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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1. 소설 강남몽
열 여섯살 쯤 되었을까? 처음 몽정을 하고 아랫도리가 축축히 젖던 날 아침이었을 것이다. 새벽녘에 꿈속에서 벌어진 이상야릇한 스토리와 느낌은 사춘기인 내게 그 이후 한동안 두가지 감정에 파묻히게 했다. 정체모를 죄책감과 다시 그 느낌을 찾아왔으면 하는, 그런 탐닉 같은 것 ! 일평생 한 성숙한 남성을 지배하는 성적 욕망은 언제나 사춘기 시절 몽정 이후의 이 두 감정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건 아닐까?
꿈은 인간의 의식 1% 아래, 잠재돼 있는 무의식 99%의 발현 같은 것이라고 프로이트가 말한 적이 있다. 잠이 드는 그 사이, 인간은 도덕과 윤리, 남의 눈총 같은걸 의식하지 않고 깊은 꿈속에서 마음껏 욕망을 향유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본능의 향연이다. 꿈은 그러므로, 어쩌면 도덕과 윤리보다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일지도 모른다.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강남몽>은 이 거짓없는 꿈에 관한 가장 구체적인 서사다. 욕망에 충직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충분히 분노할 소재들이 많다. 출세를 위해, 나라를 팔고, 조국을 배신하고,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거나, 그 밑 수하가 된 사람들이, 해방 후 명찰만 바꿔차고, 또다시 민족을 들먹이고, 조국에 봉사하는 `공무수행'의 앞잡이가 된 사실 말이다. 이런 이야길 읽으니 현대사의 잘못 끼워진 단추가 어디부터였는지 알게 되었지만, 가슴속 답답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해방후, 좌우의 이념 대립 속에서 조국의 분단을 통해서라도 정권을 잡고 싶은 이들(이승만)을 통해, 수많은 국민이 무참하게 학살되고 좌익으로 몰려 몰살되는 역사를 돌아보면, 한동안 지방선거 분위기에서 유행어처럼 번진 `좌파타령'의 기원을 유추할 수 있다. 그 정점에선 성폭행을 일삼고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두고, 모 인사가 좌파교육 때문이라고 일갈한 것은 유머를 넘어 의미심장한 역사적 속사정을 품고 있었던 것임을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1% 가운데 1%의 성지, 강남 그 땅덩어리가 가진 역사를 드러내는 일은 그러므로, 총제적으로 강남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몽정기, 그 욕망의 태동과 현재를 돌아보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황석영은 힘있는 문장과 구체적인 서사, 굵고 탄탄한 문장으로 우리 시대의 강남의 과거와 현재를 그려낸다. 강남은 비열하고, 약은 이들, 욕망에 충직한 정치인,부자,깡패들의 소굴이자, 그 땅에서 쫓겨난 무능하고, 가난한, 어쩌면 게을렀을지도 모를, 바보같이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는다. 아니, 소설 <강남몽>은 강남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주위를 포진한 그 다양한 개성을 가진 욕망에 포위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약간은 비열하고, 조금은 정직한, 아니... 속시원히 그렇게 말하자. 그냥 보통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2. 아름답지 못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꿈을 갖고 있다. 그것은 경제적인게 주를 이룬다. 사실 강남의 꿈은 잘 살아보자는 꿈이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저마다 달랐다. 정직하게 일해서 대한민국 1% 꿈을 이뤘다고 하는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부지런한 것은 미덕 가운데 하나일 지언정, 강남 부자가 되는 길은 아니었다. 그러면 소설속 인물들은 어떻게 비열한 꿈을 실현 시키는가? 박선녀의 경우,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컸지만 뛰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모델로 발탁되고, 스폰서가 붙고, 다시 강남 술집이 번져나가던 시절 마담이 되고, 상류층과 조폭의 협력과 비호를 받으며 돈을 번다. 이후 대성백화점(삼풍백화점)의 회장 김진의 세컨드가 되어, 명실상부한 강남의 여자로 거듭난다.
대성 백화점의 회장 김진은 어떤 인물인가? 일제시대 만주에서 일본군의 끄나풀이 되어, 독립군을 색출하는데 앞장선다. 그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평화로운 조국에 태어났다면, 그는 아마도 잇속에 밝은 장사꾼이 되었을 듯 하다. 일제 이후, 미군정을 거치며 다시 그는 미군의 앞잡이가 되고, 유신 정권 하에서도 철저히 군사정권에 봉사한다. 그는 변신의 귀재인데, 그의 꿈은 명예나 권력 보다 `돈', 안락한 삶에 닿아 있다. 현실의 강남과 가장 닮아 있는 꿈이다. 그가 박선녀를 훗날 세컨드로 집안에 들이는건 그러므로 당연한 듯 하다. 부부란 쿵짝이 맞아야 하는거니까.
