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
김병완 지음 / 함께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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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세대를 타켓으로 삼는 자기계발서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특정 세대가 한정 돼 있다는 것이다. 10대나 50대, 60대를 주제로 한 자기 계발서가 흔치 않은 것이다. 출판 시장의 주 독자층이 20에서 40대 사이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일까? 출판 마케팅 차원에서 10대나 50대 이후의 독자들 보다는 책을 많이 사보고 자계서 독자들이 포진해 있는 층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이해할 만 하다. 하지만, 그것보단 20부터 40대 까지가 인생을 설계하고 꿈꾸고 바꿀 수 있는 기회이자 마지노선이며 자계서들이 이야기할 주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대는 세상에 무지한 청년이 거친 세상에 발딛는 시기다. 30대는 온 몸으로 그 세상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경험의 시기다. 2,30대는 주위의 멘토가 절실한 때다. 자계서들이 이 층의 독자들 사이에서 호황을 누리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40대는 어떤가? 공자가 불혹(不惑)이라 이름 붙인 시기가 바로 40대다. 공자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조어(造語)는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려 미혹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하여, 공자는 40대부터를 진짜 어른이 되는 시기로 규정했다. 심지가 굳어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나아갈 길에서 이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40대를 돌아보면 이 말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심지가 굳고 자기 삶에 철학이 있는 40대가 우리 사회에 흔치 않다. 먹고 사는데 정신이 팔려 철학 따윈 생각할 겨를도 없고, 매일 반복된 삶 속에서 중심없이 방황하며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채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40대, 다시 한번 공부에 미쳐라>의 저자 김병완은 40대를 보내는 해법으로 `공부'를 제시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40대 공부란 토익처럼 승진을 위한 도구로서의 공부가 아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40대 공부는 그렇게 협소한게 아니라, 차라리 포괄적이고 전체적이다.

 

저자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바로 40대 공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2,30대의 실패나 성공은 인생 워밍업에 지나지 않는단다. 20대에 실패한다는 것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30대에 성공한다는 것은 어쩌면 득보다 해될게 더 많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천재들의 집합소라는 카이스트에서 20대 청년들이 얼마 전 4명이나 자살했다. 또, 우리나라 20대 사망률 1위가 자살이다. 젊었을 때 너무 이른 성공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도 흔이 있다. 20대의 실패와 30대의 성공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게 현실이다. 그들은 천재이고 유능할지 모르지만, 인생공부는 덜 된 게다. 저자는 청년기의 성공과 실패를 겪고 도달한 40대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걸 가능케 하는것이 바로 40대에 시작하는 공부라고 한다.

 

10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사람의 생명주기가 다르다. 100년 전에는 40대에 죽음을 생각했다면, 지금의 40살은 80년 인생의 출발점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의료,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은 40살에 제 2 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세대의 인류가 맞이하는 축복이라고 저자는 간파한다. 40살까지 한정된 삶을 살았던 과거의 사람들은 인생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의 주장대로 청년기의 다양한 경험을 본전삼아, 40대에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 20대 때, 좋은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으면 평생을 그 지식으로 우려먹고 잘 살 수 있던 시대가 분명 있었다. 오늘날의 시대는 그와 정 반대다. 더 이상 대학에서 받은 4년치 교육으로 평생을 버틸 수 없다. 40대 다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또, 우리가 맞이하는 40대는 20대에 실패한 사람에겐 패자 부활의 기회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패자부활의 기회가 찾아오는게 아니다. 40대에 공부하는 사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만이 그 기회와 마주할 수 있다.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도 공부하지 않으면 40대에는 뒤쳐진다. 학벌위주의 사회라지만, 사람의 진면목은 결국 실력으로 드러나고 만다. 능력이 있는 자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을 세상은 절대 그대로 놔두지 않는 법이다. 우린 흔히 기회가 없음을 한탄하곤 하지만, 기회의 존재가 아닌 기회를 잡을 능력이 없음을 한탄해야 한다는 이 책의 한 귀절이 크게 마음에 와 닿는다.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은 나이인 40대는 비로소 타인과 비교를 위한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다. 오롯이 자신을 위한 공부,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할 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시험이 없기 때문에 진정 즐기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에 제대로 된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공부, 그리고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참된 자아 완성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40대는 무엇보다 공부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는 점이다." 김병완 <40대, 공부에 미쳐라> p.58

