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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기에 - 청춘편
미우라 아야코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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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 요한일서 4장 11-12절





98년 4월 전방철책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나, 그곳은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산악지대
였다. 우리 소대가 경계를 맡은 지역은 지형이 험준해서 간첩조차도 넘어오길 포기한다는
곳이었다. 야간 경계근무가 끝나면 나는 곧바로 잠들지 않았다. 군대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무언가를 낭비하고 있다는 조바심에 몸부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라도
잡지 않으면 온통 그 하루가 내 인생에서 깨끗이 지워지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언제나
책을 잡았다. 작은 나의 관물대에는 군복을 제외하곤 작은 서가나 다름 없었다. 2년 2개월간
군대에서 읽은 책들이 약 77권 정도이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딱 한 권 있다.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길은 여기에>라는 수필집? 이것을 수필집이라고 해야 할까?
기억으론 분명 수필집 이었는데, 그것은 자전소설이 정확한 명칭이다. 소대의 작은 책장에
꽂혀 있던 자그마한 문고본이었던 그 책. 책이 귀했기 때문에 서가의 책들을 순서대로 읽어
가던 나는, 아마도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를 읽은 후에 그 책을 읽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
한다. 그 책을 읽는 동안에 정말로 하루하루가 귀한 시간이었다. 그 책을 읽는 새벽 시간은
내 인생이 새롭게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일본의 패전과 그에따른 개인적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아야꼬의 수기는 13년간 투병 생활과 정신적 타락, 그리고 정결한
신앙인 친구 마에까와 다다시라는 사람을 통해 신앙을 갖기까지의 아야꼬의 인생역정이 그려
져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철학에 심취해 있어서 삶이 철학으로 해명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의 모든 고민은 형이상학적인 것이었고, 그런 내용을 담지 않은 문학
은 시시해 보였다. 더군다나 종교적 믿음이란 너무나 추상적이고 허깨비 같은 것이어서, 도대
체가 믿음을 갖는 일은 불가능하게 보여졌다. 신을 볼 수 없는데 느낄 수 없는데, 실재하지
않는 신에게 어떻게 의지할 것인가? 내가 신앙으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그런 단순한 논리였다. 그러나 아야꼬의 절절한 투병기와 그가 신앙으로 빠져드는 모습들을
읽어가면서 나또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
었던 "보이지 않는, 실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문제를 아야꼬는 요한일서 4장 12절의 구절의
인용을 통해 그 책속에서 해명해 주고 있었다.


"어느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 요한일서 4장 12절


그 시절엔 한동안 이 구절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기엔
군대의 환경은 적절하지 못했다. 전방의 봄은 늦게 찾아온다. 겨울 내내 눈을 치우느라 허리가
망가지고, 눈만 내리면 먼저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 정신병?에 시달리던 그 시절에 5월을 하루
남겨둔 4월 30일의 폭설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아야꼬의 책 <길은 여기에>는 내 독서인생
에 가장 큰 자국을 남겨두게 되었다. 훗날 여름이 가까워서 다시 아야꼬의 <빙점>을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제 형이상학은 내게 명철한 인간의 지성을 상징하는 것일 뿐, 별다른 감명은 없다.
나는 형이상학에 빠져들어 10년을 지나고 겨우 그 복잡한 인간의 철학에서 해방되었다. 인간의
철학은 철학자의 숫자에 비례한다. 그만큼 다양하다. 과거 나는 회심하는 작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심없이 사는 똑똑한 작가들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자살한 이은주란 배우가 했다는 그말. " 아기곁에는 엄마가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말의 의미에 공감한다. 나의 신앙은 이제 시작이어서 믿음이 얕지만,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관계를 더 깊고 더 가깝게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 남아있다.





2005.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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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블루스 창비시선 149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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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시집 <세기말 블루스>





가끔은 시가 그리울때 습관처럼 펴드는 시집 한권이 있다. 그 시집속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자아 하나를 거울마냥 들여다보다 다시 덮어버리곤 한다.
거울에 때가 끼듯 하나의 자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늙어가며 하나 둘씩 나이를 먹어 시는 더이상 이 시를 쓴 사람
에겐 맞지 않겠지만, 여전히 거울밖의 독자에겐 오래된 외투마냥 익숙해져
버렸다. 신현림의 시집 <세기말 블루스>는 1996년에 나왔다.

