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김용규 외 엮음, 김석범 외 인터뷰이 / 소명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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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에서 나온 <대담집-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읽었다.
최덕효, 정영환 선생의 대담에서는 오랜만에 정말로 큰 지적 도전을 느꼈다. 책에서 3세대로 분류한 이 역사학자들이 벌이는 ‘대담한 기획’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최덕효 선생의 박사 논문은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에 대한 일종의 카운터 내러티브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나는 이 책이 일종의 일본의 자기기만이라고 느꼈는데, 어쩌면 역사상 단 한번도 가난해본 적이 없는 나라의 가난 서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최덕효 선생의 논문 작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내가 존 다우어의 책에 느낀 불편함의 이유를 알아챘다. 이 책에는 ‘재일조선인’이 빠져 있었다. 패배가 아니라, 패배의 패배를 껴안고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 최덕효 선생의 기획은 한편으로 서준식의 ‘옥중서신’에 대한 카운터 내러티브기도 했다. 서준식은 옥중 소감에서 한반도가 본류, 자이니치는 지류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최덕효는 자이니치 중심의 역사 서술을 기획한다. 실로 대담하고 놀라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정영환 선생의 논문에 대해서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사를 자이니치의 시각에서 새롭게 서술하고자 한다. E.P 톰슨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계승하며 제3세계와 재일조선인을 연결하고, 유럽중심주의자인 에릭 홉스봄과 대결하려 한다. 김용규 선생님의 잘 준비된 질문과 풍부한 사전 조사, 이재봉 선생님의 예리한 질문이 돋보였다. 특히 김용규 선생님의 질문은 두 학자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큰 얼개를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경식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3세대 학자들과의 대담보다는 훨씬 더 어두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2023년에 있었던 두 번째 대담은 선생의 악화된 건강 탓인지 몰라도 다른 인터뷰나 강의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냉소적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리고 인터뷰는 늘 그런 것이라 해도, 서경식의 답변은 질문을 조금씩 빗겨 가기도 하고, 질문의 의도를 되묻는 방식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질문과 답 사이의 묘한 어긋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것이 불편하기 보다는 흥미로웠던 이유는, 인터뷰어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 선생님의 사적 대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의미가 좀 더 다가왔는데, 다시 읽었을 때 선생님의 발언에 선생님의 억양과 말의 스타일이 비로소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 또 다른 인터뷰어인 서민정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선생님의 발언을 검토하시겠냐는 물음에 서경식 선생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즉 두 편의 대담에 대해서 다시 읽거나 고쳐쓰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김상봉 선생님과 대담을 하셨던 <만남>에서 자신의 발언을 되짚고, 혹시나 실수를 하실까봐 나 같은 사람에게 녹취를 맡기자고 제안하셨던 것에 비하면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선생님은 대담해지신 것일까, 아니면 조금은 지쳐계셨던 것일까.
물론 그 때문에 가장 서경식의 목소리에 가까운, 그래서 책의 제목인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를 실현하고, 또 서경식의 목소리를 귀에서 재생시키는 그런 대담이 되었다. 단, 높은 수준의 주의력이 독해에 요구된다는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22쪽 이후의 서경식 선생이 말하는 ‘조국’-론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론으로 읽힌다. 정말로 흥미롭다. 특히 144쪽.
“그런데 그것만 보면 안 되죠. 이 사람이 서양을, 서양 르네상스를 우리와는 다른 어떤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를 보게 되면, 이 사람의 독창성이라고 할까, 특징을 볼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앞으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런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를 연구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재일 조선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자신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양이 그런 경향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
나로서는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서경식이 유럽과 아메리카를 다니며 인문기행과 미술관 다니며 음악회를 다닌 또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되는 지점이자, 여러 선생님들과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어떤 방향으로 꾸려가야 할지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구절이었다. 서경식 선생님과의 2부 대담은 나로서는 너무나 값진 대화의 기록이었다.
책을 읽으며 발견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남겨둔다. 아무래도 대화를 녹취로 풀다보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맥락상 이상한 것들이 꽤 있다. 내가 가장 이상했던 부분은 90쪽이다.
”아까 얘기했던 귀화 안 해서 반갑다든지 하는 그런 이야기라기보다, 저는 문제적인 발언일 수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디보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내가 충분한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나는 인용한 부분의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을 곱씹어 읽었다. 대화의 맥락상, 일본이라는 나라가 재일조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문제적인 발언을 예고했다면 더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이 구절만 보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가 된다. 즉 일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라면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는 거다. 논리적이지 않은 연결인데, 서경식 선생님이 이렇게 실제로 말씀하신 것이면 앞서 말했듯이 수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편집 과정에서 이런 부분은 확인이 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잘못 독해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271쪽, 김용규 선생님의 발언에도 모호한 점이 있었다.
”디아스포라라든지 ‘제3의 길’, 이런 것은 서경식 선생님도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는 것 같던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2세대, 3세대의 경우, 재일조선인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의 공통성 등도 함께 고민하면서 자신들만의 특성들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를 서경식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녹취과정의 실수일 수도 있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서경식 선생님은 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디아스포라 담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셨고, 이 개념을 해체해 서경식이 다시 재발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 공통성을 중심으로 연대를 추구했는데 그가 이를 싫어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편집 과정에서 좀 더 살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자잘한 실수들.
사실 녹취를 풀어낸 책의 특성상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긴 한데, 몇 가지만.
1) 262쪽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고나“->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거나“
2) 263쪽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n"- > "Eric Hobsbawm'
어마어마한 품이 들어간 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부록으로 실린 최덕효 선생의 ’월경하는 재일‘은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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