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CEO - 도시인에게 과수원을 팔다 CEO 농부 시리즈
조향란 지음 / 지식공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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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처럼 흔한 상품이 어디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인근 마트에서 다종다양하고 국적까지 불분명한 과일들을 한 바구니 살 수 있다.  농가와 유통업자의 손을 거쳐 소비자는 과일을 맛보게 된다.  과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농부의 노력과 정성이 첫 번째다. 다음으로 얼마나 신속하고 신선한 유통체계를 갖추느냐 하는게 두 번째 요소다.  과일은 흔하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싼 가격과 수확의 풍요로움에 기초해 과일 유통의 문제가 발생한다.

얼마전 한 TV 프로그램에선 성장촉진제를 듬뿍 바른 과일이 재배되고 유통되는 현장을 고발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배, 딸기, 토마토완 다르게 요즘 과일은 지나치게 크고, 상태가 말끔하다.  그 이유가 화학비료와 농약도 모자라 성장촉진제 덕분이라니 맛있게 먹었던 과일이 뒷통수를 친 느낌까지 든다.  또,상자 윗부분의 상태만 보고 산 과일이 전체적으로 불량한 경우도 있다. 유통단계에서 감귤 같은 경우 빛깔을 곱게 내기 위해 약품 처리를 하기도 한단다.  시장이 과열되고 비대해지며 발생하는 현상은 과일 재배와 유통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과일 브랜드 `올프레쉬와 유통회사 `썸머힐 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조향란 대표는 <과일 CEO>(지식공간 펴냄, 2013년)란 책에서 과일 유통사업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과일 농가가 자연 그대로의 과일을 건강하게 생산하도록 지원하고, 소비자들은 친환경 제철과일을 가장 맛있는 시기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게 올바른 유통, 착한 유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53쪽

농가에겐 안정적 판로를 통해 더 많은 소득을, 소비자들에겐 `성형한' 사철 과일이 아닌 제철과일이란 모토를 사업에 내건 사람이 바로 조향란 CEO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그려내는 과일 이야기는 `올프레쉬'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신선하다.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을 과일 유통의 비전을 이 여성 CEO는 책 속에서 자신있게 설명한다. 누구나 안심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을 판매하겠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어린시절 이후 잃어버린 과일 맛을 고객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자, 과일 상품에다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심는 일이었다.

IMF 시절 식당업이 망하고 인생의 큰 위기 앞에, 부산 달맞이 고개를 넘다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던 그는 어느 식당에 내걸린 시 한 편에 용기를 얻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한번 실패한 사업을 핑계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남다른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보따리 무역상을 거쳐, 1999년 일본 최대 유통회사인 이토 요카토에 복숭아 300 상자를 납품하는데 성공한다. 과일 유통업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 이후 부단한 노력과 천성적인 적극성으로 사업을 확장해, 농협과 대형 유통업체가 잠식하고 있던 국내 과일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올 프레쉬'라는 과일 브랜드를 런칭하며, 온라인 쇼핑몰과 용산구 한남동에 올 프레쉬 1호 매장을 오픈했다.

이 책이 가진 성격은 대단히 복합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 회사의 비전과 맞닿아 있는데, 농가와 유통업자, 그리고 소비자 모두에게 과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도록 돕는다. 지금껏 농가는 소득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하여, 남보다 빠르게 더 많은 과일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소비자는 제철 과일을 먹지 못하고, 농가는 성장촉진제 등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소비자는 대량으로 유통되는 과일을 그저 싼 값에 소비하는데 관심이 가 있었을 뿐,  정통 농법으로 재배돼 적당한 시기에 수확한 과일을 맛볼 수가 없었다. `착한 유통'이 필요로 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조향란 대표가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과일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착한 유통업자로서 비전을 세우고 그 가능성을 믿고 전력투구해 왔기 때문이다.

