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관한 일기(2) - 비만이 의미하는 것들

                            뚱보자아는 잘 죽지 않는다. 


 나는 상체 비만이 유독 심하다. 배가 많이 나와서 소위 배바지로 부르는 형태로 바지를 입는다면 허리 사이즈가 족히 45인치는 되어야 할 것이다. 파트너는 내 가슴이 크다며 놀라워 하는데,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쩌면 유방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내가 가르쳤던 학생에게 안부 전화가 왔는데 간단한 수술을 했다고 전해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어떤 수술인가 물었지만 "별 것 아니에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말하기 어려워 한다는 생각에 더 묻지는 않았는데, 다른 학생을 통해 그 친구가 남성 유방증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기도 했지만 우선 호기심이 생겼다. 남성에게 여성과 같은 유방이 있어서 이것을 축소시킬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생각은 그 이전에는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고, 나는 그저 살을 빼면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샤워를 하며 내 가슴을 보며 이게 살인지, 유방인지 쳐다 봤다. 내 가슴이 그저 살이든, 유방이든 어느 경우라도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자대에 배치 받은지 얼마되지 않았던 신병 시절에 같은 내무실은 아니었지만 한 건물을 쓰는 운항대에 A라는 상병이 있었다. 내가 있던 부대에서는 후임들을 괴롭히는 악독한 선임들을 '꼽창'이라고 불렀는데 A는 꼽창 중의 꼽창이었다. 껌을 씹지 않아도 껌을 씹는 듯이 말을 했고 억양이 강하고 아주 불량스럽게 부산 사투리를 썼는데, A의 가장 악질적인 면모는 후임들을 자신의 성적인 노리개 정도로 취급했다는 것에 있다. 이미 썼던 것처럼 나는 군복무 시절에는 그래도 "표준적인 체형"보다 약간 더 몸무게가 나가는 정도였지만 내 동기 중에는 100킬로그램이 넘게 나가는 녀석이 있었다. 운이 나쁘게도 그 녀석은 A와 한 내무실을 쓰게 되었는데, 밤마다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그 괴롭힘을 성적 유린이라고 쓰더라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A는 내 동기생의 침구 옆에 자기 침구를 깔아두고서 그의 옷으로 손을 집어 넣어 가슴을 밤새 주물렀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동기 녀석은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이 들만 하면 주물러 대기 시작했으니까. A는 겉으로는 그 친구를 위해주는 척 다른 선임들이 그 친구에게 청소를 시키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못하도록 했다. 내 동기는 A의 보호 아래 내무반 사역이 있어도 항상 열외였다. 그리고는 밤에 가슴만 내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군대라는 곳을 저주하고, 될 수 있는 한 병역을 기피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런 기억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만은 단지 '뚱뚱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웃옷을 벗은 채로 거울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기 혐오감, 다른 사람에게 놀림감이나 노리개가 되는 모욕감까지도 포함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A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고, 어디선가 우연하게라도 만난다면 죽이고 싶다. 내 동기생은 일병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부대 복귀 하루 전 날 자살했다. 


 지금 뚱뚱하지 않다고 해도 한 때 잠시라도 뚱뚱한 적이 있었던 사람은 마음 속의 '뚱보 자아'가 살아간다. 개그콘서트에서 비만인 개그맨들이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이 코너로 만들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23킬로그램을 감량했다는 이희경씨나 65킬로그램이나 뺀 김수영씨나 지금은 날씬한 몸매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도 마음 속에는 사람들에게 놀림 받고, 모욕당하고, 자기를 비하하며 상처 받은 '뚱보 자아'가 여전히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속이 좁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섯살 짜리 아이 친구들이 친구의 아빠인 나를 더러 "야, 돼지 아빠다"라고 하고 외치면 기분이 나쁘다. 아이들이니까 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싶다가도 아이 친구 엄마들의 키득거림, 또래 아이들의 "와" 하는 웃음 소리, 거기에 마냥 따라 웃을 수 없는 내 아이의 뻘쭘함까지 생각하면 사실 속이 끓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아이에게는 지금까지도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명절 날 큰 댁에 가고 싶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사람들은 내가 살이 더 찐 것은 아닌지 관심이 지나치게 많다. 고종 형님은 지난 10년 간 명절 첫 인사가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야, 너 살 더 쪘네. 이 돼지 봐라". 또 다른 삼촌도 마찬가지다. "왜 자꾸 살이 더 쪄?". 


 이런 말은 단지 내가 살이 쪘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조롱이 담겨 있다. 내 마음 속에 사는 '뚱보 자아'는 지금껏 팽생 이런 모욕에 가까운 평가와 조롱을 들으며 살아왔다. 살을 빼더라도 뚱보 자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살을 빼면 더 이상 뚱보 자아가 상처를 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 전에 겪었던 일들로 인해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고 하는데, 뚱보 자아는 죽여도 잘 죽지 않는다. 오히려 뚱보 자아가 사람을 죽인다. 내 동기생을 결국 죽게 만든 것도 A에게 상처 받은 뚱보 자아다. 


 아직 살을 빼지도 못한 주제에 너무 이른 예단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살'을 뺀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지겠지만 내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의 또 다른 뚱보 자아가 받은 상처는 그대로일 것이다. 뚱보 자아에게 상처를 준 어느 누구도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그들은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민하게 굴면 덩치를 운운하면서 속이 좁다느니, 히스테릭한 뚱보라며 놀려댄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단지 비만이 단지 뚱뚱한 체형을 갖게 되었다거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방증을 걱정하고, 다른 남자가 내 가슴을 만지려 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고, 명절 때마다 내 몸에 대한 품평을 들어야 하는 모욕감과 같은 정서적 충격까지도 포함한다. 이제 뚱뚱하면서 건강까지 나빠지게 되니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어머니는 건강식품을 사다 놓기 바쁘시고, 아이는 아빠 덕에 간이 된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해 투덜대고, 파트너는 걱정을 애써 감추고 아닌 척 용기를 주려 한다. 비만으로 건강까지 나빠지면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된다. 비만이 의미하는 이 무수한 것들 중에 단 하나라도 덜어야지 하는 마음에 밤 11시에 나가 동네를 걸었다. 퍼스널트레이닝을 전문적으로 하는 짐 앞에는 PT에 성공을 한 30대 중반의 양모씨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런 사진은 비포-애프터가 되어야 하는 법, 상의를 탈의한 양씨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비포의 가슴은 내 가슴보다도 훨씬 컸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유방증일리 없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살이 빠지면 가슴도 빠질테니 수술도 필요 없다. 그래서일까? 1시간의 산책에 발걸음 유난히 가벼웠다.