신현림이란 시인을 알게 해준 시집이자, 시의 언어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그래서 언젠가는 시가 가진 멋진 언어의 환락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나를 시와 느슨하게라도 연결해 놓고 있던 끈이 돼 준 것이 바로 이 시집
이다. 이 시집을 세기말로부터 세기초에 이르는 시간동안 제법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다. 그 이유란 아마도 이 시집속에서 그렇고 그러한 시간들
을 시인과 함께 공감했고, 공유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한 공유는 젊음이 가진 습속같은 것들이다. 시인은 세기말이란 불안한
자유속에서 슬픔과 과거 현재와 절망 모두를 안고 살아가는 고독한 자아다.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고 포문을 연 시인이 당도하는 곳은 황량한 세기말
의 풍경들이다. 거기엔 익을대로 익어버린 문명의 황폐함과 익명의 단절감
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시인은 주체할 수 없는 과거의 절망과 미래의 암울
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세기말로 향한다. 그러나 시의 언어가 가진 자유의
풍요로움이란 절망도 슬픔도 감추지 않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 것
인가 ?

나는 이 시집 속에서 스물 아홉 청춘의 어정쩡한 젊음을 발견한다. 20대를
정리해야 할 나이지만, 무엇을 정리할 수 있을까 ?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인
생에서, 반듯반듯 구획되지 못할 삶 가운데서 무엇을 정리하고 갈 수 있을
것인가 ? 그럼에도 시인은 20대의 한 시절을 깔끔하게 정리해 보인다. 스
무살에서 서른살까지를 아우르는 "나의 20대"란 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단자화된 언어에 촘촘히 집약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20대를 이렇게
선명하게 규정지을 수 있다면 규정짓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언어속에 담
긴 20대는 분명 하지만, 거기엔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기억들이 그녀를 옥
죄고 있다. 그 가운데 25세란 구절에서 그녀에게 예술이 그 시절 어떤 모
습으로 인생에서 의미를 획득해 나가고 있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25세 - 고독과 예술의 은총을 선택했다- 장미화원처럼 황홀
했던 정기간행물실에서 살다. 자살하고 요절하고 남달리 불
우하고 저주받은 작가에게 위로받고 고단백 예술의 영양가
를 얻다. 사트트르와 함께 구토하고 카프카의 성에서 바슐라
르와 촛불을 켜고 카뮈에게 정직함을 배우다" (나의 이십대)


이 시집의 독특한 점은 시와 다른 예술 기법의 조합이다. 이 시집 사이사
이에 시인이 직접 작업해 올려놓은 포트레이트(상반신인물사진)나, 판화
작업을 통한 작품들이 시와 함께 시인의 내면의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 작업들도 시인의 손을 거친것은 물론이다. 시인의
다재 다능함을 엿볼 수 있는 이 시집 전체가 그녀의 혼의 열정처럼 다가
오는 이유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면 세기말에 시인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인가 ? 격랑의 20대를 지나 30
대의 장년에 한참 발을 들이밀고 있는 "삼십삼 세의 가을"이란 시에서 그녀
는 그 나이의 인생을 홀로 걸어가고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며 어떠해야
하는지 해설한다.


"나의 삼십삼 세란
무엇에든 용감해지는 일이다
바람 속 장작불처럼 거친 외로움은
죽음의 공포쯤은 커피 마시듯 넘겨주는 일"(삼십삼 세의 가을)


신현림의 시어들은 패기있고 발랄하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 40를 바라다
보는 독신자 라는 점을,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아가 기뻐하고,
절망하는 일상을 무모하리만치 솔직한 시어로 직조해 내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언어는 세월 속에서 처절하게 세기말을 맞이하는 사람들, 어쩌면
인생의 황혼으로 다가가는 모두를 자신의 시어들로 보듬어 안고 있단 느
낌을 들게 만든다. 그녀의 시가 보편적인 위안을 선물하는 것은 인생에
성공보다는 그 성공의 이면뒤에 누추한 자아의 실패와 절망이 이면처럼
존재한다는 상식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비단 세기말의 궁지에 몰린 인
간들만의 고뇌가 아니라, 젊음을 견디어 내야 하는 모든 청춘들의 고뇌
이기도 한 것이어서, 이 시집이 가진 가치는 여전히 젊은 모두에게 의미
있다 할 것이다.


