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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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들

까마득한 시간들이 있다.  지금은 잊혀진 듯 하지만, 어느 순간이라도 다시 기억속에 물리적인 법칙보다 더 빨리 불러낼 수 있을 듯한 구체적인 형상들로 다가오는 시간들 말이다.  과거가 없이 현재를 누비는 존재란 없다.  몸에 난 조그마한 흉터마다에 시간과 사건의 구체적 결이 묻어 있는 것을 어찌 부정하랴.  내 손등에는 초등학교 4학년때 논두렁을 불태우다 덴 상처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땐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져 난 상처가 무릎에 제법 길게 나 있다.  몸 구석구석은 나의 지난 시간의 결을 대변하고 증거한다.  그런데 마음에 덴 상처와 찢겨진 상처들은 흔적이 없다.  마음엔 상처가 나지 않는 것일까?   

신경숙 장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뭇 사람의 성장소설이자 청춘소설이다.  구체적인 육체의 흉터들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와 덴 흔적들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기억속에 숨겨진 모든 아릿한 상처들을 복원시킨다.  상처는 치유되고, 봉입되어야 하지만 이 소설은 오히려 감싼 붕대를 풀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독자의 시선과 공유하려 한다. 신경숙의 이야기는 청춘을 벗어나 편리하게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바쁜 `중년'들에게 그들이 어물쩍 잊으려 했던 시간들을 되살려낸다.  청춘이란 현재를 억압과 불안속에 지나오고 있는 `청년'들에게 그들이 존재하는 좌표를 확인케 돕는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가 존재했던 20대 초입의 시간과 공간이 내 현재의 삶 안에서 다시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과 `오늘을 잊지말자(p.20)'라고 되뇌이는 소설속 주인공의 주문처럼 애틋함이 동시에 물려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균형추로서 오늘의 나를 서 있게 해주었던 것들이라 말할 수 있겠다. 

문학이 아니라면,  한 편의 잘 쓰인 소설이 아니라면, 우린, 나는, 어떻게 이 비열하고 편리하게 잊고지낸 시간들을 기억속에서 불러낼 생각이나 했을까?  그 시간의 결 안에 잠든 나의 모든 아름답고 초라했던 사랑과 다시 마주할 용기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   현재와 미래안에 갖힌 닫혀버린 영혼이 과거로 들어가는 길은 다채롭다.  신경숙은 이 다채로운 길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한다.  그것은 어느날 어디선가 나를 향해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를 듣는 것이다.  아마도 그 전화는 휴대폰 같은 건 아닐 것이다.  거실의 어느 구석 테이블에 올려진 두툼한 수화기가 달린 전화기 같을까?  새벽녘이거나 자정 정도일지도 모른다.  긴 정적을 깨뜨리는 전화벨은 불길하진 않을 듯 하고, 당신은 전화벨 소리가 오래도록 울릴만한 넓디 넓은 공간속에 아직 잠들지 못하고 서성인다.   누가, 무엇이, 왜, 그 늦고 이른 시각, 나를 찾고 있는 것일까?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팔 년 만이었다.  나는 단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여보세요 ? 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어디야? 하고 물었다. 그가 침묵을 지켰다.  팔 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   p.9-26 신경숙, 프롤로그 



시간의 세심한 결

작가가 불러낸 인물들은 4명의 청춘(윤이,명서,미루,단이)과 한 명의 스승(윤교수)이다.  민주화 운동, 독재의 항거, 명동 성당의 단식투쟁, 연이은 사람들의 실종 사건, 군대간 이들의 의문사, 도로를 가득메운 최루가스,  몰려다니는 시위대,  교수들의 시국선언, 해직과 사표, 이 모든 것은 이 소설을 감싸고 있는 주요한 외피다.  그들이 놓여 있던 공간과 시대 상황은 평탄했을 사람들을 삶을 훼손한다.  양심과 상식을 가진 청춘들을 거리로 내몰고 투사로 만들었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소설은 안쓰럽게 그려낸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두가지 관점에서 실패로 내몰린다.  민주화의 패배와 실연이다.  그들이 도달하고자 한것은 이 두가지 였으나, 소설속 청춘에게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못한다.  소설은 실패와 자신과 실패를 목도하는 또다른 시선을 모두 담는다.  그 두 진영이 겪는 아픔의 무게는 똑같다.  죽음이란 무서운 단절은  독재와 실연이란 이유로 그들이 내몰린 운명이다.  

소설은 스승 윤교수의 가르침(크리스토프의 교훈:예수님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서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용기있고 담대하게 살라)과 육체적 쇠락(윤교수의 죽음) 사이를 4명의 청춘이 지나오는 시간속에 담는다.   신경숙의 문체는 시간을 정체시킬만큼 느리다.  그가 미루와 단이와 명서와의 관계를 짓고 허무는 윤이의 시간들을 길게 이야기 할때마다, 이 갑갑함은 독자를 짓누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갑갑한 더딤이 바로 이 소설의 미덕이요 가르침이다.  독자는 윤이의 그 길고 느린 이야기속에서,  우리를 구성한 `시간의 세심한 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소설속 그들의 운명과 함께 독자의 과거가 뚜렷한 기억속의 결로 복원되는 마술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내게 어떤 아름다운 추억도, 기억할만한 사건도, 그저 그런 에피소드, 아님 소극(笑劇)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은,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는 사소한 방식 아닐 것인가?  지나온 청춘들을 회상할 여건도 여력도 없이, 둔중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이 한 둘 일까?  다만, 이 불황과 궁핍의 시절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몹시도 저열할지도 모르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친절하고, 세밀하게, 애잔하고, 포근하게, 이 상처난 시대와 아픈 청춘들의 사랑을 그려내는 작가의 글은 소설책의 표지 그림으로 들어간 John Atkinson Grimshaw(존 앳킨슨 그림쇼)의  ‘Wharfedale(와피데일)’ 의 분위기와 빼닮았다.  와피데일은 영국 요크셔데일의 한 골짜기를 이름한단다.   과거로 인한 상처, 청춘으로 인한 절망을 담고 있는 소설속 인물과 독자, 모두를 위로할만한 색감과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림이 와피데일 같다.   어쩌면, 독자는 이 표지 그림을 바라보며 가끔 책장을 덮고 오랜 상념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황혼이나 그림속의 황혼이란 모두 그런 역할을 하게 마련이니까.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無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윤교수가 학교를 떠나며 남긴 편지中'  



