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업 메이저리그 -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비즈니스가 되었는가
송재우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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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틀 후 온 국민이 비통함에 젖어 있을 때였다. 방송 보도에 등장한 메이저리그 뉴스 한 꼭지가 결정적으로 눈시울을 붉게 했다.  그날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류현진은 센프란시스코의 에티엔티(AT&T) 스타디움에서 열린 센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최고시속 150km에 육박하는 투구를 앞세워 시즌 3승을 건졌다.  그는 경기 전 라커 룸에 `SEWOL 4.16.14'란 문구를 붙여두고 시합에 나갔다. 경기가 끝나고 언론 인터뷰에 나선 류현진은 "지금 한국 국민들은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내가 오늘 잘 던져서 이기면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 던졌다" 고 말했다.  이어, 에이피(AP) 통신은 "류현진이 비탄에 빠진 조국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흔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9회말 투아웃 전까지 그 누구도 게임의 결과를 예측할 순 없다.  우리는 그런 심정으로 세월호의 참사에서도 희망을 간직했다.  류현진의 투구가 어떤 결과를 갖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27살, 청년이 먼 이국 땅의 그라운드에 서서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난 참사를 기억하고 있었단 것이 대견할 뿐이다.  비단 이번 만은 아니다. 1997년 IMF 국가부도 사태를 통과하며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통산 14승 고지를 넘던 날, 사람들은 박찬호에게서 감추어진 희망을,  삶을 견디어 낼 작은 이유를 발견했던거다.  야구는 인생과 닮았고 때로 그것은 누군가의 곤궁한 삶에 용기를 불어넣는 훌륭한 촉매였다.

 

메이저리그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양 리그로 이루어진 미국 프로야구를 말하며 간단히 빅리그(big league)라 불린다.  각 리그 15개 팀 씩 총 30팀이 있다.  오늘날 메이저리그는 단순한 미국 스포츠 리그가 아니다.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참여하는 지구촌 스포츠 이벤트가 되었다.  무려 140년의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는 그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계 정상의 스포츠 산업으로 발전했다.  지난 18년간 메이저리그의 매출 규모는 네 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고, 2014년 총 예상수입은 최소 9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 30개 팀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총괄 지휘하는 메이저리그 사무국(MLB)이 있다.  MLB는 140년 역사속에서 지금도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의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걸출한 국내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배출됐고, 케이블 중계방송을 미국의 안방에서처럼 편안히 볼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우린 메이저리그를 제대로 알고 보고 있는가?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운영 방식, 각 팀의 전략과 선수 기용 등에 관한 상세한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 관람의 즐거움과 감동은 배가 될 터다.  2011년 개봉한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야구 영화였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메이저리그를 스포츠 경기에 치중해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깊이 발 담그고 있는 자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야구를 몰라도 영화에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의 생리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겐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으로 지금 바쁘게 일하고 있는 송재우는 그의 책,  <꿈의 기업 메이저리그>(인플루엔셜, 2014년)를 통해 이같은 독자들의 갈증과 궁금증을 원껏 풀어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전문가다. 1995년부터 <일요신문>의 MLB 통신원으로 일하며 박찬호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고, 1,2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해설을 맡았다. 현재는OBS, MBC, JTBC의 메이저리그 중계에 참여하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책의 풍부하고 상세한 자료들은 메이저리그를 세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첫째, 팬들을 사로잡아 거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전략.  둘째, 승부에서 살아남아 결국 우승에 이르게 하는 장,단기 향상 전략.  셋째, 탁월함을 끌어내 위대한 팀을 만들어내는 매니지먼트 전략이다.  이러한 3단계의 분석틀을 통해, 독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경영전략을 파악하고, 구단과 감독이 중심이 돼 팀의 승리와 리더십에 기여하는 여러 기법들을 익히게 된다.  그것은 스포츠를 넘는 비즈니스이자 자기계발이며, 조직의 운영 노하우를 습득하는 일석삼조의 기회에 다름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을 벗어나면 미시적인 아기자기함이 돋보인다. 그것은 메이저리그를 관람하는 `깨알 같은' 즐거움이다.  메이저리그는 관중의 피로감을 줄이고 경기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007년 2월부터 종래 투수의 투구간격(인터벌)을 20초에서 12초로 앞당겼다. 8초가 줄어들면서 관중의 만족도는 급상승했다는 후문. 1999년부터 메이저리그는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개막전을 치루기 시작했다.  일본,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개막전이 열렸고, 2014년 3월 개막전은 호주에서 LA 다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개막 2연전을 치뤘다. 야구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측면과 꿈의 리그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려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아이디어였다. 