 

이 책은 40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무척 도움이 될 게다. 지금 40대를 보내고 있는 독자들도 일독하면 좋은 책이다. 책의 주장은 한결같이 `공부'에 가 닿는다. 회사와 가정, 친목과 운동, 미팅과 회식 등에 휩쓸려 다니는 40대가 대체 언제 공부할 시간을 만든단 말인가?, 항변하는 사람도 있겠다. 주위에 둘러보아도 책을 가까이 하는 직장인이 흔치 않다. 40대의 삶을 일과 유흥으로 반분하는 부류도 흔하다. 하지만, 50대나 60대를 응원하는 자계서들이 흔치 않은 이유를 알겠는가? 5,60대에겐 인생을 바꿀 기회가 거의 없다. 5,60대는 40대에 뿌린 씨앗을 수확하는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40대는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는, 또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 봐야 옳다. 저자가 40대에, 공부에 미쳐라고 한 이유다.

 

40대에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했다. 동,서양의 유명 인사 가운데 젊은 시절, 실패를 딛고 40대에 공부를 시작해 성공한 사례를 많이 들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전반부의 주장이 반복되는 지루함만 제외한다면, 꽤 잘 쓰여진 자기계발서다. 좋은 사례와 좋은 인용구와 저자의 탄탄한 논리가 독자의 동기를 부여하고, 의욕을 불러온다. 저자 김병완은 삼성그룹에서 10년동안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뜻이 있어 회사를 그만 둔다.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고향 부산에 내려와 3년 동안 9천권의 책을 읽었다 한다. 이 책에서 저자의 삶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어 아쉽지만, 공부에 미친 자신을 투영한 듯 보인다.

 

주목할 것은 책에서 정의하는 `공부'가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은연중 정의하는 공부는 다양하고 끊임없는 독서를 통한 `인생공부'에 가깝다. 좋아하는 경지를 넘어 즐기는 경지로 넘어서는 공부이기도 하다. 40대, 진정 우린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인생에서 가장 절대적인 공부의 주제는 무엇일까? 사업과 학업, 혹은 승진을 위한 공부인가? 아니라고 본다. 특정한 주제를 정해놓지 않은 독서가 무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삶의 목적이 돈과 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린 `나'를 찾기 위해 공부한다. 삶을 알기 위해 공부한다. 그런 공부를 통해 세상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하고, 즐길 수 있다. 이런 공부는 살아갈 이유를 충전시킨다. 그런 공부를 통해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 사람이 행복하다. 결국, 우린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하는 거다.

 

 

201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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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귀환 - 위기의 시장경제 경제학 거장에게 길을 묻다
마크 스쿠젠 지음, 박수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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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경제는 이슈였고 문제였다. 한번이라도 경제 문제 없었던 때가 있었던가? 지금도 여전히 세계 경제는 위기에 봉착해 있고, 국내 경기와 물가는 불안하다고 한다. 내년 경제 전망치는 예측임에도 희망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왜 거시적 경제 상황과 문제들에 신경을 쓰는 걸까? IMF를 겪으며 경제문제가 곧바로 개인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국가 관료나 경제학자들의 관심사에 머물던 경제학이 대중들의 관심사로 등장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사람들은 경제 위기의 파고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복습하게 된다. 교양 경제학서들이 출간 붐을 이룬 것은 이같은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등에 업고 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지식은 실수를 막아주고 올바른 선택을 돕는다. 경제상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경제와 금융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보험,주식,펀드,저축 등 개인의 일상에서 선택하는 금융 상품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보는 수년 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경제 이득과 낭비의 결과물을 만든다.

