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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유력한 대선후보 안철수가 책을 냈다. 지난 7월 중순, 그의 책은 서점 판매대에서 소위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출판사는 밤새 윤전기를 돌려도 서점에 책을 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작은 헤프닝도 있었다. 대형서점에만 안철수 책이 공급되고 있다며, 동네서점 책방 주인들이 출판사를 성토하고 나섰다. 책을 주기적으로 구입하고, 출판동향에 관심있는 어느 독자도 책의 출간과 관련해서 이러한 기 현상을 본 예는 극히 드물다. 안철수의 책처럼 출간되는 기십프로의 책만 이 정도의 관심과 판매고를 이룬다면, 건국의 아버지 김구 선생이 간절히 꿈꾸었던 문화강국의 꿈도 그리 멀지 않을 듯 하다. 안철수 현상은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계에도 긍정의 영향을 미치는 있는 게다.
<안철수의 생각>은 비교적 일독하기 편하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분량도 적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로 책을 묶은 것이다. 인터뷰어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제정임이다. 이분의 프로필을 보니 기자경력이 탄탄하다. 주요 일간지에서 14년간 현장 기자로 일했다. 이 책에서 제정임은 안철수가 자신의 생각을 주제별로 잘 풀어낼 수 있도록 시의적절한 질문들을 던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정임은 평범한 질문자에 그쳐 아쉽다. 뭔가 날카롭고 까다로운 질문들을 날려줄 것을 독자들이 기대했다면 약간은 실망할 것이다. 책이 급박하게 쓰이고, 묶이다보니 인터뷰어의 준비 기간이 불충분했을까?
하지만, 이 책은 하나의 목적을 갖고 출간된 책이다. 대중은 그가 연말 대선에 나올지, 안나올지 그게 궁금하다. 모두 알다시피 안철수는 이 책에서 그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았다. 걔중엔 그의 이런 태도를 신비주의나 소신부족으로 치부하는데, 나는 신중함과 진정성의 연장선에서 살피고 싶다. 그간 안철수는 살아오면서 많은 책을 펴냈다. 살면서 흔적을 남기고 후학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그였기에, 책의 주제는 주로 자신의 경영 현장과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경험을 글로서 풀어낸 것이다. 사실, 그간 안철수의 책을 한번도 읽은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안철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왜 사람들은 안철수에 대해 이렇게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걸까?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고나서 많은 이들이 그의 삶과 이력을 알게 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20-40대 넓게는 60대까지도 안철수를 지난 몇 십년간 지켜보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의 소신대로 흔적을 남기고 사회에 긍정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컴퓨터를 최초로 소유하게 된 1990년대 초, 안철수는 PC통신과 PC잡지의 유명 인사였다. 그는 백신연구소를 만들기 전부터 백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인에게 무료 배포하는 일을 해왔고, 많은 이들이 안철수를 통해 자신의 PC를 바이러스로부터 지켰다. 그 당시 PC 통신 자료실에서 안철수 백신은 필수 다운 항목이었다. 그런 그가 20년 후, 대한민국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등극할지 누가 알았던가 ?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갓 백신업자가 왜 이 시점 정치권을 기웃거려야 하는 걸까?
<안철수의 생각>은 그 질문에 대한 안철수 나름의 답이다. 대선이 4개월 남은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그간 안철수가 써냈던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한번도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인 시선으로 파헤친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의 비판은 날이 서 있지 않다. 수더분하고 차분한 그의 인상처럼, 인터뷰어의 질문에 유순하게 답한다. 하지만, 그의 표현처럼 인상이 부드럽다고 선한게 아니라 `선하면서 강할 수 있고 반대로 악하면서 약할 수 있다' 그의 답변은 유순하면서 강인하고 명확하다. 그는 자신이 지켜본 우리 사회와 정치를 작정하고 비판하고 분석한다. 그의 비판은 경험과 지식에 바탕을 두고 논리적으로 전개 된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세 가지 단어로 함축한다. 정의와 복지와 평화가 가득한 나라다. 이 단어만으로 그를 기존 정치인과 차별화 시킬 수 없다. 모든 정치인이 흔하게 입에 담는 말이 바로 이 세가지 단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놀란 것은 그가 풀어놓는 비판과 전망이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것이다. 그의 비전은 특별한 대한민국 만들기에 있지 않다. 미래의 유권자인 독자에게 어떤 환상을 심어주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 홍보를 하는데선 선수답지 못하다. 정치인은 약간의 과장도 필요한 법인데, 그는 너무 밋밋하게 주장하고 비판한다. 세련된 수사도 전혀 없다.
