다보면,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놀라운 인식의 편차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문제점은 신앙적인 편견, 아집, 독선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그 자체가 정신적 성장의 기회를 사람들로부터 박탈하고 있는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회의를 거친 하나님과 회의를 거치기 전의 내 마음속 하나님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라는 그의 말은 신앙에 대한 회의가 건강한 신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뜻으로 비춰진다. 현재 신앙인들은 자신의 왜곡된 신앙관을 고수하기 위해, 모든 건전한 회의조차도 심리적으로 막아놓고 있기에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신앙이 깊은 이들조차 정신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고, 또 자신의 영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4부 은총이란 장에서 스캇 펙은 약간의 역설을 이용해 은총의 개념을 설명한다. 우리가 병든 원인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사례는 많지만, 우리가 건강한 원인에 대해선 그리 많이 알지 못하다. 의사와 병원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왜 우리는 일생동안 이렇게 건강한 몸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해본적은 없다. 더불어, 오늘 이 시간도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사건,사고로 희생되고 있다. 교통사고,범죄,질병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우리의 인생을 위협하지만, 실은 그 모두를 우리는 운좋게 피해올 수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불행이 운좋게 자신을 비켜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더라도, 수많은 일들이 단지 운으로 설명될 수 있을만큼 내 생명을 지켜주었던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은총이 아닐까? 은총은 대가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래서 더욱 값지고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이제 변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보살핌과 하느님의 관심을 받으며, 하느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우주는 하느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도약의 역활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우주의 길 잃은 미아가 아니다. 오히려 은총의 실제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 오늘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본문, 454p"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정신과 전문의 스캇 펙 박사의 출세작으로 이 책이 출간된 20여년 동안 줄곧 미국내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그 뒤이어 <끝나지 않은 여행>과 <그리고 저 너머에>라는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를 내 놓았다. 전 3권에 해당하는 책으로 상당한 두께로 이 책들을 읽는 독자는 많은 인내심을 요한다. 그러나 1권의 모토가 되었던 `정신적 성장을 통해 나르시즘을 극복하고,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탐구하였던 스캇 펙의 목적은 노년에 제 3권을 완결지으면서, 어느정도 그 성과를 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1권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은 독자는 마지막 3권 <그리고 저 너머에>까지를 읽어볼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인생 역정과 함께할 수 있었다. 자존심 강하고, 무신론에 빠져들었고, 머리 좋았고, 항상 선택받은 엘리트라는 의식에 사로잡혔던, 정신과 전문의가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만난 무수한 환자이자 동료들의 도움으로, 심리학에서 종교로 전향해 가는 과정, 그 영적 성장의 과정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큰 소득이다. 그것은 그간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문제이자,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세속주의적 무신론과 배타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화해의 길은 없는것인지에 대한 어떤 힌트를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가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스캇 펙은 이 책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이며, 가는 방향이다. 또한 그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통을 무릅쓰고 앞으로 전진하는 능력이다'는 말을 남긴다. 우리의 삶의 방향성에 대한 가장 분명한 힌트가 아닌가 ?
2008.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