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존경
-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모님은 생일선물로 오직 책을 사주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책 선물이라고 해서 낱권으로 된 그림책이 아니다. 1학년 생일에 받은 책은 한국편 32권, 외국편 32권으로 구성된 금성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위인전기]였다. 나는 한국편보다는 외국편을 더 즐겨보는 편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32명 중에 아문센이 포함된 것을 의아하게 여기곤 했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냥 옷만 따뜻하게 입고 걸어가면 되는 일 아닌가 하고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학년 생일에는 계몽사에서 나온 7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았다. 선물이라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이걸 다 언제 읽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소년소녀들이 읽는 문학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같은 고전들도 있었고, 동양 작품으로는 드물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초등 2학년의 지적 수준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계몽사판 그림동화에서 봤던 책들 중 겹치는 책들에 주로 손이 갔다. <피터팬>이나 <빌헬름텔>, <피노키오> 같은 책들. 그 중에서도 <소공녀>는 결말의 속시원한 반전 때문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였다.

부모님은 이후에도 생일 때마다 전집을 집에 들이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 내지 못했다. 그 중에선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아니 읽을 수 없었던 전집 시리즈도 있었는데, 바로 4학년 때 받은 선물이었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총 28권짜리 전집이었다. 이 책과 관련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 한 주 전에 전집류를 주로 취급하는 외판원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보다 몇 살 많아보였던 외판원 아저씨는 여러 상품 중에서도 유독 이 전집을 권했다. 아이가 평생 보게 될 책이라며 좀 비싸더라도 이번 기회에 장만하라 했다. 그 외에도 영국과 미국의 무슨 책들에 대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아메리카나백과사전]이었던 것 같다. 일찍 학업을 중단하신 아버지께서 그게 무슨 책인지 아실 리 없었지만, 매년 거래해 오던 외판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한 주 후 책이 배달되었다. 책은 이전에 나로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크기, 두께였고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내가 들기도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아버지는 내 방 책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디즈니 그림책을 박스에 넣으시고는, 집에 막 도착한 책을 꺼내 한 권씩 책장 한쪽에 꽂아 넣으셨다. 동화책들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빛깔 대신, 1권, 2권, 3권.. 한 권씩 백과사전을 꽂아 넣었다. 점점 책장은 무겁고 짙은 고동색으로 채워졌다.

책에 대한 ‘원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게는 아마 바로 이 책들을 아버지와 함께 책장에 꽂아넣은 그날의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도 집에는 책이 있었고, 자주 책을 샀고, 매일 같이 책을 읽었지만 이 백과사전이 들어온 그 날부터 그 책들은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백과사전으로 알게 된 것은 기껏해야 이렇게나 두꺼운 책은 색인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라는 것과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의 역사, 내가 살던 대구에 대한 지리 정보가 전부였지만, 책장에 꽂혀 한 달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던 ‘권위적인’ 책을 바라보며 “지금 나는 어려서 저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지, 저 책은 아마 어마어마한 내용일거야”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하면서 어머니는 그 전집을 중고책방에 갖다 주셨다. 거의 새 책이었지만, 중고책방에는 같은 종류의 전집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형편 없는 가격을 받았다. 얼마 가지 않아 백과사전이 시디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아마도 구립 도서관 정도에는 가야 있을만한 이런 종류의 책을 집에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아이 엄마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전집 전문 서점에 들렀다. 사장님은 이젠 그런 백과사전류는 나오지 않는다며 다른 책을 소개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 스타일에 주제도 다양하고, 온갖 색으로 치장된 표지의 전집이었다. 세계문학전집류와 위인전집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만 내가 읽었던 것과는 달라보였다.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의 ‘세계’가 말만 세계일 뿐 서구 중심의 전집 편찬이었다는 비판을 충분히 의식했기 때문인지 어떤 전집에도 인도인 하인을 둔 런던 아가씨 이야기인 [소공녀]는 없었다. 위인전집에 실릴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의 기준도 예전과 많이 달랐다. 프라다를 입고 다니는 보그의 악마 ‘앤디 윈터’, 샤넬을 만든 ‘코코 샤넬’ 전기를 보면서, 어릴 때 위인전을 읽으며 느꼈던 위화감, 그러니까 나는 천재도 아니고 모험을 할 만큼 용기도 없으니 위인은 못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점을 나오면서 아이 엄마는 내게 물었다. “요즘도 전집을 사는 사람이 있나봐?”. 그동안 우리는 언제나 칼데콧이나 뉴베리와 같은 큰 상을 받은 책이나 유명 작가들의 책을 가능한한 섬세히 선별해 낱권으로 책을 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내 아버지가 내게 준 책에 대한 경험까지 내 아이에게 주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책을 사다주며, 책에 대한 경험까지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 비싼 전집을 사겠다고 생각한 것은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책에는 그 돈을 들일만큼 가치가 있다는 믿음, ‘고전’에 대한 경외와 존경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아마도 내 아버지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믿음을 가진 세대였을 것이다.

백과사전을 포함해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단지 존재만으로도 내가 인간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키우도록, 때로는 내게 책을 더 읽도록 해주는 압력도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계몽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이 있었기에 촉발되었다고는 하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사람들도 백과사전을 다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신 책, 그러니까 ‘책에 대한 존경’이 ‘왕에 대한 존경’을 이길 때 변화가 일어났다.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었겠지만 나는 아버지만큼 책을 존경하고 있을까? 내 아이에게는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책을 읽는 대신 책을 구입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도서관은 무한하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우주이지 않은가? 공공도서관이 드물던 내 유년기에 비하자면 이제 책에 대한 존경은 집보다 몇 배는 더 큰 무한한 우주인 도서관에서 더 배우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 책에 대한 존경은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구입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 우주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그 순간 생겨난다.
짙은 고동색 백과사전 전집이 어린 내겐 그 우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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