 

각 팀에 얽힌 전설과 징크스도 흥미롭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못한 팀은 시카고 컵스다. 메이저리그 원년인 1876년 첫 출발한 오리지널 창단 멤버고,  팀 역사만 138년에 달하는 명문이며 선수들의 꿈인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도 42명에 이르지만, 1908년 이후 우승 경험이 없다. 호사가들은 `염소의 저주' 때문이라고들 한다. 시카고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결승에 진출했던 1945년 4차전 경기에서, 컵스의 홈구장에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던 관중이 거부당하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할 것이다'고 저주를 퍼붓고 떠났다. 시카고 컵스는 저주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 이후,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본적이 없다. 

 

책의 중반부에 소개된 `성공하는 팀의 9가지 비결'은 주목해볼 만하다. 왜 야구가 인생과 비교되는지 9가지 비결을 우리 삶의 교훈으로 차용해도 손색이 없다. (1) 미래를 바라보되 현재에 충실하라.  3~4년 후 우승을 바라보되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그 꿈에 다가설 수 있다.  (2) 유니폼이 더러워지는 것을 즐겨라.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는 기본이다.  (3) 데이터를 활용하라.  `머니볼' 신화의 빌리 빈 단장은 최초로 데이터를 활용해 약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4) 팀 성적을 우선시하라. `희생' `구원'이란 용어는 야구에서만 볼 수 있다. 야구는 혼자 하는게 아니다.  (5) 팀의 일부가 되라.  재능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6)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사람만이 승리한다. (7) 공에서 눈을 떼지 말라.  한결같은 집중력이 승리를 불러온다. (8) 수비수가 없는 곳으로 타구를 보내라. 틈새시장, 즉 비어 있는 곳을 공략하는 것을 잊지 말자. (9) 상대의 실투를 놓치지 말라. 기회란 그것이 기회임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메이저리그 140년의 성공의 비결은 단순하다.  팬들과 소통하는 노하우를 함께 익혀왔기 때문이다.  팬과 함께 그들은 140년 무한 성장을 이뤄냈고, 세계 최고의 리그 자리에 우뚝 섰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게 아닌 것이다. 지속적인 소통과 끊임없는 혁신, 승리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 오늘 메이저리그의 성공을 가져온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우리 선수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한국이 배출한 메이저리그의 스타들은 국가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건넸다. 국민들은 정치나 경제가 아닌 스포츠 스타의 활약과 그들의 메세지를 통해 다시 일어설 희망을 발견하곤 했다.  요 며칠 류현진의 진정성 담긴 메세지와 혼신을 다한 투구에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한 독자의 주책이 아니라 진정한 감동이 지닌 힘 덕분이었다.  메이저리그 야구에는 그런 진정성이 있다. 세계 최고의 마운드에 섰지만 밑바닥을 내려다볼 줄 아는 지혜, 왜 정치보다 스포츠가 더 감동을 주는지 알 것 같다.

 

송재우 전문 해설 위원의 메이저리그 특강이라 부를 만한 이 책은,  흥미로운 소재, 통찰력 있는 문장, 충실한 데이터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법",   과히 한국의 야구팬들에겐 `메이저리그 관람의 교본' 같은 책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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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피터 - 인생을 바꾸는 목적의 힘
호아킴 데 포사다.데이비드 S. 림 지음, 최승언 옮김 / 마시멜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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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키 작은 남자를 가리켜 `루저'라고 발언해 곤경에 처한 여대생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이 여성의 뒷조사를 감행했고 사건은 개인정보 유출과 `마녀사냥'으로 이어졌다. 키 작은 남자들의 콤플렉스를 자극한 퀸가 여대생의 `루저' 발언은 잡담 수준이었다.  크게 흥분할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릴 서글프게 했다.   교양있는 여대생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곤 수준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외모로 평가할 수 있을까?  철부지 아이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마시멜로 이야기>, <바보 빅터>의 작가로 미국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더 환영받아온 호아킴 데 포사다의 최신작 <난쟁이 피터>(마시멜로,2014년)에는 키 작은 아이 `피터 홀'이 등장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못생기고 외소했던 피터는 커가면서 성장판이 닫혀 난쟁이로 살 숙명에 놓인다. 

 

피터에게 불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집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에다 무직자였다.  엄마는 생계를 책임지다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다. 아이들은 그를 난쟁이라 놀렸고 마음 속 분노는 쌓여 결국 `분노조절장애'를 앓아야 했다.  이쯤 되면 그의 나머지 삶은 상상이 간다.  돌아가신 엄마를 제외하곤 누구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는 엇나갔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가출한 피터는 노숙자가 된다.  그런데 먼 훗날 피터 홀은 대단한 반전에 성공한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법률가가 되어 자신처럼 불행한 환경속에서 태어나, 희망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을 돕는 사람으로 우뚝 선 것이다.  <난쟁이 피터>는 그 불가능할 것 같은 성취와 기적을 추적하고 있는 책이다. 

