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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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경주에서 열린 큰 여성 대회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의 패널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거기에는 나 말고 부산의 어느 라디오 방송의 피디도 패널로 오셨는데, 말빨 중의 말빨, 내가 여태 본 사람 중 최고의 말빨이었다. 관객이 어디에서 감동을 받고, 어디에서 웃고, 어디에서 진지하게 듣는지를 정확히 알고 거침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정말로 뛰어난 분이었다. 피디가 말만 하면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존경스러웠다. 직장을 가진 엄마의 자격으로 오신 50대의 라디오 피디 다음으로 내가 발언해야 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 빛에 가려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한 탓인지, 관객들의 호응을 거의 얻지 못했다. 끝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라디오 피디 그 분은 이문세가 별밤에 출연하는 거의 전 기간동안 연출을 한 분이었다. 본인도 그 때의 경험이 자신을 ‘말빨’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말빨'로 불렀다)

 

피디의 발언은 하나같이 재밌는 이야기였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의미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중의 기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의 토크 콘서트는 각자의 육아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피디는 “절대로 직장 그만 두지 마라”, “이렇게 아이 키워도 나처럼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낼 수 있다”처럼 토크콘서트의 관객 중 대부분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말이 무엇인지 꽤뚫고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빠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아버지상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내가 한 말 대부분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하는 '콘서트'라는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오히려 토론회 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것들이었다. 내 위치는 논문발표장이나 토론장이 아니라 콘서트장인데도, 나는 내가 콘서트의 패널로 나가서 논문발표장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아마 내가 아직 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라기 보다 나의 위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콘서트 패널로서의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쉬운 책을 소개해달라는 라디오 방송에 나가는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육아를 동원해야만 하는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육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면에 어려운 철학적 이야기를 끌어내고, 라디오 방송에 나가서 어려운 철학책을 소개하고 싶어하고, 콘서트 패널로 가서 철학적 토론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가히 몰맥락적인 존재라 할만하다. 미스플레이스드맨인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라디오 피디의 ‘말빨’, 너무 상황에 잘 맞는 말,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지나치게 노련해서 불편하다.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화된 이야기를 재밌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피디의 발언에 자신의 경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구본준 기자의 <마음을 품은 집>을 읽으면서 그 콘서트에서 만난 라디오 피디가 생각났다. 구본준 기자의 글은 결코 날카롭거나 날렵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포인트’를 안다. 독자들이 어디서 반응하고, 어디서 느끼고, 어떻게 해야 이야기에 빠져드는지, 그 플레이스를 잘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땅콩집 소개자로서의 구본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땅콩집’이라는 작명에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글자수가 적은 신조어를 만들어야 전파가 쉽다. 듀플렉스란 말은 너무 어렵다”. 나 같은 미스플레이스드맨이라는 말 정도밖에 못만들어내는 사람은 듀플렉스를 땅콩집으로 부를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을 품은 집>은 글빨이 살아 있어 잘 읽히고, 새로운 정보도 많고, 감동도 있다. 희-로-애-락, 감정을 단 네 개로만 정리해서 건축물을 소개하겠다는 기획, 그것이 경탄할만하다. 감정을 단지 네 개로만 풀겠다는 생각은 수십가지의 감정으로 하루에도 기분이 몇 번 바뀌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구본준의 이 책이 나는 지나치게 노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능력이겠지만, 그래서 이 책에 구본준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구본준에 대한 이야기로는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구본준이 그 건물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면 독자들은 글을 쉽다고 느끼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느낀다. 미스플레이스드맨은 이 점이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격에 맞는 이야기, 장소에 맞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적절히 잘 조화될 수 있는 경지는, 모두에게 연주되지만 마치 한 사람에게만 속삭이는 것 같은 연주를 하는 수준일 것이다. 너무 노련하면 기술적으로만 보여 한 사람에게 속삭이는 것 같지가 않다. 노련한 상담가와 대화하는 것이 항상 나쁜 기분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불일치와 맥락의 단절이 존재하지 않는 대화의 미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이 내게 재밌는 이유는 아마 그 단절, 불일치를 끊임 없이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 주에도 나는 노련하게 쓰여진 책을 소개할 것이다. 나는 미스프레이스드맨에서 좀 벗어나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서해문집이 만들고, 구본준 작가가 쓴 <마음을 품은 집>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에는 ‘집’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오늘 소개해드릴 <마음을 품은 집>입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진행자분께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해보고 싶은데요, 혹시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 아시나요? (대답) 네, 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서울 어린이대공원 터는 원래 골프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조선 왕실의 묘였는데, 정확히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부인인 순명황후의 능이 있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황후의 능이 어처구니 없게도 일제 강점기 때 경성 골프장으로 바뀌었고, 해방 이후 이름이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바뀌고 한국에서 가장 좋은 골프장으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해요. 서울 시내에 있으니까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2. 그런데, 골프장이 어째서 어린이공원으로 바뀌게 된 걸까요?

