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의 모든 것 세트 (본책 + 책 쓰기 노트) - 전2권 - 당신의 가치를 완성하는 평생 현역 프로젝트
송숙희 지음 / 인더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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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꿈은 저자다.  지금은 한갓 공상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저자의 꿈은 언제 시작됐을까?  몇 해 전 블로그에 서평 한 꼭지씩을 써 올렸을 때부터 일까?  아닌 것 같다. 책을 막 읽기 시작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지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래서 꿈조차도 발설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 해 한 해 책을 읽으며 이젠 그 꿈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꿈이다.  이젠 꿈에 욕심을 내야 할 순간이라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선 꿈은 그저 꿈으로 생명력을 다할지 모른다.  하여, 책쓰기와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당분간 집중해서 읽어보고 싶다.

 

꿈에 다가서기 위해선 먼저 그 분야의 대가를 찾아 나서야한다.  내가 그간 사모으고 읽었던 글쓰기 분야의 책들은 종류가 다양했다. 소설가, 글쓰기 강사, 여행작가, 시인이 써낸 글쓰기 관련 책을 읽었다.  그것도 겨우 다섯 권 남짓.  이러고도 저자의 꿈을 꿨으니 면목없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책쓰기 분야의 전문가가 집필한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송숙희의 <책쓰기의 모든 것>(인더북스,2011년)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저자도 낯설고 제목은 너무 직설적이다.  하지만, 내가 찾고 있는 책쓰기 관련 지식을 잘 담고 있을거란 기대를 하게 했다. 그것은 기대로 끝나지 않았다. 우연한 만남은 꽤 신선한 지적 충격을 안겨줬다.

 

송숙희는 책쓰기와 글쓰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멘토였다. 지금껏 20 여 권의 관련 서적을 써냈으며, 책쓰기 코치와 초보저자들의 출판을 돕는 출판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  2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는 글쓰기에 관한 다양한 직업을 거쳐왔다. 잡지사 기자로 글쓰기를 시작해 편집자로 내공을 쌓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쓰기 코치일과 관련 분야 집필 작가로서 활동했다.  그는 신인 저자 발굴과 출판 프로듀싱 전문가였다.  시장에서 성공할 것 같은 원고와 저자에 대한 `촉'이 남달라 그가 프로듀싱한 책은 여러 권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 만 한 경력이면 산전수전 다 겪어낸 책쓰기 분야의 실력자로 봐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내공을 바탕으로 쓴 책이 <책쓰기의 모든 것>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책 쓰기가 쉽고 만만해질까?  전자제품의 사용설명서 같이 따라하면 책이되는 책쓰기 메뉴얼인가?  그런 기대를 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꿈깨야 한다.  이 책은 책쓰기의 전 과정을 어떤 책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기획되고 출판사와 협의를 거쳐 세상에 나오는지 우선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책쓰기를 망설였던 높은 장벽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듯 하다.  대필을 통해 책을 내고 싶지 않다면 책쓰기에 앞서 자신의 글쓰기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점을 저자가 양심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글은 당신이 직접 써라. 글쓰기가 안 돼 책이 늦어지더라도 방법이 없다. 글쓰기가 만만해진 다음에라야 책 쓰기를 시도해야 한다. 원고는 직접 써라. 그래야 온전한 당신의 책이 된다. "   167쪽, 송숙희 <책쓰기의 모든 것>

 

여기 이 문장에 이르러 독자들은 책쓰기 혹은 저자로서의 꿈에 대한 환상을 조금 벗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책을 있는 그대로 독해할 수 있는 최적의 컨디션에 오를 때다.  이 책의 기능은 메뉴얼을 제공하는 것 보다는 예비 저자에게 자극을 주는 일에 가깝다. 책쓰기에 관한 단순한 방법론을 풀어낸 것이 아니라  책쓰기의 동기를 부여하고 저자로서의 삶이 가진 의미를 풀어내는 부분이 독창적이고 충실한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왜 책을 써야 하는가 ?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가?  송숙희는 책쓰기야말로 `퍼스널 브랜딩'의 지름길이라 주장한다. 정치인,경제인,학자 할 것 없이 유명인들은 모두 자신의 저서를 갖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알리는 최선의 수단이 책을 쓰는 일이라는 것을 간파한 사람들이다. 저자들은 자기 소개를 구차하게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저서가 바로 가장 훌륭한 자기소개서다.  책쓰기는 또 평생 현역을 보장 받는 일이다. 직업인은 은퇴하는 순간 전문 분야의 지식을 써 먹을 공간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저자라면 그 분야에서 계속 전문가로 살 수 있다. 책쓰기 자체가 은퇴후 쓸만한 수입원이 될 수 있다.  퍼스널 브랜딩과 경제적 가치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은퇴를 모르는 저자로서의 삶이다.