 

피터와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많다. 헌데, 불행한 삶의 조건을 극복하고 반전을 이룬 사람들은 적다.   피터처럼 불행의 종합 선물세트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많지만,  완벽한 조건을 다 가진 사람은 없다.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새로 쓴 사람들은 모두가 완벽하지 않았다.  피터는 평범한 우리와 닮았다.  열등감과 반항의식을 품지 않고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것이 지나치면 극단으로 치닫는다.  때로 사람들은 작은 장애앞에 생을 포기하려 한다.   핑계없는 무덤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한다.   피터 홀은 장애를 가진 노숙자에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로 삶을 반전시켰다.   그 비결은 뭘까?

 

피터의 삶을 제한하는 선천적 악조건 반대편에 그를 살리고 위대하게 만든 세가지 보물이 있었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 꿈의 도서관, 특별한 만남'이다.   첫째,  곁을 지켜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피터를 돕는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달리 피터의 엄마는 무한한 믿음과 사랑으로 그를 품은 사람이다. " 지식과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래 !  피터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엄마의 목표이자 돈을 버는 목적이란다." (41쪽)  아이들의 놀림과 자신의 콤플렉스에 상처받은 어린 피터에게 도서관 사서인 크리스틴 선생님이 구원투수처럼 등장한다.  피터처럼 크리스틴도 키가 작아 어린 시절부터 상처 받아온 사람이다.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도망가려는 피터의 손을 놓지 않고 크리스틴은 끝없는 관심과 애정을 주었고 피터의 인생관을 변화시킨다.

 

둘째, 꿈의 도서관이다.  크리스틴 선생님은 피터처럼 키가 작지만 마음의 키는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커 갈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과 책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노숙자로 살아가던 피터에게 삶의 목표를 건네준 건 `꿈의 도서관'이었다. 피터는 크리스틴 선생님의 지도아래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었다. "리더는 독서가다(Leaders are readers)라는 말, 혹시 들어봤니?  링컨이나 케네디도 독서의 힘으로 리더가 된 사람이야.  책을 통해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란다"(55쪽) 크리스틴 선생님이 건네준 책을 통해 그는 남다른 택시 운전사가 된다.  독서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피터의 인생에 용기를 불어넣어준 잠언들을 기록한 `드림카드'를 택시에 비치했고, 손님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피터의 택시는 드림카드를 통해 `힐링택시'로 업그레이드 되고 곧 유명세를 탄다.

 

셋째, 특별한 만남이 기다린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돌아서며 피터의 삶은 달라졌다. 책 읽는 택시 드라이버, 드림 카드를 통해 손님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운전사로 변신했다.  그의 꿈은 열심히 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노숙자에서 평균치의 인간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하버드 대학의 프랭크 교수가 피터의 택시에 탄 날, 피터의 꿈은 이제 그 평범한 궤도를 수정한다.  프랭크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삶의 목적을 묻는다. " 그게 과연 피터 씨의 인생 목적일까요?  그걸 이루기 위해 피터씨가 이 세상에 태어난거라고 믿느냐 하는 거죠? "(159쪽)  피터는 훗날 프랭크 교수의 주선으로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진짜 원대한 꿈과 만난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 !  그 안에 진짜 행복이 깃들어 있다는 발견을 이룬 것이다. 

 

" 저를 바꾼 것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목적의 힘'이었습니다. 그 힘은 나(ME)를 뒤집어 우리(WE)를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가난은 참 많은 면에서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인생을 좌우할 만한 결정적인 변수는 되지 못합니다. 신체적 결함 또는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시련 같은 불가항력적인 고난 역시 우리 삶을 멈추게 할 정도로 중요한 요인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없다면 삶은 확실하게 엉망이 됩니다.  반대로 삶의 목적을 분명히 세우고 땀 흘려 노력하면 누구나 자기 삶을 빛나게 가꿀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난쟁이 피터 홀처럼 말입니다. "   245쪽, 호아킴 데 포사다, 데이비드 림 <난쟁이 피터>

 

독자들은 이 책을 한 인간이 고난을 거쳐 성공의 관문에 안착하는 과정을 담아낸 평범한 자기계발서로 읽을 수 있다.  피터의 인생을 막아선 고난은 익숙하고 흔한 것들이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실의에 빠지고, 패배하고, 죽음을 결행한다. 피터는 일단 그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 관문을 통과할 때의 빨간 약과 파란 약은 앞서 이야기한 `세가지 보물들'이었다.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잔혹한 범죄자들의 공통점은 세가지 보물들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 데 있진 않을까?  우린 `따뜻한 마음과 좋은 책과 특별한 만남'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결국 그들의 인생관을 변화시키며,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과 성과를 불러온 것은 그 좋은 예다. 

