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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ㅣ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평점 :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편소설《화재의 색》은 산업예금신용은행, 일명 페리쿠르 은행의 회장 '마르셀 페리쿠르'를 아버지로 둔 마들렌 페리쿠르(36살)의 이야기다. 억만장자 아버지를 두었기에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던 그녀. 전남편 앙리 도네프라델과 이혼하고 7살 아들 폴과 아버지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불행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 말을 더듬는 언어장애는 있지만 신체건강했던 아들이 3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중태에 빠졌고 불행 중 다행으로 살아남긴 했지만 척추에 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로 영원히 걷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유산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은 없는가 했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의 음모로 돈을 다 잃고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를렌은 자신이 망한 것에 대한 의혹을 조사원에게 의뢰해서 풀었고 이제 철저한 복수를 다짐 실행에 옮기려 한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 먹을것이 있다'는데. 망한 것도 망한 것이지만 그것이 주변 사람들의 배신에 의한 것이라면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 폴의 가정교사이자 마들렌의 애인이었던 앙드레 델쿠르에게도 말못할 비빌이 숨겨져 있었다. 가장 큰 반전인 폴 페르쿠르가 왜 '할아버지의 장례식날 3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는가'에 대한 의혹은 책을 읽으며 풀어 보시길.
돈 앞에는 장사없다고 했던가, 아니 돈 앞에는 혈육에 정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화재의 색》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귀스타브 주베르(52살), 마르셀 페리크르 회장이 믿고 신임하는 직원으로 딸 마들렌(36살)과 결혼시키고 싶어했지만 딸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마들렌은 극심한 나이차를 결혼 반대의 사유로 달랐지만 숨겨진 비밀은 다른 것, 만약 그와 결혼했다면 거액의 재산을 잃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만 그녀 또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마들렌,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 충고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죠…….」(p.222) 당신이 망한 것은 내 탓이 아니라는 주베르의 변명이다.
누군가는 승승장구 더 높아지고 있다면 하루 아침에 추락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의 절망감은 어떠할까? 더구나 그 상대가 믿어왔던 사람이기에 느껴야 하는 감정이란, 책은 더불어 프랑스 파리의 30년 대에서 40년 대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언제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불안의 날들, 마들렌의 주변 사람들의 교묘한 언변에 농락당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가 일조한 탓이다. 탐욕에 미쳐 날뛰는 썩어빠진 정치가, 사업가, 언론인, 지식인, 공무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도 잘 그려져 있다. 그것이 단순히 그 시대에만 적용되는 상황일까? 현대에선 일어나지 않는다며 안심해도 될까? 믿고 싶지만 믿는다고 말할만큼 순진하지 않다는 것이 서글프다.