힘겹게 일어서야 하는 장년의 인생이란 더군다나 혼자서 그 모두를 견디
어 내야 하는 청춘이란 이처럼 고단한 언어들을 한시절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 한 듯이 보인다.












200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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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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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던 김현, 그는 1990년
6월 27일, 48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했다. 생전에 백년 후까지도 살아남아있을 그 몇
안 되는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던 불문학자 겸, 문학 비평가가 바로
그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책이 되고만 이 일기에서 만난 그는, 무척 소탈하고 책읽기를 좋
아했던 평범한 한 사람의 성실한 독자로 비춰진다.  그것은 이 책이 `행복한 책읽기'로

이름지어진 이유가 아닐까.  이 일기속에서 그는 정말로 열심히 읽는다.  요즘의 문학
평론가들도 이만큼 열심히 읽기는 힘들겠단 생각을 해볼정도로, 그의 책읽기는 무척
꼼꼼하고 성실하다.

<행복한 책읽기>는 1986년에서 1989년까지의 독서와 일상에 대한 김현의 기록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이자, 또 가장 큰 애착을 보여준 책은 공교롭게도 그의 거창
한 문학 평론집들이 아니라, 바로 이 책이었다.

김현은 이 글을 286 컴퓨터로 써 내려갔다한다. 죽기 얼마전부터 그는 컴퓨터에 무척
심취했었는데, 이 책에서 보여지는 소탈하고 거침없는 문체는 아마도, 컴퓨터 타이핑
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책에 대한 감상, 일상에 대한 느낌. 이 두 부분을 적절히 혼합한 느낌이 들지만 주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책에 대한 감상이다. 이 일기를 살펴보면 그의 독서 방향을
엿볼 수 있는데, 주로 시에 대한 비평이 다수를 찾지하고 있는 것은 좀 특기할만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김현은 어느날의 일기속에서 갈수록 `짧은 글을 선호하게
된다'라고 썼다. 병세가 갈수록 위중해지는 모습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겨우, 그런
작가의 암시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김현은 자신이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는 모습을
좀처럼 이 일기에서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일기치고는 너무 객관적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속에서 독자는 어떤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 책에 이상한
애착을 품었는가 ? 1980년대의 말미에 나는 중학생이었다.  그가 독서일기를 쓴 그
3년간 나는 까까머리 중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문학이란 고리타분한 국어 과목의 일부
분이었을 거고, 책읽기란 교과서 읽기가 다였을 거였다. 그 시기에 쓰여진 일기를 읽는
다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의 순수함같은 걸 되찾는 일같다.  매 일기의 첫 머리에
기록되어 있는 날짜를 보면서, 나의 무덤덤한 중학 시절과 김현의 `행복했던 책읽기'의
시절이 겹쳐진다. 누구에겐가는 파릇파릇한 성장의 시기였다면 또 누군가에게는 생명
의 빛이 꺼져가는 시간이었을거란 이런 사소한 깨달음은, 이 책을 읽는 나에게는 비애
감과 섬뜩함을 심어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어김없이 한 장 한 장을 채우고 있는 그 3년동안의 책읽기와
일기의 날짜들에서 삶의 유한성 보다는 삶의 완결성을 배운다. 더불어 삶이 과정이
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종착지로서의 인생 보다는 과정으로서의 인생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논리를 배운다. 그래서 언제나 시작처럼 끝도 당당하고 성실해야 한다
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다. 일기처럼 삶도 묶여질 수 있다면, 유한한 시간속에서
우리의 하루하루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 답을 이 책은 주고 있는 듯 했다. 하나의
텍스트는 삶의 완결성에 닿아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동시대의 작가들이 비평가인 김현의 손에 요리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신진작가에게는 가차없는 비판이 가해지고, 또 어떤 작가들에는 과도
한 찬사가 이어진다. 비록, 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글속에서도 김현은
자신이 비평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비평가로서 냉정과 호의 사이를 오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작가들 가운데 요즘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가 많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김훈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자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김훈은, 80년대 김현의 예언대로 훌륭한 작가로 성장했다.

이 책의 미덕을 무엇에 둘까? 그것은 아마도 책의 반 이상이 할애된 작가의 노고만큼
시에 대한 독자의 새로운 인식이 아닐까 한다. 단순히 그 시대의 시인들만이 아니라,
인용된 시를 통해 시를 보는 방법, 안목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인문학
서적 가운데서도, 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시의 독법을 자연스레 이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이다.