 

그와 더불어 필요한 건 다른 삶을 희구하는 개인의 `의지'다.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된 바 있는 `징기즈칸'은 자신이 지은 시 한 편으로 무수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건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가난과 죽음의 위기와 변변찮은 배경을 극복한 비결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노숙자 동료인 미셸은 검정고시를 앞둔 피터 홀에게 징기즈칸이 지은 시 한 편을 선물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인 징기즈칸도 피터 홀처럼 태생은 별 볼 일 없었다. 운에 맞겨진 `숙명'보다는 노력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운명'의 힘을 믿어야 한다.  

 

이 책이 감명을 주는 것은 자기계발서가 추구하는 이기적인 목표와 결론을 뛰어넘어서다.  뛰어난 대중연설가이자 동기부여의 귀재인 호아킴 데 포사다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는 길은 일생을 전념할 하나의 목표를 갖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목표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개인의 이기적인 목표가 아니다.   피터 홀의 택시에 오른 프랭크 교수는 인생에서 진짜 행복의 정체를 발설한다.  `성공해서 그 부를 이웃에게 베풀면서 살겠다는 믿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성공할 수 있다' `행복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먼저 타인을 돕고 도덕적으로 뛰어난 인간, 함께 살 준비가 된 선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계발서가 윤리와 철학의 옷을 입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철학의 영원한 주제였다.  인문학 공부의 목표는 그 답을 찾아내는 과정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타락한 근본 원인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기적인 성공만을 갈망해서다.  이 책의 작가는 `공부해서 남주자'란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자신이 아닌 남(사회)을 주기 위해 공부해야만 진짜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타락한 자본주의에 한줄기 빛을 건네는 복음이다. 이 책의 미덕은 다음 세가지다.  첫째, 피터 홀이 인생의 악조건을 딛고 성공에 이른 과정을 드라마틱한 감동으로 전했다.  둘째, 인생에서 진짜 성공은 남을 돕고 이롭게 하는데 있다는 점을 논증했다. 셋째,`드림카드'로 상징되는 인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도구임을 증거했다.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무수한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을 책이다.  자기계발서의 범주를 뛰어넘는 윤리적인 결말이 특별한 감동을 전해준다.  키작은 피터 홀은 쉽게 실망하고, 실패에 익숙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훗날 그는 숙명적인 키의 한계를 넘어 인생의 거인으로 성장한다.  키가 작은 피터는 `루저'라는 세상의 편견을 극복하고,  진짜 `루저'들을 돕는 길로 나아갔다.  피터 홀 보다 키가 큰 당신은,  징기즈칸보다 출생배경이 나은 우리는, 지금 어떤 인생을 계획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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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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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8년 인도의 아소카 왕은 오늘의 인도 대륙과 중앙 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선대로부터 계승했다.  그도 처음엔 평범한 왕이었다.  그가 평범함을 벗어난 계기는 첫 정복전쟁을 겪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 끝에 이르러서다.  그는 인도 끝자락에 위치한 한 왕국을 끝내 정복하지 않고 전쟁의 역사를 종식시켰다.   역사는 정복의 시대,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폭력과 살육을 통한 정복전쟁을 포기한 최초의 왕이 아소카 왕이었다고 쓴다.  그는 첫 전쟁 후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었고 훗날 `위대한 아소카 대왕'으로 불렸다.  그가 외부세계의 전쟁을 포기하고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참되고 유일한 정복이란 자아의 극복이며, 다르마(Dharma:의무,진리,법,덕)로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를 장악하고 자신을 통제하는 일이다.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마음 가짐이다.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룰을 새기고 지키겠다는 각오를 실천으로 옮기는 일을 통해서 우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은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유문화사, 1999년)에서 사회와 기업, 그리고 개인의 성공적인 변화에 이르는 길을 특유의 정교한 구도자적 문장으로 풀어냈다.  그는 변화에 저항했거나 성공했던 사례를 역사와 자연, 문화와 사람에게서 가져왔다.  왜 우리는 변화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책이 나온 1990년대 말 IMF 국가 부도위기에서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아픈 질문이었다.

 

구본형은 변화의 본질을 파고든다.   변화는 내부의 에너지다. 해서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변화에 이르지 못하고 단지 `변화의 희생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낮은 에너지 상태가 수치심, 무기력, 슬픔, 두려움이다. 이 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쉽게 휘둘린다. 이 때 사람들은 상황의 희생자에 불과하고, 그 때 우리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제대로 된 변화를 시작하는 최초의 출발점은 `내부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 욕망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욕망은 좌절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용기'다.  용기와 욕망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강제력이 아니다. 이 힘은 내부의 것이며 우린 그걸 잠재력이라 부른다.

