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살롱
황지원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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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예술로서 인식되는 오페라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다.  관람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오페라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너무 멀고 높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벽이 높지만 많은 이들이 클래식 음악에 빠져들곤 한다. 문제는 그게 고급이냐 관람의 기회가 있느냐, 하는게 아니다.  오페라를 즐기려면 오페라가 무엇인지 아는게 먼저란 얘기다.  오페라는 독특하게도 음악만으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가 스토리를 내장한 것처럼 오페라도 음악과 춤, 연극적 요소, 시적 요소가 섞여 있는 종합 예술이다.


오페라 마니아 황지원이 들려주는 오페라 이야기 <오페라 살롱>(웅진리빙하우스,2013년)에는 놀라운 요소들이 가득하다.  세계 오페라 무대를 직접 찾아 관람할 정도로 애정이 가득한 그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와 미국 뉴욕까지 발품을 파는 열정으로 이 책을 써냈다. 황지원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오페라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를 순례한지 10년이 돼 가는 오페라 마니아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후원회원이자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우호협회 정원회이며 국내 주요 언론에 오페라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고, 다수의 방송에서 오페라 해설자로 출연했다.

 

이 책은 오페라가 무엇인지, 오페라의 정의, 구성요소 등을 해설하고 본격적으로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가 위치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오페라 주제여행이라 해도 좋을 듯 하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에는 다분히 역사와 정치, 인문적 요소가 가득 들어차 있다. 한 편의 오페라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지역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먼저 공부해야 할 정도다.  오페라의 어원은 라틴어 `오푸스Opus(작품)의 복수형으로, 시를 바탕으로 노래와 연기, 춤 등 다양한 예술이 하나의 작품 안에 모여 무대 위에 펼쳐 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저자는 그것이 인류가 창조해낸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극찬한다.

 

`뚱뚱한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오페라를 비꼬아 부르곤 했는데, 그건 마이크 없이 수천 명 앞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들에게 풍부한 성량과 강인한 체력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또 오페라는 영화와 함께 생일과 출생지가 있는 대표적인 예술이다. 오페라는 1597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도시 피렌체에서 탄생했다. 당시 피렌체에는 문화 예술의 붐을 일으킨 귀족들이 모인 인문학 스터디가 많았다. 그 가운데 바르디 백작이 주도한 스터디 모임에선 그리스 비극을 되살려 근대적인 음악극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 이것이 오페라의 출연 순간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극처럼 음악과 연극이 합쳐지고, 신이 아닌 인간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노래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이 만들어진 것이다. 첫 작품은 야코포 페리가 지은 <다프네Daphne>였다.

 

오페라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은 우리가 TV의 오페라 무대에서 자주 봐왔던 것이다. 소프라노와 테너가 서로 사랑을 노래하고, 곁의 바리톤이 이를 방해한다.  여성 최고음인 소프라노가 오페라의 주인공이며 이를 프리마 돈나Prima Donna(이탈리아어로 `첫 번째 여인'이란 뜻)라 한다. 소프라노의 파트너이자 연인으로 남성 최고음을 노래하는 테너Tenor가 등장한다. 테너는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개런티가 높고 스타성을 자랑한다. 세계 3 대 테너로 알려진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유명세는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파바로티가 췌장암으로 2007년 사망하고 세계 2대 테너만 생존해 있다.  마지막으로 소프라노와 테너의 사랑을 방해하는 캐릭터가 바리톤Baritone이다.  바리톤은 테너보다 음역이 낮고 베이스 보다는 높은 남성의 중간 음역을 말한다.

 

오페라는 아리아Aria 라고 불리는 독창과 그 외의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아리아는 연극의 독백에 해당하며, 등장인물이 홀로 노래하는 부분이다. 아리아는 오페라의 꽃에 해당하며, 오페라의 핵심이다. 파바로티와 안드레아 보첼리, 폴 포츠 등이 불러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3막에 등장하는 유명한 테너 아리아였다. 또,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에는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라는 아리아가 유명하다. 

 

또 오페라에는 듀엣곡과 합창곡이 있다.  듀엣은 남녀간의 러브 스토리를 그리는데 필수적이다. <라 보엠>의 이중창이나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Brindisi 등은 너무도 유명한 듀엣곡이다. 합창은 베르디가 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나 `대장간의 합창' 베버의 <마탄의 사수> 속 `사냥꾼의 합창'이 명곡으로 꼽힌다. 

