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장 쓰기 오늘의 사상신서 15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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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언젠가 서점을 돌아보다 글쓰기 책만 모아둔 곳에 멈춰선 적이 있다.  글쓰기에 관한 모든 비밀이 그곳에 숨어있기라도 하듯 여러가지 글쓰기 책들이 나와 있었다.  예전에는 글은 특별한 사람만 쓰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소설가,수필가, 시인 같은 작가들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글을 썼다하면 소설가처럼, 수필가처럼, 시인처럼, 써야 글을 잘 쓴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정도로 쓰지 못하면 글을 쓸 자격도 없는 것이니,  간혹 어렵게 쓴 글 한 편을 쳐다보고  얼굴이 따갑고 창피해 하는 경우가 있었다.   글을 왜 쓰는가 ?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제쳐두고, 오직 작가들처럼 `글을 잘 쓰기'위한 것이 글쓰기 교육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내가 지금껏 읽어왔던 몇 편의 글쓰기 책도 마찬가지고,  내가 그러한 책을 읽어온 이유도 그와 같다.   

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를 읽은 것도 글을 잘 써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재주를 가르쳐주는 여타의 책과는 달랐다. " 왜 글을 쓰는가 ?" 라는 본질을 먼저 가르쳐준 것이다.  난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오덕은 어떤 분인가?   43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골 학교의 교사요, 동화,수필,동시 등을 발표하고 평론까지 썼던 작가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분의 이력은 평생 우리말과 글 살리기를 실천한 일이다.  이 책이 내게 충격을 준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내가 지금껏 글이라고 썼던 게 `거짓'과 `흉내내기' 로 일관해 왔단 생각 때문이다.  우리 글을 버리고 멋을 부리기 위해 한자어를 골라 쓰고, 작가들의 글쓰기를 본따 문장을 비틀고, 일본어의 어법인 것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일본어식으로 썼던 글쓰기의 못된 버릇을 이 책을 통해 거울처럼 비춰볼 수 있었다.

흔히 글은 말보다 어렵게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잘 쓴다는 것은 어렵고 유식하게 쓴다는 말과 동격이 되었다.  책을 많이 읽고 어휘력을 늘리는 것은 곧 어려운 한자말을 골라 쓰는 재주를 늘리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우리가 대화에 사용하는 어휘는 무척 쉽다.   만약, 대화체에 글을 쓸 때처럼 유식한 한자말을 많이 넣는다면 이해가 어렵고 뜻 풀이가 잘 안 돼, 대화가 안될 것이다.  모국어를 쓰지만 대화가 안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언어는 쓸모가 없다.   이오덕은 주장한다.   글과 말은 하나요, 글을 쓸때도 말을 할 때 처럼 쉬운 우리말로 쉽게 쉽게 풀이해 써야 한다.  언어의 기본은 언어를 통한 정보의 교환이나 전달이다.  글이 어려울 필요가 없는 것은, 이 기본 목적 때문이다.  어렵게 써서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멋부리고, 유식하게 쓴 글 한 편의 가치가 어딨겠는가?  이오덕은 이 문제를 글쓰기의 기본문제로 내세운 것이다.

새해 첫 날 발표하는 신춘문예의 당선작들을 몇 해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봐 왔다.   영화평론이나 문학 평론으로 당선된 작품들을 읽은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악몽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평균치의 시민인 내가 신문에 발표된 이러한 당선작들을 도무지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엔 내 공부의 양이 한참은 모자란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오덕의 주장대로라면 그런 글들은 `쓰레기 잡탕'과 불과하다.  글의 1차적 목적은 전달과 이해에 있다.  특수한 직업 세계의 전문용어를 담고 있지 않다면, 글은 써놓고 일반 시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평론 당선작들을 보라.  한국말을 썼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나간 일이지만, 당선작을 낸 신문사와 심사위원들, 혹은 그 글을 쓴 작가 본인도 자신이 무슨 소리를 주절거린건지 모르긴 마찬가지 아닐까, 의심이 간다. 