 

"당신의 미래가 복제된 작은 도토리를 심어라. 그리고 하루에 두 시간은 이 꿈을 키우기 위해 써라.  밥 한 그릇과 옷 몇 벌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파는 것은 노예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삶을 살며, 언제나 상황의 희생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욕망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 "   114쪽,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

  

변화의 강력한 추동력으로 구본형은 `혁명'을 지목한다. 혁명은 소위 `패러다임의 변화'로 불린다.  패러다임이 바뀌기 위한 전제는 `정상'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파괴와 단절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거듭난다'고 일컫는다.  자기혁명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돈과 명예와 권력은 아니다. 모든 혁명의 본질은 삶 자체를 획득하는 것이다.  일상을 통해 자기 삶을 살면서 기꺼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빛이 되어 살 수 있다. "행복한 일상적 삶이야말로 자기 혁명이 추구하는 비전이다."

 

저자는 개인혁명은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고 선포한다. 첫째는 이원적 시각을 교정함으로써 세상에게 원래의 색깔을 돌려주는 것이다. 세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해 자신의 일상이 좌우되지 않도록 한다. 그는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간디는 "그대에게 잘못이 없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만일 그대가 잘못했다면 화를 낼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화를 내지 않고 세상을 보란 말이다.  두번째 목표는 자발성이다. 그것은 `인생 속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저항을 뿌리치고 기꺼이 삶에 참여하는 마음'이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빛나는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빛깔을 찾을 수 있다.

 

변화는 모든 주체에게 필요하다. 변화는 보다 나은 방식을 찾고 시행착오를 수정하는 일과 같다. 완벽한 것은 물질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과 인간이 존재하는한 그래서 필요한 것이 변화다. 그러나 변화가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뀌면 복지부동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상황을 모면해 자신의 변화를 최소화 하기 위한 본능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운동을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러가지 일로 바쁘다고 말한다.  모두 지금껏 살아온대로 그렇게 살아가길 바란다. 해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일은 영원히 하지 못한다. 구본형은 이 책에서 변화의 저항력을 간파한다. 사람들이 변화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변화는 그렇게 절박한 상태에서 온다.

 

변화의 대상은 다양하지만, 이 책의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의 변화이자 그 결과다. 미래 사회는 `하기싫은 일을 하는 사람'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에게 `일'과 `업무'는 자신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소한 하루 2시간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남겨두라는 말로, 구본형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변화와 혁명을 유도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개인이 도달하게되는 변화의 정점이 바로 한 분야의 전문가로 바로 서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이 흐르는 곳을 따라 아주 멀리 가는 것, 취미와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행운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 실업이란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실업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함으로써 자유롭게 종속될 수 있다. 그 일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 웃고 울 수 있다. 인생을 거는 것이다."   296쪽

 

구본형의 전작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1990년대의 책 100선에 들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그 성공에 이어 발표된 구본형의 두번째 책이었다.  IMF를 통과하던 직장인들에게 그의 글은 통렬한 자기혁신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 이후로, 한국 경제는 다시 정상의 궤도에 들어섰지만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져 버렸다.  구본형은 일생 매진해온 인문학과 경영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통찰했고 직업인들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마음의 자세와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를 주제로 내걸어, 한 시대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20년간 IBM에서 평범한 월급장이로 살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는 오랜 시간 새벽 2시간을 자신을 위해 빼 놓았고, 그 시간에 동서고금의 책들을 읽고 꾸준히 글을 써 왔다. 이 책 속에서 그가 내닫는 사유의 광폭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마라는 명령투에 익숙한 외국 자기계발서가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을 때 그의 글은 격이 다른 문장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아내며 단번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와 격동의 시대를 주제로한 여러 논의가 깊이 있게 서술되어 있지만 이 책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타인을 위해 일하는 시간 외에,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남겨둘 것,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을 알아갈 것,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가며 살아 갈 것, 그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결국 인생에서 전력투구해야 할 `자기만의 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되돌아 봤다.  매일이 놀랍도록 똑같은 삶이었다.  출퇴근 시간도, 업무도, 마찬가지다. 큰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직장환경은 축복일 수도 있다. 그런 안정된 환경속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써 왔다. 구본형의 메세지를 알기 전부터다. 그의 책을 읽고 그가 20년 동안, 꾸준히 새벽시간 자신과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었구나, 뒤늦은 확신이 들었다.  생활은 변화가 없었지만 내면은 무수한 변화의 반복이었다. 책은 내 고정된 생각을 쪼개는 날선 `도끼'였다.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갔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고 내 욕망이 흘러가는 대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기를 소망하는 그 분야를 위해 정진했을 뿐이다. 때론 책읽기와 글쓰기가 구도자의 몸짓처럼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은 위대한 결실을 위한 산통의 일부분이었다.