 

"이처럼 마음속으로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상상의 드라마를 즐기다 보면 밤의 베네치아가 주는 묘한 신비감과 퇴락의 로맨티시즘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온다. 하긴, 시인 바이런도 이런 베네치아를 너무도 사랑했다.  마침 그가 이 도시를 찾았을 때 베네치아는 영락없는 황혼기여서 그 쇠락의 멜랑콜리가 그의 낭만적인 감성을 더욱 강렬히 자극했다.  바이런은 베네치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푸르른 내 상상의 섬"  " 134쪽, 황지원 <오페라 살롱> 

 

책의 대부분은 오페라 여행기에 해당한다. 각 도시가 하나의 박물관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에는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가 많다. 저자는 공연 일정에 맞게 이 도시들을 찾아 오페라 원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생한 육성과 현장감이 있는 묘사를 통해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유럽의 역사, 음악의 맥을 그려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오페라를 주제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풍성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예술은 아름다움에서 기원한다.  오페라는 미적 요소가 가득한 장르다.  더군다나 인류의 인문 혁명이 발원한 이탈리아는 그런 미적 요소가 넘치는 곳이다. 르네상스의 놀라운 기운이 오페라에는 담겨 있다. 오페라는 단순한 음악장르가 아니라 역사,문화적 의미를 함축한 예술 영역이다. 오페라의 아름다운 아리아와 듀엣곡들에 반한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바로 이 장르가 가진 놀라운 흡인력이다. 무릇 모든 위대한 예술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는 법이다.  이 책을 통해 오페라를 제대로 알고 감상하는 독자들이 많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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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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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은 내 삶과 함께 해온 책이다.  하여, `내 인생의 책'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월든>과 만난 것은 군복무 시절이었다.  요즘과 달리 20여 년 전 군대 시절의 독서환경은 무척 빈곤했다. 겉 표지가 뜯겨지고, 손떼가 묻은 책 몇 권이 내무실 책장에 외로이 존재했다.  훈련 후 남는 시간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내게 작가도 생소하고 책 제목도 낯선 <월든>이 다가왔다.  훗날 `내 인생의 책'이 된 책치고는 꽤 우연하고 초라한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 시간이 날때마다 고참들 눈치를 봐가며 구박도 받으며 책장을 넘겼다.  술술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저자는 그 당시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가 주목할만한 경험담을 책에 옮겼다. 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월든>은 소로우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마을, 월든 호숫가에다 오두막 집을 짓고 생활한 2년간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군복무 기간은 오직 훈련과 내무생활로 꽉 짜여진게 아니다. 시간이 날때마다 사병들은 군문을 나간 이후, 자신의 장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는 날들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월든>에서  한 젊은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과 확신을 보여주었다. 소로우는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에 대해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을 수 있듯이' 마음만 먹으면 창조적인 인생은 누구나 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인생을 공부만 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보라' 한다. 즉, 세상을 교과서가 아닌 실제 생활을 통해 배워보라는 것이다.  소로우에게 그것은 무일푼으로 숲속에 집을 짓는 일이었다.

 

그는 월든 호숫가에다 마을에서 구한 값싼 자재를 사용해 집 한 채를 짓기로 했다.  <월든>의 첫 장 제목은 <숲속의 경제학>이다.  여기서 소로우는 무일푼의 젊은이가 어떻게 자연속에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지 증명하고야 만다.  소로우가 살았던 200년 전 미국의 젊은이들도 반듯한 직장과 윤택한 삶을 이상으로 삼았다. 오늘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집을 장만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거의 삶 전체를 소진할 정도다.  반면, 소로우가 <월든>에서 보여준 숲속 생활의 경제학을 응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장 적은 노력과 비용, 그리고 자재를 이용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 한 채를 지었다. 사람들이 욕망의 크기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경제문제의 해법은 비교적 쉬운 곳에 있음을 그는 보여주고자 했다.

 

<월든>을 두번째로 만난건, 직장인으로 생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다. 경쟁률 높은 입사 시험을 통과한 후 나름 자부심과 자신감이 차 있던 때였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새로운 도전과는 거리가 먼 안정이란 단어안에 안주하던 시기, 진취적이지 못한 일상을 되돌아보던 때였다.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에 얽매이기 마련이고, 승진을 위해서라면 더 많이 일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 시절 다시 펴든 <월든>에서 소로우는 돈과 사치스러움, 욕망과 이기심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하여, 소로우는 사람들이 자연의 소박함에서 삶의 여유와 얽매임 없는 자유를 배워야 한다고 내게 또다른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자연은 넘침과 모자람이 없다. 자연은 항상 어떤 균형점을 지향한다. 오직 인간만이 과도한 욕심 끝에 몰락한다. 소로우는 숲속에 살면서 콩밭을 가꿔 자급자족했고, 하루에 한끼 정도의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그의 오두막에는 의자와 책상 하나, 밥그릇과 수저 한 벌, 읽고 있는 책 한 권  뿐 그외 어떤 불필요한 잡기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고도 소로우는 이 작은 오두막집에 거의 스무명의 방문객이 꽉 들어찬 날에도 그 어떤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이 작은 집을 찾은 손님들은 앉을 자리를 찾지 않았고, 소로우의 형편을 고려해 간단한 차 정도만을 요구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소박함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소로우의 오두막집은 검박한 자연을 빼닮았다.