"그 첫째는 `글은 말보다 어렵게 써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더 친절하게 써야 한다'는 사실이고, 다음 또 하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중국 글자말을 쓰지 말고 우리 말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오덕 <우리 문장 쓰기>, p.32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언어 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잘못됐단 생각을 했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글을 보면, 어른들처럼 유식하고 멋부린 문장들을 쓴다. 즉 흉내내기에 앞장서는 것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문장들은 어른 작가들이 쓴 글이고, 잘 쓴 글은 어른처럼 글을 유식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때부터 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오덕은 글쓰기의 기본은 문장에 있질 않고, 한 사람의 삶 안에 있다는 말로 이 잘못된 교육을 비판한다.  좋은 글은 자기가 사는 생활 안의 사실적인 사건들을 우리 말로 정직하게 써 내는 것이 기본이다. 소설가나 시인이 쓰는 언어는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글이 될 수 없다.  창작글은 작가들이 쓰는 글이기 때문에, 생활글과 갈라지고 그것이 글쓰기의 모범이 될 수가 없다.  굳이 우리가 작가들의 글쓰기를 흉내낼 필요가 없는 이유다.

이 책에서 얻은 다음 소득은 좋은 우리글이 되기 위한 요건들에 관한 것이다.  중국 문화권의 영향을 오랜시간 받아왔기 때문에, 일부에선 우리말과 한자말은 갈라설 수가 없고, 우리말을 잘하기 위해선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 라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나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 왔던 것 같다.  우리말로만 글을 쓰기엔 어휘가 부족하기에, 중국글자말을 섞어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오덕은 이 책에서 수많은 예시문을 들고와 이런 주장의 허무맹랑함을 야단친다.   생각보다 굳이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글을 충분히 잘 쓸 수 있었다.  예시문에서 확인한 바로는 우리글로만 쓴 문장은 이해하기가 쉽고, 글도 훨씬 맛깔스러웠다.  즉,  잘 쓴 글은 유식한 중국글자말을 가져온다거나,  글의 멋부리기에 기대지 않는다는 거다.

고등 교과서에 나오는 기미독립선언문의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우리 글인가?  일제 시대 민족 독립의 희망을 품고 써낸 이 글은 번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요즘 학생들이 이 문장을 국어책에서 보고 이 한자 범벅인 이런 글을 왜 배워야 하는지?  묻는 학생은 없을 듯 하다.  우리가 이런 문장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된 것이다.  문제는 100여년 전이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데 있다.  중국과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지나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 글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며 한자말을 섞어 뜻도 알아볼 수 없는 문장들을 써 내고 있지만, 누구하나 반성하는이가 없다.   이 책에서 이오덕의 반복되는 주장은 한결 같다.  쉬운 우리말을 놔두고, 왜 번역이 필요한 한자어를 쓰고 그것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것의 수치스러움을 깨닫지 않는 낯 두꺼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한자어를 쓰는 것은 말의 경제에서도 몹시 낭비되는 일이다.   우리말로 쓰면 될 것을 어려운 한자말로 쓰면서 해석이라는 또다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고 듣고 일한 것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 된다는 믿음을 거의 모두 잃어버리고, 글이라면 보통사람들이 쓸 수 없는 것으로, 거짓 얘기 잘 만들어내고 유식한 말재주 잘 부리는 특별한 재질을 가진 사람만이 쓰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p.162 