 

송숙희는 책은 `B 마인드'에 입각해 써야 한다고 말한다.  B 마인드란 저자가 쓰고 싶은 책이 아니라, 독자들이 읽고 싶은 책을 쓰는 것이다. 철저히 독자를 고려한 기획과 집필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독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당신의 책이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이다. 그 질문을 해소할 수 있는 분명한 답을 주는 책을 써야 한다. 초보 저자들은 독자보다 자신이 어떤 책을 쓸 수 있을지 먼저 관심 갖는다. 하지만, 그런 책은 시장에서 소비되지 않는다. 팔리지 않는 책은 무용지물이다.  책 출판은 이벤트가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는 중형승용차 값에 해당하는 비용을 투자한다.  책이 철저히 경제논리에 의해 기획되고 집필돼야 하는 이유다.  독자의 지갑을 열지 못하는 책은 쓸 필요가 없다.  서점 진열대에 머물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책은 모두에게 민폐일 뿐이다.

 

"독자는 각자 그들만의 경험을 통해 알아낸 의미와 가치, 그 속에 내재된 통찰에 대해 듣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독자는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저자의 지혜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을 배우고 싶어한다."  123쪽

 

그렇다면 우린 이 책을 어떻게 실제 책쓰기에 적용할 수 있을까?  책쓰기의 의미,과정,방법,결과, 미래를 모두 담아낸 책은 당신을 들뜨게 할 만 하다. 저자가 된 이후의 삶을 송숙희는 `인생의 혁명'에 비유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책의 성공과 더불어 있게 될 강연요청과 인터뷰, 막대한 수입.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은 과히 혁명이라 불러도 좋겠다. 그렇기에 누구나 한번쯤 저자되기를 꿈꾸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저자가 될 만 한 내공을 꾸준히 쌓아온 자들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일 뿐이다. 한 걸음씩, 한 마리씩, 해치우며 저자되는 꿈에 다가서는 이 책의 방법론에 귀 기울이는 것이 좋다.

 

공짜에 가까운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글쓰기를 공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저자는 트윗,페이스북 보다 블로그 글쓰기를 추천한다. 책이 될 수 있는 칼럼 분량을 써낼 수 있는 안정적인 글쓰기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블로그 포스팅이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책이 될 수 있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창고로도 활용하면 좋다.  무엇보다 저자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송숙희는 `미친듯이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책을 읽지 않고 저자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두가지 조언을 종합하자면 서평 블로그를 만들어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 누구나 개설할 수 있는 블로그, 그 환경에서 꾸준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시작은 할 수 있겠지만 계속하긴 어려운 일이다. 

 

책쓰기는 가장 창의적인 일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세상에 인재는 많지만 창의적인 인재는 드물다.  책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다. 송숙희는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이 책에서 강조한다.  읽기와 쓰기를 수련하고, 코칭을 받고, 스킬과 경험을 쌓아가면 누구나 정보생산자(인포프래너)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네준다. IT천재 스티브 잡스는 무언가를 발명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 그 가운데 최선의 것을 발견해 냈을 뿐" 이다. 책을 쓰는 일은 가치있는 정보를 찾고, 그것을 조합하고, 또다른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런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저자로서 기회의 문은 충분히 열려 있다.

 

"브랜드만이 살길이라는 것, 당신이란 브랜드만이 가능한 킬러 콘텐츠를 창출하고 OSMU(One Source Multi Use)해야 한다는 것, 급격히 발달하는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을 벼려야 한다는 것, 쓰기 기반의 소셜미디어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 쓰기가 우스워질 때까지 훈련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인식 위에 새롭고 대단한 꿈을 꾸어야 한다."  273쪽

 

모든 독자는 저자 되기를 꿈꾼다. 독자는 좋은 책을 알아본다. 또 좋은 책에 대한 매력은 글쓰기의 관심으로 이어진다. 책쓰기의 욕망은 독서행위 자체에 내재해 있는 원초적 본능일지도 모른다. 책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시도해 볼 만 한 가치 있는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책 한 권은 된다고 말들한다. 그러나 그들은 쓸 수 없다.  글쓰기 능력을 얻고, 저자로서의 날개를 달고 결국 비상하는 인간은 소수에 그친다. 막연한 바람으론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체계적인 공부와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책쓰기 코치라는 명함을 자랑스레 내걸고 지금도 책을 쓰고, 초보 저자들을 코칭하며,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그의 직업은 부러움을 살 만 하다.  또, 그 일을 통해 보람과 기쁨을 건져올리는 그녀의 삶은 멋있다.

 

저자 되기를 꿈꾸는 사람에게 이 책은 훌륭한 스승과 뛰어난 가르침을 약속한다.  당신도 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넨다.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답은 분명해 졌다. 나의 책을 쓰기 위해서다.  나의 가치와 나의 메세지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최선의 길은 책을 쓰는 일이다. 당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라. 당신의 책을 가져라.  한갓 꿈이 아니다.   

