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백화점에 갔다가.
얼마전에 대구에 신세계 백화점이 생겨서 거기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의 글이 되었다. 조경란의 <백화점>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는데 내가 백화점에서 자주 느꼈던 부분과는 다른 결의 글이었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도움이 될까 해서 봤는데, 벤야민이 살던 때의 아케이드와 지금 백화점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간 이번 글은 몇 시간을 고민했지만 제대로 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백화점에서 나란 인간이 얼마나 찌질한 인간인지만 보여주는 자기고백이 된 것 같다^^. (원래 인간이란 찌질하니까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빙 고프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자기 자아를 찾아라는 식의 결론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화점에서 내가 나 자신을 연출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거기에는 나의 욕망도 있고, 백화점이 내가 연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무대 장치를 잘 세팅해 놓기 때문일 것 같았다. 점원도, 매장 구성도, 조명과 동선까지도 아주 영리하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새로 생긴 백화점도 그런 점에서 나를 다른 나로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백화점에 있는 시계 매장에 난생 처음 들어가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 글에서 백화점 시계매장에 처음 들어갔다고 쓴 건 진실은 아니다. 외국에 있는 매장은 아무렇지 않게나 들어가서 이것 저것 물어본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봤다.
일단 나는 백화점 매장에 들어가서 관심 있는 물건의 가격은 바로 물어보지 않는다. 택을 바로 들추기 전에 그것이 옷이든, 전자제품이든 일단 이리 저리 살펴보고 물건의 특징부터 살펴본다. 이건 내가 그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가격보다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를 더 궁금해 해서가 아니다. 일단 택을 들추기 전에 내가 그 물건이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인지 확인부터 하는 심미적 취향이 있는 손님이라는 것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는 연기를 매장에서 하는 것이다. 일단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가격부터 물어보는 솔직함이 없어서 백화점에서 물건 사기는 내게는 늘 연출의 부담이 있는 공간이다.
아울렛이나 외국 특히 미국 쇼핑몰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런 연출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아울렛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라는 신호인데다 아울렛 매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대 자아의 부각이 잘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연출의 부담도 잘 생기지 않는다. 마음대로 택 가격을 살펴보고, 가격이 비싸면, "아울렛 물건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점원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있다. 미국에 있는 백화점들은 매장마다 점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점원에게 응대를 받을 가능성이 없고, 명품 시계 같은 럭셔리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는 직원이 있지만 이들은 내가 살 능력이 없어도 아시안들은 헤비쇼퍼라는 인상이 있어서 가격부터 물어도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외국인이지 않은가? 자아가 좀 부각되더라도 그 때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 백화점에서 물건, 특히 명품을 사는 일은 외국에서 사는 것보다 틀림 없이 더 큰 기쁨을 느끼게 할 것 같다. 비싼 물건을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면서 카드를 척 낼 때 느끼는 기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이쪽이 더 드라마틱하고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그것이 비록 저급한 방식이라 하더라도, 고양시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명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프랑스산 물이나 이태리산 음료를 주고, 고객 카드에 이름을 적으면서 백화점 명품 매장이라는 무대의 주인공 중 하나로, 아니 자신을 주인공 중 하나라 믿게 되는 것이다. 명품 매장 직원이 착용한 흰 장갑은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하간 백화점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신문에 쓴 글도 결론을 내기 어려웠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무리하기 어렵구나.
백화점이라는 무대 (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산책에 쓴 글)
새로 생긴 백화점에 들렀다가 시계 매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시계는 내가 쇼핑 욕구를 느끼는 거의 유일한 물건이다. 시계는 단지 시간만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다. 크로노그래프와 GMT 기능이 있는 시계는 시계를 착용한 남자를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성공한 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내가 그런 남자라서 명품시계를 동경해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시계 하나로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명품시계 구매는커녕 시계 매장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가격도 물론 큰 이유였지만 매장 내 손님이 별로 없는 시계 매장은 뭔가 모르게 들어가기 부담스러웠다. 그 날도 발걸음을 돌리려다 문득 내가 시계매장에 들어갈 정도의 모험 정신도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져 매장에 들어가 봤다. 직원은 내게 B사의 시계를 추천해줬다. 시계를 살펴보며 직원이 눈치 채지 않게 가격표를 힐끗 보고, 가격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직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나는 살 마음이, 아니 살 능력이 없었지만 다른 시계들도 보여 달라 했다. 가격을 듣고, 그 가격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나는 직원에게 “가격은 좋은데, 다이얼장식이 마음 들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다른 매장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직원은 둘러보고 다시 오라고 했다. 물론 나는 다시 가지 않았다.
시계매장을 나오며 어빙 고프만이 <자아연출의 사회학>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공연된 자아는 그럴 듯하게 연출하여 남들로 하여금 그를 그가 연기한 인물로 보게 만드는 일종의 이미지다”. 나는 시계매장에서 내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구매능력은 없지만 구매자처럼 행동했고, 직원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직원은 내가 구매 능력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도 적당히 맞장구쳐줬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백화점, 그 중 명품매장은 무대가 되어 나 자신을 내가 ‘공연한 자아’로 점차 믿게 만드는 곳임을 깨달았다. B사의 시계가 내게 특히 잘 어울린다는 직원의 말이 오래 남았다.
명품이 즐비한 새로 생긴 백화점을 무대로 나는 ‘공연된 자아’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시계가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듯 백화점도 단지 물건을 파는 곳만은 아니다. 무대 위의 우리 배역이 오직 ‘고객님’이 되도록 모든 것을 사전에 셋팅해 두고, 우리를 구매능력이 있고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고객님으로 대우한다. 그렇게 우리는 백화점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출된 나 자신을 자기 자신의 자아로 믿으며 조금씩 쇼핑의 즐거움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연기에 너무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백화점은 영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