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를 ‘베둘레햄’이라 불렀다. 배가 많이 나온 나를 본 선생님이 붙여주신 별명이었다. 베둘레햄은 그래도 견딜만했는데 ‘드럼통’이란 별명은 정말로 모욕적으로 들렸다. 대학에 들어가자 선배들은 나를 보고 ‘슈렉’을 닮았다며 볼 때마다 놀려댔다. 윌리엄 스타이그가 쓴 동화에 나온 슈렉을 보면 영화 속 슈렉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생겼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이니까. 나는 내가 모든 못생긴 괴물 중에 가장 못생긴 그 괴물을 닮았다는 사실이 늘 납득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오히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외모라 생각하는 쪽이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어느 신문에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느끼는 뻘쭘함에 대해서 썼다. 엄마들이 아빠인 내게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고 나 역시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 끼어들기 어려운 탓이었다. 그래서 나처럼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하는 할머니 한 분과 함께 뻘쭘함을 이겨보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며칠 후 칼럼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사진을 보니 왜 아무도 말을 안 걸었는지 알겠네요.” “할머니가 무서웠을 것 같아요.” 웃기면서 슬펐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 아내는 대답했다. “못 생긴 게 매력이야.” 물론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외모패권주의와는 거리가 먼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 청와대로 들어간 분들의 면면을 보며 외모패권주의라 했다. 대통령과 신임 수석 비서관들이 하나같이 순백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커피 산책을 하고 있는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었다. 물론 새 정부가 외모로 인사를 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성공한 누군가를 향해 외모패권주의라 부르며 보잘것없는 내 처지를 못생긴 외모 탓인 양 돌리려 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외모패권주의란 말은 하나의 농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농담 속에 진실 한 자락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건, 지역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을 마치 전부인 양 대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점일 것이다. 외모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였다면, 즉 세상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외모패권주의 같은 농담이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가난 때문에, 학력 때문에, 지역 때문에, 외모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주고, 또 상처를 받는가. 그래서 외모패권주의, 영남패권주의, 친박패권주의, 강남패권주의 등 온갖 종류의 패권주의에 실체가 있는가를 따지기보다 그런 말에 담겨 있을 어떤 진실을 살피는 노력이 보다 값진 것이다. 외모패권주의는 농담이지만, 외모로 받은 상처는 농담일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17.6.13)


얼마 전 동아일보에서 박정자 선생이 '외모패권주의'에 대해서 쓴 글을 읽었다.

(http://news.donga.com/3/all/20170519/84435070/1) 

텔렘수도원 잔상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대통령 취임 첫 날 하얀와이셔츠를 입고 양복 재킷을 한 팔에 걸친 후 커피 한 잔을 들고 대통령과 선임 비서관들이 청와대 산책을 하는 것이 연출된 것인데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자유를 강요하는 일종의 전체주의라는 것이었다. 외모패권주의 하나에서 사회주의적 획일성을 끄집어내는 글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한 마디만 가져오면, 박정자 선생은 "사회주의는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배려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지만 실은 건강하고 잘생긴 좋은 집안 출신만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냉혹한 체제로 타락했다. 북한 체제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양에는 장애인이 들어올 수 없고, 모든 지배층은 당성이 좋은 집안 출신이어야 하며, 최고지도자는 백두혈통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모패권에서 이런 걸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문해력인 것인지, 관심법인 것인지 알기 어렵다. 지혜자이자, 나의 유일한 구루라고 할 수 있는 나와 같이 사는 여자가 내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고, 농담에 욱하는 사람과는 상종하는게 아니다"라고. 나도 상종하고 싶지 않았는데, 청와대 인사를 보며 외모패권주의라 생각했던 나도 한 마디 안 할 수 없어서 쓴 글이다. 그런데 쓰다보니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동안 내 별명의 역사가 궁금한 분이 만의 하나라도 계시다면 읽어보신다면 꽤나 즐거우실 것 같다. 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에 대해 마치 농담하듯이 쓰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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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내 볼을 파갔어. 