 

  


 

2014년 1월 1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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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하는가 -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물어야 할 질문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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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하는 인간이다.  그 말은 여러 표현으로 변주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는 인간이다. 나는 글을 쓰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어른이 된 이들 가운데 공부를 하고 있는 인간은 희귀종에 속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고 살고 있다. 그 말은 꿈을 가진 어른들이 의외로 적다는 얘기다. 꿈이 있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책을 읽고 또 끝없는 갈망으로 일과 공부 사이에서 고민한다.  시간 부족과 싸우며, 공부가 진척이 되지 않는 현실과 고민한다.  그 두 부류의 인간 가운데 10년 후 누구의 삶에 더 큰 변화가 있겠는가? 

 

우리 시대 대표 공부인간 김진애의 <왜 공부하는가>(다산북스,2013년)에는 저자의 공부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화려한 그의 경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서울공대에 800명 동기중 유일한 여학생, 30대에 MIT 건축 석사와 도시계획 박사를 취득했고, 40대엔 미 시사주간지 <타임> `21세기 리더 100인'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등재했다. 50대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풍부한 건축지식과 비판적 지성으로 `4대강 저격수'를 자처하며 임기 중 의정활동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경력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받은 깊은 인상 덕분이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서재에서 그는 평화롭게 앉아 책을 읽었다. 탐나는 서재속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열독하는 그 모습.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공부 인간, 책 읽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는 공부를 주제로 한 그의 일대기가 담겨 있다. `공부 자서전'으로 봐도 좋겠고, 고수의 공부철학으로 읽어도 좋다. 그의 공부이론은 6가지로 발전한다.  첫째 공부비상구론이다. 1남 6녀의 딸부자집 셋째였던 그는 고교 시절에는 영화와 책읽기에 빠져살던 평범한 소녀였다. 학교 공부를 등한시 하던 그가 고2 시절 앞으로 1년, 오직 공부만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포위당했다 회상한다.   지금 그 순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고, 독립할 수 있는 밥벌이를 못할 것이 명백했다. 그의 꿈은 "내가 벌어서 먹고살 거야!"였다.  그런 독립심과 자존심이 공부를 해야겠단 결단의 순간으로 인도한 게다. 

 

"다행히 인생은 수없이 많은 결단의 순간과 그 결단을 지킬 기회를 예비하고 있다. 그 순간과 그 기회를 어서 한번 잡아보자. 여하튼, 결단이란 매혹적인 것이다. 지키기란 결단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결단의 매혹에 빠져보자. 독하게 결단을 지켜보자. 그리하여, 결단의 기억을 쌓고 자신을 믿어보자 ! "  33쪽

 

둘째 공부생태계론이다. 이 장에선 분위기 자체가 다른 MIT 공부 환경을 다룬다. MIT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 교류와 창업 비즈니스의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거대한 공부생태계였다. 또, MIT는 우리가 알고 있던대로 일개 공대가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들의 활동 무대였다.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MIT  미디어 랩으로 세계적 학자로 부상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등 우리 시대의 멘토이자 스승들과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준 곳이 MIT였던 게다.   김진애는 거대한 공부생태계가 선물한 생생한 호기심과 깊은 안목으로 문제창조 정신, 현장 정신, 창업 정신 세가지를 배웠다고 전한다.

 

그의 공부이론은 `창업은 인생 최고의 공부'라는 공부실천론, `리더보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훈련공부론으로 이어진다.  이 두가지 이론은 건축가로서 학계보다 현장을 선호했던 그의 독특한 현장 공부론으로 봐야 하겠다. 창업이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장은 공부를 실전에 적용시키며, 사람을 단련시키고 아마추어를 진정한 프로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공부 그라운드였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그의 `놀이공부론'이다.  일의 최고 단계는 즐기는 것, 즉 놀면서 일하는 것이다.  일을 놀면서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인생은 축복 아니겠는가?  놀이와 공부가 일치하고 놀이와 일이 합일되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여, 그는 다양한 분야에 빠져들기를 좋아했다.  무엇을 하던지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놀이에 집착했더니 결국 그것이 공부가 되더라는 얘기다 . 라디오왕,노래광, 팟캐스트광으로 살았더니 듣기를 통해 분별력과 판단력 등 지적 능력이 길러졌고, 소통능력, 분위기를 조율하는 능력까지 덤으로 얻었다. 또, 상상력을 키워준 만화읽기,  무한한 공부의 주제를 담아낸 영화 보기,  깨달음을 건네준 걷기와 여행 등은 삶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것이었으니 과연 공부의 최고 경지다. 

