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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기업 메이저리그 -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비즈니스가 되었는가
송재우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세월호 참사 이틀 후 온 국민이 비통함에 젖어 있을 때였다. 방송 보도에 등장한 메이저리그 뉴스 한 꼭지가 결정적으로 눈시울을 붉게 했다. 그날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류현진은 센프란시스코의 에티엔티(AT&T) 스타디움에서 열린 센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최고시속 150km에 육박하는 투구를 앞세워 시즌 3승을 건졌다. 그는 경기 전 라커 룸에 `SEWOL 4.16.14'란 문구를 붙여두고 시합에 나갔다. 경기가 끝나고 언론 인터뷰에 나선 류현진은 "지금 한국 국민들은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내가 오늘 잘 던져서 이기면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 던졌다" 고 말했다. 이어, 에이피(AP) 통신은 "류현진이 비탄에 빠진 조국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흔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9회말 투아웃 전까지 그 누구도 게임의 결과를 예측할 순 없다. 우리는 그런 심정으로 세월호의 참사에서도 희망을 간직했다. 류현진의 투구가 어떤 결과를 갖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27살, 청년이 먼 이국 땅의 그라운드에 서서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난 참사를 기억하고 있었단 것이 대견할 뿐이다. 비단 이번 만은 아니다. 1997년 IMF 국가부도 사태를 통과하며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통산 14승 고지를 넘던 날, 사람들은 박찬호에게서 감추어진 희망을, 삶을 견디어 낼 작은 이유를 발견했던거다. 야구는 인생과 닮았고 때로 그것은 누군가의 곤궁한 삶에 용기를 불어넣는 훌륭한 촉매였다.
메이저리그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양 리그로 이루어진 미국 프로야구를 말하며 간단히 빅리그(big league)라 불린다. 각 리그 15개 팀 씩 총 30팀이 있다. 오늘날 메이저리그는 단순한 미국 스포츠 리그가 아니다.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참여하는 지구촌 스포츠 이벤트가 되었다. 무려 140년의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는 그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계 정상의 스포츠 산업으로 발전했다. 지난 18년간 메이저리그의 매출 규모는 네 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고, 2014년 총 예상수입은 최소 9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 30개 팀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총괄 지휘하는 메이저리그 사무국(MLB)이 있다. MLB는 140년 역사속에서 지금도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의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걸출한 국내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배출됐고, 케이블 중계방송을 미국의 안방에서처럼 편안히 볼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우린 메이저리그를 제대로 알고 보고 있는가?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운영 방식, 각 팀의 전략과 선수 기용 등에 관한 상세한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 관람의 즐거움과 감동은 배가 될 터다. 2011년 개봉한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야구 영화였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메이저리그를 스포츠 경기에 치중해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깊이 발 담그고 있는 자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야구를 몰라도 영화에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의 생리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겐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으로 지금 바쁘게 일하고 있는 송재우는 그의 책, <꿈의 기업 메이저리그>(인플루엔셜, 2014년)를 통해 이같은 독자들의 갈증과 궁금증을 원껏 풀어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전문가다. 1995년부터 <일요신문>의 MLB 통신원으로 일하며 박찬호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고, 1,2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해설을 맡았다. 현재는OBS, MBC, JTBC의 메이저리그 중계에 참여하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책의 풍부하고 상세한 자료들은 메이저리그를 세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첫째, 팬들을 사로잡아 거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전략. 둘째, 승부에서 살아남아 결국 우승에 이르게 하는 장,단기 향상 전략. 셋째, 탁월함을 끌어내 위대한 팀을 만들어내는 매니지먼트 전략이다. 이러한 3단계의 분석틀을 통해, 독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경영전략을 파악하고, 구단과 감독이 중심이 돼 팀의 승리와 리더십에 기여하는 여러 기법들을 익히게 된다. 그것은 스포츠를 넘는 비즈니스이자 자기계발이며, 조직의 운영 노하우를 습득하는 일석삼조의 기회에 다름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을 벗어나면 미시적인 아기자기함이 돋보인다. 그것은 메이저리그를 관람하는 `깨알 같은' 즐거움이다. 메이저리그는 관중의 피로감을 줄이고 경기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007년 2월부터 종래 투수의 투구간격(인터벌)을 20초에서 12초로 앞당겼다. 8초가 줄어들면서 관중의 만족도는 급상승했다는 후문. 1999년부터 메이저리그는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개막전을 치루기 시작했다. 일본,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개막전이 열렸고, 2014년 3월 개막전은 호주에서 LA 다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개막 2연전을 치뤘다. 야구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측면과 꿈의 리그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려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아이디어였다.