박 바가지였어

그래도 있잖아, 새색시였어


이쁘게 들여다보는 새벽이었어

떨려 온몸이 파들거렸지 뭐

하늘이 몇 번 우그러지고 펴지고 그랬어 . -박우물 (정화진 시)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황현산 선생의 시화집이다. 내가 제대로 읽었다면 선생은 책 어디에서도 제목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짐작하건대 선생은 책의 제목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몇 해 전에 나온 에세이집인 '밤이 선생이다'에서도 선생은 제목에 대한 말을 아낀다.



최근 인터뷰에서 선생은 ‘밤이 좋은 생각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의 프랑스 속담에서 이 제목을 착안한 것이라 했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라고 믿은 탓에 선생도 밤에 글을 썼다고 한다.


'우물에서 하늘보기'라는 제목도 어쩌면 그런 의미일까. 책을 읽기 전 제목을 보고 나는 곧장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우물이라는 좁은 세상에서 다른 세상인 하늘을 보게 하는 것이 시라면, 우물은 이성과 현실이 지배하는 낮의 세계를 상징하고, 하늘은 꿈과 몽상이 지배하는 밤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로고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구석구석, 삶의 여백들을 조명해주는 것이 시가 아니던가.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은 앞의 시를 염두에 두고 붙였을 것이다. 이 시에서 ‘박우물’, 곧 박 바가지로 물을 뜰 수 있는 얕고 작은 우물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을 ‘우그러지고 펴지고’ 전율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박우물이 ‘새벽의 새색시’를 만나는 것과 같은 에로스적인 경험이다. 바로 그때 우물에 비친 우그러지고 펴진 하늘은 ‘한편의 글’에 다름 아니다. 선생은 자신이 우물이 되어 물결 위에 비치는 시와 하늘의 우그러지고 펴짐의 일렁거림을 글로 담고자 했던 것 같다. 물론 선생이 스스로를 박우물로 여긴 것은 그저 겸양에 불과하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우물’은 개구리의 우물만도, 새색시의 박우물만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난 이후부터 선생이 쓴 글은 모두 슬픔과 닿아 있다. 선생은 ‘슬픔은 잊혀도 슬픔의 형식은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문학이 늘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부적이지만 세월호 이후의 삶에서는 그런 형식조차도 이제 사치스럽다고 통탄한다. '진정한 삶은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대로는 내버려둘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할 때도 선생이 염두에 두는 것은 세월호 이후의 우리의 삶이다. 그렇게 보자면, 우물은 슬픔의 깊이를 뜻한다. 그리고 이 슬픔이 내는 길을 외면하지 않고 가슴 치며 따라가면 거기에서 하늘을 만난다. 무엇보다 시는 슬픔을 담는 우물이고, 우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하늘이기도 하다. 선생은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시가 보기에 쓸고 닦아야 할 삶이 이 세상에는 없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시는 우물을 깨뜨린다. 이것이 시의 힘이다. 지금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6.1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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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la zarzuela는 내가 가장 즐겨듣는 음반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음반이다. 1996년 콘서트 실황을 담았다. 2014년부터는 연주 실황이 유튜브에 공개되어 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 아이가 등교하고 오전에 모처럼 파트너와 같이 집에 있는 날이면 유튜브로 Maria Bayo, Placido Domingo 등 거장들의 노래를 들으며 온갖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아주 큰 기쁨 중 하나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Carlos Alvarez가 무대 위에서 무표정하지만 고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며 나는 "짐승의 눈빛"이라고 했다. 공허한 듯 순수하게 보였고, 그래서 "짐승처럼 노래한다"고 했다. 파트너도 덧붙였다. "짐승처럼 부르는게 아름다운 거지. 나도 노래를 하지만 그게 아름다운 것인지 나는 몰랐던 거 같아. 어쩌면 그래서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았은 것이고".