 

"교육이라는 말 대신 내가 좋아하는 말은 `자라기, 깨닫기, 묻기, 답하기, 해보기' 같은 것들이다. 부풀려 표현하자면, 나는 `소크라테스'적이고, `아인슈타인'적이며, `다빈치'적이다. 우리 식으로 풀어보자면, 나는 `연암 박지원'적이고, `퇴계 이황'적이고, `고산자 김정호'적이다.  해냈던 일 이상으로 이들의 삶의 방식, 자라기 방식이 좋다. 표현하자면, 이들은 인생을 한바탕 잘 놀다 간 것 아닐까?  나도 그렇게 잘 놀다 가고 싶다."   175쪽 

 

`인포프래너'라는 매혹적인 직업이 있다. 한분야의 정보나 지식, 노하우를 파는 1인 기업가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책을 쓰는 저자들이다. 끊임없이 창조적인 컨텐츠만 생산할 수 있다면 이 직업엔 정년이 없다. 그는 죽을 때까지 정보생산자로 살아갈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크리에이티브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50줄에 들어선 김진애는 지금껏 25권의 책을 펴냈다. 공부하는 인간, 김진애는 가장 대표적인 `인포프래너'였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가 주어진 명성과 학위로만 만족했다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없었을게 분명하다. 

 

삶의 매 순간이 배움이자 공부다. 이 책의 저자가 가르쳐준 공부의 비법 가운데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닮고 싶은 가르침이다. 꼭 책을 보며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않아도,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그 분야의 박사가 될 수 있다. 관심의 폭이 늘면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도 늘기 마련이다.  공부라는 말에서 `열망'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앞으로 발전할 것이고, 진보할 것이다.  "공부진화론"에서 저자는 "개인을 넘어선 꿈이 진짜 꿈이다"란 말로 이걸 풀이한다.  공부의 시작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그 끝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이룰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하여,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서로 말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 사슴을 말이라 우기는 괴상한 시대는 한갓 웃음거리가 되고,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발설하는 아첨꾼과 미디어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왜 공부하는가"라는 저자의 물음을 생각해 본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루고픈 "꿈과 목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공부의 추동력이다. 목적지가 없다면 여행 배낭을 꾸릴 수 없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일 뿐이다. 방랑은 방황이고 흐지부지한 시간의 흐름이다. 그 시간을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는 사람은 공부하는 인간이다. 공부가 꿈에 다가서게 한다.  김진애는 일평생 공부를 해오고 있다.  그가 이룩해낸 성취도, 성공도, 겪어낸 좌절과 절망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말을 의지해 넘겨왔다. 국회의원에 세번 떨어지고도, 건축분야에서 쌓은 커리어가 넘쳐나도, 그는 좌절하거나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또 여행을 떠났다.  더 많이 자라고 싶어서다.  우리도 그처럼 열심히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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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CEO - 도시인에게 과수원을 팔다 CEO 농부 시리즈
조향란 지음 / 지식공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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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처럼 흔한 상품이 어디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인근 마트에서 다종다양하고 국적까지 불분명한 과일들을 한 바구니 살 수 있다.  농가와 유통업자의 손을 거쳐 소비자는 과일을 맛보게 된다.  과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농부의 노력과 정성이 첫 번째다. 다음으로 얼마나 신속하고 신선한 유통체계를 갖추느냐 하는게 두 번째 요소다.  과일은 흔하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싼 가격과 수확의 풍요로움에 기초해 과일 유통의 문제가 발생한다.

얼마전 한 TV 프로그램에선 성장촉진제를 듬뿍 바른 과일이 재배되고 유통되는 현장을 고발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배, 딸기, 토마토완 다르게 요즘 과일은 지나치게 크고, 상태가 말끔하다.  그 이유가 화학비료와 농약도 모자라 성장촉진제 덕분이라니 맛있게 먹었던 과일이 뒷통수를 친 느낌까지 든다.  또,상자 윗부분의 상태만 보고 산 과일이 전체적으로 불량한 경우도 있다. 유통단계에서 감귤 같은 경우 빛깔을 곱게 내기 위해 약품 처리를 하기도 한단다.  시장이 과열되고 비대해지며 발생하는 현상은 과일 재배와 유통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과일 브랜드 `올프레쉬와 유통회사 `썸머힐 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조향란 대표는 <과일 CEO>(지식공간 펴냄, 2013년)란 책에서 과일 유통사업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과일 농가가 자연 그대로의 과일을 건강하게 생산하도록 지원하고, 소비자들은 친환경 제철과일을 가장 맛있는 시기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게 올바른 유통, 착한 유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53쪽

농가에겐 안정적 판로를 통해 더 많은 소득을, 소비자들에겐 `성형한' 사철 과일이 아닌 제철과일이란 모토를 사업에 내건 사람이 바로 조향란 CEO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그려내는 과일 이야기는 `올프레쉬'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신선하다.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을 과일 유통의 비전을 이 여성 CEO는 책 속에서 자신있게 설명한다. 누구나 안심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을 판매하겠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어린시절 이후 잃어버린 과일 맛을 고객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자, 과일 상품에다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심는 일이었다.

