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다시 읽기 2 - 회상과 대화 / 최종 강의 서경식 다시 읽기 2
하야오 다카노리.리행리.도베 히데아키 엮음 / 연립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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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다시 읽기2>, 연립서가

연립서가 최재혁 선생님으로부터 서경식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의미로 <서경식 다시 읽기>라는 책을 기획하신다는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한 생각은 ’좀 이르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다. 이제 서경식은 대학에서 은퇴하고, 더 왕성한 글쓰기를 할텐데 움직이는 과녁에 활을 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예상은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예기치 않게 서경식은 일찍 세상과 등졌다. 연립서가에서도 예상한 일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최재혁, 박현정 두 대표의 기획 덕분에 서경식의 사상을 한국과 일본에서 나름대로 조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서경식의 텍스트로만은 다가가기 힘들었던 서경식을 둘러싼 컨텍스트, 이를테면 서경식을 만든 역사적 사건, 사람들,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그 서경식이 한국에서 여러 층위에 어떤 컨텍스트가 되었는지 그려낼 수 있었다.
특히 <서경식 다시 읽기2>는 서경식이 일본에서 만난 동료들과의 대담과 에세이를 실은 우정의 기록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서경식을 나름 읽어온 나로서도 이 책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정말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70-80년대를 규정지은 형제 구원활동, 90년대 책임 논쟁, 자이니치 그룹을 지배했던 민족 논쟁, 2000년 즈음 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본격화된 프리모 레비에 관한 연구, 고립을 감내한 리버벌의 허위의식에 대한 투쟁 등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디아스포라‘나 ‘월경’이 지닌 낭만적 느낌으로 서경식을 읽는 것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정말로 잘 보여준다.
특히 모토하시 데쓰야 선생은 서경식의 재일조선인사를 대략 서기 1000년 경부터 시작된 식민주의에 대한 반식민주의 투쟁의 서사에 기입한다. 시부야 도모미 선생은 서경식이 인간의 추악함, 사실은 우리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안의 식민주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고 고백한다. NHK PD였던 가마쿠라 히데야는 서경식과 방송을 만들며 쌓아온 우정을 통해 ‘친절한 서경식’을 보여준다. 사키마 미술관장인 사키마 미치오씨와 서경식의 대화는 서경식이 일본 사회 내에서 소외된, 내부식민지화된 이들과 어떤 연대를 펼치려고 했었는지를 그려낸다. 그밖에도 최덕효, 리행리, 조경희 등 여러 젊은 연구자들과의 대화는 서경식 본인이 그토록 하려고 했던 일, 즉 서경식을 분절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저는 에세이를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이야기합니다. ’자명한 자신‘ 혹은 ’나란 이런 사람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분절화해서 관찰하며 그것을 이야기하는 작업 방식을 언젠가부터 갖고 있습니다“(330쪽) 그래서 우리는 <서경식 다시 읽기2>를 통해 역설적으로 서경식은 자명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서경식임을 이해하게 된다.

”나 자신을 규정하고 나누고 있는 여러 개의 구분선을 바라보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왜 이런 상황인지, 그런 맥락을 가능하면 지적으로 분절화해서 자기 이해를 하려고 애써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갈 작정입니다“. (334쪽)

어쩌면 서경식이 일생동안 해오려 했던 일과 이 책의 서술방식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서경식은 이런 이해를 자신에게만 했던 것이 아닌다. 여러 개의 구분선으로 분절하여 민족을, 일본을, 예술을 이해하려고 했다. (분절적이란, 단지 분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민족이라는 단일선, 젠더라는 단일한 구분선만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항대립적일 수밖에 없음을 조선반도와 일본을 걸쳐서 살아애했던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식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 내부에 침투하는 일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부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춘천에 가서 이종찬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어느 단체에서 이종찬 선생께 서경식에 관한 연속 강좌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 부탁에 대해 이종찬 선생은 ”서경식을 잘 이해하기 위한 목표라면 제 강의를 들을 필요가 있으실까요? <서경식 다시 읽기2>를 읽어보시면 됩니다“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그 강의가 성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종찬 선생의 강의라면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서경식을 촘촘하게 읽고 이해하려한다면, 어쩌면 재일조선인에 대해서, 자이니치에 대해서, 우리가 외부화했던 그들에 대해서, 우리 안의 식민주의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다면, 서경식의 책들과 함께 <서경식 다시 읽기2>는 꼭 읽어봐야 하는 것이라 권한다. 특히 우카이 사토시 선생의 글과 서경식의 응답, 시부야 도모미의 글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서경식을 입문하는 최적의 글이라 생각한다.
[추가]
내가 깜박 놓친 것도 있어서 내용을 좀 더 보태고자 한다. 서경식이 교수직 은퇴 후 집중하려 했던 일 중 하나는 '소설쓰기'였다. 이는 소명출판에서 나온 <대담집>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그가 소설쓰기의 전범으로 여긴 작품은 프리모 레비가 쓴 '아르곤', 또 <릴리트>였다. 이 작품은 일종의 인물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만나 함께 귀환했던 이들을 포함해 아우슈비츠라는 독특한 공간, 단적으로 '디아스포라적이라는 의미에서의 국제적 유대인 집합소'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을 조형했고, 그 때의 인물 탐구를 자신의 소설 내지 에세이에 담았다. 서경식 역시 그런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서경식은 아사히 신문에서 출판한 <20세기 천 명의 인물>에서 대략 마흔 명의 사람들에 대한 인물전을 썼던 것이(국내에는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프리모 레비와 같은 형식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과 만났을 것이다. 특히 <대담집>에서 소개한 자신의 이모부, 서경식은 그야말로 '디아스포라적이죠'라고 한 적이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쓰는 것에는 <서경식 다시 읽기2>에서 일종의 인물전이 등장하고, 마치 소설 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인터뷰 '서경식, 저작을 말하다'에 담긴 내용으로 153쪽부터 이후 시작되는 내용은 한편의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야스에 료스케, 고자이 요시시게, 히다카 로쿠로, 이바라키 노리코와 같은 전후 지식인에 대한 선생의 스케치는 그의 표현을 약간 활용해서 말하자면 <선한 일본 혹은 일본인>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에서 네 명에 대한 서경식의 글을 서경식의 소설 초안처럼 읽었다.

"야구에 비유한다면 야스에 선생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몰린 팀의 포수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포수는 팀이 위기에 내몰리더라도 냉정함을 유지하며 "지금은 어떻게 해도 한점 줄 수밖에 없나, 이러다가는 지겠구나."라는 식으로 누구보다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며 팀원의 용기를 복돋아야 하죠.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함께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야스에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166쪽)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참여한 <서경식 다시 읽기1>이 서경식이 한국 사회에 다소 문화적인 관점에서 수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금은 소프트한 책이라면, <서경식 다시 읽기2>는 일본에서 서경식이 뼈를 깎으며 싸우면 조탁한 운동론, 디아스포라론을 보여준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서경식을 만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서경식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도, 소외된 자들의 싸움에 관심이 있는 이들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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