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부기.

하루키 월드와 반 고흐 월드

 

김연수는 “하루키 월드”에서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규칙위반이라고 했다. 깊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떠나게 만들고 그래서 이제 홀로 남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번에 고흐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하루키와 달리 “반 고흐의 월드”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죄라는 것이다. 고흐도 하루키만큼이나 깊은 사랑이 깊은 상처를 남기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여동생인 윌에게 남긴 편지에서 동생에게 사랑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이뿐 만이 아니다. 고흐는 공부를 하거나 종교나 이념에 빠지게 된 것은 자신이 “말도 안되는 연애사건”, 즉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반고흐 월드”에서 그것은 많은 공부를 하거나 사회주의에 심취하는 것보다 올 바른 일이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고흐가 극렬주의자였다면 바로 이런 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하더거나 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남자들처럼 ‘세련된’ 사랑은 없다. 고흐는 주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정도로 사랑한다. 그건 사촌인 케이에 대한 사랑에서나 시엔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고, 테오에 대한 사랑에서도 그렇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흐가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은 테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의 평소 태도 상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동생 테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편지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신 착란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동생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게 된 고흐가 동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죽음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 착란 증세도 깊은 사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고흐는 동생에게 신세를 갚기 위해서 ‘예술’로 끝까지 자기를 내몰았기 때문이다. 테오가 정신 착란 증세가 심각해져 생레미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 그림들은 형이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형이 생명체 안에 본래부터 내재한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형은 모든 것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모험을 감수했을 테니 머리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혼란을 겪은 것도 무리가 아니야”. 고흐는 동생도, 예술도, 연인도, 자연도 극한까지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도, 건강도, 돈도, 심지어는 동생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오로지 작품만 남았다.

 

아마도 하루키 월드에서 보자면 대단히 어리석은 짓임이 틀림 없다.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써야 할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취미로 번역을 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작품도 수백만부 씩 팔리고, 이 나라에서는 선인세도 수억원씩 받으며, 깊이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자녀도 애초부터 낳지 않아 부유하고, 건강하고, 고흐에 비하자면 이렇게까지나 오래 살고 있다. 고흐에 비교해서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내가 보기에 ‘깊은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글에서 나는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또 내게 일어난 어떤 소동으로 인해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깊이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고흐의 서간집을 읽으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 주제에 사랑까지 깊이 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소동을 일으키고, 창피를 주고 망신을 당하게 만들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가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것의 '부정성‘을 생각해보면서도 정작 사랑도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하루키 월드도 깊은 사랑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고, 사랑했던 여자가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고흐와 하루키의 차이는 ’깊은 사랑‘을 하느냐에 비해 어쩌면 깊은 사랑의 대상이 늘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사랑할 것을 찾지 못하는 하루키 월드에서와는 달리 반고흐 월드에서는 모든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지 늘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칙 위반이다.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는 쉽게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흐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예담에서 만들고 빈센트 반 고흐가 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여러 분이 다 아시는 바로 그 화가, 고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바로 고흐가 쓴 책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고흐의 편지글을 모은 건데요, 고흐는 동생 테오와 대략 9년간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요 이 책에는 그 편지들이 엮여져 있습니다.

 

2. 그렇군요. 사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고흐는 1872년 8월부터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해서 1890년 7월의 마지막 편지까지 651통의 편지를 보냈구요, 고갱을 포함해 주변의 동료 화가에게 보낸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819통이나 됩니다. 고흐가 받은 편지도 83통이나 된다고 하니까 분량이 어마어마하죠. 분량이 많다 보니 고흐의 고향인 네델란드에서도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1953년에야 네 권짜리 전집이 출판되었구요, 일본에서도 1963년에 두꺼운 책 3권으로 편집되어 간행되었는데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고흐의 서간문을 완역한 책이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는 이 책 역시 고흐 서간문 전체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고흐의 서간문 중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편지를 역자가 임의로 뽑아서 편집한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반 고흐의 편지를 비슷한 방식으로 엮어서 만든 책들이 몇 종류가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영혼의 편지> 말고도 펭귄 문고판으로 나온 <고흐의 편지>라는 책도 있습니다. <영혼의 편지>와 달리 이 책은 네델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장인 로날트 데 레이우가 편집한 것이고 번역도 사실 훨씬 좋은데요, 안타깝게도 고흐 작품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리는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은 번역과 편집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고흐가 남긴 작품들과 관련된 편지글이 함께 있어서 훨씬 더 좋습니다.