 

세번째로 <월든>을  읽었다. 장년의 나이에 다시 읽는 <월든>은 생소한 책이었다.  내 기억속에 남아 있던 <월든>이란 책은 청년에게 삶에 대한 비전을 전해주고, 구도자적인 인생 철학을 담고 있는 고전이었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그것보단 자연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숲속의 생활을 빠짐없이 기록하는데 더 공을 들인 책임이 분명했다.  세번의 독서끝에 나는 소로우가 <월든>에서 그리고자 한 진짜 <월든>의 민낯을 만났다. <월든>에선 사람이 주가 되는게 아니라, 자연이 주인공이고 사람은 그 자연의 부산물이었다. 소로우는 문명이란 근사한 표현아래, 주객이 바뀐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돌려놓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소로우의 숲속생활은 인간이 대지의 일부분이며, 잎사귀이며, 그 부식토임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운명공동체로 한 몸이란 진실을 <월든>은 보여준다.

 

" 내가 사계절을 벗삼아 그 우정을 즐기는 동안에는 그 어떤 것도 삶을 짐스러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오늘 내 콩밭을 적시면서 한편으로 나를 집에 머물도록 하는 저 보슬비는 지루하고 우울한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을 해주고 있다. 비 때문에 콩밭을 매지 못하지만, 비는 밭 매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비가 계속되면 땅속의 종자들이 썩고 낮은 지대에서 감자 농사를 망치더라도 높은 지대의 풀에게는 좋을 것이며, 풀에게 좋다면 나에게도 좋을 것이다." 188쪽,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20세기 들어 인간은 자연을 정복과 개발의 대상으로 여겼다. 과학기술은 세상의 진보를 위한 무소불위의 도구였다. 하여,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보존보다는 개발이라는 관점에 보다 익숙해졌다.  산업화의 끝은 인간에게 풍요만을 건네준 것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는 생태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기후변화가 진행중이다. 결국엔 이 모든 변화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지구 대륙의 사막화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며, 과도한 도시화가 숲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사라진 숲은 재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기소비에 비례해 늘어나는 원자력발전소는 사고의 위험성을 키웠고, 결국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불렀다. 지금 인류는 최초로 대양의 방사능 오염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환경이 파괴된 세상에서 인간은 설 자리조차 없다. 그때 우린 생활의 풍족함이 아닌 절박한 하루의 `생존'을 구걸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로우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으로 나아간 사람이며, 또 그렇게 살았다.  당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전문적인 직업인의 길을 가지 않고 평생 측량과 목수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실천한 소박한 자연 친화적 삶은 모두가 따르기엔 벅찬 한갓 이상적 목표에 지나지 않는걸까? 

 

소로우의 <월든>은 무지한 청년에게 용기있는 생활의 철학을 들려줬고, 경쟁사회속에서 질주하다 쓰러진 인간에게 한박자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괜찮다는 위안을 건네준 책이다. 하지만, 전 인류에게 있어 이 책은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가르친 경전의 가치를 지닌다. 우리가 물질에 쏟는 욕망을 정신으로 옮겨 놓는다면 우리 삶은 전혀 다른 풍요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사람들이 고급 주택과 비싼 자동차, 맛있는 요리와 호화로운 가구들에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고대의 위인들만큼 혹은 성인들만큼의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환경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 실현될 것이다.  자연속에서 물질적으론 소박한 삶을 꾸리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갈망하는 일,  소로우가 <월든>속에서 그려본 유토피아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하여, 소로우는 천국이 그 무슨 엉뚱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그것은 지구를 모독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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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지 못할 이야기 - 혁신계 정치인 하태환의 옥중록
하태환 지음 / 새봄출판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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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 말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 냉소적이기 쉽다. 당대 권력의 힘이 후손들의 인식까지를 지배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누가 뭐래도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과 진실'로서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면 어떻게 우린 역사의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  당대 역사의 승자가 아닌 패자들 혹은 피억압자의 진술을 주목하는 것도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은 7년동안 일기를 썼고 그것은 400년이 지난 오늘날 전쟁을 바라보는 가장 믿을만한 사료로 남아 있다.  그것은 어떤 당파의 이익이나 권력자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날것으로서 전쟁 수행의 기록이자 참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보다 <난중일기>에 더 큰 신뢰를 보내는 것은 부패한 위정자가 아닌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불사른 충신으로서 이순신이라는 `개인'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예외가 될 수 없다.  

 