 

실용적인 경제,금융 지식이 개인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원리에 대한 교양적인 이해도 필수적이다. 그것은 세계 경제와 세계 역사를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투자 전문가이며 경제학 교수인 마크 스쿠젠의 저서 <거장의 귀환>은 경제학이 흘러온 역사를 경제학의 거물, 세 명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그들은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 그리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경제학에 문외한인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이름들이다. 경제학을 논할 때, 언제나 그들을 피해갈 수 없으며, 여전히 현대에도 경제학의 거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근대 경제학의 출발점을 1776년으로 본다. 왜냐면, 1776년 3월 9일 대서양 건너편 영국에서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버금가는 기념비적인 저작'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총 1000 페이지에 이르는 2권짜리 책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즉, <국부론>이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책의 저자는 사색을 즐기고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며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도덕철학을 가르치던 애덤 스미스였다. <국부론>의 출간은 전 세계에 울려퍼진 지적 총성이었다고 마크 스쿠젠은 단언한다. 왜냐면, 중상주의를 강조하던 국가주의 경제가 이제 개인의 부에 집중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길을 <국부론>은 설명하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부를 증진할 수 있는 원리를 설명한다. 그 전 중상주의 경제에선 국가의 부는 식민지를 개척하고 약탈하며, 식민지와 거래에서 무역수지 흑자나 은의 축적 등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부의 증진 기법을 `분업'에 뒀다. 분업을 통한 노동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산출량을 늘리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 국가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부여하라'고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주장한다. <국부론>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국가의 개입을 받지 않는 자유의 원리'다. 스미스의 이 논리는 오늘날까지 여러가지 주장으로 변주돼 온 중요한 테마다.

 

"위대한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생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스스로에게 가장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한 곳에 자본금과 근면성을 동원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인간의 가장 신성한 권리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19세기로 들어서자 애덤 스미스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스미스가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창시자였다면, 마르크스는 약탈적 자본주의의 파괴자였다. `스미스가 개인의 이기심 추구가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마르크스는 이기심의 추구가 무정부상태와 위기, 그리고 사유재산에 기초한 체계 자체의 소멸을 불러올 것'으로 봤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공포를 불러왔고 1세기 넘게 자유방임 자본주의에 약탈당한 노동자들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을 선동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호소하며 `공산당 선언'을 앵갤스와 합작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사슬밖에 잃을 것이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고 호소하던 혁명적인 경제학자의 말에 자본가들의 횡포와 빈곤에 고통받던 노동자들이 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떤 평론가는 마르크스를 `인류의 진보라는 미명 아래 역사상 가장 많은 죽음, 고난, 퇴보, 좌절 등을 초래한 사람'으로 혹평했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긍정적인 면도 나름 평가한다. 마르크스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 최초의 경제학자였다. 오늘날 비평가들은 마르크스를 철학자와 역사가,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문학비평가로서 살펴봐야 할 정도로 그는 다작으로 유명했고, 모든 문제들에 관해 끊임없이 글을 썼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그토록 길고 장황하고 추상적이고 지루하고 형편없게 쓰였고 복잡한 미로 같은 책이 어떻게 이 세계의 절반에서 탈무드와 코란이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중략) 카를 마르크스는 전적으로 무시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경제이론에는 결점이 있고, 그의 혁명적 사회주의는 파괴적이며, 그에게는 성급한 점이 엿보이지만,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철학적 분석에는 분명 관심을 기울일 만한 미덕이 있다." p.161 마크 스크젠 <거장의 귀환>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불안전한 자본주의는 또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은 산업생산량이 30퍼센트 넘게 떨어지고, 상업은행은 3분 1 이상이 파산한다. 실업률은 25퍼센트 이상 치솟고 주가는 88퍼센트 폭락한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은 유럽과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자유세계의 자본주의는 실업과 굶주림, 전쟁 등에 대한 공포를 불러왔다. 이 위기의 시절,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등장한 경제학자가 있었다. 바로 케임브리지학파의 거물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1936년 케인스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란 저서에서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완전고용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즉,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또 그는 경제의 국유화, 물가 임금의 통제, 공급과 수요의 미시적 토대에 대한 개입 등에 반대한다. 스미스의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파괴 이론을 넘어서 그는 새로운 정반합의 변증법을 경제학에 적용하고자 했다. 케인스의 해결책은 ` 정부가 자본주의라는 불안한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서 그 자동차가 다시 번영의 길로 달리도록 도와주는 것' 이다. 그것은 `물가와 임금을 떨어뜨리는 대신에 의도적으로 적자예산을 운영하는 것과 총수요를 늘리고 공공사업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케인스의 총수요관리 모형은 우울한 과학이 낙관적 과학으로 변모한 계기가 되었다. 즉 인간은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필요한 경우 정부가 총수요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뿌리를 뒤흔들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특유의 경기순환을 뿌리 뽑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러면서도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방임 정책을 미시적 차원에서 추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222 마크 스크젠 <거장의 귀환>