"나중에 합류하게 되는 김진 또래의 이희철과 더불어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어느 쪽에 붙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가를 청년시절부터 피나게 수련해온 셈이었다." p.79 황석영 <강남몽>
강남의 부동산을 주무르기 위해, 정권의 실세와 내통하여,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고 되파는 일을 반복해서 돈을 모으는 심남수, 7,80년대 호남 주먹에서 서울로 상경해 서울의 폭력조직을 통일하는 홍양태(조양은)과 강은촌(김태촌)의 이야기는 강남을 꿈꾼자들의 다채로움과 비열한 특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시대의 어두움(군사독재)이 횡횡하던 때, 이 비열한 역사를 빗겨나 자신의 수완(투기,폭력)으로 강남의 꿈을 이루고자 한 층이다. 박선녀와 김진 못지 않은 가장 `강남스러운' 세력이다.
무너진 대성백화점의 콘크리트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박선녀와 임정아다. 임정아는 대성백화점의 노동자다.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이 소설에서 빈한한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강남의 꿈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인물을 소설의 시작과 끝에 배치한 작가는 소설의 그 때묻은 인물들과 대비하여, 정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작은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던걸까? 그녀는 무너진 백화점의 유일한 생존자로 17일만에 구조대에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생각하기에 따라, 강남의 상징이 무너진 자리에서 소설속 가장 빈한하고, 깨끗한 시민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떤 상징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 나 재력이 있는 사람야, 근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박선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임정아가 천천히 말했다.
- 내 동생 휠체어를 왜 사모님이 사주죠? 그러구 집두요. 저는 임시직인데요. 우리 부모님은 시골서 올라와서 여태껏 일만 죽도록 하구두 산동네를 못 벗어났지요.
- 그러니까 앞으론 잘살아야지.
- 그렇지만...
정아는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 p.338
소설은 이 주요한 인물들의 삶을 일제시대와 현대 강남에 이르기까지의 객관적 역사에 담았다. 등장인물들은 이름을 약간씩 변형주긴 했지만, 모두가 실제의 인물들이나 마찬가지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도지만, 가명속에서 역사를 짓는 인물들은 가상이 아니라 실존인물들이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섬뜩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 교과서 속에서 수박 겉핥기로 배운 우리 현대사의 암울한 표정들이, 소설 중간중간 독자들을 엄습한다. 해방 후 좌우 대립속에서 수백만의 국민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제주 4.3 사건은 일부 좌익 세력을 핑계로 이승만이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임에도, 2000년에야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5.18과 같은 특별법이 제정되어 명예가 회복되고, 보상이 이루어졌다. 군사정권은 개발지상주의 정권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 특혜를 받은 계층은 부동산 투기로 정권과 이윤을 나눠먹는다. 부정한 정권은 야당을 탄압하는데 조폭들을 동원하는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반공을 국시로 내걸며 무고한 사람들을 박해했고,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며, 잇속을 챙겼다. 그런 역사적 사실 한복판에서 태어난 사생아가 바로 `강남제국'이었던 것이다. 강남은 수도 서울의 한 지명이 아니라, 이 부정한 태생적 한계를 품고 있는 장소임을 이 소설은 고발한다. 오늘날 향기로운 커피점이 가득한 강남의 거리를 활보하는 유한층은 그 태생이 본래 악취날리는 역사의 풍광을 지나쳐왔음을 알고 있을까?
3. 현대사의 몽정기[夢精期], 민낯을 드러내다
소설을 소설로만 읽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판타지가 현실과 연결될 때 느끼는 불편함은 독자를 괴롭힌다. 그러나, 황석영의 신작 <강남몽>은 판타지가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의 현재요 과거다. 아직, 미래라고는 하지 말아야겠지.
사람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돈,은 충분히 그럴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일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것을 우리는 확인받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부자가 되는 길에는 난관이 자리한다. 그 난관을 모두 거친 이들은 전혀 정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때를 묻히고야 부를 얻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아닐까?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이다. 쓰인지 2천년이 넘은 성경속 이 말은 가진자들이 듣기 거북해하는 불변의 진리인가?