다시금 아쉬운 점은 훌륭한 비평가가 너무 이른 나이에 요절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 나이에 김현은 이미 비평가로서는 모든걸 이루어냈다.

더불어, 새로운 시인, 새로운 소설가. 그들의 탄생앞에서 통과의례처럼 막강한 영향력
을 발휘하던 막후의 비평가들의 존재를 김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문학권력은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는지, 이 책은 내게 물음표를 던진다.



<밑줄긋기>


"한 사오 년 전쯤, 거의 모든 것을 팽개치고 집에 들어앉아, 노자와 장자만 읽던 내가
생각난다. 나는 버렸고, 그리고 이삼 년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조금씩 기력이 되살아
났다. 지금도, 그때의 그 무기력증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삶에는 지름길이 없다. 자
기가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1989.10.24)"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 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살아 있다 (1989.12.12) "







2004.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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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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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이 참 감성적이다. 책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지는 않지만, 서점에서 보았다면
한번쯤 들었다 놓았을법한 제목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리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역사적이다. 우리로서는 치욕의 역사라 할 수 있을, 한일 합방 전후 중국의 정세
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루쉰, 그는 누구인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아큐정전>이란 소설로 혹은 `노신'이란 필명
으로 유명한 작가다. 오늘날 중국인이 근대의 아버지라고 칭하고 있다는 소설가. 그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중국의 혼란기에 중국민중에게 길을 열어보였던 한 사람의 사상가였다.

일찍이 서양의 실용학문에 관심을 있어서 기술과 의학 교육을 받았고, 혼란기의 중국 민중
의 정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육체보다는 정신의 개조가 필요하단 생각으로 과감히 일본유학
시절, 의학에서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귀국해서 베이징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한다.

루쉰이 살았던 시대의 중국은 1980년의 광주처럼, 합법을 가장한 국가주의 폭력과 살인이
난무했고, 전제주의가 막을 내린 청국의 쇠퇴후에는 수많은 군벌간의 정치권력의 쟁탈전
속에서 민중이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대였다. 그는 그 시절에 활동하던 혁명가들의 스승
이나 다름없었다. 중국문명 비평 작업을 통해서, 중국의 문화와 학문을 비판한다.

이 책은 루쉰의 짧은 산문들을 모아둔 책이다. 그는 소설을 비롯하여 수많은 `잡문'등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그 글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서 편집해 놓은 책이다. 역시 소설가로서의
루쉰의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서, 이같은 산문들 보다는 소설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이 책속에서도 역시 짧지만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루쉰의
사상을 엿볼 수는 있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가감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에
서 어설픈 국수주의같은건 찾아볼 수 없다. 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 기도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그는 과감히 비판의 화살을 밖이 아니라 중국과 중국민중 내부로 돌리고 있다.
중국의 쇠락과 혼란의 원인을 타인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매우 신선하게 보인다.

최근 이문열이라는 소설가는 한일합방의 국제법적 합법성을 강조했단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로서 워낙에 억지 주장을 많이 하는 작가라 귀담아 들을 가치조차 없다.. 이 사람을 보면,
언젠가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해서 기소된 김완섭이란 사람이 생각난다.
둘다 비슷한데가 있다. 파격적인 주장을 내세워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칭
지식인이라는 자로서 그들은 한 세기전 중국의 루쉰에게서 배워야 할 바가 많다. 우매한
중국민중을 어둠에서 일깨워 문화와 정치의 개혁을 이끌었던 시대의 스승 루쉰에게서 말이다.
그들은 오히려 민중을 우매함으로 이끌고 있으니..어찌 그들이 한 시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날은 과히 쭉정이 지식인을 감별할 수 있는 지식인 감별사가 필요한 시대다.


기억에 남을만한 글로,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1923년 12월 26일 베이징 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회
에서 했던 연설을 묶은 것이다.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를 내세워 변혁기에
중국 신여성들이 전통과 보수적 편견을 이겨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역설하는 글이다.

<류허쩐 군을 기념하며>, 중화민국 15년인 1926년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도중 살해된 류허쩐과
그외 40여명의 청년학생들을 추모하며 적은 글이다. 마치 1980년의 광주를 보는 듯한 이 사건
을 통해서, 루쉰은 `추도사도 비통함이 가라앉은 뒤의 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암울한 정치적
현실을 개탄한다.