 

정확한 문서는 없지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종종 워커힐 호텔에 가서 쉬곤 했는데, 청와대에서 워커힐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골프장을 지나야 했는데 1970년 12월에 이 골프장을 보고 크게 화가 났다고 해요. 조국 재건에 바쁜 이때에 평일 대낮에 한가하게 골프를 치는 작자들은 누구냐고 호통을 치면서 당장 골프장을 없애고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지시한지 2년만에 골프장이 이전되고, 서울시가 100일 작전 끝에 만든 공원이 바로 어린이대공원이었던 거죠.

 

3. 놀라운 이야기네요.

 

그렇죠? 이 책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구본준 작가가 서울을 비롯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감응한 건축물을 둘러싼 재밌는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물 하나가 만들어지게 된 뒷 이야기, 만들어지는 과정, 만들고 난 후 일어났던 일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정리하고 있는데요, 이 책의 부제가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크게 4부로 각각 희, 로, 애, 락으로 제목을 붙이고 각 건축물에 담겨진 기쁨의 이야기, 분노의 이야기, 슬픔의 이야기, 즐거움의 이야기를 풀어 냅니다. 건축이라고 하면 설계도면이나 엔지니어링을 생각하기 쉬울텐데요, 이 책은 그런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건축물 하나 하나에 담긴 인간의 드라마를 소개하는데 구본준 작가는 집중하는데요, 여기에는 저자가 건축물을 바라보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책의 한 부분을 짧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멋지고 근사한 건축이 좋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집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건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은 인생 그 자체였다.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슬프기 짝이 없는 사연도 있었다. 오욕칠정이 스며든 건축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과도 같았다. (중략) 건축은 미술도 디자인도 아닌 인간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 마음이, 우리 과거가, 우리 꿈이 건축을 통해 만들어지고 남겨지고 이어진다. 건축과 친해지면서 나는 집을 통해 인생과 역사, 문화와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4. 건축물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이 이 책을 희로애락으로 구성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린이대공원의 경우는 희로애락 중 어디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네, 사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어린이대공원은 아니고,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건물은 40년이나 된 데다 근무직원수에 비해 너무 규모가 커서 서울시에서 헐고 새 사무실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규모가 컸던 이유는 어린이대공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 부지에 있던 골프자의 클럽하우스였기 때문인데요, 골프장이 사라지면서 관리사무소가 된 겁니다. 그런데 이걸 헐어버릴 계획을 갖고 있던 당시 서울시 최광빈 국장이 건물의 도면을 보고 이상한 점이 있어 조성룡 건축가에게 전화를 해서 한번 도면을 봐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조성룡 건축가가 도면을 보고 깜짝 놀란거에요. 1970년대까지 한국 건축가를 대표했던 고 나상진의 작품이었고, 너무 훌륭했던 거죠. 그런데, 관리사무소로 오래동안 쓰면서 건물 내부를 이곳 저곳에 외피를 덧붙여서 진가가 숨겨져 있어서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소식을 듣고 서울시도 신축 계획을 폐기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고 건물의 원형을 되살려 복원하게 된 거죠. 조성룡 건축가는 40년 동안 이 건물에 붙어있던 온갖 외피들을 다 걷어내고, 큰 공간 안에 작은 공간을 만드는 등 다양한 접근으로 완벽하게 복원해 냅니다. 그래서 2011년 5월에 다시 이 건물은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대공원의 랜드마크로 다시 부활하게 된거죠.

