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블루스 창비시선 149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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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시집 <세기말 블루스>





가끔은 시가 그리울때 습관처럼 펴드는 시집 한권이 있다. 그 시집속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자아 하나를 거울마냥 들여다보다 다시 덮어버리곤 한다.
거울에 때가 끼듯 하나의 자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늙어가며 하나 둘씩 나이를 먹어 시는 더이상 이 시를 쓴 사람
에겐 맞지 않겠지만, 여전히 거울밖의 독자에겐 오래된 외투마냥 익숙해져
버렸다. 신현림의 시집 <세기말 블루스>는 1996년에 나왔다.

신현림이란 시인을 알게 해준 시집이자, 시의 언어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그래서 언젠가는 시가 가진 멋진 언어의 환락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나를 시와 느슨하게라도 연결해 놓고 있던 끈이 돼 준 것이 바로 이 시집
이다. 이 시집을 세기말로부터 세기초에 이르는 시간동안 제법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다. 그 이유란 아마도 이 시집속에서 그렇고 그러한 시간들
을 시인과 함께 공감했고, 공유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한 공유는 젊음이 가진 습속같은 것들이다. 시인은 세기말이란 불안한
자유속에서 슬픔과 과거 현재와 절망 모두를 안고 살아가는 고독한 자아다.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고 포문을 연 시인이 당도하는 곳은 황량한 세기말
의 풍경들이다. 거기엔 익을대로 익어버린 문명의 황폐함과 익명의 단절감
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시인은 주체할 수 없는 과거의 절망과 미래의 암울
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세기말로 향한다. 그러나 시의 언어가 가진 자유의
풍요로움이란 절망도 슬픔도 감추지 않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 것
인가 ?

나는 이 시집 속에서 스물 아홉 청춘의 어정쩡한 젊음을 발견한다. 20대를
정리해야 할 나이지만, 무엇을 정리할 수 있을까 ?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인
생에서, 반듯반듯 구획되지 못할 삶 가운데서 무엇을 정리하고 갈 수 있을
것인가 ? 그럼에도 시인은 20대의 한 시절을 깔끔하게 정리해 보인다. 스
무살에서 서른살까지를 아우르는 "나의 20대"란 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단자화된 언어에 촘촘히 집약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20대를 이렇게
선명하게 규정지을 수 있다면 규정짓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언어속에 담
긴 20대는 분명 하지만, 거기엔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기억들이 그녀를 옥
죄고 있다. 그 가운데 25세란 구절에서 그녀에게 예술이 그 시절 어떤 모
습으로 인생에서 의미를 획득해 나가고 있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25세 - 고독과 예술의 은총을 선택했다- 장미화원처럼 황홀
했던 정기간행물실에서 살다. 자살하고 요절하고 남달리 불
우하고 저주받은 작가에게 위로받고 고단백 예술의 영양가
를 얻다. 사트트르와 함께 구토하고 카프카의 성에서 바슐라
르와 촛불을 켜고 카뮈에게 정직함을 배우다" (나의 이십대)


이 시집의 독특한 점은 시와 다른 예술 기법의 조합이다. 이 시집 사이사
이에 시인이 직접 작업해 올려놓은 포트레이트(상반신인물사진)나, 판화
작업을 통한 작품들이 시와 함께 시인의 내면의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 작업들도 시인의 손을 거친것은 물론이다. 시인의
다재 다능함을 엿볼 수 있는 이 시집 전체가 그녀의 혼의 열정처럼 다가
오는 이유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면 세기말에 시인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인가 ? 격랑의 20대를 지나 30
대의 장년에 한참 발을 들이밀고 있는 "삼십삼 세의 가을"이란 시에서 그녀
는 그 나이의 인생을 홀로 걸어가고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며 어떠해야
하는지 해설한다.


"나의 삼십삼 세란
무엇에든 용감해지는 일이다
바람 속 장작불처럼 거친 외로움은
죽음의 공포쯤은 커피 마시듯 넘겨주는 일"(삼십삼 세의 가을)


신현림의 시어들은 패기있고 발랄하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 40를 바라다
보는 독신자 라는 점을,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아가 기뻐하고,
절망하는 일상을 무모하리만치 솔직한 시어로 직조해 내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언어는 세월 속에서 처절하게 세기말을 맞이하는 사람들, 어쩌면
인생의 황혼으로 다가가는 모두를 자신의 시어들로 보듬어 안고 있단 느
낌을 들게 만든다. 그녀의 시가 보편적인 위안을 선물하는 것은 인생에
성공보다는 그 성공의 이면뒤에 누추한 자아의 실패와 절망이 이면처럼
존재한다는 상식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비단 세기말의 궁지에 몰린 인
간들만의 고뇌가 아니라, 젊음을 견디어 내야 하는 모든 청춘들의 고뇌
이기도 한 것이어서, 이 시집이 가진 가치는 여전히 젊은 모두에게 의미
있다 할 것이다.


힘겹게 일어서야 하는 장년의 인생이란 더군다나 혼자서 그 모두를 견디
어 내야 하는 청춘이란 이처럼 고단한 언어들을 한시절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 한 듯이 보인다.












200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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