`오늘을 잊지말자' 

그것이 기쁨이나 아픔이거나 과거의 어느 순간 소설속 인물들은 `오늘을 잊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윤이는 소꿉친구 단이를 군대에서 잃고, 명서는 사랑했던 사람 미루를 자살로 잃었다.  그들에게 인생과 예술을 가르친 스승, 윤교수는 제자들 앞에서 담담히 소멸의 시간을 맞는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이란 파고에 휩쓸려 나이를 먹지만 어딘가로 흐르는 시간은 배 안에 갖힌 우리를 끝없이 우리가 설정한 목적지로 실어 나를 것이다.  그 중간, 우리는 사랑했던, 존경했던, 어떤 이를 잃을 것이다.  그것이 시간의 이치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에게 과거는 사라진 거짓이 아니다. 엄연히 우리의 몸, 우리의 뇌세포, 하나하나를 이루는 분명한 현실이요, 진실이었다.  신경숙은 에필로그에서 이 소설의 의미를 단정짓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울한 사회풍경과 시간을 뚫고 나아가서 서로에게 어떻게 불멸의 풍경으로 각인되는지...를 따라가보았다.'(p.377) 

이 소설속 인물들처럼, 독자들의 사랑에도 만남과 이별과 죽음이 존재했을 것이다.  암울한 시대상황이란 무거운 대기가 짓누르는 그런 엄혹함은 없었을지 모른다. 아마, 대부분은 그러할 것이다.  허나, 잊혀진 사랑에는 언제나 절박함 같은게 있기 마련이다. 실패한 사랑은, 예외없이 아린 상처를 남긴다.  이제 청춘의 시간을 멀리 지나온 이들에게도, 사랑은 그저 행복한 그 어떤 것들로 기억되진 않는다. 언제나 과거의 사랑은 두가지 상반된 기억들을 모두 함유한다.  설레임과 상실감이다. 

신경숙의 소설은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린 노쇠한 독자들에게 이 모두를 되살려주려는 노력의 일부분이다. 어쩌면 `안데스 산맥 기슭의 황량한 나스카 평원에 사람의 눈높이로는 볼 수 없고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해독이 불가능한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황무지에 새겨졌던 것처럼'(p.367) 이 소설은 청춘안에 머물고 있는 당신의 좁은 시야를 넓혀주는 가상한 노고같기도 하다.  청춘을 지나온 이와 청춘을 지나고 있는 이,  모두에게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일곱번째 장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내게 신경숙 작가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녀의 소설들은 지금껏 내게 서먹한 손님에 지나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십수년 전 <외딴방>이 그랬고, 최근의 <엄마를 부탁해>가 그랬다.  모두, 평단과 독자의 극찬을 받았건만 내게 신경숙의 소설들은 어김없이 자리한  에고(Ego)에 짓눌려,  언제나 거리감을 두고 싶은 문장들이었다.  그러나,  일곱번째 장편과 그를 알게 된지 이십여년이 지나서야 그의 소설을 아무런 의심없이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외면하던 누군가와 화해하는 것만큼 기분좋은 일이다.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아릿하고 처연하게 읽은 몇 안되는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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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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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강남몽 

열 여섯살 쯤 되었을까?  처음 몽정을 하고 아랫도리가 축축히 젖던 날 아침이었을 것이다.  새벽녘에 꿈속에서 벌어진 이상야릇한 스토리와 느낌은 사춘기인 내게 그 이후 한동안 두가지 감정에 파묻히게 했다.  정체모를 죄책감과 다시 그 느낌을 찾아왔으면 하는, 그런 탐닉 같은 것 !   일평생 한 성숙한 남성을 지배하는 성적 욕망은 언제나 사춘기 시절 몽정 이후의 이 두 감정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건 아닐까?  

꿈은 인간의 의식 1% 아래, 잠재돼 있는 무의식 99%의 발현 같은 것이라고 프로이트가 말한 적이 있다.  잠이 드는 그 사이, 인간은 도덕과 윤리, 남의 눈총 같은걸 의식하지 않고 깊은 꿈속에서 마음껏 욕망을 향유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본능의 향연이다.  꿈은 그러므로, 어쩌면 도덕과 윤리보다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일지도 모른다.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강남몽>은 이 거짓없는 꿈에 관한 가장 구체적인 서사다.  욕망에 충직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충분히 분노할 소재들이 많다.  출세를 위해, 나라를 팔고, 조국을 배신하고,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거나, 그 밑 수하가 된 사람들이, 해방 후 명찰만 바꿔차고, 또다시 민족을 들먹이고, 조국에 봉사하는 `공무수행'의 앞잡이가 된 사실 말이다.  이런 이야길 읽으니 현대사의 잘못 끼워진 단추가 어디부터였는지 알게 되었지만, 가슴속 답답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해방후, 좌우의 이념 대립 속에서 조국의 분단을 통해서라도 정권을 잡고 싶은 이들(이승만)을 통해,  수많은 국민이 무참하게 학살되고 좌익으로 몰려 몰살되는 역사를 돌아보면, 한동안 지방선거 분위기에서 유행어처럼 번진 `좌파타령'의 기원을 유추할 수 있다.  그 정점에선 성폭행을 일삼고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두고, 모 인사가 좌파교육 때문이라고 일갈한 것은 유머를 넘어 의미심장한 역사적 속사정을 품고 있었던 것임을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1% 가운데 1%의 성지, 강남 그 땅덩어리가 가진 역사를 드러내는 일은 그러므로, 총제적으로 강남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몽정기, 그 욕망의 태동과 현재를 돌아보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황석영은 힘있는 문장과 구체적인 서사, 굵고 탄탄한 문장으로 우리 시대의 강남의 과거와 현재를 그려낸다.  강남은 비열하고, 약은 이들, 욕망에 충직한 정치인,부자,깡패들의 소굴이자, 그 땅에서 쫓겨난 무능하고, 가난한, 어쩌면 게을렀을지도 모를, 바보같이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는다.   아니, 소설 <강남몽>은 강남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주위를 포진한 그 다양한 개성을 가진 욕망에 포위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약간은 비열하고, 조금은 정직한, 아니... 속시원히 그렇게 말하자.   그냥  보통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2.  아름답지 못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꿈을 갖고 있다.  그것은 경제적인게 주를 이룬다.  사실 강남의 꿈은 잘 살아보자는 꿈이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저마다 달랐다. 정직하게 일해서 대한민국 1% 꿈을 이뤘다고 하는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부지런한 것은 미덕 가운데 하나일 지언정, 강남 부자가 되는 길은 아니었다.  그러면 소설속 인물들은 어떻게 비열한 꿈을 실현 시키는가?  박선녀의 경우,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컸지만 뛰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모델로 발탁되고, 스폰서가 붙고, 다시 강남 술집이 번져나가던 시절 마담이 되고, 상류층과 조폭의 협력과 비호를 받으며 돈을 번다.  이후 대성백화점(삼풍백화점)의 회장 김진의 세컨드가 되어,  명실상부한 강남의 여자로 거듭난다.  