이 시대, 강남은 모든 것을 주무른다. 이 시대의 주류들은 강남을 근거지로 산다. 교육과 문화를 선도한다. 부자 동네는 곳곳마다 CCTV가 설치되어 안전을 보장받고, 도로에 깔린 돌하나 장식 하나까지도 격이 다르다. 귀족들의 집성촌 같은 곳이 현대의 강남이다. 사람들은 강남을 부러워하지만, 오늘의 강남이 어떻게 그러한 위치에 서 있게 되었는지 몰랐다. 부자를 털면 먼지가 아니라 황사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은 강남이란 이름을 가져와 현대사의 부정과 비리, 자본의 비열함을 꼬집으려 했지만, 여기서 은유같은건 필요치 않다. 강남의 사연은 은유를 필요치 않는 현대사의 진실이기에.
황석영은 능숙한 솜씨로 이 터의 뿌리를 파고들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강남의 외피와 다른, 더럽고 추잡한 이면을 독자는 확인하고 놀랐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고자 부자들은 자신의 품으로 돈을 끌어안고 두뇌를 비상하게 회전시킨다. 목표를 정하곤 날렵하게 몸을 날린다. 정의같은건 그들의 사전에 없다. 권력욕에 목이 마른 자들은 해방 후 끊임없이 양민을 학살하고, 정권에 반대하는 개인을 사찰하고, 죽어버린 이념을 들먹이며 빨간칠을 해왔다. 이유는 한가지,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였다. 그 약은 이들이 세운 천국이 바로 강남공화국이다.
나의 몽정기는, 사춘기 이후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꿈속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죄책감과 욕망은 여전히 순환되지만, 그것은 꿈속의 이야기는 아니다. 생의 몽정기는 끝났다. 우리에게 광복후, 민주주의의 닻을 올리기 까지의 현대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몽정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 민주주의를 위해, 좌우 대립과 민족전쟁(6.25), 군사정권의 독재와 쿠테타, 민주화 운동를 거쳐야 했다. 우리는 역사의 몽정기를 통해, 이땅에 민주주의를 힘들게 모셔왔다.
그러나, 사춘기의 몽정기가 끝나자 본격적인 욕망이 인간을 잠식해 들어간다. 거기에 죄책감이란 순박한 잣대가 없다면 욕망은 통제불능이기 쉽다. 더이상 우리에겐 전쟁이나 양민학살의 이야기, 군사독재 시절의 혹독함은 횡횡하지 않지만, 자본에 대한 탐닉은 꿈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상이다. 욕망은 꿈속에 있지 않고 대로를 활보한다. 괴물같은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 이윤의 논리, 자본의 논리가 파고든다. 욕망이 꿈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민낯은 쑥스럽지 않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동격이 된지 오래다. 민주주의반대는 공산주의라고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는것처럼, 우린 착시현상을 경험한다. 그 논리 앞에선 겨우 100년을 살다 사라지는 인간보다 아니, 5년을 채우고 물러서는 권력보다 수억배는 더 오래 존재할 자연이 훼손된다. 지금도 4대강은 24시간, 장마철을 가리지 않고, 파헤쳐지고 있다. 모두가 돈, 탐욕, 이익, = 민주주의, 선이 되어버린 시스템 덕분이다.
황석영은 삼풍백화점을 빗댄 대성백화점이 무너지기 몇 시간 전의 징조와 무너짐 사이의 17일간을 소설의 처음과 끝에 배치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대성백화점의 수장인 김진은 끝까지 꿈에서 깨어나길 거부한다. 건물에 균열이 가고, 흔들리는 징조가 찾아와도, 완전 폐쇄가 아닌 부분 폐쇄로 건물 보수에 그친다. 그는 자본이란 단꿈에서 깨어나길 원치 않는다. 백화점 안 무고한 시민들을 남겨둔채 혼자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김진은 일본시대와 해방후 혼란기, 독재정권에서 수완을 발휘해온 인물이다. 그는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 자본주의의 속성을 가장 리얼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권력, 역사, 정의, 가치, 생명, 자연은 김진이란 인물의 반대편에 올곧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꿈은, 깨어나기 마련이다. 아니 잘못된 꿈은 억지로라도 깨워야 한다. 건물이 무너지고 김진이 사랑했던 세컨드, 박선녀가 죽는다. 써야 할 그 많은 돈을 남겨두고 말이다. 황석영은 짧은 후기에 이런 말을 남긴다.
"중국 고전 <홍루몽>은 주인공이 다른 이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현실의 자기 그대로인가 하는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서서히 몰락해가는 상류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현실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작가의 말
강남의 꿈은 어째서 문제적인가? 강남은 왜 깨어나야 하는 꿈인가? 책장을 덮고 난후 내게, 소설 <강남몽>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201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