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초엘리트 -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의 습관, 약점, 그리고 악행
사이먼 쿠퍼 지음, 김양욱.최형우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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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80년대 옥스퍼드 대학의 풍경을 주로 묘사한다. 사이먼 쿠퍼에 따르면 80년대 옥스퍼드는 중세적 분위기 속에서 수학과 과학을 경시하는 분위기의 얕은 지식으로 ‘수사학’이 주를 이루고, 이튼 출신의 특권의식에 절어있는 ’교만한 학생들’로 가득차 있는 공간이었다. 화이트헤드를 배출했고, 9대 사립학교에 해당하는 슈루즈베리의 교장은 ‘자연과학은 교육의 기반이 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사립학교들이나 옥스퍼드나 자연과학보다는 라틴어와 문학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은 ‘황색언론적인 편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건 당시 영국의 분위기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얕은 지식으로도 글을 쓰고 이야기하며 밥을 벌어 먹고사는 방법을 옥스퍼드에서 너무 잘 배웠다”(35쪽)


사이먼 쿠퍼의 이 책은 옥스퍼드를 ‘삐딱하게 보기’를 통해 이튼을 거친 옥스퍼드 출신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모자라고 교활하며,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지’를 그들의 대학생활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폭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보리스 존슨에 관한 것이다. 그가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했던 협잡들, 상대를 비꼬는 데 능숙한 화법들. 이후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리즈 트러스, 리시 슈낙 등 옥스퍼드대학 출신들의 ’별 것 없음‘을 파헤치고, 브렉시트가 어떻게 옥스퍼드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영국을 통치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이 가진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연합 정부에 있는 외부인이 이러한 특권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렇게 보수당의 유럽 회의론은 어떤 면에서는 우버 택시에 맞서 싸우는 개인택시 기사들의 투쟁처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사립학교 출신 옥스퍼드 학새들은 그들이 통치할 나라를 그들 자신의 계급과 동일시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국력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누군가 영국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132쪽) 


80년대 중반 옥스퍼드의 분위기, 엘리트 집단의 사고가 한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읽고 있노라면,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의 ’분담금‘ 때문이라던가, 난민 수용에 대한 부당한 요구 때문이라던가, 독일과의 경쟁심 때문이라던가, 영국 내 노동계급의 일자리 부족 때문이라던가 하는 분석은 조금은 피상적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브렉시트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은 ‘영국 귀족과 그들이 다닌 학교들에서 그들에게 심겨진 심성’이 만들어 낸 것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166쪽에는 이런 말도 있다. “작가 존 스칼지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은 난도가 ‘쉬움’으로 설정된 현실 세계라는 타이틀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성인이 되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보리스 존슨을 위시한 이튼 출신의 옥스퍼드 졸업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자 출신의 작가는 ‘인신공격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옥스퍼드 초엘리트를 비판하지만, 사실 이 책의 제목이 이 책을 오해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의 원제는 ‘Chums'로 번역하자면 ’끼리끼리‘, 혹은 ’계-꾼들“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카르텔’ 같은 것이다. 작가가 옥스포드 카르텔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에는 이들의 카르텔이 단순한 이해관계에 입각한 ‘이익공동체’라기 보다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프렙스쿨을 거치고 세컨더리 사립학교를 거치며 만들어진 ’친구들끼리‘, 혹은 귀족 집단의 농담과 말을 이해하는 집단들끼리의 관계를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로 치면 정치인들이 치열하게 정책과 이념 등으로 모이고 싸우는 것처럼 ’겉으로‘ 보이더라도 알고 보면 경기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을 거치면서 이념/정책 따위와는 무관하게 서로 서로 어릴 때부터 친구로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있는 관계를 만들고 있는 그런 관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옥스퍼드 초엘리트’라는 제목으로 읽게 되면 ’chums'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원리보다 보리스 존스나 데이비드 캐머런 같은 인물들의 보잘 것 없음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는 식의 독해를 하게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인물들이 어떻게 그런 ‘끼리 끼리’ 집단에 들어가서 정치 거물로 성장하고, 그 집단이 어떤 위험한 국가적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음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이먼 쿠퍼는 옥스퍼드의 개혁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더이상 옥스퍼드 대학은 수사학적 토론 기술만 가르치는 대학도 아니고, 과학, 수학을 경시하는 얕은 지식인을 만들어 내는 대학도 아니고, 학생에게 직장 생활에 준하는 40시간의 학습을 요구하는 ‘학술적으로 성장한 대학’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공립학교 비율을 높이고, 노동계급 출신을 우대한다는 점에서 ’공정한 대학‘으로 변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노력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단언한다. 옥스브릿지대학에서 학부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학부제 폐지 주장은 옥스브릿지가 ’chums'를 형성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지, 초엘리트들에 대한 개인적 반감 때문이 아닌 것이다. 1억에 육박하는 이튼 등록금을 내고도 옥스브릿지에 가지 못한다면, 옥스브릿지에 가는 것이 오히려 그 등록금이 방해한다면 'chums'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의 분석과 제안, 서술방식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이 이뤄지는 공식적 입장이 아닌 비공식적, 사적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훔쳐 보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준다. 정말로 재밌는 책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보리스 존슨과 이튼, 옥스퍼드의 힘은 비슷한 수준에 라이벌 구도를 그린다고 알려진 리시 슈낙, 해로우, 캠브리지의 힘보다 훨씬 더 강하고 무서운 것이라 쉽게 해체하기도 힘들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이 쓴 이 책은 ‘끼리끼리’ 문화에 대한 일종의 내부 폭로다. 이 책은 서울대 출신, 검사 출신, 의대 출신의 ‘chums'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내게는 영국 교육에 대해서, 영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옥스퍼드 유니언을 연구한 피오나 그레이엄은 ”영국적인 관념에서 괴짜는 사회를 비판하며 사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산이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녀는 괴짜는 일반적으로 신념에 순응하며, ‘태도, 옷차림, 언행, 눈치 같은 외형적인 방식’에서만 괴팍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119쪽)


이 책의 이해를 위해.

1) 영국의 세컨더리 스쿨은 우리로 치면 중고등학교를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건 퍼블릭스쿨, 그래머스쿨, 스테이트스쿨로 분류해서 이해하면 쉽다. 스테이트 스쿨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이다. 퍼블릭스쿨은 공립학교로 번역되지만, 국가가 비용을 내는 학교가 아니다. 그래머스쿨은 스테이트스쿨의 하나이지만 퍼블릭스쿨에 못지 않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교로 우리로 치면 공립 특목고에 해당한다. 퍼블릭스쿨은 이튼, 해로우, 윈체스터 같은 곳들로 우리로 치면 민사고 같은 곳이다. 등록금과 기부 등으로 학교가 운영되는 영국의 사립학교들로 영국 내 수백 곳이 있고, 국내에 있는 덜위치 같은 곳이 이런 학교들의 프랜차이즈 브랜치이다. 퍼블릭은 개인 튜터링 학습과 반대된다는 의미에서 퍼블릭을 의미하는 것이지, 공공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 책 속에 소개되는 벌링던 클럽은 영화 ’라이엇 클럽‘을 보면 실상을 좀더 실감있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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