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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ㅣ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특히 이전 세기 500년을 아우르고 있는 조선의 역사는 반드시 섭렵하고 나아가야 할 숙제였다. 조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학문적이고 지적인 목적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 영화, 소설은 과거 조선의 역사에서 모티프를 얻고,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픽션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을 잘 감상하고 비평하기 위해서라도 조선 역사에 관심가져야 할 때 같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관상>은 조선왕 `세조'를 다뤘고 지난해 큰 화제를 불러온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물론 `광해군'이라는 불우한 왕을 주제로 삼았다. 요즘 오락물은 역사공부를 대중에게 요구한다. 그럴때마다 특정 왕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구하고 넘어가기 일쑤인 독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500년 왕조의 역사안에서 제왕을 바라보지 않으면 특정 시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단 두 권의 시리즈로 조선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책을 발견한 것은 무척 다행이다. 바로 재야 학자로서 대중역사서 저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역사학자 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 1,2>(역사의 아침 펴냄,2010)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짧은 시간에 정리해 보는데 알맞은 책이다. 특정 사료안의 역사를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덕일은 각 사료들의 집필 의도를 저자와 시대를 감안해 분석한다. 더불어 과거 역사가 오늘의 정치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추적하는 글쓰기는 무척 흥미있고 색다르다.
이 책은 조선 왕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모두 담아내는 서술 흐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왕을 순차적으로 묶어낸 것은 아니다. 조선의 왕을 크게 성공과 실패의 관점으로 다시 `이합집산' 시킨다. 예를 들어, 1부에서 다룬 태종과 세조는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이 되고, 성종과 영조는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이 되는 식이다. 또, 연산군과 광해군은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로 묶이고 선조와 인조는 `전란을 겪은 임금들'이란 장에서 다루어진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선은 분명 왕의 혈통을 이어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왕조국가 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조선이란 나라가 고려왕조에 대한 반역 즉 쿠테타를 통해 세워진 것에서 왕조의 정통성은 의문시됐다. 천명이 아닌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조선 건국과 동시에 상식이 되고 말았다. 하여, 이후 조선은 왕의 혈통간 또 공신간 권력 다툼의 드라마를 무려 500여 년 동안 보여주는 지리한 욕망의 파노라마가 되고 만다.
태종 이방원은 이복형제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공신세력에 맞서 군사를 일으킨다. 그가 군사를 일으킨 것은 왕권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후대의 왕을 배후에서 선택하는 세력에 맞서 왕권을 반석위해 올려놓으려는 시도라고 이덕일은 분석한다. 태종은 공신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한 왕이 되지만, 그것을 위해 무수한 반대파를 숙청해야 했다. 세조는 태종이 무력화 시킨 공신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된 사람이다. 문종은 어린 세자 단종을 남기고 이른 나이에 병사하는데, 숙부인 수양대군은 수많은 야인들을 모아서 조카의 권력을 찬탈한다. 문제는 세조가 왕이 된 후 그를 왕으로 만드는데 힘을 쏟은 공신세력이 무한한 권력과 특혜를 요구하고 누렸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백성은 법과 제도 위에서 특혜를 누리는 공신세력의 수탈 대상이 되고, 나라의 법치가 무력화 된다.
" 태종이 피의 숙청을 통해 법 아래의 존재로 끌어내린 공신들을 세조는 법 위의 존재로 다시 끌어올렸다. 태종이 국가 권력을 천명의 실현 도구로 생각했다면 세조는 공신 집단의 사적 이익실현의 도구로 사용했다. 혁명아 정도전이 계구수전(計口受田)(모든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줌)의 이상으로 건국했던 조선이 세조의 왕위 찬탈로 공신들의 천국이자 백성들의 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 65쪽, 이덕일 <조선왕을 말하다>
선조는 무수한 전란의 징후를 포착하고서도 눈을 감은 무능한 왕이었다. 선조의 무능은 거기서 그친게 아니다. 백성이 의병을 조직해 왜군을 막아내고 군사들이 생명을 잃어가며 조선을 지켜낼 때, 그가 압록강을 넘어 명나라 땅으로 망명을 원했다는 점이다. 전란이 어느정도 소강기에 들어서자 왕과 국가에 충성을 다한 이순신과 의병장 김덕령 등에 대한 숙청을 시도한다. 이유는 그들에 대한 백성의 신임이 너무 깊어, 왕의 권위가 서지 않았다는 것일테다. 선조시대 빈약한 군사력도 문제다. 세조 이후 공신 세력 등 지배층은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 군역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이후, 군역의 의무는 오직 피지배층의 몫으로 전락한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과 유사하다. 지난 MB 정권 때, 내각 국무위원의 군 면제 비율은 무려 24.1%였고, 그것은 국민 평균(2.4%)의 10배가 되는 수치였다.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닌데 여전히 지배층의 특권이 넘쳐나는 현상은 국민이 무능하거나 무지한 탓 아닐까?