IMF 시절 식당업이 망하고 인생의 큰 위기 앞에, 부산 달맞이 고개를 넘다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던 그는 어느 식당에 내걸린 시 한 편에 용기를 얻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한번 실패한 사업을 핑계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남다른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보따리 무역상을 거쳐, 1999년 일본 최대 유통회사인 이토 요카토에 복숭아 300 상자를 납품하는데 성공한다. 과일 유통업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 이후 부단한 노력과 천성적인 적극성으로 사업을 확장해, 농협과 대형 유통업체가 잠식하고 있던 국내 과일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올 프레쉬'라는 과일 브랜드를 런칭하며, 온라인 쇼핑몰과 용산구 한남동에 올 프레쉬 1호 매장을 오픈했다.

이 책이 가진 성격은 대단히 복합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 회사의 비전과 맞닿아 있는데, 농가와 유통업자, 그리고 소비자 모두에게 과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도록 돕는다. 지금껏 농가는 소득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하여, 남보다 빠르게 더 많은 과일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소비자는 제철 과일을 먹지 못하고, 농가는 성장촉진제 등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소비자는 대량으로 유통되는 과일을 그저 싼 값에 소비하는데 관심이 가 있었을 뿐,  정통 농법으로 재배돼 적당한 시기에 수확한 과일을 맛볼 수가 없었다. `착한 유통'이 필요로 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조향란 대표가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과일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착한 유통업자로서 비전을 세우고 그 가능성을 믿고 전력투구해 왔기 때문이다.

 유통은 삼통(三通)이다. 유통을 하려면 세 가지와 통해야 한다. 먼저 생산자와 통해야 하고 다음 소비자와 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심과 통해야 한다.  <올프레쉬>는 이 사업의 브랜드명이기도 하지만 이 유통 구조를 처음 생각했을 때 가졌던 내 마음가짐을 변함없이 지키겠다는 의도도 있다."   20쪽
 

이 책은 한 여성 CEO의 과일 유통 경험담과 노하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보태 책의 후반부 `진심과 통하라' 라는 장을 읽으면 사업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삶의 이치와 자전적 인생에서 건져올린 교훈들과 만날 수 있다.  입지전적 삶에 대한 자서전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다. 

 

IMF의 첫 위기 이후,  과일 사업을 막 시작한 그에게 또다른 위기가 다가왔다. 일본에 복숭아 수출이 시작된 2000년 300 박스였던 물량이 1년만에 150톤으로 늘었다. 하지만,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복숭아 농사가 지지부진했고 결국 일본 거래처에 복숭아 15상자를 비행기에 싣고 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지변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지만 일본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훗날 과일을 연구하며 알게 된 사실은 품질 좋은 과일은 A급 태풍이 불어와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출길에 쌓아놓은 컨테이너가 무너져 과일이 못쓰게 된 경우도 있었다. 초반 자금과 경험이 부족했던 그에게 이 위기는 IMF이후 최대 시련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평소 신뢰와 품질로 인정 받아온 덕분에 일본의 관계 공무원과 바이어는 그에게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그를 도왔다.

 

그는 이 사업의 최종 목표를 `이익'이 아닌 `명예'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기업가와는 생각이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무역이란 신뢰가 처음이자 끝이다.  즉, 자신의 이름에 매겨진 값이 사업의 규모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CEO의 이름 석자, 혹은 회사 이름 하나면 다 통하는 것을 사업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비즈니스에서 겸손한 태도를 중시한다. `묻는 사람이 자세를 갖췄을 때, 진심 어린 답변이 돌아온다는 생각'에서다.  초기 경영과 과일에 대해 문외한이었을 때마다 겸손의 가치는 빛을 발했다. 묻고 또 물으며 낮아졌을 때 그는 더 많은 지식을 건네주고 진심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나타났다 회고한다.

 

그는 CEO로서 직원들에게 3가지 말을 자주 한다. "품질을 유지할 것, 약속을 지킬 것, 더 나은 방식을 개발 할 것"  그가 직원들에게 바라는 점은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도하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가능성은 언제나 반반이다. 유통업을 하면서 도전과 설득은 일상사였다. 농민을 잘 설득해야 좋은 품질의 과일을 유통시킬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 크게 도움이 됐던 것이 긍정적이고 적극적 사고방식이다.  그건 비단 사업가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이치가 아닌 듯 하다.