 

직장생활을 접고 `변화경영연구소'라는 1인기업을 설립한 그가  명함에 새겨넣고 다니던 비전은 바로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였다.  책읽고 글을 썼던 20년의 직장생활 끝에 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통찰력 있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뛰어난 저자로 다시 태어났다.  오늘 그의 저서를 찾아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처럼 우리도 아름다운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그도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독자의 동질감은 가능성으로 전이된다.  그가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자신을 위해 비워둔 `하루 두시간' 덕분이다.  이 평범한 원칙을 기억하자.  살면서 우리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그것이 여행이 됐든, 책이 됐든, 한 편의 영화가 됐든, 삶은 그 때 새롭게 날아오를 기회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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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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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 며칠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던 날들이 계속됐다.  필요없는 외출은 자제하고, 휴일에도 집에만 갖혀 있었다.  꼭 나갈 일이 있으면 미세먼지를 상당부분 걸러낸다는 식약청 인증 마크가 찍힌 마스크를 착용했다. 하지만, 결국 외출을 피할 순 없었다. 출, 퇴근길엔 담배 연기에 준한다는 그 미세먼지를 잔뜩 흡입한 날도 있었다. 그 뿌연 안개를 보며 이것이 과연 꿈이 아닌지 헷갈렸다.  불과 2~30년 전, 내 어린 시절의 세상을 생각해 봤다.  맑고 한없이 투명했던 푸른하늘과 풍경들이 말이다.  과거 맑은 공기와 풍경은 상식이었다.  물을 사먹는다는 경제 관념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해서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동화책에 나오기도 했다.   2011년 태평양을 마주보고 서 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기 전까지 생선을 먹는 일에는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생각해 보라. 공기,물,음식 ...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존재하는데 필수적인 요건들이다. 사람들이 막대한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 갖기 소망하는 고급 아파트, 비싼 자동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물질이다.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천원이면 살 수 있는 생수 한 통이다.  그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출신의 정치,경제학자이자 1980년 이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펴냄, 2002년)에서 현대 자본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주의와 빈부 격차, 일과 소비 중독, 세계화 등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마구 뒤엎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그 상식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상식 자체가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단단히 주입돼 있다. 경제란 발전하는 것이 선이고 마이너스 성장의 길로 들어서면 악이다.  세계의 모든 정부와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역사관이나 종교, 민족성, 언어 등은 다르지만, 이 생각만큼은 세계평화를 이루고도 남을 정도의 공감과 일치를 이룬다.  하여, 경제발전은 신념이자 상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적인 기후변화나 중국발 미세먼지나, 식수의 오염이나, 방사능 공포 등이 이 상식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경제성장이란 상식은 수정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 경제제도, 즉 생산수단, 생산의 제관계는 절대적, 근원적으로 환경에 종속돼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경제제도의 하부구조는 틀림없이 바뀝니다.  환경이 파괴되면 경제제도도 파괴됩니다. 아무리 자연환경을 무시하고자 해도 인간이 생물인 이상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극단적인 무관심 혹은 현실도피형의 인간이라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변화는 곧 반드시 일어납니다."  167쪽,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러미스

 