대성 백화점의 회장 김진은 어떤 인물인가?  일제시대 만주에서 일본군의 끄나풀이 되어, 독립군을 색출하는데 앞장선다.  그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평화로운 조국에 태어났다면, 그는 아마도 잇속에 밝은 장사꾼이 되었을 듯 하다.  일제 이후, 미군정을 거치며 다시 그는 미군의 앞잡이가 되고, 유신 정권 하에서도 철저히 군사정권에 봉사한다. 그는 변신의 귀재인데, 그의 꿈은 명예나 권력 보다 `돈', 안락한 삶에 닿아 있다.  현실의 강남과 가장 닮아 있는 꿈이다.  그가 박선녀를 훗날 세컨드로 집안에 들이는건 그러므로 당연한 듯 하다.  부부란 쿵짝이 맞아야 하는거니까.   

"나중에 합류하게 되는 김진 또래의 이희철과 더불어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어느 쪽에 붙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가를 청년시절부터 피나게 수련해온 셈이었다."   p.79  황석영 <강남몽> 

강남의 부동산을 주무르기 위해,  정권의 실세와 내통하여,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고 되파는 일을 반복해서 돈을 모으는 심남수, 7,80년대 호남 주먹에서 서울로 상경해 서울의 폭력조직을 통일하는 홍양태(조양은)과 강은촌(김태촌)의 이야기는 강남을 꿈꾼자들의 다채로움과 비열한 특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시대의 어두움(군사독재)이 횡횡하던 때, 이 비열한 역사를 빗겨나 자신의 수완(투기,폭력)으로 강남의 꿈을 이루고자 한 층이다.  박선녀와 김진 못지 않은 가장 `강남스러운' 세력이다.  

무너진 대성백화점의 콘크리트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박선녀와 임정아다.  임정아는 대성백화점의 노동자다.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이 소설에서 빈한한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강남의 꿈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인물을 소설의 시작과 끝에 배치한 작가는 소설의 그  때묻은 인물들과 대비하여, 정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작은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던걸까?  그녀는 무너진 백화점의 유일한 생존자로 17일만에 구조대에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생각하기에 따라, 강남의 상징이 무너진 자리에서 소설속 가장 빈한하고, 깨끗한 시민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떤 상징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 나 재력이 있는 사람야, 근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박선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임정아가 천천히 말했다.
- 내 동생 휠체어를 왜 사모님이 사주죠? 그러구 집두요. 저는 임시직인데요. 우리 부모님은 시골서 올라와서 여태껏 일만 죽도록 하구두 산동네를 못 벗어났지요.
- 그러니까 앞으론 잘살아야지.
- 그렇지만...
정아는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  p.338 
 

소설은 이 주요한 인물들의 삶을 일제시대와 현대 강남에 이르기까지의 객관적 역사에 담았다.  등장인물들은 이름을 약간씩 변형주긴 했지만,  모두가 실제의 인물들이나 마찬가지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도지만,  가명속에서 역사를 짓는 인물들은 가상이 아니라 실존인물들이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섬뜩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 교과서 속에서 수박 겉핥기로 배운 우리 현대사의 암울한 표정들이, 소설 중간중간 독자들을 엄습한다. 해방 후 좌우 대립속에서 수백만의 국민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제주 4.3 사건은 일부 좌익 세력을 핑계로 이승만이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임에도, 2000년에야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5.18과 같은 특별법이 제정되어 명예가 회복되고, 보상이 이루어졌다.  군사정권은 개발지상주의 정권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 특혜를 받은 계층은 부동산 투기로 정권과 이윤을 나눠먹는다.  부정한 정권은 야당을 탄압하는데 조폭들을 동원하는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반공을 국시로 내걸며 무고한 사람들을 박해했고,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며, 잇속을 챙겼다.  그런 역사적 사실 한복판에서 태어난 사생아가 바로 `강남제국'이었던 것이다.  강남은 수도 서울의 한 지명이 아니라, 이 부정한 태생적 한계를 품고 있는 장소임을 이 소설은 고발한다.  오늘날 향기로운 커피점이 가득한 강남의 거리를 활보하는 유한층은 그 태생이 본래 악취날리는 역사의 풍광을 지나쳐왔음을 알고 있을까?  

 

 3. 현대사의 몽정기[夢精期], 민낯을 드러내다 

소설을 소설로만 읽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판타지가 현실과 연결될 때 느끼는 불편함은 독자를 괴롭힌다. 그러나, 황석영의 신작 <강남몽>은 판타지가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의 현재요 과거다.  아직, 미래라고는 하지 말아야겠지.  

사람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돈,은 충분히 그럴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일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것을 우리는 확인받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부자가 되는 길에는 난관이 자리한다.  그 난관을 모두 거친 이들은 전혀 정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때를 묻히고야 부를 얻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아닐까?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이다.  쓰인지 2천년이 넘은 성경속 이 말은 가진자들이 듣기 거북해하는 불변의 진리인가?   

이 시대, 강남은 모든 것을 주무른다.  이 시대의 주류들은 강남을 근거지로 산다.  교육과 문화를 선도한다.  부자 동네는 곳곳마다 CCTV가 설치되어 안전을 보장받고, 도로에 깔린 돌하나 장식 하나까지도 격이 다르다.   귀족들의 집성촌 같은 곳이 현대의 강남이다.  사람들은 강남을 부러워하지만, 오늘의 강남이 어떻게 그러한 위치에 서 있게 되었는지 몰랐다.  부자를 털면 먼지가 아니라 황사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은 강남이란 이름을 가져와 현대사의 부정과 비리, 자본의 비열함을 꼬집으려 했지만, 여기서 은유같은건 필요치 않다.  강남의 사연은 은유를 필요치 않는 현대사의 진실이기에. 