1961년 5월 16일 오전 9시, 군사혁명 위원회는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혁명공약'을 발표한다.  5.16 군사 쿠테타의 서막이었다.  이후, 정치권력을 잡은 군사정권은 당시 혁신진영(오늘날의 진보계열) 정치인 5천명을 영장없이 체포했다.  이 가운데 약 500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그 중 절반을 기소했으며, 또 그 가운데 130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훗날 혁명재판소는 이중 2명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나머지 인사에 대해 최대 무기, 15년, 10년, 5년 형을 각각 선고했다. "구국의 결단" 혹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으로 포장된 5.16 군사정변의 최대 피해자이자 직접적 피해자들은 당시 4.19 혁명을 통해 막 자라나기 시작한 이땅의 진보정치와 정치인들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학생들이나 역사에 대한 안목이 있는 독자들조차 한국 현대정치사의 가장 무서운 `흑역사'인 혁신진영 탄압 사건을 모르고 있거나,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것은 역사의 세밀한 결까지를 파고들 수단과 의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 때, 하태환 선생의 옥중수기 <지우지 못할 이야기>(새봄출판사 펴냄,2013년)의 출간소식은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료의 출현으로 그 가치가 남다르다 하겠다.  5.16 즈음에 혁신정당 가운데 사회당 선전부장으로 일했던 당시 36세의 하태환은 이 검거선풍에 휩쓸려 들어가 무려 15년형을 언도 받았다. 그리고 훗날 감형 끝에 7년 만기를 채우고 출옥하게 된다.  그의 옥중수기를 읽는 독자들은 1960년 5.16 이후의 7년간 자행된 민주주의의 파괴와 무고한 이들의 인권이 마구잡이로 짓밟힌 현장을 영민한 한 증인의 기록을 통해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됐다.  더군다나 7년의 옥고를 치른 故 하태환 선생은 2013년 재심 판결에서 52년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사실은 그가 남긴 옥중수기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객관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몸과 영혼이 지칠대로 지친 `징역살이'를 인내하며 원고지 수천장을 채워넣어 700여 페이지에 이른 수기를 작성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저자는 수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분명한 하나의 메세지를 반복해 주지시킨다. 5.16 주도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6조"를 혁신 진영에 적용한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며, 그 법 적용을 3년 6월 소급한 소급법 자체가 위헌불법이라는 점이다.  쿠테타 군인들이 급조한 특별법 6조는 " 정당, 사회단체의 주요간부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국가 보안법 제 1조에 규정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그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고 규정하고 동법 부칙에 "공포일로부터 3년 6월까지 소급 적용한다"고 돼 있다.  즉, 5.16 주도세력은 이 법을 만들어 당시 야당 정치영역에 난립해 있던 혁신 정치인들을 단번에 숙청하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했던 것이다. 

 

"우리를 정치의 제물 - 스케이프 고우트 - 로 삼아 자신들의 쿠테타를 합리화시키고, 진정한 민족자주세력인 우리 혁신진영의 정치인들을 불법 투옥함으로써 자신들이 혁신인양 국민을 기만하던 이들은, 아마도 우리를 석방시키면 쿠테타의 명분이 흐려져서 자신의 지배력에 중대한 동요와 위협을 받을 거라고 크게 겁냈는지도 모른다.  이래서 우리들은 다시금 지루한 세월을 철창에서 보내야 했었다.  그렇지만, 5.13 국회결의는 우리에게 무죄를 선언한 것이었다.  5.16에서 3년만에 우리들은 입법부에 의해 죄 없음이 백일하에 국내외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선언이라고 하여도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사는 무죄를 선언했다"고 우리는 소리 높이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    531-532 쪽, 하태환 옥중수기 <지우지 못할 이야기> 

 

군사쿠테타의 주인공들이 당대 혁신 진영을 엉터리 악법으로 옭아맨 이유는 분명했다.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는 민주적 공화헌정 체제를 굳건히 하며, 자유와 민의, 민권이 존중되는 민주정치의 구현을 위해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했다. 그 가운데 가장 역점을 뒀던 것은 이승만 1인 독재의 폐단이 문제됐던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고 최대한의 자유를 신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하여, 거주,이전의 자유,  통신, 언론,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제안하는 법률을 헌법에서 삭제한다. 이승만 독재정치를 끝장낸 4.19 혁명, 그리고 5.16 전야까지 국민은 민주주의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배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5.16 군인들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놨다.  쉽게 말해, 진보정치와 정치인들에게 용공혐의를 씌어, 민족일보 사장이던 조용수와 사회당 조직부장 최백근을 사형에 처하고, 죄없는 혁신계열 정치인들을 무기에서 15년, 최저 5년까지 구형하고 또다시 같은 형량으로 선고하는 기묘한 재판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 책의 사료적 가치는 크다. 5.16의 무고한 피해자이자 권력의 반대편에서 철저하게 유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서술한 책을 찾기는 힘들다. 저자는 옥중에서 이 역사의 현장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하고 기록하는데 충실했다.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비롯한 다섯명의 사형이 집행된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가 그였다.  혁신계 정치인에 대한 혁명재판의 공판 과정도 생략없이 기록해둘 정도로 저자가 심열을 기울인 것을 보면, 훗날 역사가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엿보게 된다. 또한, 함께 구속되고 수형 생활을 하게 된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관찰과 서술은 그들의 사람됨과 성격까지도 유추해볼 정도로 상세하고 친절하다. 무엇보다 7년 감옥생활에서 보고,듣고,느낀 모든 것을 옥중수기에 남겨둠으로써 민주주의가 상실된 사회와 인권이 처참히 유린된 감옥생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했다.