<후지노 선생>, 중국에 의학을 배우러 갔을때 자신의 노트를 일일이 수정해주는가 하면 그
어떤 사람보다 자신을 아껴주었던 일본인 선생을 추억하는 글이다. 국적을 넘은 스승과 제자
의 친분과 오랜 우정으로 루쉰의 학문에 채찍질이 되어준 한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한 글이다.


<밑줄긋기>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에 난 길과 같다.
사실 지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단편<고향故鄕>)"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안타깝지만 중국은 너무 변혁이 어렵습니다. 책상을 하나 옮기거나 난로를 하나 바꾸려
해도 피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더구나 피를 흘린다고 해서 옮기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커다란 채찍이 등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채찍이 언젠가는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어쨌든 분명히 내려칠 것입니다."







200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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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워 인생론 홍신사상신서 8
쇼펜하워 / 홍신문화사 / 1990년 10월
평점 :
절판


 

1995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책을 다시 펴들었다. 아마 한 번이 아닐 것이다.
`쇼펜하우어 인생론'으로 육문사에서 나온 책을 한 번 읽었고, 다시 얼마 안 있
어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이 책을 손에 쥐었다. 시간을 더 앞질러 가보면 대학
학력고사(나는 학력고사의 마지막 세대다)을 보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고3의 마지막 겨울에 서점에 들러 들고나온 책이 아마도 이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쇼펜하워와 인연이 많은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런데 1995년
즈음에 우연하게 연이어 두 사람의 번역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책의
내용이 겹치지만 부분적으로 두 책이 발췌 번역을 해논지라, 내용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책은 독일어 원서에서 발췌번역돼 출판한 것 같다.) 우리
나라에 소개된 쇼펜하워의 저서는 두 가지 정도다. 그가 일평생 온 힘을 기울려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한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와 재야?의 학자로서
간간히 발표했던 철학 소품, 논문등을 후기에 묶어 출판한 <여록과 보유 Parerga
und Paralipomena>가 그것이다. <여록과 보유>가 오늘날 <쇼펜하워 인생론>으로
알려진 책이다.

1월에 이 책을 산뜻하게 펴든 이유는 아마도 그때의 저자에 대해 받은 강인한
인상때문이었다. 사실 쇼펜하워는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어 그렇게 독서가
유쾌하지 않을거란 편견을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그의
책을 몇 번 정독한 독자로서 얘기하자면, 그는 인생에 대해 온갖 험담만 늘어
놓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이 책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테
니까. 쇼펜하워 인생론에는 그의 염세철학이 녹아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형이상학의 철학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자신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분 독일 관념론에 대한 서술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이전의 칸트의 철학서나 동시대의 철학자 헤겔의 주저와는 그 서술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이것은 70 평생 동안 거의 당대의 학계에서 그의 철학이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 말년에 들어서 일반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그는 곧바로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대접받게 된다. 그 열광적인 지지
는 자신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쇼펜하워
인생론>으로 묶여 발췌 출판되고 있는 철학적 논문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기이한 사연을 갖고 있는 이 책은 과연 그만한 대접을 받을만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자신의 주저를 보충하는 주석적 성격이 짙은 파편적인 철학논문들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다. 논하는 주제들은 자신의 철학을 간략히 소개하는 철학적 소고들,
또는 나이, 여성, 종교, 자살, 늙음, 삶의 괴로움 등에 관하여 라는 소주제들이다. 이
주제들과 함께 저자의 독특한 인생관을 바탕으로 한 그 글들을 읽고나면 마치 쇼펜하워
와 한동안 깊이 대화하고 난 후의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환영받은
이유라면 뭐랄까, 삶에 대한 그의 해석과 비유들이 명쾌하고 또 날카롭기 때문이 아닐런지.
또 인생의 암울하고 비극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들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부분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건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쇼펜하워의 직관력과 인식의 날카로움이다.
삶에 대한 완전한 진실은 아닐지라도, 또 삶에 위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부정적 인식과 염세 철학속엔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삶의 모순과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것은 그의 철학이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넘어서서,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균형감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라고 한 나의 허두의 명제에서 나오는 귀결은
'처음에 내가 있고, 다음으로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무로
돌리는 파멸과 혼동하지 않게 하는 해독제로서 이 귀결을 견지해야 한다. " 275p