 

2009년도 대한민국학술원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기도 한 마크 스쿠젠의 이 책은 경제학에 문외한인 독자들에게 지식의 기초적 보폭을 넓혀주는데 도움을 준다. 경제학의 역사적 원로들이자 경제학을 창시하고 수정한 이들 세 거장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개인사에 대한 기록을 양념처럼 바르고 있다. 그것이 지루한 경제학 이론과 흐름을 읽어내는데 쉼을 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서술하고 있는 주장은 그를 미국식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는 서문에서 한국 경제가 치중해야 할 앞으로의 과제를 `자유무역을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대놓고 주장한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원흉인 미국식 신자유주의자의 탐욕이 깃든 발언이다. 경제학 거장들을 분석하고, 경제 이론사에 대한 충실한 해설이란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그것을 종합하는 서술자인 마크 스쿠젠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201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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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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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20대 시절 아프리카 사하라를 횡단하는 모험을 했다. 열 살 때 본 한 편의 영화가 그를 사하라로 이끈 것이다. 그가 본 영화는 196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석권한 <아리비아의 로렌스>였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로렌스는 잘 생긴 외모에 듬직한 모습으로 낙타 위에서 칼을 차고 사막 위를 질주했다. 이 영상은 어린 시절 그가 이슬람 문화에 매혹당한 기회였다. 또, 그것은 젊은 시절 방랑하던 그를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으로 이끌었고, 그 경험을 바탕삼아 책 한 권을 써냈다. 베스트셀러가 된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다. 책의 성공으로 그는 작가와 강사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우연히 관람한 영화 한 편에서 그는 인생의 진로를 구축했고 결정적인 성공을 이루어 낸 것이다. 되돌아보면, 우리 삶도 사소한 `끌림'과 우연한 `기회'를 통해 길을 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무엇에 끌리고 있는가, 아는 게다. 스티브 도나휴의 두번째 책 <인생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은 이같은 무의식적인 `끌림'을 내면의 나침반으로 정의한다. 인생에서 나침반은 지도가 표시해주지 못한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친절한 지도에 의지하지 않고도 여행을 가능케 해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던 저자는 강연차 미국의 남부 플로리다의 바닷가에 도착한다. 호텔에 여장을 푼 그는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모래사장을 걷다가 이상한 풍경과 마주한다. 해안 여기저기에 경찰 저지선이 설치되고 사람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건 이제 막 부화하는 바다거북 새끼들을 보호하는 폴리스라인이었던 게다. 수백마리의 바다거북이 모래 속 알에서 부화해, 한꺼번에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은 장관을 연출한다. 그 새끼 바다거북들은 이제 그 바닷가를 떠나면 수십년 동안 대양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떠나, 언젠가 다시 자신이 태어난 그 해변으로 정확히 돌아올 것이다. 그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을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 자세히 묘사한다.

 

"둥지를 떠나는 일은 바다거북의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스티브 도나휴 <인생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p.37

 

이 책에서 저자는 바다거북의 장대한 여정과 회귀를 여섯 가지 부문으로 나눠, 인간의 삶이 가진 여정에 빗대 해설한다. 바다거북은 어떻게 일평생 수천킬로미터를 여행하고, 대양과 대양 사이를 가로질러 정확히 자신이 부화한 해변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걸까? 거북의 몸 속에 지구자기장에 반응해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북의 여행에는 지도가 없지만, 내면의 나침반은 광활한 대양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우리가 내면의 본능적인 끌림을 통해 일평생 무언가에 열정을 쏟아내듯 말이다.