 

지금껏 서술한 바처럼 이 수기는  4.19 이후 한국 정치사와 사회상의 연구와 교육 자료로서 역할이 크다고 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이들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이 발랄하고 역동적인 문체에 반하게 될 듯 하다. 결코 즐겁지 못한 옥중 7년 여정을 담고 있지만, 저자는 자유가 억압된 암울한 시절을 보내면서도, 비범한 문장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옥중 생활을 스케치하고, 옥중에서 화제가 된 사건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하여, 독자는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의 편견에서 벗어나 5.16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광풍 속으로 자연스레 빨려들어가 잊혀진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는 뜻깊은 독서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징역살이라는 것은 정말 이가 갈리는 무서운 고통이란 것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깨달을 수가 있었다. 어떻든 한 마디로 말해서 징역이란 죽음 다음 가는 고통임에는 틀림 없는 것이라고 믿어지기까지 했으니까. 그러기에 아무리 교도소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주고 잠을 재워준다 할지라도 그 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마도 제 정신을 지닌 사람치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중략) 여기에 얻은 결론은 자유가 그립고, 자유가 좋고, 자유가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깊이 체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어떠한 형태, 어떠한 명목이건 독재정치라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앗아가기 때문에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재확인 했던 것이다.  "  272쪽

 

다시 첫 문장으로 되돌아가 본다. 과연 "역사가 승자의 기록" 일까?  지금 우리 사회을 되돌아보면 그것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다. 여전히 5.16을 쿠테타라고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많다. 하여, 그들은 이 군사정변에 "구국의 결단"이니 "최선의 선택"이란 수식어를 넣곤 한다. 역사적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란 존재하기 마련이니 그것까지 인정할 수 있다.  저자인 하태환 선생과 함께 옥고를 치른 혁신계 인사들 가운데는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은 이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통사당 정치위원을 지낸 김성숙 옹 같은 분들이다. 정변세력이 얼마나 무작위로 혁신계 인사들을 구속했는지 이 한가지만 보더라도 명백하다.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인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2공화국 시기 데모 한번 한 죄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군부세력에 사형을 언도받아 형이 집행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비롯해 대부분의 인사들이 4,50년이 지나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저자의 선언대로 결국 "역사는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5.16 당시 혁신계의 노선은 오늘날 영국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주장하는 `민주사회주의' 혹은 `민족사회주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며, 그것을 위해 남북교류를 활성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노선은 오늘날 집권보수 여당 조차 앞장서 동의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5.16 세력은 위헌적인 소급법을 급조해서까지 왜 혁신계를 탄압했을까?  쿠테타 군인들은 사회가 안정되면 군으로 복귀한다고 그들이 내건 혁명공약에서 약조했지만 그 주동자인 박정희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처음부터 그들은 민주 헌정을 파괴하고 집권을 목표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뜻한다. 혁신계에 들씌운 `용공'과 `좌익' 혐의는 아니러니컬하게도 군부내 남로당 경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는 군사정변 주동자의 불온한 `과거'였다. 그들이 혁명공약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 1 의(義)로 삼는다" 고 발언한 속내는 일종의 자기고백이었다.  하여, 혁신계는 당대 쿠테타 세력의 권력찬탈을 위한 `정치적 제물'이었음을 오늘의 역사는 증언한다.

 

우린 역사의 패자들을 기억한다. 거대한 역사안에서 옳은 길을 갔지만, 당대의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죽임과 탄압을 받은 세력을 `역사의 패자'라고 하자. 무능한 임금이었던 선조에게 있어 충신이자 용맹한 장군인 `이순신'은 제거되어야 할 정적이었다. 정조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한 지식인이자 청렴한 관리였던 다산 정약용도 노론당파에겐 위험한 남인의 거두였을 뿐이다.  일제 시대 독립군은 대동아 공영권을 위협하는 토벌의 대상이었다.  그뿐인가?  근현대사 속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정치인과 독재에 항거한 이름없는 시민들도 권력자에겐 한갓 탄압과 죽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당대 권력의 승자가 역사의 승자가 아니고, 당대 권력의 패자가 역사의 패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5.16 당시 혁신진영 수난사를 기록한 하태환 선생의 이 옥중수기 한 편이 "패자로서 역사의 증언대에 선다"는 게 무엇인지 가르친다.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이다.  사람은 속여도 역사는 속일 수 없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하태환 선생이 고발하고자 한 역사의 진실에 가닿았다면, 패자로서가 아닌 역사의 승자로서 자신의 소임을 완수했다고 자부해도 되지 않겠는가?   정의롭고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은 역사가 그를 잊지 않는 법이다.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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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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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인생은 `고전'을 읽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말하면 스스로도 믿기 어렵다. 올 한 해만 보더라도 고전을 거의 읽지 않았다.  하지만, 20여 년 전 책이라는 물건과 친해지기 시작한 순간에는 `오직' 고전만을 상대했었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이 초보독자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던 거다.  그땐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음악도 서양 클래식만 듣던 시기다. 일평생 들어야 할 클래식 음악과 사야할 음반을 그 시절 다 사 모았다. 고전에 심취한 독자에겐 몇가지 심리적인 `인센티브'가 있다.  사람들이 고전을 거의 읽지 않으니 독자로서의 `희소성'이 인정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고전 읽기에 심취한 것은 미천한 독서이력에서 오는 강박증의 일종이었다. 더불어, 학생이란 신분덕에 시간적인 여유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랄까?