2016년 3월 10일. 늦은 아침을 먹었다. 현미밥과 쇠고기를 넣은 미역국, 무채 나물을 먹었다. 돼지감자가루는 맛도 별로지만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돼지라서 돼지감자가루를 먹냐고 묻는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었다면 때렸을 수도 있다. 점심은 선식을 먹었다. 오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뭔가 맛이 있는 것을 먹고 싶었는데 주변 식당을 둘러 봐도 들어갈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집에서 현미밥에 된장찌게와 나또, 쌈을 저녁으로 먹었다. 어제 좀 과하게 운동을 한 탓인지 허벅지 안쪽이 무척 아팠다. 몸을 풀기 위해 늦은 밤에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걷는 내내 소설가 김영하가 읽어주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들었는데, 그는 걷는다는 것은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고, 혼자 걸을 때의 침묵이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고 또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준다고 쓰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문을 따라 침묵의 가치를 생각해보다가 도시의 11시 밤 공기를 가득 채운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내 생각과 마음을 온통 사로 잡았다. 그리고 걷기는 브르통의 말대로 내게 새로운 생각을 주었다.  여기  '육박사'라는 고기집에서 언젠가 반드시 육박사가 손질한 돼지고기를 숯불에 굽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뚱보 자아는 상처도 잘 받지만, 잘 죽지도 않고, 욕망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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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관한 일기(1) - 러닝머신을 타고

                            금욕에서 향락의 세계로


 나는 나 스스로를 꽤나 금욕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맥주를 두세달에 한 캔 정도 마시는 것이 전부일 뿐 살아오면서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본 일은 없다. 예전에 어떤 음악가와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내가 술에 취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하자 그 사람은 내게 "당신은 내 친구가 될 자격이 없다"고 했다.(사실 나는 그 음악가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그 음악가와 함께 했던 술자리 이야기가 나오니까 생각나는 일이 또 있는데, 사실 그 술집은 일종의 세미-룸살롱이었다. 10만원을 내면 젊은 여성 접대원들이 남자 손님의 옆에서 술을 따라줬다.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그런 경험이 한번도 없었던 나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술은 조금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서비스로 나와 있는 캔 옥수수차만 몇 병을 마셨다. 음악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10만원은 자신이 낼테니 내 옆에 앉을 '아가씨'를 데려오라고 마담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좋은 술이 있는 자리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러 차례 사양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접대원이 들어와서 내 옆에 앉아 옥수수차를 채운 잔이 빌 때마다 채워주었다. 그 여자분도, 나도 서로 어색했다. 


 늘 이런 식인 나를 두고 금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금욕'이라는 말이 지닌 깊이를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금욕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술도 마시고 마음에 드는 상대와 섹스도 즐기고, 하루에도 몇 갑씩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더라도 얼마든지 금욕적일 수 있다. 사실은 나보다 그 음악가가 더 금욕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취할 만큼 술을 마시고 싶고, 답답한 일이 생기면 담배 한 대면 괜찮지 않을까 하기도 하고, TV에 매력적인 여자가 나오면 성적 공상이 나도 모르게 펼쳐지기도 한다. 한 때 나가던 교회에서 훈련 받았던 규칙이 교회를 나가지 않는 지금까지도 관성적으로 위태롭게 지탱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하고, 담배를 마시고, 섹스에 탐닉하는 일은 어쨌든 신에게 '죄'가 되는 일이다. 굳이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나는 아주 얕은 수준의 금욕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제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현재 심각한 비만이고, 몸이 별로 좋지 않다. 특히 상체가 비대해서 조금 걸었다 싶으면  무릎 관절이 아려온다. 나는 어릴 적부터 거의 항상 뚱뚱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한 친구는(이름이 재선이었다) 나를 드럼통이라고 불렀다.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더러 복도를 가린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학생 주임이었던 국어 선생은 나더러 배둘레햄이라 불렀다. 나는 실제로 뚱뚱했지만 그런 말들이 듣기 싫었다. 아니, 나는 정말 뚱뚱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더 없이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의 다이어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여자 아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시작했다. 당시 나는 110킬로그램 정도였는데 살을 빼겠다는 일념 하에 오전에 우유팩 하나를 마시고 나서는 종일 굶다시피 했다. 우유를 마시고 나면 어김 없이 설사로 오전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복부의 지방을 분해하려면 뱃살을 주물러야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수업을 듣는 내내 뱃살을 주물렀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몇 달이 지나자 체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수능 시험을 칠 때는 몸무게가 80킬로그램도 나가지 않았다. 어린 아이 하나가 몸에서 나간 셈이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체중이지 않을까)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을 빼긴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여자 아이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아이의 눈에는 80킬로그램으로 살이 빠진 내가 여전히 110킬로그램으로 보였을 것이다. 군에서 제대할 때까지는 80킬로그램 정도로 몸무게가 유지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 다시 체중이 불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다시 살이 쪘다가 빠졌다가 하는 일을 몇 번 반복했는데, 앞으로 쓰게 되는 글에 거기에 대해서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다이어트는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성공을 했다가도 항상 끝은 실패였고, 나는 지금 여전히 뚱뚱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뚱뚱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건강 상태까지 좋지 않다. <팻>이란 문화인류학 책에서 돈 쿨릭과 앤 매넬리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76퍼센트는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3년 뒤에 다이어트 이전보다 살이 더 찌며, 5년 뒤에는 95퍼센트나 살이 더 찐다"고 한다. 나는 정확히 그 76퍼센트와 95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내가 특별히 음식을 무절제하게 좋아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말했던 대로 나는 "얕은 수준의 금욕주의자"다. 내 파트너도, 내 어머니도, 나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어느 누구도 식탁에서 내가 일반의 경우에 비해 과식한다고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어김 없이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자주 원고 마감을 어기지만, 써야 할 원고를 쓰고, 강의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도 하고자 애를 쓴다. 나는 집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산책을 하자고 먼저 말을 건네는 쪽은 파트너가 아니라 항상 내 쪽이다. 내가 무절제한 점이 있다면, 즉 금욕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글쓰기'와 관련한 것이다.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생산적인 일은 주로 밤에 한다. 황현산 선생은 자기 책에 <밤이 선생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밤은 좋은 생각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을 늦게 잔다. 빠르면 새벽 2시, 늦으면 4시 정도가 일반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같은 대학 체대를 다녔던 친구에게 말하니 약간 비웃음띤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럴리가 없다. 살 찌는 것은 단순하다. 먹는 것만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지". 한마디로 내가 너무 많이 먹던가, 너무 게으르다는 건데 그 이야기를 듣고서 정말 그런가 하고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열심히 산단 말인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나는 더 열심히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생산성의 많은 부분은 포기하고 그저 보잘 것 없는 '몸'을 위해 저녁 시간 종일을 보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함께 말이다.


