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관한 일기(2) - 비만이 의미하는 것들
뚱보자아는 잘 죽지 않는다.
나는 상체 비만이 유독 심하다. 배가 많이 나와서 소위 배바지로 부르는 형태로 바지를 입는다면 허리 사이즈가 족히 45인치는 되어야 할 것이다. 파트너는 내 가슴이 크다며 놀라워 하는데,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쩌면 유방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내가 가르쳤던 학생에게 안부 전화가 왔는데 간단한 수술을 했다고 전해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어떤 수술인가 물었지만 "별 것 아니에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말하기 어려워 한다는 생각에 더 묻지는 않았는데, 다른 학생을 통해 그 친구가 남성 유방증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기도 했지만 우선 호기심이 생겼다. 남성에게 여성과 같은 유방이 있어서 이것을 축소시킬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생각은 그 이전에는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고, 나는 그저 살을 빼면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샤워를 하며 내 가슴을 보며 이게 살인지, 유방인지 쳐다 봤다. 내 가슴이 그저 살이든, 유방이든 어느 경우라도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자대에 배치 받은지 얼마되지 않았던 신병 시절에 같은 내무실은 아니었지만 한 건물을 쓰는 운항대에 A라는 상병이 있었다. 내가 있던 부대에서는 후임들을 괴롭히는 악독한 선임들을 '꼽창'이라고 불렀는데 A는 꼽창 중의 꼽창이었다. 껌을 씹지 않아도 껌을 씹는 듯이 말을 했고 억양이 강하고 아주 불량스럽게 부산 사투리를 썼는데, A의 가장 악질적인 면모는 후임들을 자신의 성적인 노리개 정도로 취급했다는 것에 있다. 이미 썼던 것처럼 나는 군복무 시절에는 그래도 "표준적인 체형"보다 약간 더 몸무게가 나가는 정도였지만 내 동기 중에는 100킬로그램이 넘게 나가는 녀석이 있었다. 운이 나쁘게도 그 녀석은 A와 한 내무실을 쓰게 되었는데, 밤마다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그 괴롭힘을 성적 유린이라고 쓰더라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A는 내 동기생의 침구 옆에 자기 침구를 깔아두고서 그의 옷으로 손을 집어 넣어 가슴을 밤새 주물렀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동기 녀석은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이 들만 하면 주물러 대기 시작했으니까. A는 겉으로는 그 친구를 위해주는 척 다른 선임들이 그 친구에게 청소를 시키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못하도록 했다. 내 동기는 A의 보호 아래 내무반 사역이 있어도 항상 열외였다. 그리고는 밤에 가슴만 내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군대라는 곳을 저주하고, 될 수 있는 한 병역을 기피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런 기억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만은 단지 '뚱뚱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웃옷을 벗은 채로 거울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기 혐오감, 다른 사람에게 놀림감이나 노리개가 되는 모욕감까지도 포함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A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고, 어디선가 우연하게라도 만난다면 죽이고 싶다. 내 동기생은 일병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부대 복귀 하루 전 날 자살했다.
지금 뚱뚱하지 않다고 해도 한 때 잠시라도 뚱뚱한 적이 있었던 사람은 마음 속의 '뚱보 자아'가 살아간다. 개그콘서트에서 비만인 개그맨들이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이 코너로 만들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23킬로그램을 감량했다는 이희경씨나 65킬로그램이나 뺀 김수영씨나 지금은 날씬한 몸매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도 마음 속에는 사람들에게 놀림 받고, 모욕당하고, 자기를 비하하며 상처 받은 '뚱보 자아'가 여전히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속이 좁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섯살 짜리 아이 친구들이 친구의 아빠인 나를 더러 "야, 돼지 아빠다"라고 하고 외치면 기분이 나쁘다. 아이들이니까 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싶다가도 아이 친구 엄마들의 키득거림, 또래 아이들의 "와" 하는 웃음 소리, 거기에 마냥 따라 웃을 수 없는 내 아이의 뻘쭘함까지 생각하면 사실 속이 끓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아이에게는 지금까지도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명절 날 큰 댁에 가고 싶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사람들은 내가 살이 더 찐 것은 아닌지 관심이 지나치게 많다. 고종 형님은 지난 10년 간 명절 첫 인사가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야, 너 살 더 쪘네. 이 돼지 봐라". 또 다른 삼촌도 마찬가지다. "왜 자꾸 살이 더 쪄?".