황석영은 능숙한 솜씨로 이 터의 뿌리를 파고들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강남의 외피와 다른, 더럽고 추잡한 이면을 독자는 확인하고 놀랐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고자 부자들은 자신의 품으로 돈을 끌어안고 두뇌를 비상하게 회전시킨다. 목표를 정하곤 날렵하게 몸을 날린다.  정의같은건 그들의 사전에 없다.  권력욕에 목이 마른 자들은 해방 후 끊임없이 양민을 학살하고, 정권에 반대하는 개인을 사찰하고, 죽어버린 이념을 들먹이며 빨간칠을 해왔다.  이유는 한가지,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였다.  그 약은 이들이 세운 천국이 바로 강남공화국이다. 

나의 몽정기는, 사춘기 이후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꿈속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죄책감과 욕망은 여전히 순환되지만, 그것은 꿈속의 이야기는 아니다.  생의 몽정기는 끝났다.  우리에게 광복후, 민주주의의 닻을 올리기 까지의 현대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몽정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 민주주의를 위해, 좌우 대립과 민족전쟁(6.25), 군사정권의 독재와 쿠테타, 민주화 운동를 거쳐야 했다. 우리는 역사의 몽정기를 통해, 이땅에 민주주의를 힘들게 모셔왔다. 

그러나, 사춘기의 몽정기가 끝나자 본격적인 욕망이 인간을 잠식해 들어간다. 거기에 죄책감이란 순박한 잣대가 없다면 욕망은 통제불능이기 쉽다.  더이상 우리에겐 전쟁이나 양민학살의 이야기, 군사독재 시절의 혹독함은 횡횡하지 않지만, 자본에 대한 탐닉은 꿈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상이다.  욕망은 꿈속에 있지 않고 대로를 활보한다.  괴물같은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 이윤의 논리, 자본의 논리가 파고든다.  욕망이 꿈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민낯은 쑥스럽지 않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동격이 된지 오래다.  민주주의반대는 공산주의라고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는것처럼, 우린 착시현상을 경험한다.  그 논리 앞에선 겨우 100년을 살다 사라지는 인간보다 아니, 5년을 채우고 물러서는 권력보다 수억배는 더 오래 존재할 자연이 훼손된다.  지금도 4대강은 24시간, 장마철을 가리지 않고, 파헤쳐지고 있다.  모두가 돈, 탐욕, 이익, =  민주주의, 선이 되어버린 시스템 덕분이다.  

황석영은 삼풍백화점을 빗댄 대성백화점이 무너지기 몇 시간 전의 징조와 무너짐 사이의 17일간을 소설의 처음과 끝에 배치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대성백화점의 수장인 김진은 끝까지 꿈에서 깨어나길 거부한다.  건물에 균열이 가고, 흔들리는 징조가 찾아와도, 완전 폐쇄가 아닌 부분 폐쇄로 건물 보수에 그친다.  그는 자본이란 단꿈에서 깨어나길 원치 않는다.  백화점 안 무고한 시민들을 남겨둔채 혼자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김진은 일본시대와 해방후 혼란기, 독재정권에서 수완을 발휘해온 인물이다.  그는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 자본주의의 속성을 가장 리얼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권력, 역사, 정의, 가치, 생명, 자연은 김진이란 인물의 반대편에 올곧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꿈은, 깨어나기 마련이다.  아니 잘못된 꿈은 억지로라도 깨워야 한다. 건물이 무너지고 김진이 사랑했던 세컨드, 박선녀가 죽는다.   써야 할 그 많은 돈을 남겨두고 말이다.  황석영은 짧은 후기에 이런 말을 남긴다.

 
"중국 고전 <홍루몽>은 주인공이 다른 이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현실의 자기 그대로인가 하는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서서히 몰락해가는 상류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현실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작가의 말  

 강남의 꿈은 어째서 문제적인가?  강남은 왜 깨어나야 하는 꿈인가?  책장을 덮고 난후 내게, 소설 <강남몽>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20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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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서스 - 아메리카 제국 흥망사
니알 퍼거슨 지음, 김일영.강규형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기원전 로마 제국은 서양을 지배했고, 19세기 대영 제국은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지화 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를 얻었다. 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대영 제국은 그 속국들이 모두 독립함으로써 제국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그 빈 자리에 두 개의 제국이 등장하는데 바로 소련(소비에트연방)과 미국이다.   세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역사의 시작과 함께 제국은 언제나 국민국가와 함께 존재했다.  제국은 이웃나라들을 정복하고, 그 나라를 식민지화 하여 정치,문화,경제를 자국으로부터 이식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난후,  다른 나라의 영토를 정복하여 식민지화 하는 고전적 의미의 제국주의는 사라졌다.  그러나, 제국은 여전히 우리곁에 존재하고 있고, 그 통치 방식은 경제와 문화라는 통로로 탈바꿈 한다.  현재 소련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며칠 전,  미국의 제 7 함대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 선단이 한미서해군사훈련을 위해,  일본의 요코스카 항을 출발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중국은 미항모가 서해에 진입한다면 그건 인민해방군의 훈련용 타켓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세계의 화약고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가 여전히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신생 제국을 꿈꾸는 중국과 세계 패권국 미국이란 제국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제국들의 광범위한 영향권 내에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대영 제국 시대의 식민지는 이제 아프리카 땅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제국의 막강한 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군통수권자에겐 전시에 작전을 지휘할 통제권이 없다.  2012년 4월 17일에 이양되기로 예정된 전작권이 3년 더 연기된 것은 우리 정부의 간절한 요구에 의해서 였다. 우리의 목숨이 제국 사령관의 명령과 판단에 내맡겨진 꼴이다.   골목마다를 순찰하는 경찰처럼,  세계의 바다엔 미항공모함 전단이 떠다닌다.  그러니, 어찌 제국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그간 제국이었고,  그러니 솔직히 제국임을 인정하고, 당당히 제국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 오만하면서도 솔직한 주장은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의 입에서 나왔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옥스포드 대학을 최우수로 졸업하고, 현재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로 있는 니알 퍼거슨이다.  니알 퍼거슨은 최근의 미국 금융 위기를 진단하는데 능력을 발휘해, 폴 크루그먼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들 정도로 미국 학계에선 그의 인지도가 높다. 그가 조지 부시 정권 때인 2003년에 저술한 <콜로서스>가 최근 번역돼 나왔다.  책이 나온후, 7년 정도가 지나다보니  여러 부분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당시 미국은 911테러와 아프카니스탄 침공, 이라크 전쟁 등을 거치며  조지 부시의 일방주의적 영도력 아래,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콜로서스(거대한 존재,힘)>에서 니알 퍼거슨은 대영 제국과 미 제국을 비교하며, 대영제국처럼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역할과 파워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 한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세계에 필요한 것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제국이며, 그 제국의 통제아래 세계는 평화와 자유를 증진 시킬 수 있는데, 그 제국이 바로 다름 아닌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 제국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실패와 성공을 회고한다.  한국전은 무승부로, 베트남전은 실패로, 이라크전은 성공으로 묘사한다.  제국주의는 '자국의 정치적·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국가의 영토로 확대시키려는 국가의 충동이나 정책'을 말한다는 점에선, 약소국이나 식민지에선 몹시도 부정적인 용어였다.  니알 퍼거슨은 이 제국주의라는 용어에 다른 의미를 덧붙인다.  부정적 제국주의라는 용어에 `자유'라는 옷을 입힌 것이다.   즉,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선 필요하고, 그 역할을 미국이 제대로 소화해 내야 한다고, 그는 이 책에서 줄기차게 주장한다.  과거 제국주의를 통해 수많은 식민지들이 겪은 아픔과 절망을 니알 퍼거슨의 논리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철저히 앵글로섹슨족의 성공한 엘리트적 관점에서 제국주의를 바라보고, 분석하고, 전망한다.   