각 팀에 얽힌 전설과 징크스도 흥미롭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못한 팀은 시카고 컵스다. 메이저리그 원년인 1876년 첫 출발한 오리지널 창단 멤버고, 팀 역사만 138년에 달하는 명문이며 선수들의 꿈인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도 42명에 이르지만, 1908년 이후 우승 경험이 없다. 호사가들은 `염소의 저주' 때문이라고들 한다. 시카고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결승에 진출했던 1945년 4차전 경기에서, 컵스의 홈구장에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던 관중이 거부당하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할 것이다'고 저주를 퍼붓고 떠났다. 시카고 컵스는 저주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 이후,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본적이 없다.
책의 중반부에 소개된 `성공하는 팀의 9가지 비결'은 주목해볼 만하다. 왜 야구가 인생과 비교되는지 9가지 비결을 우리 삶의 교훈으로 차용해도 손색이 없다. (1) 미래를 바라보되 현재에 충실하라. 3~4년 후 우승을 바라보되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그 꿈에 다가설 수 있다. (2) 유니폼이 더러워지는 것을 즐겨라.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는 기본이다. (3) 데이터를 활용하라. `머니볼' 신화의 빌리 빈 단장은 최초로 데이터를 활용해 약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4) 팀 성적을 우선시하라. `희생' `구원'이란 용어는 야구에서만 볼 수 있다. 야구는 혼자 하는게 아니다. (5) 팀의 일부가 되라. 재능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6)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사람만이 승리한다. (7) 공에서 눈을 떼지 말라. 한결같은 집중력이 승리를 불러온다. (8) 수비수가 없는 곳으로 타구를 보내라. 틈새시장, 즉 비어 있는 곳을 공략하는 것을 잊지 말자. (9) 상대의 실투를 놓치지 말라. 기회란 그것이 기회임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메이저리그 140년의 성공의 비결은 단순하다. 팬들과 소통하는 노하우를 함께 익혀왔기 때문이다. 팬과 함께 그들은 140년 무한 성장을 이뤄냈고, 세계 최고의 리그 자리에 우뚝 섰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게 아닌 것이다. 지속적인 소통과 끊임없는 혁신, 승리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 오늘 메이저리그의 성공을 가져온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우리 선수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한국이 배출한 메이저리그의 스타들은 국가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건넸다. 국민들은 정치나 경제가 아닌 스포츠 스타의 활약과 그들의 메세지를 통해 다시 일어설 희망을 발견하곤 했다. 요 며칠 류현진의 진정성 담긴 메세지와 혼신을 다한 투구에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한 독자의 주책이 아니라 진정한 감동이 지닌 힘 덕분이었다. 메이저리그 야구에는 그런 진정성이 있다. 세계 최고의 마운드에 섰지만 밑바닥을 내려다볼 줄 아는 지혜, 왜 정치보다 스포츠가 더 감동을 주는지 알 것 같다.
송재우 전문 해설 위원의 메이저리그 특강이라 부를 만한 이 책은, 흥미로운 소재, 통찰력 있는 문장, 충실한 데이터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법", 과히 한국의 야구팬들에겐 `메이저리그 관람의 교본' 같은 책이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