 

고전을 거의 읽지 않는 지금에서야 그런 강박증이 그립다. 책읽는 시간을 쉽게 낼 수 없는 직장인들은 쏟아지는 신간들 사이에서, 만만한 책들을 읽는 것도 벅차다.  장년기의 독서는 균형을 요구한다.  요즘 치우침이 없이 골고루 읽는 것이 정답이란 진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과거 `고전'에 심취했던 시절의 독서이력에서 무의식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것은 클래식은 거의 듣지 않는 요즘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어떤 작곡가의 몇 번 심포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감' 같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고전텍스트의 무게나 사유에 빗댈 수 있는 작품이란 신간서적에선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없다는 깨달음 덕분이다.

 

`인터넷 서평꾼'을 자처하는 독서가이자 서평가 이현우의 <아주 사적인 독서>(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3년)에는 7편의 서양 고전 작품이 등장한다.  제목만 보면 읽어본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유명한 작품들이다. <돈키호테>, <파우스트>, <햄릿>, <주홍 글자> 이런 작품들은 제목을 귀가 닳도록 듣고 줄거리 정도는 조금 귀동냥 한 덕분에 제대로 마음먹고 읽어볼 생각조차 품지 않는다. 나름 고전에 심취했다는 나조차도 <주홍 글자>를 심각하게 읽은 기억만 빼면 다른 독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일종의 서평이랄 수 있고, 강의록 이랄 수도 있는 이 책은 치밀하고 촘촘한 고전 읽기의 전범(典範)이라 해야 하겠다.  

 

저자는 <마담 보바리>를 해설하며 근대 소설이 가진 의미를 자못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과거의 문학, 즉 소설가와 소설이란 어떤 의미였는가?  밀란 쿤테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소설의 발명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학, 철학과 경쟁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철학이 진리를 다루고 과학이 외부 세계의 법칙'을 다룬다면 똑같이 소설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는데 유용하다. 하여,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역사와 경쟁하기 위해서 쓴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것이 19세기식 소설의 개념이었다. 오늘날 소위 소설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며 그것이 종말을 고했다 말할 때 의미는,  더 이상 소설이 그런 역할과 소명을 맡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요즘 소설 쓰는 작가들이 그들과 같은 소설가라고 맞먹으려고 하지만, 이미 그들은 각자 앉은 자리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소설의 종류가 다르니까요. 소설이라는 라벨만 같이 쓰고 있을 뿐이지, 전혀 다른 것이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그처럼 근대소설은 나름 대단한 물건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고전들을 읽을 때는 손도 씻고 읽어야 합니다. 적어도 기분으로는요. 되는대로 읽으면 곤란하고, 자세를 좀 가다듬고 책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  39쪽, 이현우 <아주 사적인 독서>

 

뛰어난 독서가들은 고전을 읽는다. 위대한 작가들은 고전을 소홀히 하지 말라 말한다. 한 시대와 역사, 사람의 삶과 거대한 문명속의 개인을 살펴볼 수 있는 종합 예술이자 학문은 결국 고전이라는 말이다. 하여, 독자는 호손의 <주홍 글자>를 통해 17세기 청도교가 주축을 이루는 미국의 사회 정치사와 간통 사건을 저지른 한 목사의 고독한 영혼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돈키호테>에선 광기가 어떤 인간에겐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가 된다는 점을 작품의 독법으로 풀어낼 수 있다. 돈키호테는 마지막 제정신으로 돌아와 자신의 광기를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데 그 이후, 돈키호테는 삶의 의미를 잃고 죽어버린다는 설정은 바로 이걸 말하고자 한다.  반면, <햄릿>의 신중함은 중세와 근대의 경계선에 있는 한 인간의 이성적 고뇌의 정체를 탐색하며,  결정에 앞서 망설이는 현대인의 심리까지도 되돌아 볼 수 있다.

 

서평꾼 이현우의 날카로움이 한껏 빛을 발하는 부분은 <파우스트>에 대한 괴테의 의도를 파악하는 곳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욕망의 화신으로 그려놓고 끝에선 악마로부터 구원받는 설정을 담고 있다. 구원의 명분은 `영원히 갈망하며 애쓰는 것'을 신이 가상히 여겼다는 것이다. 극단을 혐오했던 괴테의 성격이 작품안 인물에게 투사된 전형성을 보여주며, 사유의 한계짓기에 머물고 말았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러한 독법은 고전 읽기에 대한 독자들의 경직성을 되돌아보기에 적합하다. 고전은 충실성과 역사성을 담은 믿을만한 텍스트지만 해석의 절대성만은 허락하지 않는다. 고전의 가치는 텍스트를 파고 파도 새로운 해석을 생산할 수 있는 풍족한 컨텐츠라는 요소에 빚진다.