 어쩌면 친구의 대답이 아니라 내 질문에 내가 살을 빼지 못하는 한가지 이유가 담겨 있다. '보잘 것 없는 몸'을 위해 '생산성'을 포기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로 여기는 자에게 몸이 주는 대답은 몸을 비대하게 만들고, 건강을 앗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보잘 것 없는 몸을 위해서 아무 것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다이어트 시기를 제외하고는 한 적이 없다. 심지어 다이어트를 하는 시기에도 나는 내 몸을 '가혹하게' 다뤘다. 평상시에는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쿨하지 않게 느껴졌고, 다이어트 시기에는 뭔가를 먹는 것이 쿨하지 않게 느껴졌다. 소설가 김영하가 피트니스 센터는 결심 산업이라고 부르던 것이 기억난다. 나 역시 수십번의 결심으로 피트니스 센터를 끊어 놓고, 두 주를 가고 나면 더 이상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러닝머신은 너무 지루하다. 러닝머신 앞의 TV를 보며 운동하는 것은 내게 뭔가 모르게 모욕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머리 앞에 나무 장대로 음식을 매달고 그것을 먹겠다고 따라가는 멍청한 동물처럼 TV를 켜놓고 걷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멍청해 보인다. 그렇다고 TV를 꺼놓고 걷자니, 러닝머신에는 보통의 걷기라면 없을 수 없는 '풍경'이 없어서 걷기 자체가 몸의 단련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그래서인지 어떠한 사유도 일어나지 않는다. 걸으며 철학했다는 칸트도, 하이데거도, 니시다 기타로도 러닝머신 위에서는 '사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러닝 머신 위에서는 나 자신이 '강제되고' 있다는 불쾌한 기분 외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 바로 옆 러닝 머신을 타고 있는 사람의 걸음 속도를 힐끗 보거나, 늘씬하고 건강미 넘치는 여자의 경쾌한 발놀임을 감상하는 것 정도가 전부인 '건조한' 경험이다. 


 건강이 나빠졌다는 감각이 이제서야 생기고 나니 그 건조한 경험도 가치 있는 활동일 수 있다는 자각이 생긴다. 최근 나는 온갖 병이 내게 다 달라 붙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늘 손목이 아프고, 무릎 관절이 좋지 않고, 혈당도 비교적 높고, 혈압이 높고, 편도가 커서 열이 자주 나고, 심한 알러지에 자주 감기에 걸린다. 강의를 하고 나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강의 후 20분이라도 잠깐 자두지 않으면 다음 강의에 영향이 생긴다. 


 그러니까 나는 '살'에 신경을 쓰는 동안 '몸'에 무관심했다. 저 여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매장에서 내게 맞는 사이즈가 없다고 할 때 느끼는 불쾌감을 생각하는 것의 단 절반만큼이라도, 살 대신 몸에 집중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불규칙하게 생활하고, 적당하게 몸을 움직이는 일에도 무관심했다. 즉 '뚱뚱함'에 대한 저항이 역설적으로 '몸'의 존재를 은폐시켰다. 나는 단지 뚱뚱해 보이지 않길 바랬을 뿐이지, 뚱뚱함이 내 존재의 물질적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고는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날씬해질 수 있다면 보잘 것 없는 몸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식의 생각을 한 것이다. 내가 몸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에 관한 일기가 아닌, 다이어트에 관한 일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나에 대한 일기가 아닌,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인 나의 물질적 기반에 대한 일기를 쓰는 이유 말이다.


 나는 얕은 수준의 금욕주의자다. 소위 '죄'라고 하는, 알고보면 별 것 아닌 것을 스스로 금지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나는 금욕적이지만, 나는 생산성을 높여야겠다는 욕망과 다른 사람에게 더 낫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에서 단 한번도 놓여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내 금욕은 얕다. 이 일기를 오늘 밤에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고백하자면, 이런 일기라도 써서 글로 남겨 두지 않는다면 보잘 것 없는 몸을 위해 보내는 내 시간과 노력이 아깝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세심하게 조절하고, 시간에 맞춰 운동을 하고, 때에 맞춰 잠을 자는 것, 다시 생각해봐도 별로 쿨하지 않은데 원래 '먹고 사는 일'이라는 것은 항상 쿨하지 않은 법이다. 어떻게 보면 찌질하다. 직장에서 모욕을 당해도 그만두지 못하고, 밥을 먹으면 똥을 싸야 하고, 죽는 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살아가는 것은 결코 쿨하지만은 않다. 영혼으로 물질적 삶을 초월해 있다는 거짓된 종교적 관념의 끝, 실제는 어떻든 간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기 기만의 끝은 늙어감과는 다른 몸의 부서짐이다.


 2016년 3월 9일. 오늘은 오전에 현미에 무채가 들어간 무침, 호박전을 먹었다. 아침 식사가 늦어 점심에는 커피를 한잔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은 아이 생일이라 아이가 원하는 스시 뷔페에 갔다. 스테이크를 먹었고, 스시의 밥을 거의 다 덜어내고 먹었다. 방울 토마토가 오늘따라 맛이 좋아 30개는 족히 먹은 것 같다. 뷔페에 가니 본전 생각이 나 토마토라도 많이 먹자는 생각에 좀 과하게 먹었다. 토해낼까 하다가 말았다. 아이 생일날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돼지감자와 여주차를 먹고 있는데 돼지감자가루는 맛이 없다. 저녁에는 러닝머신을 40분을 타면서 라디오를 들었다. 지루했다. 그리고 다리 근력 운동을 종류대로 두세트씩 스무번했다. 진정한 향락주의자는 향락이 몸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향락을 위해서 몸을 지킨다. 사이비 금욕주의자의 세계에서 진정한 향락주의자의 세계로 가보고 싶다. 삐걱대는 러닝머신을 타고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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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김이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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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는 하지 못한 이야기.

이번 주는 방송에서 김이나가 쓴 <김이나의 작사법>이란 책을 소개했다. 부제인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이란 제목에 끌렸다. 대중음악 작사가는 어떻게 말들을 길러내나.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말들을 말이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김이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다. 책의 첫문장이 "한번도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다. 그러니까 상업 작사가라면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있을 법한' 예술가와 장사꾼 사이에서의 분열 같은 것이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을 "좋은 일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 전반에서 그 지점이 계속 강조된다. 작사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주는 김이나의 조언은 '클라이언트가 찾지 않으면 작사의 기회 자체가 없다'는 점, '작사는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라 부르기 위한 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정신에서 대담함이 나온다. 나는 그 대담함이 행여나 부끄러움이 없는 대담함이 아닐까 늘 경계하는 쪽이었다. 다른 작사가들이 비웃지는 않을까, 팬들이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다. 내가 쓴 글을 누가 비웃지 않을까, 누가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김이나가 그런 걱정이 아예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자인 것 같다. 그런 대담함을 나는 부끄러움을 핑계로 눌러왔다면, 김이나는 대담함을 대담하게 끝까지 지키고, 자기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단지 장사꾼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담함을 억누르는 부끄러움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대담함을 대담하게 끝까지 밀고 갈 용기가 없었던 것에 대한 핑계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정쩡하면 숨겨야 할 것이 많고, 그래서 꼬아서 말하게 되고, 결국 우회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나의 자아라는 복잡한 미로로 데려오게 된다. 나는 좋은 일꾼이 아니라, 좋은 일꾼이면서 예술가이고 싶고, 장사꾼이면서 연구자이고 싶고, 학생이면서 선생님이고 싶고, 현실이면서 동시에 이상이고 싶다. 성공은 대담함을 대담하게 끝까지 가져가는 것에 있겠지만 진실은 복잡하고 어정쩡한 채로 살아가는 것에 있다고 믿으니까 말이다.    




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김이나씨가 쓴 <김이나의 작사법>이라는 책입니다. 질문부터 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노래를 만들 때 가사부터 쓸까요, 멜로디부터 만들까요? (대답) 네, 정답은 멜로디부터입니다. 싱어송라이터들은 가사를 먼저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멜로디가 먼저 만들어지고 나서 가사를 붙인다고 해요. 오늘 소개하는 책의 작가인 김이나씨는 유명한 작사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브라운아이드걸즈의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곡에 가사를 쓴 분이구요, 우리 가요 시장에서 소위 가장 ‘핫한’ 작사가라고 합니다. 2015년에 작사 부문에서 저작권료 수입 1위를 하기도 했다고 해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김이나라는 작사가가 자신의 작사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바로 이 책의 핵심입니다.