 

" 현재에 만족하면 미래는 없다. 정지하면 퇴보하고 지금 가진 것도 줄어들게 된다.  1cm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현상유지가 된다.  비즈니스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것과 같다.  노를 젓지 않으면 지금 자리도 지키기 힘들다."  189쪽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다. 위대한 기업에는 위대한 가치와 비전을 품은 CEO가 있다.  하여, 때로 기업의 이미지는 경영자의 인격과 혼을 담는다.  살아생전 애플은 곧 스티브 잡스라는 CEO를 표상한 기업이었다. 이 책에서 만난 여성CEO 조향란 대표가 몰입한 삶은 "농가는 농사에 전념하게 하고 고객에게 맛좋은 제철과일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유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로 정리된다.  이것은 그가 CEO로 있는 과일 브랜드 `올프레쉬'의 비전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올프레쉬라는 생소한 브랜드가 과일 시장에 조용히 일으킨 신선한 감동을 지켜볼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미래 과일 유통과 소비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았을 듯 하다. 한 CEO의 정직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유통업계의 본보기가 될 만 하다.   '장사란 이득을 남기는 것이 아닌 신뢰를 쌓아 명예를 남기는 작업"이라는 조향란 대표의 표현은 고객이 감동하는 비즈니스의 정체를 설명한다. 독자들은 <과일 CEO>를 통해 세가지를 만날 수 있다.  맛있고 건강한 제철과일, 정직한 사업가, 그리고 아름다운 비전이다. 비즈니스도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인생처럼 장사도 철학이 있어야 풀리는 법,  그걸 우린 상도(商道,business morality)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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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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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영국의 고고학자 윌터 윌킨슨이 아랍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기록된 문서 하나를 발견한다. 이 문서는 기원후 1307년경의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한 것은 전세계에 흩어진 이 문서의 사본이 155부에 이르지만 그 진원지는 이집트 국경너머의 도시 아크라라는 것이었다. 작가인 `나'는 친분이 있던 고고학자 윌킨슨에게 이 문서를 건네 받았다. 그리고 "아크라 문서"에 기록된 이야기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하다. 소설적인 요소는 책의 15페이지에서 멈춘다. 그 이후 이 책은 이집트의 그리스도교인 현자 콥트와 11세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진리에 대한 문답으로 채워진다.

 

현자와 무명씨들의 대화에는 중요한 역사적 진실이 놓여 있다. 예루살렘이란 공간과 11세기로 설정된 시간이 무명씨들과 콥트인의 운명을 결정할지 모른다.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이 절대적 좌표는 날이 밝으면 예루살렘 정벌을 예고한 십자군의 공격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광장의 역사는 다시 10세기를 앞질러 똑같은 광장에서 재판을 받고 유죄를 선고받았던 한 남자를 생각케 한다. 바로 로마군대와 유대인들에게 동시에 멸시 받았던 인간, 예수다. 그가 진리에 대해 모든걸 말하고 갔지만 예루살렘의 광장에 모인 인간들은 전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 콥트인은 십자군 공격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처럼 시간과 공간에 구애되지 않는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반복일지라도 인간은 어리석기에 삶의 근본적 질문과 답을 구하지 않는 법이다. 콥트는 이 점을 상기시킨다.

 

" 우리는 매일의 삶에 대해, 그 안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후손들은 바로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천년 후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 24-25쪽,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권력과 전쟁, 정치의 역사는 인류에게 영적 가르침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당대 권력자들의 문제였고, 하찮은 욕망이란 본능으로 귀결될 뿐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되풀이 된다. 현실적인 문제이자 영속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삶의 기교, 방향,의미를 갈구하는 것은 언제나 "어떻게 살 것이며, 대체 살 가치가 있는가?"란 실존적 질문이다.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시든 꽃잎처럼 생의 의미를 상실해 간다. 그러니 콥트는 오지 않는 내일의 전쟁을 말하기 전에, 오늘 당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느냐에 집중하자고 선언한다. 하여, 현자 콥트는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처방전을 건네 준다.

 

패배가 무엇이냐를 묻는 이웃에게 콥트는 말한다. "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저 거쳐가야 할 단계가 있을 뿐이다. " 그러니 역경의 시기도 받아들여야 하고, 영광의 순간에 도취되어선 안 된다. 그는 패배자란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싸우겠다는 마음, 이겨내려는 의지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패배자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도망자가 될 여인이 물었다. 고독이 무엇입니까? "고독 속에 놓일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늘 혼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쟁을 앞두고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치부하는 한 소년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그저 충실히 살려 노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위로한다.

 

또,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내면에 가장 밝은 빛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라며 외부의 빛으로만 자신을 꾸미려 할 때, 각자가 가진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잊게 된다고 조언한다. 일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만 훗날 그 시간을 돈으로 되살릴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전쟁을 앞두고 불안에 대해 묻는 한 남자에게 답한다. "인간은 불안과 함께 태어났으니 그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폭풍우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선 " 맡겨진 사명이므로 타인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일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때를 맞춰야 하는가?   콥트는 말한다.