요즘 많은 글쓰기 관련 책이 출판되고,  글쓰기 교육이 활성화 된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책과 강의에선 글을 어떻게 잘 쓰느냐? 하는 기교나 기술을 가르치는데 힘을 모은다.  이런 모든 교육은 이오덕의 책을 읽고 난 후, 앞 뒤가 바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쓰는 민족은 다양하지만, 일본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대다수다.  한국어는 말할 필요가 없다.  한글 속에는 민족과 문화라는 큰 뿌리가 심어져 있다.  한글을 빼고 한국인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다.  굳이 한글이 품고 있는 위대성에 관해 세계 석학들의 최근 연구 결과를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글이 오염되고, 훼손되면 민족 혼이 오염된다.   그래서 한글 속에는 한국이란 민족의 미래가 담겨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의 가치를 깨닫고 바른 한글 사용을 주장했던 이오덕과 쉬운 세벌식 자판 보급운동에 앞장섰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 같은 분은 나라의 언어가 외국의 지배와 종속을 거치면서 오염된 현상을 고발하신 분들이다. 그들의 고발 내용은 그간 작은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염의 실상은 심각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 오염을 주도했던 이들이 내노라하는 지식인들였단 사실은 실망스럽다.  지식인들은 대표적으로 한국어를 망치는 이들이다. 지식인은 글을 쉽고 쓰고, 이해할 수 있게 쓸 것을 이오덕은 이 책에서 몇 번이나 강조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글의 본래 목적은 이해와 소통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이 아닌 것으로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의, ~ 적, ~ 등 은 일본말의 잔재다.  되도록이면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 창조적, 생물학적, ~ 등, 은 안 쓰고도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다.  특히 ~적 이란 말은 지식인들이 주로 많이 쓰는데 이건 명확한 일본말 어법이란걸 명심해야 한다.  ~적이라고 쓰는 대부분의 글은 유식한 말투로 쓰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영어 번역체의 문장들인 수동태 형식의 어법은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다.  일본말과 중국말에 오염된 우리글은 또다시 영어 교육을 통해 번역체라는 괴물에게 피해를 입었다.   ~의하여, ~하여지다, ~되어지다, 그녀(이오덕에 따르면 그녀란 대명사는 우리말이 아니다. 오직 영어 번역체이므로 그녀를 쓰지 말고, `그'라는 한국어를 써야 한다), 완료형의 번역투인 ~였었다. 이었었고, 는 우리말이 아니다.  절대로 쓰면 안 된다.  다음으로 무수한 한자어들은 쉬운 우리말로 바꿔써야 한다.  한자말을 대체할 수 없다면 쓸 수 있겠지만, 가능한 글은 우리말로 쓰는 것이 맞다.  유식하게 보이려고 한자말을 골라 쓰는 것은 거짓 글쓰기에 앞장서는 것이다.  연근(蓮根)을 풀이한 국어사전에는 "연의 지하경"이란 괴상한 글이 나온다. 쉽게 풀이한 것이 아니라, 더 어렵게 쓴 것이다. 국어 사전이 일본의 책을 단순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이오덕은 설명한다.   `연뿌리'라는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 연의 지하경이라니...?   국어 사전이 우리말 망치기에 앞장섰던 거였다. 