2. 그렇군요. 유명한 작사가가 쓴 작사법이라니 기대가 되는데요, 이 책을 보면 저도 작사가가 될 수 있을까요?


 네, 이 책은 본격적인 작사 실전 연습 같은 책은 아닙니다. “작사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을 먼저 앞세우고 나서 아주 세밀하게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보는 과정을 알려주는 식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작사법’을 넘어서 있는 ‘작사법’에 관한 책이기도 한데요,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드려 보자면, 이 책에는 김이나씨가 작사가가 된 과정, 그리고 작사를 할 때 염두에 두는 요소들, 자신이 작사한 곡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과 숨은 에피스도들, 음반 업계의 작업 방식 등 기술적으로 작사를 어떻게 하는지 보다 ‘작사’라는 작업의 전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작사가가 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작사가를 꿈꾸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업계 1인자가 업계 1위를 한 비밀이 들어 있는 책이니까요. 


3. 그렇군요. 그런데요, 권영민 선생님은 작사가도 아니시고, 작사가 지망생도 아니시지 않나요? 


 맞습니다. 저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제가 작사가가 될 수 있다거나 작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요, 사실 이 책의 저자인 김이나씨도 처음부터 작사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고 해요. 음악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핸드폰 벨소리 만드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작곡가 김형석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김형석씨에게 당돌하게도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기본기가 없어서 거절 당하고 맙니다. 거절당하고 나오면서 평소 김형석씨 팬이라 콘서트장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고 자신의 홈페이지를 가르쳐 주고, 김형석씨가 그 홈페이지에 들어가 김이나씨가 쓴 글을 읽으면서 작사가를 해보라고 권했다고 해요. 그게 시작이었던 거죠. 작사가 지망생만이 작사법을 읽으라는 법은 없는 거죠.


 사실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사법’이라는 책의 제목보다 이 책의 부제 때문이었어요. 제가 신문사나 잡지사 몇 곳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요, 본의 아니게 제가 쓴 글이 어렵다는 평을 자주 듣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쓸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서점을 지나다 이 책의 부제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이 책에 붙은 부제가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입니다. 김이나씨가 작사가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상에서 우리가 흔하게 쓰는 말로 대중들의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정말 뛰어난 것에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그 비결이 뭘까 하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게 된 거죠. 그리고 책을 집어 들었고,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4. 그렇네요.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보다는 쉬운 말로 표현되는 것이 당연히 더 유리할텐데요, 사실 쉽게 쓰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이 책의 첫 문장이 그런 점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김이나씨는 이렇게 씁니다. “한번도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좋은 일꾼이라고는 생각해왔다”. 이 문장이 많은 것을 보여주는데요, 김이나씨는 대중음악에 곡을 붙이는 자신의 일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산업’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가사를 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도 ‘작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어려운 이야기보다 작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사를 쓰기 전에 캐릭터를 어떻게 잡는지, 댄스곡과 발라드곡에서 발음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지 같은 부분에 더 집중해서 이야기해줍니다. 

 특히 저는 이 책에서 김이나 작사가가 어떤 곡을 쓰기 전에 가사 내용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잡는 부분이 정말 흥미로웠는데요, 김이나 작사가는 자신을 자기 세계관을 끊임 없이 그려내고 고집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꾸어낸 꿈을 토대로 밑그림을 그려내는 기술자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가수 박진영씨의 경우는 자기 이야기가 아니면 가사로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라면 캐릭터를 잡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가사의 이야기는 자기 이야기니까 가사를 쓰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하지만 김이나씨는 작곡가나 가수들에게 ‘작사’를 의뢰받아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자기 세계를 고집해서는 어려운 거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의뢰받은 곡의 느낌과 노래를 부를 가수에게 맞는 ‘캐릭터’를 계속 상상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5. 그러면 ‘캐릭터’를 잡는다는 것이 잘 와닿지 않는데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좀 더 쉽게 설명해주세요.


 네, 사실 대중가요를 들어보면 10곡 중에 9곡은 주제가 사랑이지요? 아마 사랑이라는 것은 대중들에게 공감을 가장 넓게, 또 강력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텐데요, 그런데 노래 가사를 음미하다보면 다 같은 사랑 노래라도 노래마다 사랑의 방식도, 사랑하는 사람의 성격도, 사랑을 대하는 자세도 다 다릅니다. “똑같은 이별을 겪더라도, 누군가는 말없이 보내주고 누군가는 지질하게 매달리고 또 누군가는 복수의 칼을” 갈기도 하죠. 그래서 작사가에게 캐릭터 잡기란 가수의 성격, 환경, 성별 등 다양한 요소를 조합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작사가에게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요. 

 이 책에는 재밌는 사례들도 많이 제시되는데, 그 중에 몇 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케이윌이라는 가수가 있는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가수는 “마냥 어리지는 않지만, 노련미가 있는 어른의 이미지”도 아닙니다. 믿음직한 “순정파”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요, 김이나씨는 처음에 곡을 의뢰받고 곡의 분위기가 밝고 순수하고 벅찬 느낌이 강해서 케이윌이 원래 가지는 이미지와 결합을 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첫째, 어리지 않음, 둘째, 밀당을 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임, 셋째, 그래서 언변도 화려하지 않음. 이렇게 세가지 특성을 잡고 이런 남자가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기분에 대해서 가사를 씁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가슴이 뛴다’라는 곡인데요, 이 노래의 가사 후렴에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한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화려한 언변은 아니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가사를 보면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6. 아, 단순한 가사처럼 보이는데도 그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거군요.


 조용필의 노래 <걷고 싶다>의 경우는 다른 캐릭터를 잡은 경우인데요, 김이나씨는 조용필의 새앨범에 들어갈 곡을 의뢰받고는 “선생님이 누군가를 위로하는 이야기는 이전의 수많은 명곡들에서 이미 다뤘다”고 생각해서 “선생님 또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해요. 그리고 별 일 아닌 일에 느끼는 ‘행복의 찰나’를 표현한 곡을 케이윌 때와 다른 성숙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사랑으로 가사를 붙였다고 합니다. “불안한 나의 마음을 언제나 쉬게 했던 모든 것이 다 괜찮을거야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와 같은 가사는 이렇게 나오게 된거지요.