 

"때가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심어놓은 나무에 과일이 열렸다고 설익은 것을 너무 일찍 따버리면, 먹는 이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한다. 반대로 두려워서든 불안해서든 열매를 따 봉헌해야 할 시기를 너무 미뤄버리면, 열매는 썩어버리고 만다." 138쪽

 

현자 콥트는 누구인가? 그는 죽음과 전쟁을 앞둔 사람들에게 지금 "삶" 자체를 가르치고 있다. 콥트에게 내일 닥칠 전쟁의 참혹함은 작은 관심거리도 안 된다. 사람은 백년을 살지만 성인의 가르침은 영원하다. 예루살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당장 내일을 걱정하지만, 현자는 영속하는 인류의 삶과 굴레앞에 절망한다. 아크라문서는 천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 독자앞에 등장한다. 천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이 지닌 고뇌의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깨달음을 언어로써 전달할 순 없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작품을 구상하는데 64년(자신의 나이)이란 시간을 필요로 했다고 고백한다.  성인 예수는 "구하면 줄 것이고, 찾으면 찾아낼 것이며,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했다.   <아크라 문서>는 작가가 일평생 구도와 전념을 통해 얻어낸 지혜의 부스러기다. 그러한 가르침을 통해 얻으게 많겠지만, 본질적으로 <아크라 문서>는 죽은 언어가 아닌 살아있는 "행동"을 촉구한다.

 

이 작품은 파울로 코엘료가 심장수술을 하고, 죽음 가까이에 다가선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지만, 그것은 차라리 일평생을 추구해 얻어낸 구도(求道)의 언어들로 봐야 마땅하다. 누구도 자신 몫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오늘 죽음과 허무와 실패와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아크라 문서>가 남긴 희망적 치료의 언어들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힘들고 모두가 불안하다. 코엘료의 소설은 이점을 환기한다. 11세기 십자군의 침략을 앞둔 예루살렘의 저 불행한 사람들과 오늘 절망하여 죽기를 결심한 사람들 사이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하여, 역사보다 운명보다 앞서는 것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겠다"는 인간의 선한 의지가 아닐까? <아크라 문서>는 저 역사속에 잠든 현자의 언어를 깨워서라도, 인간을 살리는 영속하는 지혜에 다가가겠다는 파울로 코엘료의 진심이 담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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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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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쓰기 어려운 글은 칼럼이다.  아직까지 내게 그렇다.  서평이나 영화평, 여행산문에 도전해 봤지만 칼럼 쓰기는 거의 해본적도 없다. 몇 번 손가락에 들 정도다.  글을 잘 쓴다는 작가들조차도 써 놓은 칼럼이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일상적으로 칼럼을 읽지만 내가 여태 쓰기를 시도하지 않은 이유도 그와 같다.  칼럼은 자기 주관을 드러내야 하고 독자들이 읽기에도 그 생각에 공감할 구석이 있어야 한다.  모든 글은 써야할 주제와 대상이 존재한다.  칼럼이 주제와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세상이다. 세상을 잘 읽어내야 좋은 글이 나온다. 

 

하지만, 칼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연성이다. 칼럼이 현실 세계의 비평이다보니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온전히 독자가 공감만 할 수는 없다.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다, 다를 수 있다, 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작가는 칼럼을 써서는 안 된다.  세상 일에 대한 생각을 정직히 드러내는 글이니 쓰는 사람은 여러모로 힘들다. 하여, 작가들도 산문집을 자주 내진 않는다.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문학동네,2013)는 그가 엮어낸 첫 산문집이란다. 

 

그렇더라도 경륜을 갖춘 노학자가 논문과 문학비평에 대한 글을 제외하곤 첫 산문집이라니, 그런 소개를 읽곤 조금 놀랐다.  한겨레와 경향, 국민 일보 등 수년간 조금씩 써 모은 짧은 칼럼 겸 산문 등을 모아낸 이 책의 특성은 한 마디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세상 읽어내기다. 그것은 품격있지만 달리 유약하게 보인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직접적으로 호명하지 않지만 세계의 비상식과 치부에 항의하고 에둘러 비판하는 글이다.  직설적이지 않아 시원하진 않고 절제됨이 느껴지는 글이다.  하여, 그의 독자는 세계를 비평하는 냉정함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투사가 아닌 선비같은 글쓰기다.