그래서 이 건물은 ‘희’, 그러니까 기쁨의 이야기가 있는 건축물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뻔 했는데,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은 공무원의 눈썰미가, 자료를 뒤져 가치를 찾아낸 건축가가의 관심이, 발견된 가치를 소중히 받아들인 한 공무원의 고민이, 또 건물을 살리는 건축가의 열정이 합해져서 아이들에게 꿈의 마루를 선사한 것이니까요. 기쁨의 건축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거죠. 특히 저는 이 과정을 진두지휘한 서울시 최광빈 국장의 안목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5. 재미있는 사연을 듣고 나니 어린이대공원에 가면 꼭 한번 ‘꿈마루’라는 건물을 찾아서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풍조 속에서는 다시살려낸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재건축을 하게 되는 아파트 앞에 붙은 “경축 안전 진단 통과, 재건축 승인”이라는 현수막을 혹시 본 적이 있으세요? (대답) 그럼 여기 적힌 ‘안전 진단 통과’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나요? (대답 : 안전 진단을 했는데 안전하다는 뜻이 아닌가요?) 만약 안전하다면 재건축 승인을 못 받겠죠? 안전 진단을 받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 받았다는 것이 바로 안전진단통과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사실 안전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경축한다는 뜻으로 읽히면 의미가 이상하게 되어 버리죠. 부수고 다시 짓기 보다 되도록 고쳐서 다시 사는 것이 ‘문화적’으로는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사실 ‘안전 진단 통과’와 관련해 제가 드린 말씀은 제 이야기는 아니구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정기용 건축가가 하는 말입니다. 정기용 건축가는 예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주도했던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건축가로 참여한 분이죠.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한국의 대표 건축가라 할 만한 분인데요,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폭넓은 지지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도서관의 형태는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기용 건축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하러 다니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주로 사서나 도서관 직원들이 열람객들을 관리 감독하기 좋은 식으로 책을 읽는 공간이 배치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정기용 건축가는 기적의 도서관 작업에서 열람실에 마루를 깔고 온돌을 설치해서 아이들이 누워서, 구석에 틀어박혀서, 숨기 좋은 공간을 만들어 마음껏 책을 읽도록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배치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도서관들의 형태는 기적의 도서관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거죠.

 

6. 기적의 도서관 운동이 2002년에 있었으니 이제 15년이 된거네요.

 

그렇습니다. 구본준 작가도 정기용 건축가를 많이 존경했던 것 같아요. 아까 재건축에 대한 말씀을 드리다 말았습니다만, 정기용 작가는 대통령 사저를 설계할 정도로 유명했음에도 많은 돈을 벌기는커녕 자기 집 한 채 없이 살았다고 해요. 정기용 건축가가 시간을 쏟아 부은 작업은 대부분 예산은 적고 품은 많이 드는 작고 소박한 지역 공동체의 공공건축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정기용 건축가가 2011년에 세상을 떠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책의 저자인 구본준 작가도 사실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 2014년 이탈리아 출장 중에 급작스러운 심정지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발간한 마지막 책인데요, 구본준 작가는 사실 건축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는데요, 건축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건축 공부를 하며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책으로 구본준 기자를 소개해드리지만 구본준 작가는 우리 주택 문화의 변화에도 큰 기여를 한 분이기도 합니다. 땅콩집을 국내에 처음 만들고, 땅콩집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구본준 기자입니다. 정기용 건축가가 우리에게 새로운 도서관을 남겨주고 떠났다면 구본준 작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주택을 남겨주고 떠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7. 정말 그렇네요. 책을 잠깐 보니까 이 책이 모두 12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데 그 면면이 정말 다양하네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인도의 타지마할, 우리 지역의 도동서원도 있구요.

 

네, 각 건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건축물 하나 하나가 마치 인격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스물 세 살에 교통사고로 죽은 이진아 양을 기념하기 위해 진아씨 아버지 이상철씨가 기부를 해서 건립한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진아 기념도서관 주변에 가면 둥글레꽃이 많다고 합니다. 6월에 피는 꽃인데 건축가가 이진아씨가 6월에 기일이 있어 심었다고 합니다. 달성의 도동서원은 동서남북 배치의 방향이 일반서원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강의실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고, 동재는 서쪽에, 서재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 있습니다. 이 서원 자체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인데요, 이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서원이 모시는 김굉필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인해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렀는데요, 이 서원의 배치도 김굉필이 평생 자신의 소신과 성리학의 도를 따랐듯이 도동서원의 배치도 그런 김굉필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물 하나 하나를 인격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8. 끝으로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정리해주시죠.

 

일단 책이 재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이 책의 미덕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물 하나 하나를 대하는 태도가 따뜻합니다. 그래서 집을 깊이를 가진 것으로 바라봅니다. 사실 인간이 공간을 만들지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면이 분명히 있거든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 이 공간이 나의 삶과 생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시면서 읽으시면 새로운 시각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없는 내용입니다만, 혹시 진행자님께서는 대구의 계산성당이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 아시나요?(대답) 성모성당입니다. 그러다가 천주교가 천주를 모시지 않고 성모를 모신다는 오해를 받고 이름을 계산성당으로 바꾼 거라고 해요. 이처럼 대구의 건축물들에도 온갖 사연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 주변의 건축물, 대구의 건축물에 대해서도 이런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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