7.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소개되는 곡을 함께 들어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모든 곡을 다 듣지는 않았지만, 아마 지난 주는 대중음악을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한 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찾아서 들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노래 중에는 제가 그동안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가수나 장르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김이나씨가 캐릭터를 잡고 곡을 분석해서 쓴 가사를 읽어보면 곡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거지요. 저는 30대 중반인데도 아이돌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솔직히 가사가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의미 없어 보이는 가사에도 많은 전략과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혹시 아이돌 밴드 중에 엑소라는 팀 아시나요? 엑소의 가장 유명한 곡이 ‘으르렁’인데요, 저는 그동안 어떻게 이런 가사가 이렇게 많은 인기를 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정말 좋은 가사의 대표적인 곡으로 소개되어 있더라구요. 엑소라는 팀의 비주얼컨셉트, 팀 색깔, 곡 정서 등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그런 관점에서 들어보면 아주 잘 짜여진 가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실 시와 비슷한 가사라야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깨졌습니다. 상업 음악에서 좋은 가사라는 것은 곡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내고 사람들의 감정을 만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 책에는 조용필, 이선희, 임재범, 이승철과 같은 거장인 가수들부터 아이유, 가인, 인피니트 같은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까지 많은 곡들이 가사와 뒷이야기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데요,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노래도 알게 되어 저는 참 좋았습니다. 


8. 말씀을 들어보니 작사가라는 직업이 정말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사를 붙이는 일은 멜로디를 따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네, 김이나 작사가는 자신이 대중음악의 작사가고, 예술가가 아니라 기술자라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어지간한 예술가보다 훨씬 치열하고 고민하는 기술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뚜렷한 철학, 자기만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예술적인 가사라 할 수는 없지만 저는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으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가사를 쓰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우리 마음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드러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 보면 김이나씨가 사랑의 진행 단계를 9단계로 나눠서 진행 단계에 따른 사랑노래들을 정리한 표가 나오는데요, 썸타기 단계 - 사랑의 시작단계- 절정 단계-이별의 예감 단계- 이별의 순간 단계- 이별 직후 단계 - 이별 후 시간 경과 단계- 미련 단계 - 완전한 극복 단계에 따라 이별 직후에 해당하는 곡은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 사랑의 시작 단계인 곡은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 이런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랑의 과정을 생각해보고, 해당되는 곡을 정리하는 과정은 충분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지요. 심지어 가사의 캐릭터를 잡으면서 ‘고양이’의 시점에서 가사를 쓰기도 합니다. 제아라는 가수의 <길고양이>라는 노래인데요, 가사를 보고,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표현을 보면 작사가의 상상력과 사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9. 마지막으로 이 책을 우리 청취자들에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정리해주시죠.


 누구나 자신만의 감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을 너무 잘 표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도 모르고, 그래서 표현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어떤 노래의 가사 하나가 마음에 오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도 나고, 가슴이 뚫리는 느낌을 받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간신히 찾게 됩니다. 이 책은 그런 가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나만 아는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수많은 노래가사들과 함께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작사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의 재미를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작사법’이라니 언뜻 들으면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처럼 여겨지실 수도 있을텐데요, 재미는 놀이에서 나오고, 진짜 노는 것은 먹고 사는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나와 무관한 것을 하는 겁니다. 나와는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일이 이뤄지는지를 보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든요. 나와 상관 없는 일, 의미 있는 딴 짓을 이 책과 함께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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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부기.

하루키 월드와 반 고흐 월드

 

김연수는 “하루키 월드”에서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규칙위반이라고 했다. 깊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떠나게 만들고 그래서 이제 홀로 남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번에 고흐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하루키와 달리 “반 고흐의 월드”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죄라는 것이다. 고흐도 하루키만큼이나 깊은 사랑이 깊은 상처를 남기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여동생인 윌에게 남긴 편지에서 동생에게 사랑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이뿐 만이 아니다. 고흐는 공부를 하거나 종교나 이념에 빠지게 된 것은 자신이 “말도 안되는 연애사건”, 즉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반고흐 월드”에서 그것은 많은 공부를 하거나 사회주의에 심취하는 것보다 올 바른 일이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고흐가 극렬주의자였다면 바로 이런 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하더거나 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남자들처럼 ‘세련된’ 사랑은 없다. 고흐는 주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정도로 사랑한다. 그건 사촌인 케이에 대한 사랑에서나 시엔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고, 테오에 대한 사랑에서도 그렇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흐가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은 테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의 평소 태도 상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동생 테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편지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신 착란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동생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게 된 고흐가 동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죽음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 착란 증세도 깊은 사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고흐는 동생에게 신세를 갚기 위해서 ‘예술’로 끝까지 자기를 내몰았기 때문이다. 테오가 정신 착란 증세가 심각해져 생레미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 그림들은 형이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형이 생명체 안에 본래부터 내재한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형은 모든 것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모험을 감수했을 테니 머리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혼란을 겪은 것도 무리가 아니야”. 고흐는 동생도, 예술도, 연인도, 자연도 극한까지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도, 건강도, 돈도, 심지어는 동생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오로지 작품만 남았다.

 

아마도 하루키 월드에서 보자면 대단히 어리석은 짓임이 틀림 없다.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써야 할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취미로 번역을 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작품도 수백만부 씩 팔리고, 이 나라에서는 선인세도 수억원씩 받으며, 깊이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자녀도 애초부터 낳지 않아 부유하고, 건강하고, 고흐에 비하자면 이렇게까지나 오래 살고 있다. 고흐에 비교해서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내가 보기에 ‘깊은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글에서 나는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또 내게 일어난 어떤 소동으로 인해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깊이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고흐의 서간집을 읽으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 주제에 사랑까지 깊이 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소동을 일으키고, 창피를 주고 망신을 당하게 만들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가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것의 '부정성‘을 생각해보면서도 정작 사랑도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하루키 월드도 깊은 사랑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고, 사랑했던 여자가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고흐와 하루키의 차이는 ’깊은 사랑‘을 하느냐에 비해 어쩌면 깊은 사랑의 대상이 늘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사랑할 것을 찾지 못하는 하루키 월드에서와는 달리 반고흐 월드에서는 모든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지 늘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칙 위반이다.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는 쉽게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흐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예담에서 만들고 빈센트 반 고흐가 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여러 분이 다 아시는 바로 그 화가, 고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바로 고흐가 쓴 책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고흐의 편지글을 모은 건데요, 고흐는 동생 테오와 대략 9년간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요 이 책에는 그 편지들이 엮여져 있습니다.

 

2. 그렇군요. 사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고흐는 1872년 8월부터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해서 1890년 7월의 마지막 편지까지 651통의 편지를 보냈구요, 고갱을 포함해 주변의 동료 화가에게 보낸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819통이나 됩니다. 고흐가 받은 편지도 83통이나 된다고 하니까 분량이 어마어마하죠. 분량이 많다 보니 고흐의 고향인 네델란드에서도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1953년에야 네 권짜리 전집이 출판되었구요, 일본에서도 1963년에 두꺼운 책 3권으로 편집되어 간행되었는데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고흐의 서간문을 완역한 책이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는 이 책 역시 고흐 서간문 전체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고흐의 서간문 중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편지를 역자가 임의로 뽑아서 편집한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반 고흐의 편지를 비슷한 방식으로 엮어서 만든 책들이 몇 종류가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영혼의 편지> 말고도 펭귄 문고판으로 나온 <고흐의 편지>라는 책도 있습니다. <영혼의 편지>와 달리 이 책은 네델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장인 로날트 데 레이우가 편집한 것이고 번역도 사실 훨씬 좋은데요, 안타깝게도 고흐 작품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리는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은 번역과 편집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고흐가 남긴 작품들과 관련된 편지글이 함께 있어서 훨씬 더 좋습니다.