 

바다거북은 둥지를 벗어나 여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그가 주식으로 하는 해초는 바다 속에 있고, 육지에는 거북알을 노리는 천적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거북의 여행은 결국 떠난 자리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여행과 비슷하다. 하지만, 둥지를 떠나, 되돌아온 몇 십년 후의 바다거북은 예전의 연약하고 무지한 거북이 아닐 게다. 저자는 이 점에 착안해 바다 거북에게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자 했다.

 

제목에 `6가지 방법'이란 타이틀을 집어 넣은 건 아무래도 베스트셀러가 된 첫 책에 대한 기대에서 아직 저자가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또, 첫 책이 나오고 6년 동안 후속작을 내지 못한 것은 저자가 느낀 부담감의 반증 같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불행한 가정사를 솔직히 드러낸다. 장성한 아이들을 놔두고 아내와 이혼했던 일, 그럼에도 아이들과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일, 대학 입학을 앞둔 딸 아이의 해외 여행을 기꺼이 허락하고, 여행중에 만난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던 딸아이와의 갈등을 속속들이 고백한다.

 

또, KBS 다큐먼터리 PD의 제안으로 다시 33년 만에 사하라 사막으로 취재팀과 여행을 떠나고, 다큐먼터리를 찍은 일. 그리고 이제 6년의 침묵을 깨고 자신의 두 번째 책을 펴낸 일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제목처럼 이 책에는 그닥 많은 인생의 지혜와 힌트가 숨어 있지 않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치고 무척 정직하게 자기고백적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할 수 있어 좋다.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는 바다거북의 생태를 통해 오히려 독자는 각자 생에 맞서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응용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제목의 무게에 값하진 못하지만, 진정 우리 내면의 나침반의 정체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책 같다.

 

"바다거북과 같이 당신의 나침반도 연습할수록 더욱 정확해진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라. 심장이 뭔가에 끌려 따라갈 때는 특별한 걸 성취하는 데 연연하지 말고 그저 가볍게 연습하듯 따라가라. 그러면 심장에게 당신이 심장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전달될 것이다. (중략) 끌림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목도하라. 당신도 나처럼 작가나 강사가 될지도 모른다." 스티브 도나휴 <인생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p.73

 

 

 

2012.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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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눈물
박경숙 지음 / 문학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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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공간의 역할은 중요하다. 작가에게 공간은 문학이 자라나는 날것으로서의 토양이다. 공간은 소설의 주제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동시대의 사회와 공간을 함께 소유한다는 건 그 사회가 내뿜는 환희와 절망을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일이다. 미주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경숙의 소설집 <빛나는 눈물>은 근래에 내가 읽은 가장 생소하며, 독특한 소설 모음이었다.

 

이 작품집 안에는 9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하나같이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났지만, 결국 그 조국과의 끈을 놓치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들이 떠나간 나라와 정착한 나라는 물리적인 공간만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억과 현재를 지배하는 역할까지 겸한다. 버리고 온 땅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질긴 인연은 이 소설들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표제작 <빛나는 눈물>은 정체모를 한 흑인 노인에게 살해당한 늙은 한국 남성이 혼령이 되어, 살인자의 뒤를 쫓는 소설이다. 현실속에 존재하는 혼령은 죽음 저 너머로 떠나서야 자신이 왜 살해당했는지 깨닫는다. 한국을 떠나기 전 사랑했던 여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먼 이국의 땅에까지 인연과 복수로 연결되는 스토리다. 수많은 사연을 안고 조국을 떠난 이민자들 가운데 온전히 행복한 추억만을 안고 이 땅을 버린 이가 몇이나 될까?