 

<과거도 착취당한다>라는 칼럼에는 유신 시절의 기억이 등장한다. 70년대 한국에서 외국책을 구입해 공부한다는 것은 수많은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최종 통관은 서대문 국제우체국의 `미스 아무개'의 소관이었다. 그런데 이 아무개 양이 몹시 까탈스러웠단다.  황현산은 결국 아무개씨와 크게 다투며 창구의 가로대를 뛰어넘는 활극을 연출할 적이 있다.   그때 거칠게 항의하며 내뱉은 말이 명언이다. " 내가 공부를 하는데 국가가 왜 방해를 하느냐?"(11쪽)

 

" 생각하면 우습다. 내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커피라도 한잔 뽑아다 미스 아무개에게 권했어야지'라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이, 당시에는 자판기가 없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그때가 유신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11-12쪽, <과거도 착취당한다>

 

<군대문제>라는 칼럼은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라는 장벽앞에서 느끼는 절망감의 정체를 드러낸다. 세상도 바뀐것처럼 군대도 바뀌었다.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남학생들은 몇 해를 방황하다가 복학생 아저씨 소리를 듣고서야 공부에 전념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군대가 사람 만들었다'고 주장한단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군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23쪽)  내 생각도 그와 같다.  2년이란 그 짧은 시간이 한 젊은이의 영혼에 미치는 압력과 갈등은 쉬운게 아니다. 그 갈등의 결과 탄생한 인간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군대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흔히 말하는 그 착시효과의 내면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게 이 칼럼의 주장이다.

 

<시가 무슨 소용인가>라는 칼럼은 대중가요나 문화에 `시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문제를 짚고, 그럼에도 그것들은 왜 본격적인 시와 구분되는지를 따진다.  시인은 왜 오늘도 말을 고르고 좋은 시어를 발굴하기 위해, 가산과 전답을 팔아 시집을 내며, 파산에 이르는 사람까지 나오는걸까?  시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시가 그 위에 더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시는 낡았고 댄스 뮤직은 새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실은 `시에서는 한참 낡은 것이 댄스 뮤직의 첨단을 이룬다'(184쪽)는 말로 시의 선도적인 아름다움과 감수성을 표현한다. 문학의 존재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온갖 종류의 대중물과 상업물에는 시가 충분히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를 소비할 뿐 생산하지는 않는다.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184쪽, <시가 무슨 소용인가>

 

산문집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깊은 울림을 지닌 칼럼 한 편이 자리한다.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 2009년 세상의 비정함 속에서 생사를 달리한 한 전직 대통령의 그 짧은 유서를 읽으며 황현산은 평론가다운 솜씨를 발휘해 그 의미를 유추해 낸다. 짧은 유서를 세 부분으로 나눠 읽는 것도 독특하지만, 문장 하나하나에서 대체 그가 발설하고자 하는 깊은 고민과 사유가 무엇이었는지 분석하는 문장도 예사롭지 않다. 꼭 비평가여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독자라면 글의 분량을 떠나서 짧은 문장, 단어 하나에까지도 최선을 다해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글 쓰는 자에 대한 독자로서의 예의임을 이 칼럼은 덧붙여 가르친다.

 

"처절한 결단을 향해 추호의 주저함도 없었던 고인의 유서에는 짧은 문장과 비교적 긴 문장이 어울려 만드는 단호한 리듬과 처연한 속도감이 있다. 이 다감하고 열정적이었던 사람의 절명사는, 고결한 정신과 높은 집중력에서 비롯하는 순결한 힘 아래, 우리 시대의 어느 시에서도 보기 드문 시적 전기장치를 감추고 있다.  고인이 믿었던 미래의 힘과 깊이가 그와 같다. " 302쪽,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는 이 외에도 수년간 그가 발표한 짧고 품격 있는 칼럼들이 담겨있다.  대개 책의 제목은 목차의 소주제문을 따오기 마련이다. 하여, `밤이 선생이다'라는  주제문을 포함한 칼럼이 존재할꺼란 생각을 했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마도 제목은 따로 정한 모양이다.  그런데 `밤이 선생이다'라는 이 문장이 참 좋았다.  밤은 상징적으로 무엇을 표현할까?  밤은 책장을 넘기는 시간일 수도 있다.  하여, 그 고요한 순간은 가르침이 된다.  다시, 밤은 역사의 어두움일 수 있다.  어두움은 밝음을 갈망한다.  그또한 가르침이다.  또다시 밤은 인간이 극복해야할 운명이고 고뇌일 수도 있다.  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밤은 `선생이다' 

 

어떻게 그 의미를 해석하든, 이 짧고 단호한 책의 제목은 깊은 상징성을 드러내며 큰 울림을 갖는다. 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밤은 책과 만나는 가장 고요한 순간이기에 `밤(night)' 이 선생이길 소망한다.  이제는 은퇴한 노학자인 황현산은 여전히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후학들을 만나고 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책 읽기와 세상 읽기에 조금의 게으름도 없는 노학자는 젊은 독자들이 살아갈 방향을 칼럼속에서 힌트로 건넨다.  어떻게 나이들고 싶은지 선택해야 한다면 밤을 선생삼아 책읽는 독자로서 늙어가고 싶다.  품격있고 정직한 글을 쓰는 필자로서 나이들고 싶다.  문학 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은 그 좋은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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