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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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영국의 고고학자 윌터 윌킨슨이 아랍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기록된 문서 하나를 발견한다. 이 문서는 기원후 1307년경의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한 것은 전세계에 흩어진 이 문서의 사본이 155부에 이르지만 그 진원지는 이집트 국경너머의 도시 아크라라는 것이었다. 작가인 `나'는 친분이 있던 고고학자 윌킨슨에게 이 문서를 건네 받았다. 그리고 "아크라 문서"에 기록된 이야기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하다. 소설적인 요소는 책의 15페이지에서 멈춘다. 그 이후 이 책은 이집트의 그리스도교인 현자 콥트와 11세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진리에 대한 문답으로 채워진다.

 

현자와 무명씨들의 대화에는 중요한 역사적 진실이 놓여 있다. 예루살렘이란 공간과 11세기로 설정된 시간이 무명씨들과 콥트인의 운명을 결정할지 모른다.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이 절대적 좌표는 날이 밝으면 예루살렘 정벌을 예고한 십자군의 공격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광장의 역사는 다시 10세기를 앞질러 똑같은 광장에서 재판을 받고 유죄를 선고받았던 한 남자를 생각케 한다. 바로 로마군대와 유대인들에게 동시에 멸시 받았던 인간, 예수다. 그가 진리에 대해 모든걸 말하고 갔지만 예루살렘의 광장에 모인 인간들은 전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 콥트인은 십자군 공격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처럼 시간과 공간에 구애되지 않는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반복일지라도 인간은 어리석기에 삶의 근본적 질문과 답을 구하지 않는 법이다. 콥트는 이 점을 상기시킨다.

 

" 우리는 매일의 삶에 대해, 그 안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후손들은 바로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천년 후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 24-25쪽,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권력과 전쟁, 정치의 역사는 인류에게 영적 가르침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당대 권력자들의 문제였고, 하찮은 욕망이란 본능으로 귀결될 뿐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되풀이 된다. 현실적인 문제이자 영속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삶의 기교, 방향,의미를 갈구하는 것은 언제나 "어떻게 살 것이며, 대체 살 가치가 있는가?"란 실존적 질문이다.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시든 꽃잎처럼 생의 의미를 상실해 간다. 그러니 콥트는 오지 않는 내일의 전쟁을 말하기 전에, 오늘 당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느냐에 집중하자고 선언한다. 하여, 현자 콥트는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처방전을 건네 준다.

 

패배가 무엇이냐를 묻는 이웃에게 콥트는 말한다. "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저 거쳐가야 할 단계가 있을 뿐이다. " 그러니 역경의 시기도 받아들여야 하고, 영광의 순간에 도취되어선 안 된다. 그는 패배자란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싸우겠다는 마음, 이겨내려는 의지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패배자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도망자가 될 여인이 물었다. 고독이 무엇입니까? "고독 속에 놓일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늘 혼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쟁을 앞두고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치부하는 한 소년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그저 충실히 살려 노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위로한다.

 

또,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내면에 가장 밝은 빛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라며 외부의 빛으로만 자신을 꾸미려 할 때, 각자가 가진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잊게 된다고 조언한다. 일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만 훗날 그 시간을 돈으로 되살릴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전쟁을 앞두고 불안에 대해 묻는 한 남자에게 답한다. "인간은 불안과 함께 태어났으니 그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폭풍우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선 " 맡겨진 사명이므로 타인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일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때를 맞춰야 하는가?   콥트는 말한다.

 

"때가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심어놓은 나무에 과일이 열렸다고 설익은 것을 너무 일찍 따버리면, 먹는 이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한다. 반대로 두려워서든 불안해서든 열매를 따 봉헌해야 할 시기를 너무 미뤄버리면, 열매는 썩어버리고 만다." 138쪽

 

현자 콥트는 누구인가? 그는 죽음과 전쟁을 앞둔 사람들에게 지금 "삶" 자체를 가르치고 있다. 콥트에게 내일 닥칠 전쟁의 참혹함은 작은 관심거리도 안 된다. 사람은 백년을 살지만 성인의 가르침은 영원하다. 예루살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당장 내일을 걱정하지만, 현자는 영속하는 인류의 삶과 굴레앞에 절망한다. 아크라문서는 천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 독자앞에 등장한다. 천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이 지닌 고뇌의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깨달음을 언어로써 전달할 순 없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작품을 구상하는데 64년(자신의 나이)이란 시간을 필요로 했다고 고백한다.  성인 예수는 "구하면 줄 것이고, 찾으면 찾아낼 것이며,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했다.   <아크라 문서>는 작가가 일평생 구도와 전념을 통해 얻어낸 지혜의 부스러기다. 그러한 가르침을 통해 얻으게 많겠지만, 본질적으로 <아크라 문서>는 죽은 언어가 아닌 살아있는 "행동"을 촉구한다.

 

이 작품은 파울로 코엘료가 심장수술을 하고, 죽음 가까이에 다가선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지만, 그것은 차라리 일평생을 추구해 얻어낸 구도(求道)의 언어들로 봐야 마땅하다. 누구도 자신 몫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오늘 죽음과 허무와 실패와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아크라 문서>가 남긴 희망적 치료의 언어들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힘들고 모두가 불안하다. 코엘료의 소설은 이점을 환기한다. 11세기 십자군의 침략을 앞둔 예루살렘의 저 불행한 사람들과 오늘 절망하여 죽기를 결심한 사람들 사이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하여, 역사보다 운명보다 앞서는 것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겠다"는 인간의 선한 의지가 아닐까? <아크라 문서>는 저 역사속에 잠든 현자의 언어를 깨워서라도, 인간을 살리는 영속하는 지혜에 다가가겠다는 파울로 코엘료의 진심이 담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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