 

소수 이민 사회의 환멸을 다루고 있는 작품도 있다. <검은 파도>의 등장인물들은 방송사와 신문사 소속의 국장이나 여기자들이다. 권력과 재력을 소유한 남성들은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힘없는 여성 기자들을 희롱하거나 복종시키곤 한다. 권력자들의 욕망과 비위를 잘 맞추고 미주사회의 영향력 있는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여기자들의 암투는, 보기에 민망하면서 동시에 서글픔을 안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이민자 사회의 특수성은 아니다. 이 소설의 주제 자체가 권력의 비열한 특성을 표현했다고 보는게 맞다.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블랙리스트>는 상당히 흥미로운 작법으로 쓰였다. 살인사건을 현장감 있는 묘사와 언어로 표현해 낸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남성 미스터 정은 미국의 명문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령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다. 어려운 가정 환경이 아니었다면, 그는 미국 사회에서 남 보란듯 성공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유령 회사의 상사들을 하룻밤 모두 처단한다는 이야기는 훗날 주인공의 꿈 속 이야기로 치환되는데, 누추하고 부정의한 이주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작가는 상상력의 힘을 빌어 처벌하고자 한다.

 

<전생을 봐드립니다>와 <오빠를 묻다>는 다른 성질의 귀향을 다룬 작품이다. <전생을 봐드립니다>의 이모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결코 자신을 토해내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찾겠다며 미국으로 떠났지만' 곧 이혼의 상처를 안고 이 땅으로 귀향한다. 이모는 `내'가 연 카페의 자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찾아오는 사람들의 전생을 봐 주는데, 이생에 만족하지 못해 전생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이생에 충실할 것을 가르친다. 이모의 방랑과 방황속에서 이민자의 불안정한 마음 상태가 전해온다. <오빠를 묻다>에서 `나'는 친오빠의 장례 때문에 귀향한 인물이다. 그는 고향에서 살아온 과거를 되짚고, 뿌리내리지 못한 미국에서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한다. 이승을 홀가분하게 떠난 오빠와 다시 이승의 환경에 불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는 내가 묘한 대조를 이룬 작품이다.

 

"뿌리가 없잖아. 여기에 이렇게 뿌리를 두고 나 홀로 절단 당한 채 떠나간 그곳에서 내가 자생하는 길은 홀씨식물이 되는 것이었어. 남의 나라 땅에서 내 나라 말로 글 쓰는 일, 당연히 음지의 일이야.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 자체가 그 나라의 음지인지도 모르지만." <오빠를 묻다> 271쪽, 박경숙

 

박경숙은 생소한 작가다. 미국으로 이주한지 20여 년이 되어 간다고 그는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더불어 이 작품들에 대해서 "이국 생활의 불안정과 땅을 바꿔도 버려지지 않던 안일한 습성 사이에서 태어난 못난 자식들이다"고 썼다. 이민자 문학을 알지 못하고 읽을 기회가 없는 독자들이 이 책을 잡는다면, 아마도 그는 어느 화성인이 쓴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요즘 한국 내 젊은 작가들의 체취와 습성이 이 소설가에게선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한국 문단의 과거나 현재의 경향을 따르지 않는다. 이 독특함이 이 작품집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 단편집에 실린 중,단편 소설들은 독창성 못지 않게 보편성을 띤다. 그것은 인간을 우주의 어느 공간에 유폐시켜도 사라지지 않을 성질의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 쓰기는 이국땅의 낯섬과 외로움에 버려진 한 영혼의 절박함이자 고백으로 읽힌다. 각 작품마다 제각각의 서사와 인물이 새로운 사건을 짓고 허물지만, 소설집의 지반을 이루는 그 견고한 기초는 거친 세상을 헤쳐가는 한 여린 영혼의 힘겨운 투쟁이다. 여기에 이 작품들에 세계 문학으로서의 확장성이 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자기 치유의 효능을 가진다. 박경숙의 작품집을 읽으며 치유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위대한 문학이 아니어도, 잘 팔리는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 최고의 독자는 일차적으로 자기자신이다. 그녀의 글쓰기는 고달픈 이민 생활의 활력소 였을 듯 하다. 그 절망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었을 게다. 그는 지금도 무언가를 쓰고 창작열을 불태울 것 같다. 그 기약없는 고통과 외로움이 작가의 숙명이다. 나는 그녀의 힘겨운 창작 활동에 먼 화성인의 시선으로 응원을 보낸다. 세상의 모든 글쓴이가 그렇듯, 그도 위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쩌면 글쓴이의 고통과 절망의 울림은 독자에겐 밤하늘의 별처럼 적막하고 고요한 것이 아닐텐가.