그런데, 놀랍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슬리는 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의 주장은 몇 가지 점에서 나와 생각이 달랐다. 천안함을 보는 생각, 제주 해군 기지를 보는 생각, 구체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그 정도다.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생각에 흔쾌히 수긍하고, 긍정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나라"(84쪽)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양대 진영을 진보와 보수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 세력으로 규정한다. 안철수에게 "상식"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모멘텀이다. 그는 우리의 정치와 권력 그리고 경제에 기본적으로 "상식"이 부족하거나 없다고 여긴다. 성공한 사업가와 존경받는 교수에서 결정적으로 서울 시장 후보에 나설것을 고민한 것도 바로 그 "상식"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이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협력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절실한 복지 확충, 경제 민주화 같은 과제에 대해서도 `좌파'의 딱지를 붙이며 색깔 공세를 펴는 비상식적 세력이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방해하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상식을 회복하고 합리적인 소통과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의 생각, 91쪽
안철수의 생각은 평균치의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다. 그가 대한민국의 미래지도로 들고나온 세가지, 정의와 복지와 평화는 기존 정치인들도 기꺼이 동의할 중요한 의제다. 하지만, 쿠테타와 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일당의 5공화국도 "정의사회구현"을 뻔뻔하게 외친 적이 있다. 정치인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는 행동이며, 화려한 수사보다는 진정성이다. 오늘 안철수가 혜성같이 나타나 기존의 모든 정치인들을 단박에 압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돈이 많아서인가, 말을 잘해서인가, 화려한 스펙과 성공 신화 때문인가.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사람이 널린게 대한민국 아니던가?
오늘의 안철수가 그만큼의 대중적 지지를 받는 것은 그가 살아온 내력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온 과거, 바로 살아온 내력이다. 현재 그가 어떤 아름다운 말을 하고, 어떤 고귀한 행동을 하는가 보다는 미래, 그가 어떤 화려한 약속을 내놓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일삼았는지, 살아온 이력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사람은 현재와 미래를 포장할 수 있지만, 과거를 포장할 순 없다. 과거는 신의 영역에 가 있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 포장이 안 된다. 즉,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안철수가 정치를 하던 안하던 그것은 본인이 결정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안철수의 `생각'들을 읽었고 그것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다. 좌파 대학생의 댓글 수준의 글이라거나, 진보언론의 사설란을 옮겨놓은 듯한 사회 평론이라는 둥, 이 책을 폄하하는 정치꾼들의 평가는 가혹하다. 하지만, 이 책의 행간을 읽어나가며 어떤 정략과 숨은 의도와 꼼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람의 진정성이 문장에 묻어나는 책을 읽는 것은 독자로서 가장 충만한 체험이다.
좋은 저자는 올바르게 살아온 이력과 철학으로 독자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전파하는 법이다. 나는 안철수의 진정성을 느낀다. 지금껏, 거짓과 술수가 판치는 기존 정치판의 쇼을 밤낮으로 보는 것은 국민의 피곤한 하루 일과였다. 안철수는 이 감동없고 식상한 정치판과 정치꾼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어떤 정치인이 <안철수의 생각>이 나오자마자, 비난한다며 내뱉은 말은 `정치의 abc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조롱이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닐텐데, 정치에 문외한인 그가 지금 왜 유력한 대권후보가 되었을까? 정치의 알파벳을 다 외우시는 유능한 그분께 묻고 싶다.

2012.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