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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평점 :
기원전 268년 인도의 아소카 왕은 오늘의 인도 대륙과 중앙 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선대로부터 계승했다. 그도 처음엔 평범한 왕이었다. 그가 평범함을 벗어난 계기는 첫 정복전쟁을 겪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 끝에 이르러서다. 그는 인도 끝자락에 위치한 한 왕국을 끝내 정복하지 않고 전쟁의 역사를 종식시켰다. 역사는 정복의 시대,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폭력과 살육을 통한 정복전쟁을 포기한 최초의 왕이 아소카 왕이었다고 쓴다. 그는 첫 전쟁 후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었고 훗날 `위대한 아소카 대왕'으로 불렸다. 그가 외부세계의 전쟁을 포기하고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참되고 유일한 정복이란 자아의 극복이며, 다르마(Dharma:의무,진리,법,덕)로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를 장악하고 자신을 통제하는 일이다.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마음 가짐이다.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룰을 새기고 지키겠다는 각오를 실천으로 옮기는 일을 통해서 우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은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유문화사, 1999년)에서 사회와 기업, 그리고 개인의 성공적인 변화에 이르는 길을 특유의 정교한 구도자적 문장으로 풀어냈다. 그는 변화에 저항했거나 성공했던 사례를 역사와 자연, 문화와 사람에게서 가져왔다. 왜 우리는 변화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책이 나온 1990년대 말 IMF 국가 부도위기에서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아픈 질문이었다.
구본형은 변화의 본질을 파고든다. 변화는 내부의 에너지다. 해서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변화에 이르지 못하고 단지 `변화의 희생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낮은 에너지 상태가 수치심, 무기력, 슬픔, 두려움이다. 이 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쉽게 휘둘린다. 이 때 사람들은 상황의 희생자에 불과하고, 그 때 우리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제대로 된 변화를 시작하는 최초의 출발점은 `내부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 욕망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욕망은 좌절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용기'다. 용기와 욕망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강제력이 아니다. 이 힘은 내부의 것이며 우린 그걸 잠재력이라 부른다.
"당신의 미래가 복제된 작은 도토리를 심어라. 그리고 하루에 두 시간은 이 꿈을 키우기 위해 써라. 밥 한 그릇과 옷 몇 벌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파는 것은 노예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삶을 살며, 언제나 상황의 희생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욕망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 " 114쪽,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
변화의 강력한 추동력으로 구본형은 `혁명'을 지목한다. 혁명은 소위 `패러다임의 변화'로 불린다. 패러다임이 바뀌기 위한 전제는 `정상'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파괴와 단절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거듭난다'고 일컫는다. 자기혁명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돈과 명예와 권력은 아니다. 모든 혁명의 본질은 삶 자체를 획득하는 것이다. 일상을 통해 자기 삶을 살면서 기꺼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빛이 되어 살 수 있다. "행복한 일상적 삶이야말로 자기 혁명이 추구하는 비전이다."
저자는 개인혁명은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고 선포한다. 첫째는 이원적 시각을 교정함으로써 세상에게 원래의 색깔을 돌려주는 것이다. 세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해 자신의 일상이 좌우되지 않도록 한다. 그는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간디는 "그대에게 잘못이 없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만일 그대가 잘못했다면 화를 낼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화를 내지 않고 세상을 보란 말이다. 두번째 목표는 자발성이다. 그것은 `인생 속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저항을 뿌리치고 기꺼이 삶에 참여하는 마음'이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빛나는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빛깔을 찾을 수 있다.
변화는 모든 주체에게 필요하다. 변화는 보다 나은 방식을 찾고 시행착오를 수정하는 일과 같다. 완벽한 것은 물질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과 인간이 존재하는한 그래서 필요한 것이 변화다. 그러나 변화가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뀌면 복지부동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상황을 모면해 자신의 변화를 최소화 하기 위한 본능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운동을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러가지 일로 바쁘다고 말한다. 모두 지금껏 살아온대로 그렇게 살아가길 바란다. 해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일은 영원히 하지 못한다. 구본형은 이 책에서 변화의 저항력을 간파한다. 사람들이 변화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변화는 그렇게 절박한 상태에서 온다.
변화의 대상은 다양하지만, 이 책의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의 변화이자 그 결과다. 미래 사회는 `하기싫은 일을 하는 사람'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에게 `일'과 `업무'는 자신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소한 하루 2시간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남겨두라는 말로, 구본형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변화와 혁명을 유도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개인이 도달하게되는 변화의 정점이 바로 한 분야의 전문가로 바로 서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이 흐르는 곳을 따라 아주 멀리 가는 것, 취미와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행운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 실업이란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실업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함으로써 자유롭게 종속될 수 있다. 그 일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 웃고 울 수 있다. 인생을 거는 것이다." 296쪽
구본형의 전작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1990년대의 책 100선에 들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그 성공에 이어 발표된 구본형의 두번째 책이었다. IMF를 통과하던 직장인들에게 그의 글은 통렬한 자기혁신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 이후로, 한국 경제는 다시 정상의 궤도에 들어섰지만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져 버렸다. 구본형은 일생 매진해온 인문학과 경영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통찰했고 직업인들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마음의 자세와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를 주제로 내걸어, 한 시대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20년간 IBM에서 평범한 월급장이로 살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는 오랜 시간 새벽 2시간을 자신을 위해 빼 놓았고, 그 시간에 동서고금의 책들을 읽고 꾸준히 글을 써 왔다. 이 책 속에서 그가 내닫는 사유의 광폭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마라는 명령투에 익숙한 외국 자기계발서가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을 때 그의 글은 격이 다른 문장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아내며 단번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와 격동의 시대를 주제로한 여러 논의가 깊이 있게 서술되어 있지만 이 책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타인을 위해 일하는 시간 외에,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남겨둘 것,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을 알아갈 것,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가며 살아 갈 것, 그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결국 인생에서 전력투구해야 할 `자기만의 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되돌아 봤다. 매일이 놀랍도록 똑같은 삶이었다. 출퇴근 시간도, 업무도, 마찬가지다. 큰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직장환경은 축복일 수도 있다. 그런 안정된 환경속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써 왔다. 구본형의 메세지를 알기 전부터다. 그의 책을 읽고 그가 20년 동안, 꾸준히 새벽시간 자신과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었구나, 뒤늦은 확신이 들었다. 생활은 변화가 없었지만 내면은 무수한 변화의 반복이었다. 책은 내 고정된 생각을 쪼개는 날선 `도끼'였다.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갔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고 내 욕망이 흘러가는 대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기를 소망하는 그 분야를 위해 정진했을 뿐이다. 때론 책읽기와 글쓰기가 구도자의 몸짓처럼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은 위대한 결실을 위한 산통의 일부분이었다.
직장생활을 접고 `변화경영연구소'라는 1인기업을 설립한 그가 명함에 새겨넣고 다니던 비전은 바로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였다. 책읽고 글을 썼던 20년의 직장생활 끝에 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통찰력 있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뛰어난 저자로 다시 태어났다. 오늘 그의 저서를 찾아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처럼 우리도 아름다운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그도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독자의 동질감은 가능성으로 전이된다. 그가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자신을 위해 비워둔 `하루 두시간' 덕분이다. 이 평범한 원칙을 기억하자. 살면서 우리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그것이 여행이 됐든, 책이 됐든, 한 편의 영화가 됐든, 삶은 그 때 새롭게 날아오를 기회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