오늘날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경제성장이 되면 빈부격차가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러미스 교수는 빈부의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경제발전이 아닌 `정치의 문제'라 단언했다.  오늘날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양극화다.  경제가 발전했지만 왜 빈부차이는 해소되지 않는가?   모두가 부유한 사회란 실현 불가능하다.  사회적 자본이란 한정 돼 있고 자유시장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부의 편중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하여, 빈부격차를 `정의'의 문제로 되돌릴 때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진행될 수 있다.  결국 모두가 부유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호언은 경제발전이 아닌 `정의로운 분배'를 가능케 하는 `올바른 정치'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는 실로 다방면에 이른다. 우리 세계와 사회, 정치와 경제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러미스의 통찰력은 `상식의 파괴'에 가 닿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적인 러미스의 사상은 과연 세계 경제와 환경이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경제발전을 선으로 포장하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꾼게 지난 20세기의 역사였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로 전환한지 불과 100년만에 지구는 빙산에 침몰당한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고, 러미스는 평가한다.   사람들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공장과 일터에서 보내고 있다.  국가는 경제발전이란 신화를 교육으로 주입하며 무차별적인 개발을 지속해 왔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일상의 환경 문제가 이와 연관돼 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근접하기 바로 전까지 그 안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맡은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  얼마 후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최후를 맞는 탑승객들의 운명은 하나뿐인 지구위에서 경제발전을 상식으로 알고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적당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발전은 환경을 파괴하고 이룩해야할 절대 목표가 아니다.   하여, 저자는 `대항발전'과 `제로성장'이라는 대안을 내 놓는다.   그것은 돈은 적게 벌고 소비는 줄이며, 일은 덜 해서 다른 의미에 닿는 행복과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 대항발전은 경제는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 그 대신 의미없는 일 혹은 세계를 망치는 일, 돈밖에는 아무런 가치도 나오지 않는 그런 일을 조금씩 줄여가자는 것입니다.  싫은 일을 줄이고 의미 있는 일만을 추구하는 것은 금욕주의도 뭐도 아니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로 잔업까지 하면서 과로사 직전인데도 끊임없이 일을 하는 삶이야말로 금욕주의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111쪽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금이다"고 했다.  미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초석을 다진 그가 이 말을 내뱉을 때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 금언속에 `발전'의 개념이 내포해 있다고 진단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돈 벌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쓴 말이다.  하여, 이제 이 말을 "금은 시간이다"란 말로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이 시간이란 의미다.  경제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때, 그간 수단은 항상 긍정돼 왔다. 그 결과가 환경파괴 였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 저하였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나서 다양한 토목사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그곳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원주민들이 돈의 개념을 몰랐고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침략자들은 총칼을 앞세운 강제동원을 통해 그들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희귀한 물건을 사는데 필요한 돈이 아니라,  지금까지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시간'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자발적인 노예로 살아가고 있단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대의제, 이것은 본래의 민주주의가 아닌 귀족제의 변형이란 사실을 아는가?   20세기 최대의 살인자는 국가였고, 그 대상은 바로 자국민이었다.  원자력은 체르노빌 사고 이전까지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최첨단 발전 방식이었다.  당신의 상식을 의심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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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3-1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저 유명한 토마스 페인의 '상식'에서 따와서 지으려고 했다죠.
저렇게 외우기 힘든 긴 이름보다 훨씬 좋아보이는데,
일본 출판사나 우리나라 출판사나 제목 선택이 아쉽네요.
내용이 정말 좋고, 훨씬 더 많이 읽혀야 할 책인데 말이죠.

개츠비 2014-03-15 21:38   좋아요 0 | URL
저자는 `상식'이란 제목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이유가 분명해 집니다. 차라리 저자가 생각했던 제목이 더 적당하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제에 치유친 책은 아니니까요.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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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은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최적화된 책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이 설명하는 나란 주제가 자서전의 처음과 끝을 채워넣는다. 하여 자서전은 자기고백체의 문장을 구사한다. 용기 있는 저자라면 치부를 드러내놓기도 할 것이다. 이 솔직함이 자서전을 다시 펴보게 한다. 일생 살아온 자신을 설명하자니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자서전은 대부분 그랬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조성기 옮김, 김영사 펴냄 2007년)을 읽고나선 그 생각을 바꿨다. 자서전은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이후에 읽어야 제대로 독해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서평 덕분이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정여울은 융의 자서전을 1천자의 감상으로 요리해 냈다.  짧고 알차게 쓰기란 항상 어렵다.  그 서평을 통해 프로이트 보다는 덜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융에 대해 신비한 관점을 갖게 됐다. 서평 한 편의 위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막상 융의 자서전을 독파하며 보낸 20일은 쉽지 않은 하루하루 였다. 융의 자서전을 섭렵하고서야 비로소 그가 왜 프로이트 만큼의 대중성을 얻지 못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의 심리 이론들은 한마디로 난해하다.  그 난해함은 융의 이론서보다 한층 자서전에서 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독서를 중단할 수 없는 묘한 `끌림'을 계속 발산했다. 소설가 조성기의 무난한 번역도 한 몫했다. 

 

이 끌림은 역설적으로 그의 `난해함'에서 발원한다. 자서전으로 일생을 전념한 융의 사상과 이론을 정리할 순 없다. 하여,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나처럼 융 사상의 입문서로 자서전 읽기를 택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융은 죽기 4년 전인 1957년 구술을 통해 자서전 집필을 시도했다.  구술이란 방법을 택한 것은 그가 여든을 넘은 나이로 병약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서전의 상당 부분을 그는 직접 서술하기도 했다. 어떤 장들은 도저히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고, 진중한 자기고백체의 문장으로 다듬을 필요을 느꼈다.  융 말년의 최후, 최고의 저술이기도 한 자서전은 그럼에도, 사후 출판될 태생적 운명을 갖고 출발했다.   융이 사후 출판을 강력 요구했기 때문이다.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  11쪽, <기억 꿈 사상>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목사인 아버지 아래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났지만, 융은 아버지와 같은 맹목적 믿음을 거부했다.  어느 순간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꺼리게 된다. 커 가면서 그는 아버지의 신앙이 어떤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융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버렸지만, 자신의 생각아래서 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신앙은 고통스런 사유와 행동을 통해 다시 인간안에서 새롭게 획득된다고 믿었다.  그는 심령현상, 기적, 우연성을 가장한 초현실의 사건이 우리 세계에서 이성과 양립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융의 묘비명에는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고 적혀 있다.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생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 나는 그분을 믿는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 "