 

이 책에 소개된 7편이 고전은 비록 서양이란 지역의 편향성을 담고 있지만, 인류 보편의 상식과 인식의 범주 내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해석할 만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뛰어난 독서가들의 서평을 읽어보는 것도 고전 텍스트와 친해지는 일이다. 고전은 고리타분하고 읽기 어렵다는 인식을 단번에 깨버리는데 적합한 이 서평 모음집은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하고,  정형적 해석에 반대하며 다양한 독법(讀法)의 우회로를 선보인다. 

 

고전 읽기에 몰입했던 `청춘의 독서'는 까마득하다. 모든 독자들은 독서라는 일생의 습관을 갖기 전까지 시행착오의 시간을 거친다. 내게 고전은 `걸음마 독서'의 시간을 함께 했던 가장 훌륭한 텍스트였다. 그 시절 읽어낸 고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인류의 영원성과 보편성을 담고 있는 문장들과 함께 한 시간은 내 독서의 황금기였다. 독자들은 여러 핑계를 대며 고전 읽기와 멀어졌다. 세상이 빛과 같은 속도로 변하는 시대 탓을 할 게 아니다.  누구도 찾지 않은 고전은 서가에 감추어진 보물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장을 넘기지만 어떤 공허감이 독자의 영혼을 압도할 때, 우린 고전의 바다로 인류의 지적 보물들을 찾아나설 때이다.  " 책(고전)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와 같다"는 카프카의 전언을 기억하라.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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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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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특히 이전 세기 500년을 아우르고 있는 조선의 역사는 반드시 섭렵하고 나아가야 할 숙제였다. 조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학문적이고 지적인 목적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 영화, 소설은 과거 조선의 역사에서 모티프를 얻고,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픽션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을 잘 감상하고 비평하기 위해서라도 조선 역사에 관심가져야 할 때 같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관상>은 조선왕 `세조'를 다뤘고 지난해 큰 화제를 불러온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물론 `광해군'이라는 불우한 왕을 주제로 삼았다.  요즘 오락물은 역사공부를 대중에게 요구한다.  그럴때마다 특정 왕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구하고 넘어가기 일쑤인 독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500년 왕조의 역사안에서 제왕을 바라보지 않으면 특정 시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단 두 권의 시리즈로 조선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책을 발견한 것은 무척 다행이다.  바로 재야 학자로서 대중역사서 저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역사학자 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 1,2>(역사의 아침 펴냄,2010)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짧은 시간에 정리해 보는데 알맞은 책이다.  특정 사료안의 역사를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덕일은 각 사료들의 집필 의도를 저자와 시대를 감안해 분석한다. 더불어 과거 역사가 오늘의 정치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추적하는 글쓰기는 무척 흥미있고 색다르다.

 

이 책은 조선 왕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모두 담아내는 서술 흐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왕을 순차적으로 묶어낸 것은 아니다. 조선의 왕을 크게 성공과 실패의 관점으로 다시 `이합집산' 시킨다.  예를 들어, 1부에서 다룬 태종과 세조는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이 되고, 성종과 영조는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이 되는 식이다.  또, 연산군과 광해군은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로 묶이고 선조와 인조는 `전란을 겪은 임금들'이란 장에서 다루어진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선은 분명 왕의 혈통을 이어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왕조국가 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조선이란 나라가 고려왕조에 대한 반역 즉 쿠테타를 통해 세워진 것에서 왕조의 정통성은 의문시됐다.  천명이 아닌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조선 건국과 동시에 상식이 되고 말았다. 하여, 이후 조선은 왕의 혈통간 또 공신간 권력 다툼의 드라마를 무려 500여 년 동안 보여주는 지리한 욕망의 파노라마가 되고 만다.  

 

태종 이방원은 이복형제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공신세력에 맞서 군사를 일으킨다. 그가 군사를 일으킨 것은 왕권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후대의 왕을 배후에서 선택하는 세력에 맞서 왕권을 반석위해 올려놓으려는 시도라고 이덕일은 분석한다. 태종은 공신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한 왕이 되지만, 그것을 위해 무수한 반대파를 숙청해야 했다. 세조는 태종이 무력화 시킨 공신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된 사람이다.  문종은 어린 세자 단종을 남기고 이른 나이에 병사하는데, 숙부인 수양대군은 수많은 야인들을 모아서 조카의 권력을 찬탈한다. 문제는 세조가 왕이 된 후 그를 왕으로 만드는데 힘을 쏟은 공신세력이 무한한 권력과 특혜를 요구하고 누렸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백성은 법과 제도 위에서 특혜를 누리는 공신세력의 수탈 대상이 되고, 나라의 법치가 무력화 된다. 