 

 

 

20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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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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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한 대선후보 안철수가 책을 냈다. 지난 7월 중순, 그의 책은 서점 판매대에서 소위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출판사는 밤새 윤전기를 돌려도 서점에 책을 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작은 헤프닝도 있었다. 대형서점에만 안철수 책이 공급되고 있다며, 동네서점 책방 주인들이 출판사를 성토하고 나섰다. 책을 주기적으로 구입하고, 출판동향에 관심있는 어느 독자도 책의 출간과 관련해서 이러한 기 현상을 본 예는 극히 드물다. 안철수의 책처럼 출간되는 기십프로의 책만 이 정도의 관심과 판매고를 이룬다면, 건국의 아버지 김구 선생이 간절히 꿈꾸었던 문화강국의 꿈도 그리 멀지 않을 듯 하다. 안철수 현상은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계에도 긍정의 영향을 미치는 있는 게다.

 

<안철수의 생각>은 비교적 일독하기 편하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분량도 적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로 책을 묶은 것이다. 인터뷰어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제정임이다. 이분의 프로필을 보니 기자경력이 탄탄하다. 주요 일간지에서 14년간 현장 기자로 일했다. 이 책에서 제정임은 안철수가 자신의 생각을 주제별로 잘 풀어낼 수 있도록 시의적절한 질문들을 던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정임은 평범한 질문자에 그쳐 아쉽다. 뭔가 날카롭고 까다로운 질문들을 날려줄 것을 독자들이 기대했다면 약간은 실망할 것이다. 책이 급박하게 쓰이고, 묶이다보니 인터뷰어의 준비 기간이 불충분했을까?

 

하지만, 이 책은 하나의 목적을 갖고 출간된 책이다. 대중은 그가 연말 대선에 나올지, 안나올지 그게 궁금하다. 모두 알다시피 안철수는 이 책에서 그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았다. 걔중엔 그의 이런 태도를 신비주의나 소신부족으로 치부하는데, 나는 신중함과 진정성의 연장선에서 살피고 싶다. 그간 안철수는 살아오면서 많은 책을 펴냈다. 살면서 흔적을 남기고 후학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그였기에, 책의 주제는 주로 자신의 경영 현장과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경험을 글로서 풀어낸 것이다. 사실, 그간 안철수의 책을 한번도 읽은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안철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왜 사람들은 안철수에 대해 이렇게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걸까?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고나서 많은 이들이 그의 삶과 이력을 알게 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20-40대 넓게는 60대까지도 안철수를 지난 몇 십년간 지켜보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의 소신대로 흔적을 남기고 사회에 긍정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컴퓨터를 최초로 소유하게 된 1990년대 초, 안철수는 PC통신과 PC잡지의 유명 인사였다. 그는 백신연구소를 만들기 전부터 백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인에게 무료 배포하는 일을 해왔고, 많은 이들이 안철수를 통해 자신의 PC를 바이러스로부터 지켰다. 그 당시 PC 통신 자료실에서 안철수 백신은 필수 다운 항목이었다. 그런 그가 20년 후, 대한민국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등극할지 누가 알았던가 ?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갓 백신업자가 왜 이 시점 정치권을 기웃거려야 하는 걸까?

 

<안철수의 생각>은 그 질문에 대한 안철수 나름의 답이다. 대선이 4개월 남은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그간 안철수가 써냈던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한번도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인 시선으로 파헤친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의 비판은 날이 서 있지 않다. 수더분하고 차분한 그의 인상처럼, 인터뷰어의 질문에 유순하게 답한다. 하지만, 그의 표현처럼 인상이 부드럽다고 선한게 아니라 `선하면서 강할 수 있고 반대로 악하면서 약할 수 있다' 그의 답변은 유순하면서 강인하고 명확하다. 그는 자신이 지켜본 우리 사회와 정치를 작정하고 비판하고 분석한다. 그의 비판은 경험과 지식에 바탕을 두고 논리적으로 전개 된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세 가지 단어로 함축한다. 정의와 복지와 평화가 가득한 나라다. 이 단어만으로 그를 기존 정치인과 차별화 시킬 수 없다. 모든 정치인이 흔하게 입에 담는 말이 바로 이 세가지 단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놀란 것은 그가 풀어놓는 비판과 전망이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것이다. 그의 비전은 특별한 대한민국 만들기에 있지 않다. 미래의 유권자인 독자에게 어떤 환상을 심어주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 홍보를 하는데선 선수답지 못하다. 정치인은 약간의 과장도 필요한 법인데, 그는 너무 밋밋하게 주장하고 비판한다. 세련된 수사도 전혀 없다.

