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공부하는가 -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물어야 할 질문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나는 공부하는 인간이다. 그 말은 여러 표현으로 변주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는 인간이다. 나는 글을 쓰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어른이 된 이들 가운데 공부를 하고 있는 인간은 희귀종에 속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고 살고 있다. 그 말은 꿈을 가진 어른들이 의외로 적다는 얘기다. 꿈이 있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책을 읽고 또 끝없는 갈망으로 일과 공부 사이에서 고민한다. 시간 부족과 싸우며, 공부가 진척이 되지 않는 현실과 고민한다. 그 두 부류의 인간 가운데 10년 후 누구의 삶에 더 큰 변화가 있겠는가?
우리 시대 대표 공부인간 김진애의 <왜 공부하는가>(다산북스,2013년)에는 저자의 공부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화려한 그의 경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서울공대에 800명 동기중 유일한 여학생, 30대에 MIT 건축 석사와 도시계획 박사를 취득했고, 40대엔 미 시사주간지 <타임> `21세기 리더 100인'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등재했다. 50대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풍부한 건축지식과 비판적 지성으로 `4대강 저격수'를 자처하며 임기 중 의정활동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경력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받은 깊은 인상 덕분이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서재에서 그는 평화롭게 앉아 책을 읽었다. 탐나는 서재속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열독하는 그 모습.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공부 인간, 책 읽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는 공부를 주제로 한 그의 일대기가 담겨 있다. `공부 자서전'으로 봐도 좋겠고, 고수의 공부철학으로 읽어도 좋다. 그의 공부이론은 6가지로 발전한다. 첫째 공부비상구론이다. 1남 6녀의 딸부자집 셋째였던 그는 고교 시절에는 영화와 책읽기에 빠져살던 평범한 소녀였다. 학교 공부를 등한시 하던 그가 고2 시절 앞으로 1년, 오직 공부만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포위당했다 회상한다. 지금 그 순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고, 독립할 수 있는 밥벌이를 못할 것이 명백했다. 그의 꿈은 "내가 벌어서 먹고살 거야!"였다. 그런 독립심과 자존심이 공부를 해야겠단 결단의 순간으로 인도한 게다.
"다행히 인생은 수없이 많은 결단의 순간과 그 결단을 지킬 기회를 예비하고 있다. 그 순간과 그 기회를 어서 한번 잡아보자. 여하튼, 결단이란 매혹적인 것이다. 지키기란 결단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결단의 매혹에 빠져보자. 독하게 결단을 지켜보자. 그리하여, 결단의 기억을 쌓고 자신을 믿어보자 ! " 33쪽
둘째 공부생태계론이다. 이 장에선 분위기 자체가 다른 MIT 공부 환경을 다룬다. MIT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 교류와 창업 비즈니스의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거대한 공부생태계였다. 또, MIT는 우리가 알고 있던대로 일개 공대가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들의 활동 무대였다.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MIT 미디어 랩으로 세계적 학자로 부상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등 우리 시대의 멘토이자 스승들과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준 곳이 MIT였던 게다. 김진애는 거대한 공부생태계가 선물한 생생한 호기심과 깊은 안목으로 문제창조 정신, 현장 정신, 창업 정신 세가지를 배웠다고 전한다.
그의 공부이론은 `창업은 인생 최고의 공부'라는 공부실천론, `리더보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훈련공부론으로 이어진다. 이 두가지 이론은 건축가로서 학계보다 현장을 선호했던 그의 독특한 현장 공부론으로 봐야 하겠다. 창업이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장은 공부를 실전에 적용시키며, 사람을 단련시키고 아마추어를 진정한 프로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공부 그라운드였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그의 `놀이공부론'이다. 일의 최고 단계는 즐기는 것, 즉 놀면서 일하는 것이다. 일을 놀면서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인생은 축복 아니겠는가? 놀이와 공부가 일치하고 놀이와 일이 합일되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여, 그는 다양한 분야에 빠져들기를 좋아했다. 무엇을 하던지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놀이에 집착했더니 결국 그것이 공부가 되더라는 얘기다 . 라디오왕,노래광, 팟캐스트광으로 살았더니 듣기를 통해 분별력과 판단력 등 지적 능력이 길러졌고, 소통능력, 분위기를 조율하는 능력까지 덤으로 얻었다. 또, 상상력을 키워준 만화읽기, 무한한 공부의 주제를 담아낸 영화 보기, 깨달음을 건네준 걷기와 여행 등은 삶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것이었으니 과연 공부의 최고 경지다.
"교육이라는 말 대신 내가 좋아하는 말은 `자라기, 깨닫기, 묻기, 답하기, 해보기' 같은 것들이다. 부풀려 표현하자면, 나는 `소크라테스'적이고, `아인슈타인'적이며, `다빈치'적이다. 우리 식으로 풀어보자면, 나는 `연암 박지원'적이고, `퇴계 이황'적이고, `고산자 김정호'적이다. 해냈던 일 이상으로 이들의 삶의 방식, 자라기 방식이 좋다. 표현하자면, 이들은 인생을 한바탕 잘 놀다 간 것 아닐까? 나도 그렇게 잘 놀다 가고 싶다." 175쪽
`인포프래너'라는 매혹적인 직업이 있다. 한분야의 정보나 지식, 노하우를 파는 1인 기업가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책을 쓰는 저자들이다. 끊임없이 창조적인 컨텐츠만 생산할 수 있다면 이 직업엔 정년이 없다. 그는 죽을 때까지 정보생산자로 살아갈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크리에이티브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50줄에 들어선 김진애는 지금껏 25권의 책을 펴냈다. 공부하는 인간, 김진애는 가장 대표적인 `인포프래너'였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가 주어진 명성과 학위로만 만족했다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없었을게 분명하다.
삶의 매 순간이 배움이자 공부다. 이 책의 저자가 가르쳐준 공부의 비법 가운데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닮고 싶은 가르침이다. 꼭 책을 보며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않아도,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그 분야의 박사가 될 수 있다. 관심의 폭이 늘면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도 늘기 마련이다. 공부라는 말에서 `열망'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앞으로 발전할 것이고, 진보할 것이다. "공부진화론"에서 저자는 "개인을 넘어선 꿈이 진짜 꿈이다"란 말로 이걸 풀이한다. 공부의 시작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그 끝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이룰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하여,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서로 말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 사슴을 말이라 우기는 괴상한 시대는 한갓 웃음거리가 되고,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발설하는 아첨꾼과 미디어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왜 공부하는가"라는 저자의 물음을 생각해 본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루고픈 "꿈과 목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공부의 추동력이다. 목적지가 없다면 여행 배낭을 꾸릴 수 없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일 뿐이다. 방랑은 방황이고 흐지부지한 시간의 흐름이다. 그 시간을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는 사람은 공부하는 인간이다. 공부가 꿈에 다가서게 한다. 김진애는 일평생 공부를 해오고 있다. 그가 이룩해낸 성취도, 성공도, 겪어낸 좌절과 절망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말을 의지해 넘겨왔다. 국회의원에 세번 떨어지고도, 건축분야에서 쌓은 커리어가 넘쳐나도, 그는 좌절하거나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또 여행을 떠났다. 더 많이 자라고 싶어서다. 우리도 그처럼 열심히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