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내 독서인생은 `고전'을 읽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말하면 스스로도 믿기 어렵다. 올 한 해만 보더라도 고전을 거의 읽지 않았다.  하지만, 20여 년 전 책이라는 물건과 친해지기 시작한 순간에는 `오직' 고전만을 상대했었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이 초보독자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던 거다.  그땐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음악도 서양 클래식만 듣던 시기다. 일평생 들어야 할 클래식 음악과 사야할 음반을 그 시절 다 사 모았다. 고전에 심취한 독자에겐 몇가지 심리적인 `인센티브'가 있다.  사람들이 고전을 거의 읽지 않으니 독자로서의 `희소성'이 인정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고전 읽기에 심취한 것은 미천한 독서이력에서 오는 강박증의 일종이었다. 더불어, 학생이란 신분덕에 시간적인 여유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랄까?

 

고전을 거의 읽지 않는 지금에서야 그런 강박증이 그립다. 책읽는 시간을 쉽게 낼 수 없는 직장인들은 쏟아지는 신간들 사이에서, 만만한 책들을 읽는 것도 벅차다.  장년기의 독서는 균형을 요구한다.  요즘 치우침이 없이 골고루 읽는 것이 정답이란 진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과거 `고전'에 심취했던 시절의 독서이력에서 무의식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것은 클래식은 거의 듣지 않는 요즘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어떤 작곡가의 몇 번 심포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감' 같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고전텍스트의 무게나 사유에 빗댈 수 있는 작품이란 신간서적에선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없다는 깨달음 덕분이다.

 

`인터넷 서평꾼'을 자처하는 독서가이자 서평가 이현우의 <아주 사적인 독서>(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3년)에는 7편의 서양 고전 작품이 등장한다.  제목만 보면 읽어본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유명한 작품들이다. <돈키호테>, <파우스트>, <햄릿>, <주홍 글자> 이런 작품들은 제목을 귀가 닳도록 듣고 줄거리 정도는 조금 귀동냥 한 덕분에 제대로 마음먹고 읽어볼 생각조차 품지 않는다. 나름 고전에 심취했다는 나조차도 <주홍 글자>를 심각하게 읽은 기억만 빼면 다른 독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일종의 서평이랄 수 있고, 강의록 이랄 수도 있는 이 책은 치밀하고 촘촘한 고전 읽기의 전범(典範)이라 해야 하겠다.  

 

저자는 <마담 보바리>를 해설하며 근대 소설이 가진 의미를 자못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과거의 문학, 즉 소설가와 소설이란 어떤 의미였는가?  밀란 쿤테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소설의 발명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학, 철학과 경쟁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철학이 진리를 다루고 과학이 외부 세계의 법칙'을 다룬다면 똑같이 소설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는데 유용하다. 하여,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역사와 경쟁하기 위해서 쓴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것이 19세기식 소설의 개념이었다. 오늘날 소위 소설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며 그것이 종말을 고했다 말할 때 의미는,  더 이상 소설이 그런 역할과 소명을 맡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요즘 소설 쓰는 작가들이 그들과 같은 소설가라고 맞먹으려고 하지만, 이미 그들은 각자 앉은 자리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소설의 종류가 다르니까요. 소설이라는 라벨만 같이 쓰고 있을 뿐이지, 전혀 다른 것이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그처럼 근대소설은 나름 대단한 물건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고전들을 읽을 때는 손도 씻고 읽어야 합니다. 적어도 기분으로는요. 되는대로 읽으면 곤란하고, 자세를 좀 가다듬고 책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  39쪽, 이현우 <아주 사적인 독서>

 

뛰어난 독서가들은 고전을 읽는다. 위대한 작가들은 고전을 소홀히 하지 말라 말한다. 한 시대와 역사, 사람의 삶과 거대한 문명속의 개인을 살펴볼 수 있는 종합 예술이자 학문은 결국 고전이라는 말이다. 하여, 독자는 호손의 <주홍 글자>를 통해 17세기 청도교가 주축을 이루는 미국의 사회 정치사와 간통 사건을 저지른 한 목사의 고독한 영혼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돈키호테>에선 광기가 어떤 인간에겐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가 된다는 점을 작품의 독법으로 풀어낼 수 있다. 돈키호테는 마지막 제정신으로 돌아와 자신의 광기를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데 그 이후, 돈키호테는 삶의 의미를 잃고 죽어버린다는 설정은 바로 이걸 말하고자 한다.  반면, <햄릿>의 신중함은 중세와 근대의 경계선에 있는 한 인간의 이성적 고뇌의 정체를 탐색하며,  결정에 앞서 망설이는 현대인의 심리까지도 되돌아 볼 수 있다.

 

서평꾼 이현우의 날카로움이 한껏 빛을 발하는 부분은 <파우스트>에 대한 괴테의 의도를 파악하는 곳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욕망의 화신으로 그려놓고 끝에선 악마로부터 구원받는 설정을 담고 있다. 구원의 명분은 `영원히 갈망하며 애쓰는 것'을 신이 가상히 여겼다는 것이다. 극단을 혐오했던 괴테의 성격이 작품안 인물에게 투사된 전형성을 보여주며, 사유의 한계짓기에 머물고 말았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러한 독법은 고전 읽기에 대한 독자들의 경직성을 되돌아보기에 적합하다. 고전은 충실성과 역사성을 담은 믿을만한 텍스트지만 해석의 절대성만은 허락하지 않는다. 고전의 가치는 텍스트를 파고 파도 새로운 해석을 생산할 수 있는 풍족한 컨텐츠라는 요소에 빚진다.

 

이 책에 소개된 7편이 고전은 비록 서양이란 지역의 편향성을 담고 있지만, 인류 보편의 상식과 인식의 범주 내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해석할 만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뛰어난 독서가들의 서평을 읽어보는 것도 고전 텍스트와 친해지는 일이다. 고전은 고리타분하고 읽기 어렵다는 인식을 단번에 깨버리는데 적합한 이 서평 모음집은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하고,  정형적 해석에 반대하며 다양한 독법(讀法)의 우회로를 선보인다. 

 

고전 읽기에 몰입했던 `청춘의 독서'는 까마득하다. 모든 독자들은 독서라는 일생의 습관을 갖기 전까지 시행착오의 시간을 거친다. 내게 고전은 `걸음마 독서'의 시간을 함께 했던 가장 훌륭한 텍스트였다. 그 시절 읽어낸 고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인류의 영원성과 보편성을 담고 있는 문장들과 함께 한 시간은 내 독서의 황금기였다. 독자들은 여러 핑계를 대며 고전 읽기와 멀어졌다. 세상이 빛과 같은 속도로 변하는 시대 탓을 할 게 아니다.  누구도 찾지 않은 고전은 서가에 감추어진 보물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장을 넘기지만 어떤 공허감이 독자의 영혼을 압도할 때, 우린 고전의 바다로 인류의 지적 보물들을 찾아나설 때이다.  " 책(고전)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와 같다"는 카프카의 전언을 기억하라.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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