 

3. 정말 많은 양의 편지를 썼네요. 편지를 대략 나흘에 한 통씩 썼다는 말이 되네요.

 

사실 양도 양이지만, 고흐의 서간집은 고백문화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도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림도 좋았지만 저는 고흐의 서간집을 읽고 난 후부터 고흐를 정말로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위대한 화가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고흐가 살아 있는 동안 몇 점의 그림을 판매했는지 아시나요? (대답) 네,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 단 한 점만을 팔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유화로 그린 작품 중 판매된 것이 한 점 뿐이라는 것이지 스케치나 데생은 여러 점이 팔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한 개인의 삶으로만 보자면 마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불행하고 실패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 가다보면 고흐의 고통이 150년의 세월을 관통해 읽는 우리의 마음에도 전달되는데요, 바로 그 점 때문에 고흐의 서간집을 위대한 문학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4. 고흐는 대단히 가난했다고 알고 있어요.

 

네, 그래서 이 편지는 어쩌면 고흐가 가난과 싸운 투쟁기라고 소개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책 전체에 그런 내용이 두드러지는데요, 사실 고흐는 20대 초반에 그림 판매를 하다가 그만 둔 이후로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생계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고흐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준 것은 동생 테오인데요, 테오는 고흐와 함께 화랑에서 그림 판매를 했었는데 형은 그만뒀지만 끝까지 남아서 그림판매상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고흐는 27살이나 되어서야 전업화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는데 테오가 10년 후 고흐가 죽기 전까지 돈을 보내주는 거지요.

그래서 책을 보면 동생에게 돈을 받아써야 하는 형의 미안한 마음이 전반에서 묻어납니다. 고흐가 그림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유화가 팔리지 않을 것 같다면 목탄이나 다른 것으로 데생을 하는 게 낫겠지. 그러나 혹시라도 유화를 그리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유화를 계속하고 싶다. 특히 요즘은 유화가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까, 예상하지 않았던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단지 팔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다른 식으로 배울 수 있는 일에 물감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고흐는 값이 비싼 유화물감로 연습을 계속 해보고 싶은 건데요, 돈을 많이 써야 하니까 동생에게 미안하니까 나는 연필이나 목탄으로 해도 된다고 둘러 말하는 거죠. 그래서 동생에게 내가 그린 유화 작품이 팔릴 가능성을 있는지도 물어보는 겁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언젠가는 팔릴 수 있다고 믿고 정말로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린 그림을 팔 수 있어야만 동생에게 신세진 것을 다 갚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에게 받은 돈을 갚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작품을 그려야 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 하니까 정말 열심히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악순환인거지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가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는데 정작 그림을 팔리지 않고, 그림이 안팔리다 보니까 그림을 더 많이 그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 또 돈이 들어가 빚이 생기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거죠.

 

5. 그렇네요, 정말 악순환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데요, 테오도 결국 지치지 않았을까요?

 

고흐도 대단하지만 테오도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테오는 고흐가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지해주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경제적 지원도 계속해서 해줍니다. 고흐는 말년에 몸이 아주 쇠약해지고,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가 오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이웃들이 고흐를 불안하게 여겨서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진정서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신병원도 공짜는 아니잖아요? 고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동생에게 받은 돈을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프리카의 외인부대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동생 테오가 이 소식을 듣고 고흐에게 쓴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외인부대에 간다는 생각, 그건 절망에 빠져서 내린 결정이야. 그렇지? 난 형이 그런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 형은 그림을 전혀 그릴 수 없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어. 그런 상황이 형에게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줬을 것 같아. 그러니 석달동안 일도 할 수 없으면서 비용만 드는 곳에 가서 보살핌을 받고도 벌어들이는 건 전혀 없을 거라고 고민했겠지. (중략) 결국 형은 불필요하게 머리를 괴롭히고 있어. 작년은 내게 경제적으로 괜찮은 한 해였어. 그러니 내게 부담을 줄까 두려워 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내가 보내는 것을 받아 써도 괜찮아.

 

6. 형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테오도 깊이 생각하고 있네요.

 

이런 편지 내용을 보면 테오는 고흐를 정말 진심으로 아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테오는 형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어요. 자신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정작 형의 그림은 팔기도 어렵고, 또 고흐가 가끔 테오에 대해서 가혹한 비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고흐와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형을 사랑했습니다.

 

고흐가 말년에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에는 아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더 이상 동생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테오가 결혼을 해서 아들 빈센트를 낳은 것이 1890년 1월인데요, 고흐가 같은 해 7월에 권총자살합니다. 그해 5월에 동생 집에 방문을 하고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가족을 돌봐야 하는 동생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깊이 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가까이 동생으로 많은 돈을 받아 썼는데, 자신은 정신 착란이 와서 제대로 된 생활도 되지 않고, 그림도 못 그리게 되니까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런데요, 고흐와 테오 사이의 관계는 단지 형제애라는 말 정도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 두 사람은 한 쪽이 없었다면 다른 쪽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관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890년 7월에 고흐가 죽고,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891년에 테오가 서른 세 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7. 삶이라는 것이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고흐는 동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형이 없으니 동생도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던 거군요.

네, 두 형제의 이야기를 보는 것으로도 이 서간집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글을 읽다보면 고흐가 위대한 사상가였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고흐는 극렬주의자이고 행동주의자입니다. 옳다고 믿는 일은 그냥 끝까지 해버리는 사람인데요, 세상을 바꾸는 생각은 어쩌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대목이 자주 나오는데요, 고흐는 한 때 임신한 매춘부를 사랑하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흐를 떠나게 됩니다. 그래도 고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 여자를 저버리는 일과 버림 받은 여자를 돌보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교양있고, 남자다운 자세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여동생 윌에게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라고 권합니다. 공부는 독창성을 죽이니까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고 차라리 사랑에 제대로 한번 빠져보라는 것이죠.

 

8. 공부를 하지 말고 사랑에 빠져라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네 저도 그 말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고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는데요, 고흐야 말로 학교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신학 공부를 했지만 잠깐 다니다 중도에 그만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고, 프랑스 화가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살롱전에서 입상한 적도 없습니다. 잠깐 모베라는 화가에게 배운 적이 있지만 그것도 짧은 기간 일시적일 뿐입니다. 고흐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4명이 있었는데요, 주변의 반대와 당사자들의 거부로 단 하나의 사랑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4살 짜리 아들이 있는 미망인 연상의 사촌을 사랑하기도 하고, 임신한 매춘부를 사랑하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고흐의 세계에서 배움은 학위와 같은 자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테오와 고흐의 관계도 이렇게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흐는 자연도, 사람도, 동생도, 무엇보다 예술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9. 마지막으로 청취자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제 개인적으로 이번 방송을 준비하며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제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고흐는 테오에게 글을 쓰고 있지만 마치 나에게 ‘네가 글을 쓰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가 뭔지’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흐는 자신에 대해서도, 테오에 대해서도 진짜 삶이 무엇인지 끊임 없이 묻고 행여나 다른 길로 갈 것 같으면 ‘가차 없이’ 비판합니다. 고흐 작품을 보면 정말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지요? 누군가의 인정이나 동의에 기대지 않고 온갖 가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헌신하는 모습에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고흐의 일평생 과제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 어떤 식으로라도 쓸모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신한 매춘부를 도울 수 있었을 때 그녀와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흐 일생은 그림이 팔리지 않았고, 동생에게 폐를 끼쳤고, 병도 얻었습니다. ‘생활’이 너무 무거웠던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립니다.