짐승처럼 부른다는 것의 의미는 가수의 목소리가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아름답다고, 최종적으로 아름답다고 승인하는 것은 자연 아니면 자연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Maria Bayo는 새처럼 노래하고, Placido Domingo의 목소리는 강이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여전히 유효한 관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회화의 오랜 이상도 자연이지 않았던가.(물론 자연의 이상이 왜 여체로 표상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하여간 벨칸토 창법이 말그대로 아름다운 까닭은 그 목소리가 듣기에는 꾸밈이 없고 순수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은 거칠지만 자연스럽고, 우연적이지만 모든 것이 조화롭고, 위협적이지만 생명을 품고 있다.
정교하게 다듬은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Viva la zarzuela 연주에 감응된 탓인지 '자연'의 관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품들을 떠올려 보았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지닌 문학적 높이는 오르한 파묵이 말하는 것처럼 그 작품이 어떤 교훈도, 어떤 종류의 필연성도 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과 몹시도 닮았다. 자연은 교훈적이지도, 서사적이지도, 예시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으로 보일 뿐 우연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어떤 시점부터 데리다와 들뢰즈에 매혹된 이유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들뢰즈가 베이컨을 두고 자연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감각의 논리>에서 말하는 표상되지 않는 감각이라는 것도, 아플라니 윤곽이니 하는 것도 자연을 염두에 두는 것이 분명하다. 들뢰즈가 철학은 자본주의 나라에서, 도시에서 성립한다고 했던 말의 의미도 분명해진 것 같다. 그런 곳이야말로 '자연'의 결여가 크기 때문인 것이다.











자연을 닮은 글쓰기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글일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데리다의 글이었다. 마치 산을 올라가며 만나는 돌과 나무, 바위, 풀들이 조각 조각 흩어져 있어 그 자체로 유기성은 없지만 거기에 조화가 없지 않은 것처럼, 데리다 글을 읽는 것도 그렇게 느껴진다. 각 문장, 단어 하나하나의 유기적 연결을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책을 덮었을 때 산을 내려왔을 때 비로소 느끼고야 마는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의 의미 같은 것이 거기에 있다. 그 철학이나 문학이 정당한가를 떠나서 최소한 미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데리다나 들뢰즈의 글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자연에 대한 묘사가 가득해야 꼭 자연을 닮은 문학, 그림, 음악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을 담고 닮는 것은 자연적으로 되지 않고, 무엇이 자연인지에 대한 자연적 규정과 그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거부를 끝없이 해나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다시 플로베르를 생각해보면, 소설에 어떤 교훈도 담지 않는 것이 담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교훈조로 마치는 글이 되지 않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짐승의 눈을 하며 소리를 내는 벨칸토 창법은 마치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가능한 한 노력을 다해야만 제대로 소리가 난다.













잘못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보건대, 하이데거가 대지와 세계의 투쟁을 담는 것이 예술작품의 본질이라고 한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대지를 자연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예술작품은 자연을, 즉 사물을 세계 내 존재로서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사물이 지닌 존재론적 깊이인 자연을 담으면서 동시에 농부가 대지를 개간하듯 대지와의 투쟁을 담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지와 세계의 길항은 예술이라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을 담고자 하는 인위적 노력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담고 있는 은유일 것이다.