 

그런데, 놀랍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슬리는 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의 주장은 몇 가지 점에서 나와 생각이 달랐다. 천안함을 보는 생각, 제주 해군 기지를 보는 생각, 구체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그 정도다.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생각에 흔쾌히 수긍하고, 긍정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나라"(84쪽)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양대 진영을 진보와 보수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 세력으로 규정한다. 안철수에게 "상식"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모멘텀이다. 그는 우리의 정치와 권력 그리고 경제에 기본적으로 "상식"이 부족하거나 없다고 여긴다. 성공한 사업가와 존경받는 교수에서 결정적으로 서울 시장 후보에 나설것을 고민한 것도 바로 그 "상식"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이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협력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절실한 복지 확충, 경제 민주화 같은 과제에 대해서도 `좌파'의 딱지를 붙이며 색깔 공세를 펴는 비상식적 세력이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방해하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상식을 회복하고 합리적인 소통과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의 생각, 91쪽

 

안철수의 생각은 평균치의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다. 그가 대한민국의 미래지도로 들고나온 세가지, 정의와 복지와 평화는 기존 정치인들도 기꺼이 동의할 중요한 의제다. 하지만, 쿠테타와 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일당의 5공화국도 "정의사회구현"을 뻔뻔하게 외친 적이 있다. 정치인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는 행동이며, 화려한 수사보다는 진정성이다. 오늘 안철수가 혜성같이 나타나 기존의 모든 정치인들을 단박에 압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돈이 많아서인가, 말을 잘해서인가, 화려한 스펙과 성공 신화 때문인가.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사람이 널린게 대한민국 아니던가?

 

오늘의 안철수가 그만큼의 대중적 지지를 받는 것은 그가 살아온 내력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온 과거, 바로 살아온 내력이다. 현재 그가 어떤 아름다운 말을 하고, 어떤 고귀한 행동을 하는가 보다는 미래, 그가 어떤 화려한 약속을 내놓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일삼았는지, 살아온 이력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사람은 현재와 미래를 포장할 수 있지만, 과거를 포장할 순 없다. 과거는 신의 영역에 가 있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 포장이 안 된다. 즉,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안철수가 정치를 하던 안하던 그것은 본인이 결정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안철수의 `생각'들을 읽었고 그것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다. 좌파 대학생의 댓글 수준의 글이라거나, 진보언론의 사설란을 옮겨놓은 듯한 사회 평론이라는 둥, 이 책을 폄하하는 정치꾼들의 평가는 가혹하다. 하지만, 이 책의 행간을 읽어나가며 어떤 정략과 숨은 의도와 꼼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람의 진정성이 문장에 묻어나는 책을 읽는 것은 독자로서 가장 충만한 체험이다.

 

좋은 저자는 올바르게 살아온 이력과 철학으로 독자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전파하는 법이다. 나는 안철수의 진정성을 느낀다. 지금껏, 거짓과 술수가 판치는 기존 정치판의 쇼을 밤낮으로 보는 것은 국민의 피곤한 하루 일과였다. 안철수는 이 감동없고 식상한 정치판과 정치꾼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어떤 정치인이 <안철수의 생각>이 나오자마자, 비난한다며 내뱉은 말은 `정치의 abc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조롱이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닐텐데, 정치에 문외한인 그가 지금 왜 유력한 대권후보가 되었을까? 정치의 알파벳을 다 외우시는 유능한 그분께 묻고 싶다.

 

 

 

201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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