"제국은 질서를 위해 존재할 때가 최상이다. 물론 자유는 더 고귀한 목표다. 하지만 무질서를 경험한 사람은 질서가 자유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 제국은 국제적 무정부상태, 더 자세히 말해 종교적 힘이 부재한 상태에 맞서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니알 퍼거슨 <콜로서스> p.44 

사실, 그의 `선한 제국주의론'에는 여러가지로 긍정할 요소가 있다.  세계는 10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내며 2차 대전에 종지부를 찍은 대사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단 한번의 폭격으로 일본의 대표 도시 두 곳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린 위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10년 후, 미국은 원자폭탄의 100배가 넘는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이후, 소련을 비롯해 주요한 군사강국들은 차례로 핵을 갖게 됐다. 이제 3차 대전은 곧 인류의 멸절이라는 통로로 연결돼 있다.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국가는 현재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국은 911을 통해 특정 국가가 아닌, 소수의 테러집단에게 무자비한 보복과 살상을 당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화라는 공공재를 세계에 공급하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내는 수호세력 즉 자유주의적 제국으로서 미국은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 논리는 언뜻보아서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간 미국이 진정 세계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였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껏, 미국이 개입한 전쟁은 자유와 평화, 라는 대의보단 그 개입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로 판결난 경우가 많다.  미국이 진정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였다면,  득은 없고, 실만 있는 아프리카 내전에는 왜 개입을 꺼려 하는 것인가?   전세계의 흩어진 미군기지는 미국이 지역에서 정의의 수호자의 역할보단,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그 지역에서 발휘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하는 것이 정직한 분석이다.  니알 퍼거슨은 `슬프게도 세상에는 자유를 얻기 전에 지배부터 받아야만 하는 지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언급하는데, 이 시각은 그의 지독한 제국주의적 오만에 다름 아니다. 어떤 체제가 세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각 나라는 자신의 체제를 정하고, 그 체제 위해서 발전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를 반대한다면,  국민국가는 부정되고 세계는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대량학살무기(WMD)로 두고, UN의 승인없이 자의적 판단으로 이라크를 침략 한후,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다. 전쟁의 명분이랄 수 있는 WMD는 부시의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니알 퍼거슨은 이 부분에 대해 이라크 침략이 오히려 후세인 정권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독단적인 1국가의 판단보다는 다수 국가의 의견을 듣고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니알 퍼거슨은 `선한 제국주의'를 통한 세계 평화를 논하기에 앞서, 다국적 연합체인 UN을 통한 세계 평화 구상을 먼저 이야기했어야 옳은게 아닌가?  그러나, 그는 이를 논하지 않는다.  철저히 미국의 패권적 시각에 물들어 있는 저자의 편협된 사고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나로서는 9개월 만에 신임 대통령이 9.11의 참화에 직면하고는 내가 당시 주장했던 것과 매우 비슷한 정책을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다.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이 선포된 후, 용기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다. 이제 문제는 불굴의 정신,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고야 말겠다는 끈기다. 미국에 대한 유럽의 비판과는 달리, 나는 세계에는 효과적인 자유주의적 제국이 필요하며 미국은 그 일을 맡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긴다."  p.452 

니알 퍼거슨은 전형적인 패권주의자의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상당히 뛰어난 분석력과 통찰력을 보여주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부정적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다.  그는 <콜로서스>를 통해,  미국핵심 권력층의 패권적 시각을 여러가지 관점에서 두루 분석해 냈다.  미국이 지난 200여 년 동안, 어떤 식으로 타국의 정치과 경제에 개입하고, 제국주의적 정책을 펴 나갔는지 독자는 저자의 상세한 해설과 예리한 분석을 통해 조망할 수 있다.  이 책의 분석은 현재 미국의 세계 정책을 이해하는데도 적격이다.  미국이 왜 중동에 집착하는지?  미국과 중국의 역학 관계가 무엇인지 ?  새로운 제국을 꿈꾸는 중국과 유럽연합의 부상에 미국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대응하려 하는지? 등도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살펴 볼 수 있다.  초유일 강대국 미국 보수층의 시각에서 세계의 정세를 두루 분석,판단할 수 있게 된 점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최대의 지적 수확물이다.   저자의 시각은 맘에 들지 않지만, 패권국 미국의 세계 전략을 판단할 수 있음은 꽤 유익했다.