후기 조선, 영조 시대에 이르면 공신들은 파벌을 이뤄 서로에 대한 관용을 잃고 잦은 사화를 일으킨다. 영조시대 소론과 노론은 생명을 내걸고 권력 다툼을 일삼았다. 사화를 통해 원한과 감정을 쌓아둔 당파들은 왕을 구슬려 반대파를 멸족하고자 한다. 현명한 왕이라면 파벌의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당파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자 역할을 했을테지만, 영조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왕권 강화는 당파의 균형에서 탄생하게 될 테지만, 영조는 치세 후기 노론 세력의 간계에 휩쓸려 자신의 아들(사도세자)를 뒤주속에 가둬 살해하고 만다. 공신세력은 왕의 외척과 연합해 세자책봉에 개입하고, 후대 권력을 조율하는 농간을 강화한다. 한말 조선이 망하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외척에 의한 정치는 조선초기 공신에 의한 정치의 연장선에서 조선 망국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된다.
" 왕조 국가나 대통령제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외척이나 측근의 발호 문제이다. 영조는 말로는 외척의 전횡을 비판했으나 행동으로는 이들을 정국의 중심으로 끌어들였고, 말로는 탕평책을 주창했지만 행동으로는 소론을 대거 쫓아내 탕평책을 붕괴시켰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영조의 이중적 정치 행보는 고스란히 국가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10쪽
어떤 역사도 서술자의 견해와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 이덕일은 조선왕조의 사료들을 검토할 때 이점을 주시한다. 영조 38년(1762년)에 있었던 사도세자 살해 사건 임오화변(壬午禍變)은 지금껏 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남긴 기록 <한중록>을 통해 해석돼 왔다. 즉,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뒤주의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덕일은 이 기록이 정조의 즉위와 동시에 사도세자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몰락한 아버지 홍봉한과 친정을 복권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실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우편향 논란과 역사왜곡 문제를 불러일으킨 교학사 교과서는 소위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것이다. 이들은 일제식민지배와 독재시대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대에 따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달리 해석될 수 있겠지만, 친일파나 독재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의도는 달리 있지 않다고 본다. 바로, 혜경궁 홍씨의 기록에서 보듯 서술자 자신의 이권에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덕일의 역사평설은 역사읽기의 새로운 방법을 선보인다. 사료의 비판적 검토와 오늘의 정치를 교차해 독해하는 것이다. 왕들을 통해 돌아본 조선 500년의 역사는 무척 흥미있다. 그것은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실제 일어났던 과거,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수많은 왕과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역사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사대주의에 빠진 관료들과 학자들, 권력앞에 인륜과 인간적 도리를 포기한 왕과 신료들, 법치를 무력화 시킨 특권 의식 등 조선 왕조의 역사는 권력을 향한 부나방들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막장 드라마였다. 놀라운 것은 사람이 가고, 역사가 흘렀지만 새로운 형태의 막장 드라마가 재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달라진 것은 왕조시대가 지났다는 것 뿐 아닐까? 왕조시대엔 역모는 곧 죽음이었고, 왕을 바꾼다는 것은 유교적 도덕관념에 위배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왕을 백성의 손으로 뽑는 시대다. 그러고도 오늘의 역사가 조선 왕조 500년을 어지럽힌 지배층의 농간과 권력자들의 전횡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바로 국민이 무능한거요, 무지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