이런 말은 단지 내가 살이 쪘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조롱이 담겨 있다. 내 마음 속에 사는 '뚱보 자아'는 지금껏 팽생 이런 모욕에 가까운 평가와 조롱을 들으며 살아왔다. 살을 빼더라도 뚱보 자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살을 빼면 더 이상 뚱보 자아가 상처를 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 전에 겪었던 일들로 인해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고 하는데, 뚱보 자아는 죽여도 잘 죽지 않는다. 오히려 뚱보 자아가 사람을 죽인다. 내 동기생을 결국 죽게 만든 것도 A에게 상처 받은 뚱보 자아다.
아직 살을 빼지도 못한 주제에 너무 이른 예단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살'을 뺀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지겠지만 내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의 또 다른 뚱보 자아가 받은 상처는 그대로일 것이다. 뚱보 자아에게 상처를 준 어느 누구도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그들은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민하게 굴면 덩치를 운운하면서 속이 좁다느니, 히스테릭한 뚱보라며 놀려댄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단지 비만이 단지 뚱뚱한 체형을 갖게 되었다거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방증을 걱정하고, 다른 남자가 내 가슴을 만지려 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고, 명절 때마다 내 몸에 대한 품평을 들어야 하는 모욕감과 같은 정서적 충격까지도 포함한다. 이제 뚱뚱하면서 건강까지 나빠지게 되니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어머니는 건강식품을 사다 놓기 바쁘시고, 아이는 아빠 덕에 간이 된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해 투덜대고, 파트너는 걱정을 애써 감추고 아닌 척 용기를 주려 한다. 비만으로 건강까지 나빠지면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된다. 비만이 의미하는 이 무수한 것들 중에 단 하나라도 덜어야지 하는 마음에 밤 11시에 나가 동네를 걸었다. 퍼스널트레이닝을 전문적으로 하는 짐 앞에는 PT에 성공을 한 30대 중반의 양모씨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런 사진은 비포-애프터가 되어야 하는 법, 상의를 탈의한 양씨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비포의 가슴은 내 가슴보다도 훨씬 컸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유방증일리 없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살이 빠지면 가슴도 빠질테니 수술도 필요 없다. 그래서일까? 1시간의 산책에 발걸음 유난히 가벼웠다.
2016년 3월 10일. 늦은 아침을 먹었다. 현미밥과 쇠고기를 넣은 미역국, 무채 나물을 먹었다. 돼지감자가루는 맛도 별로지만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돼지라서 돼지감자가루를 먹냐고 묻는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었다면 때렸을 수도 있다. 점심은 선식을 먹었다. 오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뭔가 맛이 있는 것을 먹고 싶었는데 주변 식당을 둘러 봐도 들어갈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집에서 현미밥에 된장찌게와 나또, 쌈을 저녁으로 먹었다. 어제 좀 과하게 운동을 한 탓인지 허벅지 안쪽이 무척 아팠다. 몸을 풀기 위해 늦은 밤에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걷는 내내 소설가 김영하가 읽어주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들었는데, 그는 걷는다는 것은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고, 혼자 걸을 때의 침묵이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고 또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준다고 쓰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문을 따라 침묵의 가치를 생각해보다가 도시의 11시 밤 공기를 가득 채운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내 생각과 마음을 온통 사로 잡았다. 그리고 걷기는 브르통의 말대로 내게 새로운 생각을 주었다. 여기 '육박사'라는 고기집에서 언젠가 반드시 육박사가 손질한 돼지고기를 숯불에 굽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뚱보 자아는 상처도 잘 받지만, 잘 죽지도 않고, 욕망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