 

" 태종이 피의 숙청을 통해 법 아래의 존재로 끌어내린 공신들을 세조는 법 위의 존재로 다시 끌어올렸다.  태종이 국가 권력을 천명의 실현 도구로 생각했다면 세조는 공신 집단의 사적 이익실현의 도구로 사용했다.  혁명아 정도전이 계구수전(計口受田)(모든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줌)의 이상으로 건국했던 조선이 세조의 왕위 찬탈로 공신들의 천국이자 백성들의 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 65쪽, 이덕일 <조선왕을 말하다>

 

선조는 무수한 전란의 징후를 포착하고서도 눈을 감은 무능한 왕이었다. 선조의 무능은 거기서 그친게 아니다. 백성이 의병을 조직해 왜군을 막아내고 군사들이 생명을 잃어가며 조선을 지켜낼 때, 그가 압록강을 넘어 명나라 땅으로 망명을 원했다는 점이다. 전란이 어느정도 소강기에 들어서자 왕과 국가에 충성을 다한 이순신과 의병장 김덕령 등에 대한 숙청을 시도한다. 이유는 그들에 대한 백성의 신임이 너무 깊어, 왕의 권위가 서지 않았다는 것일테다.  선조시대 빈약한 군사력도 문제다. 세조 이후 공신 세력 등 지배층은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 군역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이후, 군역의 의무는 오직 피지배층의 몫으로 전락한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과 유사하다.  지난 MB 정권 때, 내각 국무위원의 군 면제 비율은 무려 24.1%였고, 그것은 국민 평균(2.4%)의 10배가 되는 수치였다.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닌데 여전히 지배층의 특권이 넘쳐나는 현상은 국민이 무능하거나 무지한 탓 아닐까?

 

후기 조선, 영조 시대에 이르면 공신들은 파벌을 이뤄 서로에 대한 관용을 잃고 잦은 사화를 일으킨다. 영조시대 소론과 노론은 생명을 내걸고 권력 다툼을 일삼았다. 사화를 통해 원한과 감정을 쌓아둔 당파들은 왕을 구슬려 반대파를 멸족하고자 한다. 현명한 왕이라면 파벌의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당파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자 역할을 했을테지만, 영조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왕권 강화는 당파의 균형에서 탄생하게 될 테지만, 영조는 치세 후기 노론 세력의 간계에 휩쓸려 자신의 아들(사도세자)를 뒤주속에 가둬 살해하고 만다. 공신세력은 왕의 외척과 연합해 세자책봉에 개입하고, 후대 권력을 조율하는 농간을 강화한다. 한말 조선이 망하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외척에 의한 정치는 조선초기 공신에 의한 정치의 연장선에서 조선 망국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된다.

 

" 왕조 국가나 대통령제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외척이나 측근의 발호 문제이다. 영조는 말로는 외척의 전횡을 비판했으나 행동으로는 이들을 정국의 중심으로 끌어들였고, 말로는 탕평책을 주창했지만 행동으로는 소론을 대거 쫓아내 탕평책을 붕괴시켰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영조의 이중적 정치 행보는 고스란히 국가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10쪽

 

어떤 역사도 서술자의 견해와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 이덕일은 조선왕조의 사료들을 검토할 때 이점을 주시한다. 영조 38년(1762년)에 있었던 사도세자 살해 사건 임오화변(壬午禍變)은 지금껏 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남긴 기록 <한중록>을 통해 해석돼 왔다. 즉,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뒤주의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덕일은 이 기록이 정조의 즉위와 동시에 사도세자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몰락한 아버지 홍봉한과 친정을 복권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실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우편향 논란과 역사왜곡 문제를 불러일으킨 교학사 교과서는 소위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것이다. 이들은 일제식민지배와 독재시대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대에 따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달리 해석될 수 있겠지만, 친일파나 독재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의도는 달리 있지 않다고 본다. 바로, 혜경궁 홍씨의 기록에서 보듯 서술자 자신의 이권에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덕일의 역사평설은 역사읽기의 새로운 방법을 선보인다. 사료의 비판적 검토와 오늘의 정치를 교차해 독해하는 것이다. 왕들을 통해 돌아본 조선 500년의 역사는 무척 흥미있다.  그것은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실제 일어났던 과거,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수많은 왕과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역사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사대주의에 빠진 관료들과 학자들, 권력앞에 인륜과 인간적 도리를 포기한 왕과 신료들, 법치를 무력화 시킨 특권 의식 등 조선 왕조의 역사는 권력을 향한 부나방들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막장 드라마였다.  놀라운 것은 사람이 가고, 역사가 흘렀지만 새로운 형태의 막장 드라마가 재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달라진 것은 왕조시대가 지났다는 것 뿐 아닐까?  왕조시대엔 역모는 곧 죽음이었고, 왕을 바꾼다는 것은 유교적 도덕관념에 위배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왕을 백성의 손으로 뽑는 시대다.  그러고도 오늘의 역사가 조선 왕조 500년을 어지럽힌 지배층의 농간과 권력자들의 전횡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바로 국민이 무능한거요, 무지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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