 유통은 삼통(三通)이다. 유통을 하려면 세 가지와 통해야 한다. 먼저 생산자와 통해야 하고 다음 소비자와 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심과 통해야 한다.  <올프레쉬>는 이 사업의 브랜드명이기도 하지만 이 유통 구조를 처음 생각했을 때 가졌던 내 마음가짐을 변함없이 지키겠다는 의도도 있다."   20쪽
 

이 책은 한 여성 CEO의 과일 유통 경험담과 노하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보태 책의 후반부 `진심과 통하라' 라는 장을 읽으면 사업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삶의 이치와 자전적 인생에서 건져올린 교훈들과 만날 수 있다.  입지전적 삶에 대한 자서전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다. 

 

IMF의 첫 위기 이후,  과일 사업을 막 시작한 그에게 또다른 위기가 다가왔다. 일본에 복숭아 수출이 시작된 2000년 300 박스였던 물량이 1년만에 150톤으로 늘었다. 하지만,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복숭아 농사가 지지부진했고 결국 일본 거래처에 복숭아 15상자를 비행기에 싣고 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지변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지만 일본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훗날 과일을 연구하며 알게 된 사실은 품질 좋은 과일은 A급 태풍이 불어와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출길에 쌓아놓은 컨테이너가 무너져 과일이 못쓰게 된 경우도 있었다. 초반 자금과 경험이 부족했던 그에게 이 위기는 IMF이후 최대 시련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평소 신뢰와 품질로 인정 받아온 덕분에 일본의 관계 공무원과 바이어는 그에게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그를 도왔다.

 

그는 이 사업의 최종 목표를 `이익'이 아닌 `명예'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기업가와는 생각이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무역이란 신뢰가 처음이자 끝이다.  즉, 자신의 이름에 매겨진 값이 사업의 규모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CEO의 이름 석자, 혹은 회사 이름 하나면 다 통하는 것을 사업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비즈니스에서 겸손한 태도를 중시한다. `묻는 사람이 자세를 갖췄을 때, 진심 어린 답변이 돌아온다는 생각'에서다.  초기 경영과 과일에 대해 문외한이었을 때마다 겸손의 가치는 빛을 발했다. 묻고 또 물으며 낮아졌을 때 그는 더 많은 지식을 건네주고 진심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나타났다 회고한다.

 

그는 CEO로서 직원들에게 3가지 말을 자주 한다. "품질을 유지할 것, 약속을 지킬 것, 더 나은 방식을 개발 할 것"  그가 직원들에게 바라는 점은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도하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가능성은 언제나 반반이다. 유통업을 하면서 도전과 설득은 일상사였다. 농민을 잘 설득해야 좋은 품질의 과일을 유통시킬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 크게 도움이 됐던 것이 긍정적이고 적극적 사고방식이다.  그건 비단 사업가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이치가 아닌 듯 하다.

 

" 현재에 만족하면 미래는 없다. 정지하면 퇴보하고 지금 가진 것도 줄어들게 된다.  1cm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현상유지가 된다.  비즈니스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것과 같다.  노를 젓지 않으면 지금 자리도 지키기 힘들다."  189쪽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다. 위대한 기업에는 위대한 가치와 비전을 품은 CEO가 있다.  하여, 때로 기업의 이미지는 경영자의 인격과 혼을 담는다.  살아생전 애플은 곧 스티브 잡스라는 CEO를 표상한 기업이었다. 이 책에서 만난 여성CEO 조향란 대표가 몰입한 삶은 "농가는 농사에 전념하게 하고 고객에게 맛좋은 제철과일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유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로 정리된다.  이것은 그가 CEO로 있는 과일 브랜드 `올프레쉬'의 비전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올프레쉬라는 생소한 브랜드가 과일 시장에 조용히 일으킨 신선한 감동을 지켜볼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미래 과일 유통과 소비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았을 듯 하다. 한 CEO의 정직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유통업계의 본보기가 될 만 하다.   '장사란 이득을 남기는 것이 아닌 신뢰를 쌓아 명예를 남기는 작업"이라는 조향란 대표의 표현은 고객이 감동하는 비즈니스의 정체를 설명한다. 독자들은 <과일 CEO>를 통해 세가지를 만날 수 있다.  맛있고 건강한 제철과일, 정직한 사업가, 그리고 아름다운 비전이다. 비즈니스도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인생처럼 장사도 철학이 있어야 풀리는 법,  그걸 우린 상도(商道,business morality)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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