~에로의, ~로서의, ~으로부터의, ~와의, 유년과 역사에로의 여행,  이런 글은 대표적인 영어 번역투이므로 쓰면 안 된다.  무수한 한자어들은 다 예로들수조차 없다. 몇가지를 들면,  종언(끝장, 마지막), 진화(불끄기), 노정(길), 화훼(꽃), 화제(얘깃거리), 전범(본보기), 사고(생각), 무수하게 많다. 우리말로 풀어 쓸 수 있다면 풀어써야 한다.  그게 훨씬 말의 경제를 위한 길이고, 글을 읽는 이를 배려하는 일이다.  한자어를 아무런 생각없이 가져다 쓰고, 한자 공부를 해야 우리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앞뒤 바뀐 주장을 하는건 잘못이다.  한자어를 쓰기전에,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쉽게 쓰려는 노력을 지식인부터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금도 불리지않고,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쓴 글, 이런 글이 좋은 글이다.  생활감상문은 이런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가 허세를 피우고 유식한 척, 잘난 척하는 속임수로 글을 쓰는 것 아닌가 ?  문학이고 뭐고 하기 전에 사람부터 되고 볼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학이라는 글들이 얼마나 말재주만 부려 놓은 글이고 거짓으로 차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p. 293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내가 써왔던 글들을 되돌아 봤다.  창피하고 수치스런 글을 써왔다.  책에서 읽은 작가들의 글을 흉내내고, 어려운 한자어를 섞어 유식한척 멋을 낸 경우가 흔하다.  일본어와 영어번역투, 한자어와 외래어의 무분별한 잡탕이 곧 내 글이었다.  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는 내가 지금껏 읽은 그 어떤 글쓰기 책보다 훌륭한 우리글 쓰기의 교과서가 될만한 책이다.  글은 멋내고 과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이오덕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사람의 일 세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는 일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생활인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발굴 할 수 있다. 골방에 들어앉아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작가들은 반성할 일이다.  둘째는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오덕이 말하는 자기 표현이란 학자부터 노동자, 농민, 주부,어린이 모든 영역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직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사회가 글쓰기의 바른 방향임을 의미한다.  세번째는 남들의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의 삶이 일하고, 쓰고, 읽기라는 세가지로 돼 있다는 이오덕의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삶 안에서 읽고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새삼 이 책에서 발견하고 내 생활가운데 글쓰기와 책읽기가 차지하는 남다른 비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 오직 살아 있는 우리 말을 쓴다는 것, 이것 만은 절대로 잊지 말고 ! "  이오덕 선생님의 한글 사랑이 책안에 절절하다.  한글을 바르게 쓴다는 것은 중국과 일본 미국이란 강대국의 지배와 통제끝에 남은 글의 오염을 고치는 일이었다. 이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다.   나라는 독립되었지만, 글은 식민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고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몰라서야 말이 되는가?   글쓰기의 목적을 제대로 알고,  우리 문장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2003년에, 한글을 사랑했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님은 1995년에 돌아가셨다.  그분들은 죽었지만, 그들이 평생을 추구했던 한글 사랑의 뜻은 위대하다.  수많은 예시문이 함께 담겨 있는 500 페이지의 두툼한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 책은 우리 글 바로 쓰기의 최고 교본이다. 


201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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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4-27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읽으시고 좋을 글을 써주서셔 고맙습니다.

개츠비 2010-04-29 10:57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많이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글 잘 쓰기 위한게 목적이 아니라 먼저 왜 쓰느냐? 쓰는게 왜 중요하냐? 를 먼저 가르쳐주는 책이거든요. 올해 읽은 책 가운데 제겐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글 잘쓰는 글쟁이들이 독자들을 얼마나 가지고 놀았는지 이 책을 보면 알게 됩니다. 강추 ^^

프레이야 2010-05-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에 대한 글은 오래 전 읽었지만
이렇게 또 정리된 리뷰를 읽으니 새삼 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위 문학이랍시고 어렵고 유식하게 꾸며쓰는 거짓글이 얼마나 많은지요.
쉽게 쓰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절감합니다.
리뷰 당선도 축하드려요.

개츠비 2010-05-08 22:3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이 책을 읽고 낯이 많이 뜨거웠죠. 한 권의 진실한 책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런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독서할 힘을 얻었답니다. 많은 책을 읽지만 그런 책을 만나기란 어렵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앞으로 계속 읽어갈 생각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글샘 2010-05-1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오덕 선생님 덕분에 일본어를 공부하게 되었답니다. 도대체 일본어 아닌 게 뭔가 싶어서요... 마각을 드러내다... 뭐 이런 게 다 일본어거든요.
이오덕 선생님은 삶 자체가 꼿꼿함으로 가득찼던 분이었는데,
권정생 선생님... 모두 먼 곳으로 가시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개츠비 2010-05-17 07:56   좋아요 0 | URL
생전에 이분들의 글을 읽어보지 않아 서운합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남긴 글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크고 높아질거라 믿습니다. <우리문장쓰기>를 읽으며, 주관이 확실한 작가의 글이란게 어떤건지 느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