 

3. 정말 많은 양의 편지를 썼네요. 편지를 대략 나흘에 한 통씩 썼다는 말이 되네요.

 

사실 양도 양이지만, 고흐의 서간집은 고백문화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도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림도 좋았지만 저는 고흐의 서간집을 읽고 난 후부터 고흐를 정말로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위대한 화가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고흐가 살아 있는 동안 몇 점의 그림을 판매했는지 아시나요? (대답) 네,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 단 한 점만을 팔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유화로 그린 작품 중 판매된 것이 한 점 뿐이라는 것이지 스케치나 데생은 여러 점이 팔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한 개인의 삶으로만 보자면 마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불행하고 실패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 가다보면 고흐의 고통이 150년의 세월을 관통해 읽는 우리의 마음에도 전달되는데요, 바로 그 점 때문에 고흐의 서간집을 위대한 문학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4. 고흐는 대단히 가난했다고 알고 있어요.

 

네, 그래서 이 편지는 어쩌면 고흐가 가난과 싸운 투쟁기라고 소개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책 전체에 그런 내용이 두드러지는데요, 사실 고흐는 20대 초반에 그림 판매를 하다가 그만 둔 이후로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생계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고흐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준 것은 동생 테오인데요, 테오는 고흐와 함께 화랑에서 그림 판매를 했었는데 형은 그만뒀지만 끝까지 남아서 그림판매상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고흐는 27살이나 되어서야 전업화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는데 테오가 10년 후 고흐가 죽기 전까지 돈을 보내주는 거지요.

그래서 책을 보면 동생에게 돈을 받아써야 하는 형의 미안한 마음이 전반에서 묻어납니다. 고흐가 그림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유화가 팔리지 않을 것 같다면 목탄이나 다른 것으로 데생을 하는 게 낫겠지. 그러나 혹시라도 유화를 그리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유화를 계속하고 싶다. 특히 요즘은 유화가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까, 예상하지 않았던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단지 팔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다른 식으로 배울 수 있는 일에 물감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고흐는 값이 비싼 유화물감로 연습을 계속 해보고 싶은 건데요, 돈을 많이 써야 하니까 동생에게 미안하니까 나는 연필이나 목탄으로 해도 된다고 둘러 말하는 거죠. 그래서 동생에게 내가 그린 유화 작품이 팔릴 가능성을 있는지도 물어보는 겁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언젠가는 팔릴 수 있다고 믿고 정말로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린 그림을 팔 수 있어야만 동생에게 신세진 것을 다 갚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에게 받은 돈을 갚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작품을 그려야 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 하니까 정말 열심히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악순환인거지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가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는데 정작 그림을 팔리지 않고, 그림이 안팔리다 보니까 그림을 더 많이 그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 또 돈이 들어가 빚이 생기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거죠.

 

5. 그렇네요, 정말 악순환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데요, 테오도 결국 지치지 않았을까요?

 

고흐도 대단하지만 테오도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테오는 고흐가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지해주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경제적 지원도 계속해서 해줍니다. 고흐는 말년에 몸이 아주 쇠약해지고,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가 오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이웃들이 고흐를 불안하게 여겨서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진정서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신병원도 공짜는 아니잖아요? 고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동생에게 받은 돈을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프리카의 외인부대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동생 테오가 이 소식을 듣고 고흐에게 쓴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외인부대에 간다는 생각, 그건 절망에 빠져서 내린 결정이야. 그렇지? 난 형이 그런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 형은 그림을 전혀 그릴 수 없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어. 그런 상황이 형에게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줬을 것 같아. 그러니 석달동안 일도 할 수 없으면서 비용만 드는 곳에 가서 보살핌을 받고도 벌어들이는 건 전혀 없을 거라고 고민했겠지. (중략) 결국 형은 불필요하게 머리를 괴롭히고 있어. 작년은 내게 경제적으로 괜찮은 한 해였어. 그러니 내게 부담을 줄까 두려워 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내가 보내는 것을 받아 써도 괜찮아.