특히 한국전에 대한 분석은 내 눈을 사로잡았는데, 이것은 그간 역사교육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넘어선 것이다.  한국전에 대한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의 갈등은 익히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공군의 개입에 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을까?  맥아더의 적극적인 반격 주장에 왜 미국은 주춤했던걸까?  니알 퍼거슨은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 북한의 파멸을 막은 것은 1950년 11월의 중국의 반격 자체가 아니었다. 중국군 개입의 첫 충격은 컸고 미국이 이끌던 연합군을 일시적으로 `지리멸렬'하게 만들었지만, 미국은 마오쩌둥의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을 격파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세 가지 점 때문에 그것은 실현 되지 않았다. 첫째, 중국에 원폭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었을 때 동맹국들이 강력히 반대했다.  둘째, 트루먼 행정부는 그런 공격이 소련의 서유럽 침공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비록 미국이 소련보다 17배 가량 우세한 핵전력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의 정책은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셋째, 가장 중요했던 원인인데, 이 두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었을 사람이 정치적으로 발이 묶였다는 것이다.(맥아더)"  P.163 

 



 20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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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과 심리학이 상당히 밀접한 학문이란걸 경제학 서적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곤 한다.  경제라는 용어가 주는 뉘앙스는 인간이 몹시도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라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의 기본 특성은 그러니까, 자신에게 이익이 되냐, 되지 않냐를 판단하고 가장 이로운 것을 선택하고, 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인간의 선택과 경제행위가 여러가지 불완전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여러 실험으로 증명된다.   이것은 인간이 비합리적인 성질을 안고 있는 경제적 동물임을 보여준다.  이 모순 때문에 실제 경제활동에선 실로 무수한 오류를 드러내는데,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경제학은 어떤 대안들을 내놓고 있을까? 

웰빙 바람이 불고 난후 사람들은 인스턴트를 멀리하고 유기농 식품을 선호한다.  인스턴트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도 아는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가 고플때 눈에 보이는 빵이나 과자 같은걸 주워먹곤 한다.  평소엔 건강의 전도사가 되어 유기농 음식의 이로움을 설파하던 사람들도, 불량식품을 먹는걸 가끔 자제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당장에 배가 고픈 사람에게 허기를 채워줄 무언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으면 먹지 않았을 음식을 `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는 이유로 섭취하게 된다.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쇼핑을 할때 아예 그런 물품을 집안에 들이지 않도록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량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최선의 길은 그런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을 아주 어렵게 만들어 놓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같은 방법은 건전한 경제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매달 저축을 꼬박꼬박 하는 최선의 길은 월급에서 아예 자동이체를 시켜놓는 것이다.   저축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실제로 매달 따로 돈을 떼어서 저축행위를 하기란 쉽지 않다.  신용카드가  가끔 말썽을 일으킨다.   지갑에서 돈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우린 쉽게 충동구매를 하고 카드를 긋곤 한다.  그러다보면 월말에 월급잔고는 바닥을 헤매기 일수다.  해결책은 뭘까?  좀 과격하긴 하지만  자제심이 없다면 카드를 잘라 휴지통에 버리고, 오직 직불카드나 현금 소비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이 경제활동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카고 대학의 교수이자 행동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탈러와 하버드 대학 로스쿨 교수 캐스 선스타인은 그들의 공저 <넛지Nudge>에서 "인간은 천재인 동시에 바보다"라는 말로, 이 오류를 설명한다.   이 책의 전반부는 흥미롭게도 이 `바보들'이 어떤 오류를 범하는지를 다룬다.  그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자.  

프레이밍:  100명 중 90명이 산다 vs. 100명 중 10명이 죽는다

당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려 의사와 상담을 한다고 하자.  의사는 수술을 하면 100명 가운데 90명이 산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의 반응은?  물론 희망을 갖고 당장에 수술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의사가 다른 식으로 프레이밍(선택안의 틀을 형성) 한다고 치자. 100명을 수술했는데, 그 가운데 10명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의 선택은 어땠을까?  의사의 이 말에 충격을 받아 수술을 거부할 확률이 높다.  사실, 앞의 말이나 뒤의 말이나 같은 얘기다.  원숭이에게 도톨이를 아침에 3개주고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해서 화를 돋은, 조삼모사(四)의 일화가 연상되는 경우다. 

대표성의 오류

코넬 대학의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에 대해 런던 주민들이 보인 행동 양상을 예로 들고 있다. 런던의 신문들은 독일군 폭격기의 폭탄투하 지점을 지도로 만들어 배포했다.  특이하게도 이 모형은 템스 강 주변과 지도의 북서쪽 지역에 폭탄이 집중 투하된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은 빈공백은 독일군 스파이들이 거주하는 곳이 아닌가, 의심하기에 이르렀는데 통계를 활용하여 푹탄의 분포를 상세히 분석해 보니, 투하지점은 무작위였음이 드러났다.  방법은 쉬웠다.  간단히 지도를 4등분 해서, 분포 지역이 예외없이 균일했던 것으로 그 오류를 밝혀낸 것이다.   인간 시각의 불완전성과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조명효과 : 모두가 나를 주목해요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시선에 몹시도 큰 비중을 둔다. 자신의 외모와 옷차림에 특히 신경을 쓰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는 그의 동료들과 한 실험에서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를 내 놓는다.  피실험자에게 티셔츠의 앞면에 대문짝만한 연예인 사진을 입히고 하나의 공간에 등장했다 퇴장한 시킨후, 그 공간에 머문 사람들에게 그 연예인의 이름을 물어본 것이다.  결과는?   겨우 21% 사람만이 연예인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맞췄다.  이 실험결과로 두고보면, 사람들이 타인을 의식하는것에 쓸데없는 감정낭비를 하고 있단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겉보기엔 몹시도 인지적이자 합리적인 동물인냥 자신을 가장하지만,  수많은 판단과 선택에서 오류를 범하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같은 오류는 경제활동에 비합리성을 가져와 개인과 국가에 손해를 안기는게 문제다.   불완전한 판단력을 소유한 인간이 합리성이 요구되는 경제활동을 안전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그들에게 `넛지'를 가하는 것이다.  넛지의 뜻은 세가지 정도로 해석되지만,  3번이 저자들이 이 책에서 사용한 넛지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넛지 nudge  

1.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2. 주위를 환기시킨다
3.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by 탈러 & 선스타인)

넛지는 어떤 매커니즘을 갖고 있을까?   학교의 급식 과정에서 음식을 배열하는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음식별 소비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채소를 잘 먹지 않으면 채소를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한다.   아이들이 고기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면, 고기 메뉴를 잘 보이지 않게 배치할 수도 있다.  이같은 배치를 주도하는 이를, 이 책의 저자들은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라 부른다.  선택 설계자들은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현실 세계에는 무수한 선택 설계자들이 존재한다. 이 선택설계자들은 인간과 사회에 긍정적인 넛지를 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초기 설정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정할 수 있다.  