 

 저는 고흐의 삶을 보면서 결혼, 취업,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우리 젊은 세대가 떠올랐습니다. 직장에 들어가서 세상에 기여해보고 싶고, 부모님께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데 등록금과 학원비, 월세 내기도 빠듯한 청년들의 삶은 사실 가난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고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계속되는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읽으신다면 큰 위로와 함께 통찰을 얻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살아서 고흐는 가난했지만, 죽어서 고흐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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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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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경주에서 열린 큰 여성 대회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의 패널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거기에는 나 말고 부산의 어느 라디오 방송의 피디도 패널로 오셨는데, 말빨 중의 말빨, 내가 여태 본 사람 중 최고의 말빨이었다. 관객이 어디에서 감동을 받고, 어디에서 웃고, 어디에서 진지하게 듣는지를 정확히 알고 거침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정말로 뛰어난 분이었다. 피디가 말만 하면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존경스러웠다. 직장을 가진 엄마의 자격으로 오신 50대의 라디오 피디 다음으로 내가 발언해야 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 빛에 가려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한 탓인지, 관객들의 호응을 거의 얻지 못했다. 끝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라디오 피디 그 분은 이문세가 별밤에 출연하는 거의 전 기간동안 연출을 한 분이었다. 본인도 그 때의 경험이 자신을 ‘말빨’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말빨'로 불렀다)

 

피디의 발언은 하나같이 재밌는 이야기였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의미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중의 기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의 토크 콘서트는 각자의 육아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피디는 “절대로 직장 그만 두지 마라”, “이렇게 아이 키워도 나처럼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낼 수 있다”처럼 토크콘서트의 관객 중 대부분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말이 무엇인지 꽤뚫고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빠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아버지상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내가 한 말 대부분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하는 '콘서트'라는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오히려 토론회 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것들이었다. 내 위치는 논문발표장이나 토론장이 아니라 콘서트장인데도, 나는 내가 콘서트의 패널로 나가서 논문발표장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아마 내가 아직 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라기 보다 나의 위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콘서트 패널로서의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쉬운 책을 소개해달라는 라디오 방송에 나가는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육아를 동원해야만 하는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육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면에 어려운 철학적 이야기를 끌어내고, 라디오 방송에 나가서 어려운 철학책을 소개하고 싶어하고, 콘서트 패널로 가서 철학적 토론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가히 몰맥락적인 존재라 할만하다. 미스플레이스드맨인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라디오 피디의 ‘말빨’, 너무 상황에 잘 맞는 말,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지나치게 노련해서 불편하다.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화된 이야기를 재밌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피디의 발언에 자신의 경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구본준 기자의 <마음을 품은 집>을 읽으면서 그 콘서트에서 만난 라디오 피디가 생각났다. 구본준 기자의 글은 결코 날카롭거나 날렵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포인트’를 안다. 독자들이 어디서 반응하고, 어디서 느끼고, 어떻게 해야 이야기에 빠져드는지, 그 플레이스를 잘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땅콩집 소개자로서의 구본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땅콩집’이라는 작명에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글자수가 적은 신조어를 만들어야 전파가 쉽다. 듀플렉스란 말은 너무 어렵다”. 나 같은 미스플레이스드맨이라는 말 정도밖에 못만들어내는 사람은 듀플렉스를 땅콩집으로 부를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을 품은 집>은 글빨이 살아 있어 잘 읽히고, 새로운 정보도 많고, 감동도 있다. 희-로-애-락, 감정을 단 네 개로만 정리해서 건축물을 소개하겠다는 기획, 그것이 경탄할만하다. 감정을 단지 네 개로만 풀겠다는 생각은 수십가지의 감정으로 하루에도 기분이 몇 번 바뀌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구본준의 이 책이 나는 지나치게 노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능력이겠지만, 그래서 이 책에 구본준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구본준에 대한 이야기로는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구본준이 그 건물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면 독자들은 글을 쉽다고 느끼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느낀다. 미스플레이스드맨은 이 점이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격에 맞는 이야기, 장소에 맞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적절히 잘 조화될 수 있는 경지는, 모두에게 연주되지만 마치 한 사람에게만 속삭이는 것 같은 연주를 하는 수준일 것이다. 너무 노련하면 기술적으로만 보여 한 사람에게 속삭이는 것 같지가 않다. 노련한 상담가와 대화하는 것이 항상 나쁜 기분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불일치와 맥락의 단절이 존재하지 않는 대화의 미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이 내게 재밌는 이유는 아마 그 단절, 불일치를 끊임 없이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 주에도 나는 노련하게 쓰여진 책을 소개할 것이다. 나는 미스프레이스드맨에서 좀 벗어나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서해문집이 만들고, 구본준 작가가 쓴 <마음을 품은 집>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에는 ‘집’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오늘 소개해드릴 <마음을 품은 집>입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진행자분께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해보고 싶은데요, 혹시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 아시나요? (대답) 네, 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서울 어린이대공원 터는 원래 골프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조선 왕실의 묘였는데, 정확히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부인인 순명황후의 능이 있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황후의 능이 어처구니 없게도 일제 강점기 때 경성 골프장으로 바뀌었고, 해방 이후 이름이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바뀌고 한국에서 가장 좋은 골프장으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해요. 서울 시내에 있으니까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2. 그런데, 골프장이 어째서 어린이공원으로 바뀌게 된 걸까요?

 

정확한 문서는 없지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종종 워커힐 호텔에 가서 쉬곤 했는데, 청와대에서 워커힐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골프장을 지나야 했는데 1970년 12월에 이 골프장을 보고 크게 화가 났다고 해요. 조국 재건에 바쁜 이때에 평일 대낮에 한가하게 골프를 치는 작자들은 누구냐고 호통을 치면서 당장 골프장을 없애고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지시한지 2년만에 골프장이 이전되고, 서울시가 100일 작전 끝에 만든 공원이 바로 어린이대공원이었던 거죠.

 

3. 놀라운 이야기네요.