 

6. 형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테오도 깊이 생각하고 있네요.

 

이런 편지 내용을 보면 테오는 고흐를 정말 진심으로 아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테오는 형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어요. 자신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정작 형의 그림은 팔기도 어렵고, 또 고흐가 가끔 테오에 대해서 가혹한 비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고흐와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형을 사랑했습니다.

 

고흐가 말년에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에는 아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더 이상 동생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테오가 결혼을 해서 아들 빈센트를 낳은 것이 1890년 1월인데요, 고흐가 같은 해 7월에 권총자살합니다. 그해 5월에 동생 집에 방문을 하고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가족을 돌봐야 하는 동생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깊이 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가까이 동생으로 많은 돈을 받아 썼는데, 자신은 정신 착란이 와서 제대로 된 생활도 되지 않고, 그림도 못 그리게 되니까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런데요, 고흐와 테오 사이의 관계는 단지 형제애라는 말 정도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 두 사람은 한 쪽이 없었다면 다른 쪽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관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890년 7월에 고흐가 죽고,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891년에 테오가 서른 세 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7. 삶이라는 것이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고흐는 동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형이 없으니 동생도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던 거군요.

네, 두 형제의 이야기를 보는 것으로도 이 서간집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글을 읽다보면 고흐가 위대한 사상가였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고흐는 극렬주의자이고 행동주의자입니다. 옳다고 믿는 일은 그냥 끝까지 해버리는 사람인데요, 세상을 바꾸는 생각은 어쩌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대목이 자주 나오는데요, 고흐는 한 때 임신한 매춘부를 사랑하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흐를 떠나게 됩니다. 그래도 고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 여자를 저버리는 일과 버림 받은 여자를 돌보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교양있고, 남자다운 자세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여동생 윌에게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라고 권합니다. 공부는 독창성을 죽이니까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고 차라리 사랑에 제대로 한번 빠져보라는 것이죠.

 

8. 공부를 하지 말고 사랑에 빠져라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네 저도 그 말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고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는데요, 고흐야 말로 학교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신학 공부를 했지만 잠깐 다니다 중도에 그만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고, 프랑스 화가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살롱전에서 입상한 적도 없습니다. 잠깐 모베라는 화가에게 배운 적이 있지만 그것도 짧은 기간 일시적일 뿐입니다. 고흐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4명이 있었는데요, 주변의 반대와 당사자들의 거부로 단 하나의 사랑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4살 짜리 아들이 있는 미망인 연상의 사촌을 사랑하기도 하고, 임신한 매춘부를 사랑하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고흐의 세계에서 배움은 학위와 같은 자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테오와 고흐의 관계도 이렇게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흐는 자연도, 사람도, 동생도, 무엇보다 예술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9. 마지막으로 청취자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제 개인적으로 이번 방송을 준비하며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제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고흐는 테오에게 글을 쓰고 있지만 마치 나에게 ‘네가 글을 쓰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가 뭔지’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흐는 자신에 대해서도, 테오에 대해서도 진짜 삶이 무엇인지 끊임 없이 묻고 행여나 다른 길로 갈 것 같으면 ‘가차 없이’ 비판합니다. 고흐 작품을 보면 정말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지요? 누군가의 인정이나 동의에 기대지 않고 온갖 가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헌신하는 모습에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고흐의 일평생 과제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 어떤 식으로라도 쓸모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신한 매춘부를 도울 수 있었을 때 그녀와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흐 일생은 그림이 팔리지 않았고, 동생에게 폐를 끼쳤고, 병도 얻었습니다. ‘생활’이 너무 무거웠던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립니다.

 

 저는 고흐의 삶을 보면서 결혼, 취업,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우리 젊은 세대가 떠올랐습니다. 직장에 들어가서 세상에 기여해보고 싶고, 부모님께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데 등록금과 학원비, 월세 내기도 빠듯한 청년들의 삶은 사실 가난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고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계속되는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읽으신다면 큰 위로와 함께 통찰을 얻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살아서 고흐는 가난했지만, 죽어서 고흐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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