경제활동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결핍된 존재인데, 시의 적절하게 넛지를 가해준다면 인간 사회는 보다 옳고,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수많은 예시를 들어 보여주려 한다.  예시로 든 넛지의 예들은 다종다양하다. 사회 보장 시스템, 미국 의료보험 프로그램,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방법, 환경을 살리는 사회적 넛지, 결혼의 민영화, 점진적 기부 증대, 자동 세금 환급, 등 무수한 영역에서 우리는 선택설계자들이 마련한 `부드러운 개입'을 유도받게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한 넛지의 가장 흥미로운 성공 사례는 넛지가 가진 위력과 효용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자화장실의 소변기 주위는 항상 지저분하기 마련이다.  우리 나라 남자 화장실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구들은 의미심장하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1cm접근 1%의 청결함", 이 모두가 어떻게든 넛지를 가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암스테르담 공항 남자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소변기 하단 부분에 가짜 파리 한마리를 붙여 둔걸 볼 수 있다. 남자들이 소변을 보면서 여기에 `조준'을 하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가짜 파리를 붙인후,  소변이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비율이 80%나 감소되었다, 고 한다.   아이디어 넘치는 작은 넛지가 환경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줄인 사례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넛지>, p21 

이 책은 이 넛지의 활용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적인 시스템을 예시로 들고 온다. 책의 전반부가 인간이 선택 오류를 범하는 존재들이란 것을 수많은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면, 책의 후반부는 주로 미국적 상황에서 넛지의 활용예를 가져와 구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전반부는 경제학에서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무수한 판단착오 가능성을 지닌 인간과 경제학의 합리성은 아무래도 매치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책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과 이콘"이란 대립적 모형을 제시한다.  이콘은 컴퓨터와 같이 정확한 경제학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의 인간이다.  후반부는 조금 지루한데, 미국적 상황에서 넛지의 활용 예시들을 설명한 여러 장들은 문화적 상이성 때문에 잘 이해되지 않고,  독해에 인내를 요구한다.   이 부분은 번역서의 한계를 드러내며 약간 난해하며, 재미를 반감시킨다.  이 책에 별 4개를 못 준 이유다. 

작년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이제야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경제 지식을 보완하고자 선택한 책인데,  딱히 경제학 서적이라고 특징지울 수가 없을 듯 하다.  경제와 심리, 정치와 사회 모든 부분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넛지'라는 개념을 들고와 인간 심리의 불완전성을 보여주고, 사회가 어떻게 무지한 대중을 옳은 선택으로 인도할 수 있을지, 논의한다.  예시로 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주장하는 넛지라는 개념은 사회 전체적인 부분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고, 사실 많은 부분에서 그같은 넛지들이 활용되고 있다.  

긍정적인 넛지가 있는 반면 걔중엔 인간의 불완전성을 악용한 나쁜 넛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겠다.  보험 가입이나 상품 구입시 특정 집단의 선택설계자에 의해 설정된 `디폴트' 조항은 대표적인 불량 넛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주위에 시시탐탐, 사익집단의 이익을 위해 임의의 넛지를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있음을 놓치면 안 된다.  이 책에서 얻은 넛지라는 개념을 참고하면 사람들은 경제적 선택 행위에서 보다 똑똑함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모든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넛지라는 중심적 개념은 영양가가 높고, 인간의 불완전성을 무수한 예로 확인한 점은 앞으로 독자들이 행복한 경제활동을 하는데 참고가 될 만 하다. 

 


 

201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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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필살기
구본형 지음 / 다산라이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진 않는다. 그러나 삶의 현실적인 균형감을 회복하기 위해 가끔 비타민처럼 섭취해야 하는게,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요즘 인문학 서적들을 주로 탐독하다보니, 생각이 깊어지긴 했으나 생활에 밀착돼 응용할 수 있는 실용적 지식들에 목이 말랐다.  가끔은 독서 생활에도 `조커'의 역할을 하는 게임메이커가 필요한 법이다.  자기 계발서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독서가들은 자기계발서는 절대로 읽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독서는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정하나, 내 경험으론 잘 쓰여진 명품 자기계발서 한 권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경우가 많았다.  `명품'이라 부를 수 있는 자기계발서는 한정돼 있다.  그건 저자의 경험과 실천에서 건져올린 정수같은게 담겨 있어야 한다.  좋은 말은 듣기는 좋지만 믿음이 가진 않는 법이다.  실제의 경험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구본형의 필살기>는 독자의 강력한 믿음과 실천력을 이끌어 낼만한 책이다. 

구본형은 현재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있지만,  한국IBM에서 20년간 경영혁신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이었다. 20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 하고,  변화경영이란 화두를 내걸고 연구소를 만들어 많은 책을 냈고,  수많은 강연을 하며, 1인 미디어, 1인 기업, 의 위상을 굳건히 다지는데 성공한 이 시대의 변화경영전문가다.  현업을 벗어났지만, 그는 현업시절 지금의 변화경영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축적했다. 행복한 직장인이란 취미가 직업인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구본형처럼 자신의 본업으로부터 평생 먹거리를 창출해 낸 사람들이다.  그 둘을 합치시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는 직장인인 당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내 적성과 도저히 맞지 않아, 라고 쉽게 불만과 회의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 평균적인 직장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직장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 그 이상으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은 현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현재 직장은 시간과 노력의 대부분이 투하되고, 한 사람의 인생이 소비되는 중요한 마당이다.  구본형은 낙타의 삶과 사자의 시대라는 비유를 끌고 온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싣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야 하는 존재다.  이 낙타의 삶은 수많은 하기싫은 일을 감당하며 하루를 버티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어느 시절이 오면 걔중엔 낙타의 삶을 벗고 사자의 시대를 맞이하는 위대한 인간이 탄생하는 법이다.  <구본형의 필살기>는 낙타가 사자로 변신하는 방법을 `따라하기'를 통해 독자에게 전수하려 든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구본형의 필살기>, p.19 