<아주, 기묘한 날씨>(푸른지식, 로런 레드니스)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이제 시작인데, 이 책이 한 평자의 말대로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까닭은 이 책이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은 방식의 글과 그림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북극의 빛맹 현상, 북극곰의 위협과 홍수로 파헤쳐진 공동묘지를 묘사하는 글이 이토록 아름다울지 몰랐다. '자연'이라는 말에 각자가 떠올리는 상이 다르기에 자연을 닮는다는 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하간 모든 아름다운 것이 자연의 한 조각을 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자연을 닮지 않은 글을 썼지만, 자연을 닮았다고 할만큼 아름다운 글을. 쥐를 무서워해서 가까이 있는 숲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운 내게는 요원한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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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존경
-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모님은 생일선물로 오직 책을 사주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책 선물이라고 해서 낱권으로 된 그림책이 아니다. 1학년 생일에 받은 책은 한국편 32권, 외국편 32권으로 구성된 금성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위인전기]였다. 나는 한국편보다는 외국편을 더 즐겨보는 편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32명 중에 아문센이 포함된 것을 의아하게 여기곤 했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냥 옷만 따뜻하게 입고 걸어가면 되는 일 아닌가 하고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학년 생일에는 계몽사에서 나온 7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았다. 선물이라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이걸 다 언제 읽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소년소녀들이 읽는 문학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같은 고전들도 있었고, 동양 작품으로는 드물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초등 2학년의 지적 수준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계몽사판 그림동화에서 봤던 책들 중 겹치는 책들에 주로 손이 갔다. <피터팬>이나 <빌헬름텔>, <피노키오> 같은 책들. 그 중에서도 <소공녀>는 결말의 속시원한 반전 때문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였다.

부모님은 이후에도 생일 때마다 전집을 집에 들이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 내지 못했다. 그 중에선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아니 읽을 수 없었던 전집 시리즈도 있었는데, 바로 4학년 때 받은 선물이었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총 28권짜리 전집이었다. 이 책과 관련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 한 주 전에 전집류를 주로 취급하는 외판원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보다 몇 살 많아보였던 외판원 아저씨는 여러 상품 중에서도 유독 이 전집을 권했다. 아이가 평생 보게 될 책이라며 좀 비싸더라도 이번 기회에 장만하라 했다. 그 외에도 영국과 미국의 무슨 책들에 대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아메리카나백과사전]이었던 것 같다. 일찍 학업을 중단하신 아버지께서 그게 무슨 책인지 아실 리 없었지만, 매년 거래해 오던 외판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한 주 후 책이 배달되었다. 책은 이전에 나로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크기, 두께였고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내가 들기도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아버지는 내 방 책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디즈니 그림책을 박스에 넣으시고는, 집에 막 도착한 책을 꺼내 한 권씩 책장 한쪽에 꽂아 넣으셨다. 동화책들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빛깔 대신, 1권, 2권, 3권.. 한 권씩 백과사전을 꽂아 넣었다. 점점 책장은 무겁고 짙은 고동색으로 채워졌다.

책에 대한 ‘원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게는 아마 바로 이 책들을 아버지와 함께 책장에 꽂아넣은 그날의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도 집에는 책이 있었고, 자주 책을 샀고, 매일 같이 책을 읽었지만 이 백과사전이 들어온 그 날부터 그 책들은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백과사전으로 알게 된 것은 기껏해야 이렇게나 두꺼운 책은 색인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라는 것과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의 역사, 내가 살던 대구에 대한 지리 정보가 전부였지만, 책장에 꽂혀 한 달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던 ‘권위적인’ 책을 바라보며 “지금 나는 어려서 저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지, 저 책은 아마 어마어마한 내용일거야”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하면서 어머니는 그 전집을 중고책방에 갖다 주셨다. 거의 새 책이었지만, 중고책방에는 같은 종류의 전집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형편 없는 가격을 받았다. 얼마 가지 않아 백과사전이 시디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아마도 구립 도서관 정도에는 가야 있을만한 이런 종류의 책을 집에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아이 엄마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전집 전문 서점에 들렀다. 사장님은 이젠 그런 백과사전류는 나오지 않는다며 다른 책을 소개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 스타일에 주제도 다양하고, 온갖 색으로 치장된 표지의 전집이었다. 세계문학전집류와 위인전집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만 내가 읽었던 것과는 달라보였다.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의 ‘세계’가 말만 세계일 뿐 서구 중심의 전집 편찬이었다는 비판을 충분히 의식했기 때문인지 어떤 전집에도 인도인 하인을 둔 런던 아가씨 이야기인 [소공녀]는 없었다. 위인전집에 실릴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의 기준도 예전과 많이 달랐다. 프라다를 입고 다니는 보그의 악마 ‘앤디 윈터’, 샤넬을 만든 ‘코코 샤넬’ 전기를 보면서, 어릴 때 위인전을 읽으며 느꼈던 위화감, 그러니까 나는 천재도 아니고 모험을 할 만큼 용기도 없으니 위인은 못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점을 나오면서 아이 엄마는 내게 물었다. “요즘도 전집을 사는 사람이 있나봐?”. 그동안 우리는 언제나 칼데콧이나 뉴베리와 같은 큰 상을 받은 책이나 유명 작가들의 책을 가능한한 섬세히 선별해 낱권으로 책을 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내 아버지가 내게 준 책에 대한 경험까지 내 아이에게 주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책을 사다주며, 책에 대한 경험까지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 비싼 전집을 사겠다고 생각한 것은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책에는 그 돈을 들일만큼 가치가 있다는 믿음, ‘고전’에 대한 경외와 존경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아마도 내 아버지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믿음을 가진 세대였을 것이다.