 

융과 프로이트의 만남과 결별은 20세기 정신분석학 발전 역사에서 큰 사건이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성적 트라우마로 돌린 프로이트는 당시 학계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꿈의 해석>을 읽고 융은 프로이트의 사상에 일부분 동조하게 된다.  융은 당대 정신의학계에서 나름의 입지를 갖고 있었지만, 프로이트를 지지하는 것이 알려지면 큰 타격을 입게 돼 있었다.  그럼에도, 융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 고 말하며 그와 교제를 시작했다.  드디어 1907년 2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프로이트를 찾아가 무려 13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융과 프로이트는 연구의 방향이 달랐다. "신비주의와 이성주의"간 교제는 7년간 이어가다 결별의 수순에 이르고 말았다.

 

이 자서전에서 융은 유년 시절부터의 꿈을 많은 부분 복원시켜 놓았다. 기억력 자체도 놀랍지만 융은 꿈의 분석과 복원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그 과정속에서 존재와 심리 세계의 의미를 추적한다.  융이 발전시킨 다양한 분석심리학의 개념들이 발견된 것도 자신의 꿈 속에서였다. 원시성과 태고의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고 신화와 민담의 세계에서도 발견되는 `원형', 인류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저장해 온 모든 잠재적 기억흔적인 `집단 무의식',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인 요소로 불리는 `아니무스' 등 이 모든 개념들은 이름없는 임상 환자들의 만남과 더불어 자신의 꿈의 분석과 추적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심지어 하나의 견해를 짜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 견해가 언제나 하나의 가설로 남고,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 535쪽

 

솔직히 융의 심리학 이론에 대한 예비지식 없이 이 방대한 자서전을 읽는 일은 모험이었다.  융은 이 자서전의 학문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하여, 사후에 출판되길 원했던 것이다.  모든 연구적 성과들과 그의 심리학 이론들은 깊이없이 다루어진다.  후일담이나 신변잡기적 감상,  무엇에도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서술하길 원했던 책이라 그런지 그의 사상 보다는 주로 삶과 경험에 치중한 자서전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오면서 융은 좀 더 친절하고 고백적이다.  융은 세계 대전을 경험한 유럽 사회와 사람들의 이성주의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비판적 이성이 신화적 관념과 사후의 삶에 대한 관념까지도 죽여버린 현실을 통탄한다.  그는 의식과 얕은 지식으로 세계와 인간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론 우리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무의식으로 표현되는 인간정신의 심연을 헤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여,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대지를 `비밀로 가득 찬 세계'라 표현한다.  이 세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된다고 말한다.   융은 오직 그런 태도를 사람들이 가질 때에야, 우리 세계와 삶은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보았다. 거기에 하나를 더 정직히 보탠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심령현상을 보고한다. 지인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환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놓는 것을 볼 때, 그의 심리학이 왜 비과학적이란 비난을 받았는지 독자는 깨닫게 될 터다. 

 

이것에 대한 융의 답변은 분명하다.  존재와 우주, 그리고 세계가 과연 이성으로, 과학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심령현상을 경험했다. 그것은 예감이나 물리적 사건, 우연의 일치라는 모습으로 현실 세계에 등장한다. 신앙의 세계에 들어서면 이같은 심령현상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모습을 띄기도 한다.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고 융은 잘라 말한다. 융 심리학이 신비주의와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무의식 자체가 그런 성질을 이미 갖고 있다.  20세기 초반 프로이트와 융을 통해 무의식이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성주의로 대표되는 `의식'이 인간의 총체적 정신이라고 착각해 오지 않았던가? 

 

융 심리학은 난해하고, 비과학적이란 비판은 합당할까?  융의 자서전은 정확히 그런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노학자가 정직히 고백하는 것처럼 "세계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고백 자체도 쉽지 않은 것이 권위를 중시하는 학자들의 습성이다.  하지만, 융은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우리 세계에 `비밀로 가득 찬'이란 수식어를 넣었다.  인간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얼마나 황폐한 타락과 일탈로 나아갔는지 살아있는 인간의 역사가 증거한다. 사람은 의식으로 살지만, 그것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  무의식이란 대해와 심해를 기억하라. 이 자서전은 인간 융이 내면을 향해 띄운 무의식의 탐사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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