 

그렇죠? 이 책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구본준 작가가 서울을 비롯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감응한 건축물을 둘러싼 재밌는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물 하나가 만들어지게 된 뒷 이야기, 만들어지는 과정, 만들고 난 후 일어났던 일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정리하고 있는데요, 이 책의 부제가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크게 4부로 각각 희, 로, 애, 락으로 제목을 붙이고 각 건축물에 담겨진 기쁨의 이야기, 분노의 이야기, 슬픔의 이야기, 즐거움의 이야기를 풀어 냅니다. 건축이라고 하면 설계도면이나 엔지니어링을 생각하기 쉬울텐데요, 이 책은 그런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건축물 하나 하나에 담긴 인간의 드라마를 소개하는데 구본준 작가는 집중하는데요, 여기에는 저자가 건축물을 바라보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책의 한 부분을 짧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멋지고 근사한 건축이 좋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집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건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은 인생 그 자체였다.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슬프기 짝이 없는 사연도 있었다. 오욕칠정이 스며든 건축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과도 같았다. (중략) 건축은 미술도 디자인도 아닌 인간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 마음이, 우리 과거가, 우리 꿈이 건축을 통해 만들어지고 남겨지고 이어진다. 건축과 친해지면서 나는 집을 통해 인생과 역사, 문화와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4. 건축물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이 이 책을 희로애락으로 구성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린이대공원의 경우는 희로애락 중 어디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네, 사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어린이대공원은 아니고,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건물은 40년이나 된 데다 근무직원수에 비해 너무 규모가 커서 서울시에서 헐고 새 사무실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규모가 컸던 이유는 어린이대공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 부지에 있던 골프자의 클럽하우스였기 때문인데요, 골프장이 사라지면서 관리사무소가 된 겁니다. 그런데 이걸 헐어버릴 계획을 갖고 있던 당시 서울시 최광빈 국장이 건물의 도면을 보고 이상한 점이 있어 조성룡 건축가에게 전화를 해서 한번 도면을 봐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조성룡 건축가가 도면을 보고 깜짝 놀란거에요. 1970년대까지 한국 건축가를 대표했던 고 나상진의 작품이었고, 너무 훌륭했던 거죠. 그런데, 관리사무소로 오래동안 쓰면서 건물 내부를 이곳 저곳에 외피를 덧붙여서 진가가 숨겨져 있어서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소식을 듣고 서울시도 신축 계획을 폐기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고 건물의 원형을 되살려 복원하게 된 거죠. 조성룡 건축가는 40년 동안 이 건물에 붙어있던 온갖 외피들을 다 걷어내고, 큰 공간 안에 작은 공간을 만드는 등 다양한 접근으로 완벽하게 복원해 냅니다. 그래서 2011년 5월에 다시 이 건물은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대공원의 랜드마크로 다시 부활하게 된거죠.

그래서 이 건물은 ‘희’, 그러니까 기쁨의 이야기가 있는 건축물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뻔 했는데,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은 공무원의 눈썰미가, 자료를 뒤져 가치를 찾아낸 건축가가의 관심이, 발견된 가치를 소중히 받아들인 한 공무원의 고민이, 또 건물을 살리는 건축가의 열정이 합해져서 아이들에게 꿈의 마루를 선사한 것이니까요. 기쁨의 건축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거죠. 특히 저는 이 과정을 진두지휘한 서울시 최광빈 국장의 안목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5. 재미있는 사연을 듣고 나니 어린이대공원에 가면 꼭 한번 ‘꿈마루’라는 건물을 찾아서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풍조 속에서는 다시살려낸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재건축을 하게 되는 아파트 앞에 붙은 “경축 안전 진단 통과, 재건축 승인”이라는 현수막을 혹시 본 적이 있으세요? (대답) 그럼 여기 적힌 ‘안전 진단 통과’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나요? (대답 : 안전 진단을 했는데 안전하다는 뜻이 아닌가요?) 만약 안전하다면 재건축 승인을 못 받겠죠? 안전 진단을 받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 받았다는 것이 바로 안전진단통과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사실 안전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경축한다는 뜻으로 읽히면 의미가 이상하게 되어 버리죠. 부수고 다시 짓기 보다 되도록 고쳐서 다시 사는 것이 ‘문화적’으로는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사실 ‘안전 진단 통과’와 관련해 제가 드린 말씀은 제 이야기는 아니구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정기용 건축가가 하는 말입니다. 정기용 건축가는 예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주도했던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건축가로 참여한 분이죠.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한국의 대표 건축가라 할 만한 분인데요,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폭넓은 지지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도서관의 형태는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기용 건축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하러 다니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주로 사서나 도서관 직원들이 열람객들을 관리 감독하기 좋은 식으로 책을 읽는 공간이 배치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정기용 건축가는 기적의 도서관 작업에서 열람실에 마루를 깔고 온돌을 설치해서 아이들이 누워서, 구석에 틀어박혀서, 숨기 좋은 공간을 만들어 마음껏 책을 읽도록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배치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도서관들의 형태는 기적의 도서관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거죠.

 

6. 기적의 도서관 운동이 2002년에 있었으니 이제 15년이 된거네요.

 

그렇습니다. 구본준 작가도 정기용 건축가를 많이 존경했던 것 같아요. 아까 재건축에 대한 말씀을 드리다 말았습니다만, 정기용 작가는 대통령 사저를 설계할 정도로 유명했음에도 많은 돈을 벌기는커녕 자기 집 한 채 없이 살았다고 해요. 정기용 건축가가 시간을 쏟아 부은 작업은 대부분 예산은 적고 품은 많이 드는 작고 소박한 지역 공동체의 공공건축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정기용 건축가가 2011년에 세상을 떠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책의 저자인 구본준 작가도 사실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 2014년 이탈리아 출장 중에 급작스러운 심정지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발간한 마지막 책인데요, 구본준 작가는 사실 건축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는데요, 건축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건축 공부를 하며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책으로 구본준 기자를 소개해드리지만 구본준 작가는 우리 주택 문화의 변화에도 큰 기여를 한 분이기도 합니다. 땅콩집을 국내에 처음 만들고, 땅콩집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구본준 기자입니다. 정기용 건축가가 우리에게 새로운 도서관을 남겨주고 떠났다면 구본준 작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주택을 남겨주고 떠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7. 정말 그렇네요. 책을 잠깐 보니까 이 책이 모두 12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데 그 면면이 정말 다양하네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인도의 타지마할, 우리 지역의 도동서원도 있구요.

 

네, 각 건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건축물 하나 하나가 마치 인격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스물 세 살에 교통사고로 죽은 이진아 양을 기념하기 위해 진아씨 아버지 이상철씨가 기부를 해서 건립한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진아 기념도서관 주변에 가면 둥글레꽃이 많다고 합니다. 6월에 피는 꽃인데 건축가가 이진아씨가 6월에 기일이 있어 심었다고 합니다. 달성의 도동서원은 동서남북 배치의 방향이 일반서원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강의실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고, 동재는 서쪽에, 서재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 있습니다. 이 서원 자체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인데요, 이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서원이 모시는 김굉필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인해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렀는데요, 이 서원의 배치도 김굉필이 평생 자신의 소신과 성리학의 도를 따랐듯이 도동서원의 배치도 그런 김굉필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물 하나 하나를 인격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8. 끝으로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정리해주시죠.

 

일단 책이 재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이 책의 미덕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물 하나 하나를 대하는 태도가 따뜻합니다. 그래서 집을 깊이를 가진 것으로 바라봅니다. 사실 인간이 공간을 만들지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면이 분명히 있거든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 이 공간이 나의 삶과 생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시면서 읽으시면 새로운 시각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없는 내용입니다만, 혹시 진행자님께서는 대구의 계산성당이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 아시나요?(대답) 성모성당입니다. 그러다가 천주교가 천주를 모시지 않고 성모를 모신다는 오해를 받고 이름을 계산성당으로 바꾼 거라고 해요. 이처럼 대구의 건축물들에도 온갖 사연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 주변의 건축물, 대구의 건축물에 대해서도 이런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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