백과사전을 포함해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단지 존재만으로도 내가 인간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키우도록, 때로는 내게 책을 더 읽도록 해주는 압력도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계몽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이 있었기에 촉발되었다고는 하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사람들도 백과사전을 다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신 책, 그러니까 ‘책에 대한 존경’이 ‘왕에 대한 존경’을 이길 때 변화가 일어났다.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었겠지만 나는 아버지만큼 책을 존경하고 있을까? 내 아이에게는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책을 읽는 대신 책을 구입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도서관은 무한하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우주이지 않은가? 공공도서관이 드물던 내 유년기에 비하자면 이제 책에 대한 존경은 집보다 몇 배는 더 큰 무한한 우주인 도서관에서 더 배우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 책에 대한 존경은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구입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 우주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그 순간 생겨난다.
짙은 고동색 백과사전 전집이 어린 내겐 그 우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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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백화점에 갔다가.

얼마전에 대구에 신세계 백화점이 생겨서 거기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의 글이 되었다. 조경란의 <백화점>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는데 내가 백화점에서 자주 느꼈던 부분과는 다른 결의 글이었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도움이 될까 해서 봤는데, 벤야민이 살던 때의 아케이드와 지금 백화점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간 이번 글은 몇 시간을 고민했지만 제대로 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백화점에서 나란 인간이 얼마나 찌질한 인간인지만 보여주는 자기고백이 된 것 같다^^. (원래 인간이란 찌질하니까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빙 고프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자기 자아를 찾아라는 식의 결론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화점에서 내가 나 자신을 연출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거기에는 나의 욕망도 있고, 백화점이 내가 연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무대 장치를 잘 세팅해 놓기 때문일 것 같았다. 점원도, 매장 구성도, 조명과 동선까지도 아주 영리하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새로 생긴 백화점도 그런 점에서 나를 다른 나로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백화점에 있는 시계 매장에 난생 처음 들어가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 글에서 백화점 시계매장에 처음 들어갔다고 쓴 건 진실은 아니다. 외국에 있는 매장은 아무렇지 않게나 들어가서 이것 저것 물어본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봤다.
일단 나는 백화점 매장에 들어가서 관심 있는 물건의 가격은 바로 물어보지 않는다. 택을 바로 들추기 전에 그것이 옷이든, 전자제품이든 일단 이리 저리 살펴보고 물건의 특징부터 살펴본다. 이건 내가 그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가격보다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를 더 궁금해 해서가 아니다. 일단 택을 들추기 전에 내가 그 물건이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인지 확인부터 하는 심미적 취향이 있는 손님이라는 것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는 연기를 매장에서 하는 것이다. 일단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가격부터 물어보는 솔직함이 없어서 백화점에서 물건 사기는 내게는 늘 연출의 부담이 있는 공간이다. 
아울렛이나 외국 특히 미국 쇼핑몰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런 연출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아울렛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라는 신호인데다 아울렛 매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대 자아의 부각이 잘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연출의 부담도 잘 생기지 않는다. 마음대로 택 가격을 살펴보고, 가격이 비싸면, "아울렛 물건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점원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있다. 미국에 있는 백화점들은 매장마다 점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점원에게 응대를 받을 가능성이 없고, 명품 시계 같은 럭셔리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는 직원이 있지만 이들은 내가 살 능력이 없어도 아시안들은 헤비쇼퍼라는 인상이 있어서 가격부터 물어도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외국인이지 않은가? 자아가 좀 부각되더라도 그 때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 백화점에서 물건, 특히 명품을 사는 일은 외국에서 사는 것보다 틀림 없이 더 큰 기쁨을 느끼게 할 것 같다. 비싼 물건을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면서 카드를 척 낼 때 느끼는 기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이쪽이 더 드라마틱하고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그것이 비록 저급한 방식이라 하더라도, 고양시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명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프랑스산 물이나 이태리산 음료를 주고, 고객 카드에 이름을 적으면서 백화점 명품 매장이라는 무대의 주인공 중 하나로, 아니 자신을 주인공 중 하나라 믿게 되는 것이다. 명품 매장 직원이 착용한 흰 장갑은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하간 백화점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신문에 쓴 글도 결론을 내기 어려웠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무리하기 어렵구나.