직장인이 모든 것에 능통할 수 없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다양한 업무를 해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단, 자신의 업무를 작게 쪼개보자. 20개 정도가 적당하다. 20개 정도의 분화된 일을 짧은 문장으로 요약한다.  짧게 요약 된 문장 옆에, 이제 세가지 평가 요소를 둔다.  그 일이 요구하는 `필요적성'이 무엇인지 `업무중요도'와 `적성 적합도'는 어떤지를 등급 매긴다. 이 일을 하고 나면, 내게 업무 중요도와 적성적합도에 따라 4가지 강점 매트릭스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스트레스(S)와 프로젝트(P), 쓰레기(J)와 취미(H) 영역이라 부를 수 있다.  스트레스인 (S)는 업무 중요도가 높지만, 내가 잘 못하는 분야로서 업무를 진행할 수록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쓰레기(J)  분야는 업무 중요도도 낮고 하면 할 수록 재미도 없는 분야를 가리킨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프로젝트(P)와 취미(H)다.  프로젝트 P는 업무 중요도가 높고 내 적성에도 잘 맞는 태스크들이 분포되어 있고, 취미 H는 업무 중요도는 높지 않으나 내가 잘할 수 있고 흥미를 느끼는 분야다. 

구본형은 분화된 일의 태스크 가운데 P와 H에서 미래의 먹거리가 탄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분야는 내가 잘 할 수 있고, 또한 운좋게 회사의 업무 중요도도 높은 곳이다.  사자의 시대, 를 준비하기 위해 직장인인 당신은 S와 J 업무를 남의 눈에 안날 정도로 유지하고, 황금의 보고인 P와 H에서 강점을 키워 평생의 필살기로 무장해야 한다.  회사에서 살아남는 가장 쉬운 방법은 P의 영역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S나 J 분야에서 평균치 정도로 일해낸다 해도, 그 사람은 절대로 회사에서 잘리는 일은 없다.  행복한 직장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는건 그러니까 의외로 쉬운 일이다.  어떤 일 한가지를 가장 잘하는 사람,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능력을 몇 가지 결합하여 어디에나 쓰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거나 약한 능력은 아주 치명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럭저럭 감수하고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약한 능력을 계발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쓸 생각이 없다. 그 대신 잘하는 능력의 게발에 치중하여 언제 어디서나 꺼내 쓸 수 있는 나만의 강점으로 숙성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p. 50 

필살기로 무장하는 방법에 대해, 이 책은 전반부를 모두 소비하고 있다.  이 부분은 약간 도식적인 느낌이 든다. 직장의 모든 업무를 이렇게 세분화 하고 거기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다.  그러나, 세분화를 통해서도 자신의 적성과 적절한 강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을 모든 직장인의 업무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나의 공식화된 루트를 벗어나, 저자의 삶을 담고 있는 책의 후반부가 오히려 내 머리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그는 20년간의 직장 생활 끝에 현재 변화경영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한민국의 독보적인 변화전문가로서 1년에 책 한 권 씩을 내고,  많은 강연을 소화하며, 매일 매일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건져올린 행복이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그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습관을 통해서였다.  그는 변화 업무를 담당하며,  자주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다.  많은 서적을 읽었고,  나름의 공부와 연구를 통해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0년 넘게 새벽 2시간을 떼내어 글쓰기를 연마해 왔다는 것이다.  "삶은 특유의 통렬한 전환을 거치지 않고는 도약하지 않는다.(프롤로그)"  도약을 위해 그는 생활 습관 자체를 뜯어 고쳐야 했다.  새벽 시간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회식 등은 점심으로 바꾸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같은 시간대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습관의 근육을 몸에 익혔다.  하루 두 시간의 글쓰기, 그리고 10년 후,  그는 달라졌고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15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   

"하루 두 시간, 평범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이었고, 20년간 직장인이었던 나에게 마흔이 넘어 갑자기 주어진 엄청난 유산은 바로 하루 두 시간의 새로운 습관이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사자의 인생을 발견했고, 매일 그렇게 살고 있다."  p.175 

강점을 발견해서, 그것을 집중해 연마하고, 최고가 되었다는, 그의 성공 스토리는 단순하다.  습관이란 단순해지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반복해 하는 걸 지겨워 한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기 일수다.  낙타와 사자의 차이점이다.  그들의 현재는 어떤 모습인가?  여전히 온 몸에 하기싫은 일이란 짐을 칭칭 두르고, 힘겨운 낙타가 되어 인생이란 고달픈 사막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구본형처럼 사자가 되어야 겠단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것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러한 직업,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기적일지 모른다. 몰랐는가?  사람은 기적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는 존재다(에필로그)" 

오늘 평범한 직장인으로 매일 매일의 반복된 일상을 짐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위대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내게 주어진 일에 만족하는 것은, 이제 식상한 미덕이다.  그것에서 벗어나자.  필살기(必殺技), 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사람을 반드시 죽이는 기술, 이건 좀 무시무시한 뜻 그대로를 옮긴 해석이다.  대개 필살기는 프로 레슬링에서 상대편을 단박에 쓰러트리고 게임을 종결짓는 뛰어난 기술을 가리킨다.  평범함을 넘어서자.  이 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 을 품는 것은 그 자체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책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하고 있다.  모든 직업인에겐 필살기가 필요하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줄 자신만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은 모든 직업인의 이상이요, 의무다.   평생 직장은 없다.  회사는 시시때때로 당신의 목에 메스를 들이밀 궁리를 하고 있다.   그 시간이 오기전에, 우리는 낙타에서 사자로의 변신을 완료해야 한다.  책을 덮고 나서, 나의 필살기를 궁리해 보았다.   수첩의 한 페이지에 10년 후, 나의 필살기가 될만한 것들을 적어본다.   이건 작지만 위대한 한걸음을 내딛은게 아닌가?  그간 막연하게 생각했던 자아실현의 큰 로드맵을 확인하기에 구본형의 책은 유용했다.  한가지, 구본형 필살기의 추진로켓에 장착된 성능좋은 엔진이 다름아닌 `책읽기와 글쓰기'라는건  흥미로운 `진실'이다.   

 


 

2010.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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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6-2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본형의 필살기가 개츠비님께 명품 자기 계발서였다면 제게는 이 리뷰가 명품이네요.

개츠비 2010-06-26 10:24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과찬이세용^^ 좋은 책에서 좋은 리뷰가 나오는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