" 인간은 응석을 받아주면 행실이 나빠진다는 점에서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를 대할 때에 너무 관대하다든지 친절해서는 안 된다.
보통 친구에게 돈을 꾸어주는 것을 거절했다고 해서 친구를 잃는 일은 없지만,
친구에게 돈을 꾸어주었기 때문에 친구를 잃는 수가 가끔 있다." 164p

" 가장 현명한 두뇌조차도 밤마다 이상하고 무의미한 꿈에 시달리다가 깨어나서
다시 명상에 잠기기 시작해야 한다면, 우리가 두뇌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철학, 정치, 시, 또는 예술에 뛰어난 자는 모두 우울한 성격인 것 같다."
(여록과 보유)

"나도 청년 시절에는 밖에서 초인종이 울리면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내게
즐거움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년에 들어서서는 같은 일이
일어나도 두려움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슨 귀찮은 일이 생겼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 198p


쇼펜하워는 역사상의 많은 철인 가운데서도 좀 유별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당대의 최고의 철인으로 평가받던 칸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명이 없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평생동안 그의 철학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철저히 무시되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생활을 꾸려갔고, 결혼은
물론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니체는 쇼펜하워의 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한 명의 친구가 있느냐 또는 한 명의 친구가 없으냐 하는 차이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는 정상적인 생활(결혼과 자녀양육) 자체를 거부했다. 결혼이란
철인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결혼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뿐이지만, 철학자가 결혼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또한
자살과 자살자를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역사상 이렇게 용기있는 염세 철학자는 없었다. 쇼펜하워의 붓끝에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거침없는 자신감이 내포돼 있다. 이런 자신감의 철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대 철학의 주류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히테와 헤겔이 베를린 대학에서 큰
인기를 끌며, 동시대의 철학을 리드하고 있을때 그는 그 대학 강사로 취직했으나, 곧바로
헤겔의 등살에 쫓겨나다시피 그 대학에서 물러나고 만다. 이런 일화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주저속에서 공격의 표적을 헤겔과 그의 철학에 맞추어 놓고 있다. 자신의 철학을 널리
대중에게 소개할 능력을 갖고 있는 대학교수들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평생 그가 재야의
무명 철학자로서 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해주고 말았다.

쇼펜하워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왜 염세주의로 빠져 들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궁핍을 몰랐던 그에게 많은 여가는 삶의 활력을 빼앗아 그를 권태속에 몰아넣었을
것이 분명하고, 기질적으로 의심이 많은 성격은 그를 소심한 겁장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평생 침대곁에 장전된 총 한 자루를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청년시절,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의 외도는 가족과 가정의 따뜻함을 알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대학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주류 철학계로 편입되기엔 그의 철학은 너무나 개성이 강했다. 인생 자체를
부정해서 완전한 금욕을 주창했고 인류의 사멸을 요구했던 염세 철학은 어떤 희망과 위안도
없이 맹목적이다. 세상의 그늘만을 강조하고 있는 철학자가 세상을 공정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자살을 예찬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정작 그 자신은 70살이 넘을 때까지
장수했으며, 물려받은 유산으로 평생 가난과 육체적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자들이
모두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철학자 쇼펜하워의 우울한 일생에서
그 원인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워는 오늘날 서양 철학사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뛰어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는 젊었을때 당대의 유명한 여류소설가였던 어머니와
다투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 후대의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은 당신(어머니)이 아니라 바로
저(쇼펜하워)일 것입니다." 쇼펜하워 사후 그 말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는 칸트 이후 독일
철학을 설명할 때 뺄 수 없는 철학자가 되었고, 19세기의 대표적 철학자인 니체의 스승으로서
철학의 역사에 그의 이름을 새겨넣는데 성공했다. 니체는 젊은 시절 쇼펜하워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와의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 나는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가 세계, 인생,
자기의 마음을 가공스러울만큼 분명하게 비춰 주고 있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비극의 탄생>>)"
이런 찬사에는 그의 천재성에 대한 사랑이 묻어 있다. 세계와 인생에 대한 그 나름의 독창적인
해석에는 염세주의가 뒤섞여 있긴하지만, 충분히 고민해 볼만한 사색의 소재들이 풍성히 담겨
있다. 자신의 철학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형이상학적 철학 용어를 되도록 줄이고 생활속으로
철학을 끌어내린 책이 바로 <쇼펜하워 인생론>이라 할 수 있다.

 


2004.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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