백화점이라는 무대 (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산책에 쓴 글)
새로 생긴 백화점에 들렀다가 시계 매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시계는 내가 쇼핑 욕구를 느끼는 거의 유일한 물건이다. 시계는 단지 시간만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다. 크로노그래프와 GMT 기능이 있는 시계는 시계를 착용한 남자를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성공한 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내가 그런 남자라서 명품시계를 동경해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시계 하나로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명품시계 구매는커녕 시계 매장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가격도 물론 큰 이유였지만 매장 내 손님이 별로 없는 시계 매장은 뭔가 모르게 들어가기 부담스러웠다. 그 날도 발걸음을 돌리려다 문득 내가 시계매장에 들어갈 정도의 모험 정신도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져 매장에 들어가 봤다. 직원은 내게 B사의 시계를 추천해줬다. 시계를 살펴보며 직원이 눈치 채지 않게 가격표를 힐끗 보고, 가격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직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나는 살 마음이, 아니 살 능력이 없었지만 다른 시계들도 보여 달라 했다. 가격을 듣고, 그 가격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나는 직원에게 “가격은 좋은데, 다이얼장식이 마음 들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다른 매장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직원은 둘러보고 다시 오라고 했다. 물론 나는 다시 가지 않았다.
시계매장을 나오며 어빙 고프만이 <자아연출의 사회학>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공연된 자아는 그럴 듯하게 연출하여 남들로 하여금 그를 그가 연기한 인물로 보게 만드는 일종의 이미지다”. 나는 시계매장에서 내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구매능력은 없지만 구매자처럼 행동했고, 직원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직원은 내가 구매 능력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도 적당히 맞장구쳐줬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백화점, 그 중 명품매장은 무대가 되어 나 자신을 내가 ‘공연한 자아’로 점차 믿게 만드는 곳임을 깨달았다. B사의 시계가 내게 특히 잘 어울린다는 직원의 말이 오래 남았다.
명품이 즐비한 새로 생긴 백화점을 무대로 나는 ‘공연된 자아’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시계가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듯 백화점도 단지 물건을 파는 곳만은 아니다. 무대 위의 우리 배역이 오직 ‘고객님’이 되도록 모든 것을 사전에 셋팅해 두고, 우리를 구매능력이 있고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고객님으로 대우한다. 그렇게 우리는 백화점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출된 나 자신을 자기 자신의 자아로 믿으며 조금씩 쇼핑의 즐거움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연기에 너무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백화점은 영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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